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언어
붉은 낱말
슬픔조차 근접할 수 없는 환희의 낱말
아름다움, 수정 같은 정교한 붉음은 어떤 형식을 띠게 될까
태양의 옷들이었지
그래, 붉은 길을 가보는 거다
이곳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들, 낯설고 어눌했던 시간을 열고
마당에 늘어놓은 빈 토분에 제라늄 씨앗을 심고 꽃의 낱말들을 길러야겠어
냉이꽃 수레를 끌 당나귀 한 마리도 구해와야겠지
아이의 들판에 안개와 바람과 까마귀와 비밀의 숲과 붉은 털 여우가 있었지
넌 출생부터 꽃의 아이였어, 지하세계의 화사한 낱말들을 뿜어 올릴 줄 알았지
꽃의 설계도를 가진 채, 말의 씨앗인 너
빨간 머리 앤 *
주근깨투성이 아이야
너는 자체 발광 환희의 말들이었어
이층 창가에 올리브 흔들리는 나뭇가지, 안개 그리고 구름
빈 플라워 [ Bean flower ]..., 비밀의 정원 뒤뜰에 늘 숨어들곤 하던 빨강머리 아이야
너의 말은 어여쁜 꽃의 낱말들이야
* 몽고메리 원작의 동명 소설, 넷플릭스 시즌3, 10부작 미국 드라마
< 시작 노트 >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상큼한 공기가 느껴지는 봄날이었다. 저녁의 어둠이 잔설처럼 내리는 길이었다. 네온 불빛이 켜지고 대문이 조금 열려 있는 정원이 있는 집, 빨려 들어가듯 그 집의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축제의 장소... 목이 긴 여성들... 경쾌한 음악들..., 긴 꼬리가 달린 긴 다리의 여성들이 열심히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황홀한 색감의 천을 두른 그녀들은 한 번도 만나거나 본 적이 없는 종족들이었다. 진귀한 음식을 담은 대형 접시를 나르는 그녀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음악이 울려 나오는 계단의 꺾인 모서리에 크고 작은 여행자 가방들이 쌓여 있었다. 그 집 입구의 철제문에 별처럼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밤새 켜져 있었다.
네온 간판에 빈 플라워 [Bean flower] 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시집의 ≪여행자 가방≫이라는 시를 썼다. 몽환, 꿈의 한 자락이었다.
첫댓글 정화진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올립니다.
부서진 노래 언덕
다시는이곳으로돌아오지마라
검정숯물고기들아
지층아래검은뻘밭복숭아나무발아래청새치고고등어고정어리들아
고래들드러누운모래언덕인도양어디쯤도
썩은노래의잔해들위로조기떼열기떼붉은살들지중해뜨거움들아
수천생애건너온무녀들도노래의혀를잃고컥컥컥
목쉰물결소리벼랑저아래언덕또언덕지층들사이로
끝나지않는슬프디슬픈노래위로물결벼랑들아
끝없는부서짐들헤어짐들아
다시는이곳으로돌아오지말아다오
-시집『끝없는 폭설 위에 몇 개의 이가 또 빠지다』에서
네온 간판에 빈 플라워 [Bean flower] 밤새 반짝이는 네온
시를 쓸 수 있는 몽환 나도 꾸면 좋겠습니다
꽃이란 밤 또는 낮에 피는 꽃이 있지요?
빈 플라워 네온 밑에서 밤에 피는 꽃이었던가 봅니다. 꿈이지만 요.
말의 씨앗인 붉은 꽃의 낱말이 너무 황홀하여 꽃 이파리에
슬픔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꽃의 낱말들이 얼마나 예쁠까요
태양이 아니면 색도 분명 달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꽃이라 부를 수 없는 무엇이 피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태양의 옷, 태양이 입혀 준 붉은 꽃잎 조심조심 난관을 잡고
그래요 우리 같이 붉은 길을 따라가 봅시다
낯설고 어눌했던 시간을 드르르 열고 다정히 맞아줄
빈 토분에 빨간 제라늄 씨앗을 덮어 어떤 꽃의 낱말이 돋아날까요?
물을 주고 기다려 봅시다
냉이 꽃수레를 끌 당나귀도 물색해 놓고요 (콩밭에서는 콩 외엔 모두가 잡풀이지요?)
꽃말이 출생했군요.
처음부터 꽃말의 설계도대로 돋아난 겁니다
자체로 발광하는 참나리꽃이 아니었을까요?
상상이
비밀의 정원 뒤뜰에 늘 숨어들곤 하던 태생이 꽃이었든 그는
지하 세계에서 꽃의 낱말을 뿜어 올렸겠지요
빈 플라워가 만개한 비밀의 정원 뒤뜰에 숨은 듯
피어있는 꽃에서도 꽃말들이 피어났겠지요
빨간 머리 앤과 참나리 같은 꽃을 동일시 한 것이 재미있어요
밤새도록 네온 간판 빈 플라워 [Bean flower]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는 집에서 생소하여 당항하는 모습이 떠 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몽환이지만요
꽃의 언어에
참나리 섞은 꽃다발을 한아름 드리고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