<백충기 수필: 백령도 이야기>
어릿골 촛대바위
어릿골 촛대바위 / 하늬바다에서 우럭낚시
백령도의 북쪽, 북한 옹진반도의 장산곶이 빤히 앞에 건너다보이는 곳을 하늬바다라고 하는데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군사지역이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민간인 집들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남쪽 해안으로 이주시키고 철책을 설치하여 해병대들이 초소를 세우고 지키고 있다. 지금은 어장을 드나드는 주민들은 군의 허가를 받아야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없고 드나드는 사람이 뜸하다보니 해산물이 지천이다.
백령도는 전복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해산물은 양식하지 않고 모두 자연산인데 특히 값비싼 전복은 어촌계원들만 채집할 수 있고 백령도 주민들이어도 일반인들은 함부로 잡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학부형이었던 당시 어촌계장은 '교장선생님이 잡아 봐야 몇마리나 잡겠어요. 언제든지 마음대로 잡아 잡수세요...' ㅎㅎ
이 하니바다 해안 산비탈에 조그마한 골짜기가 있고 앞에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곳을 '어릿골'이라고 했다. 바로 그 앞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촛대바위로 너무나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이 촛대바위는 물이 밀면 작은 바위섬이 되고 물이 썰면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는 바위섬인 셈이다. 이곳은 철책선 안이라 민간인 통제구역이고 부근은 온통 바위와 작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들이 자주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낚시는 물론, 전복, 해삼, 삐뚤이를 비롯하여 튼실하게 자란 다시마며 가지가지 해산물이 풍부하고 특히 바위마다 석화(石花:굴)가 지천으로 덮여있다.
일년 중 11월 중순이 물이 가장 많이 썰어서 촛대바위 부근이 온통 훤히 드러나는데 주민들이 많이 들어가 굴도 따고 삐뚤이도 줍지만 해병대 초병들도 이때는 관광객들이 아니고 주민들이면 대체로 모르는 체 한다. 할머니들이나 농사일이 끝난 부녀자들이 하루 나가서 굴을 쪼면 페트병 3개 정도는 쫀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페트병 하나에 2만원정도 한다. 백령도 굴은 크기는 조그만한데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물이 써는 시간이 오후 1시 경이라 학교 기사(통학버스 기사) 두 분과 촛대바위로 갔다. 하늬바다 철문으로 들어가면 너무 멀어 차로 조금 더 가서는 수문을 통해서 들어갔는데 7~8m 정도를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바다 쪽 구멍입구는 원래 철근으로 망을 달아 놓았었는데 누군가 구멍을 터 놓아서 아는 사람들은 초병들의 눈을 피해 드나드는 곳이다.
나는 작지 않은 덩치에 장화를 신고, 색(Sack)을 짊어지고, 두터운 옷으로 껴입은 데다 귀를 가리는 모자까지 뒤집어 써서 거동이 불편해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기어 나가는데 신바람이 난다. 인적이 끊긴 해변, 장산곶에서 건너오는 매서운 바람과 하얀 포말이 뒤덮여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노라니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해안에는 북한 선박들이 접안하지 못하도록 시멘트 기둥을 비스듬히 박아 놓았는데 용치(龍齒:용의 이빨)라고 부른다.
수문 구멍을 나간 다음에도 해안을 약 20분정도 걸어서 촛대바위에 도착하여 물이 빠진 바위틈을 뒤지는데 이미 주민들 여나문 명은 바위에 앉아 굴을 쪼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삐뚤이를 주웠다. 삐뚤이는 바위틈 작은 모래 속에 숨어 반쯤 등딱지가 보이는데 처음에는 잘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크기는 논에 있는 민물 우렁이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반 양동이는 주웠다. 삐뚤이는 소라 사촌 쯤으로, 크기는 조금 작지만 거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런데 껍질의 돌아가는 방향이 소라와 반대이다.
기사들은 이곳 출신들이라 바다 속을 훤히 알고 있는 듯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바위틈에서 연신 전복과 해삼을 건져내었는데 생각보다 물은 따뜻하다.
“교장선생님 이거 잡숴보세요.”
주먹만한 먹해삼(새까맣다) 한 마리, 거의 손바닥만한 전복 한개, 세(細)발 낙지 한 마리를 즉석에서 날로 먹어치웠다. 아! 그 짭짜름하고 꼬들꼬들하고, 달짝지근한 바다의 향기라니..
또 기사들이 준비해 온 쇠 지렛대로 한 아름씩이나 되는 바위를 젖힐 때마다 낙지며, 고둥이며, 삐뚤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3시 반경 물이 밀기 시작하여 촛대바위에서 철수하면서 보았더니 삐뚤이가 거의 한 양동이, 해삼과 전복이 각각 25마리 정도, 주먹보다 큰 성게 한 양동이, 영양이 만점이고 특히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좋다는 백령도 고둥도 반 양동이나 되었다. 학교에 전화하여 파티를 준비하라 이르고...
짬을 내어 준비해 가지고 간 낚시대를 잠깐 담궜는데 엄청나게 큰 우럭이 올라온다. 이곳에서는 작은 우럭새끼는 깜펭이라고 부르는데 바닷가 아무데서나 낚시를 드리우면 연달아 올라온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전 교직원과 아이들까지 모여 풍성한 해산물 안주로 술을 한 박스나 해치우고 사택에 사는 사모님들이 끓여온 컵라면으로 저녁까지 때운 다음 남자들은 곧장 당구장으로 몰려갔다.<나는 당구 40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