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위성
인간의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는 완전히 무작위적일까, 아니면 무너가 전체적인 패턴이 있을까?
다시 말해 역사에는 방향성이 있을까?
대답은 '있다'이다.
수천수만 년에 걸쳐, 작고 단순한 문화들이 점차 뭉쳐서 더 크고 복잡한 문명으로 변했다.
그래서 세계의 메가문화의 개수는 점점 적어지는 동시에 각각은 점점 더 크고 복잡해졌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일반화로, 거시적 수준에서만 맞는 이야기다.
미시 수준에서 보면 다르다.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메가 문화를 이루는 문화집단들이 있듯이,
조각조각 분열되는 메가 문화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몽골 제국은 한껏 팽창해서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과 유럽의 일부분까지 지배했지만 결국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다.
기도교는 한꺼번에 수억 명씩 개종시켰지만 결국 수없이 많은 분파로 갈라졌다
라틴어는 서부 및 중부 유럽에 퍼져 나간 뒤 지역별 방언으로 쪼개져, 각각이 결국 각국의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불굴의 기세로 진행되는 데 비해 분열은 일시적인 반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방향을 인식하는 일은 사실상 시점의 문제다.
역사를 조감도처럼 보면, 즉 역사발전을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이라는 단위로 검토하면,
역사가 통일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다양성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판정하기 어렵다.
장기적 고나정을 이해하기에 조감도는 너무 근시안적이다.
그보다는 우주에 떠 있는 정찰위성의시점을,
즉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년이라는 단위를 스켄하는 시점을 취하는게 낫다.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시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기도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한 순간에 지구라는 행성 위에 각기 분리된 체 공존했던 인간 세상들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행성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지구는 각기 격리된 수많은 인간 세상들로 구성된 은하와 같다.
호주 남쪽에 있는 중간 크기의 섬 태즈메이니아를 떠올려보자,
이섬은 기원전 10000년경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했을 때 호주 본토에서 분리되었다.
섬에는 수렵채집인 몇천 명이 남았고,
이들은 19세기에 유럽인들이 도착할 때가지 다른 인류와는 아무 접촉도 하지 못한 채 살았다.
12,000년간 태즈메니아 바깥 세계에 누군가 살고 있는 줄 몰랐고,
이 섬 사람들은 바깥 세계에 누군가 살고 있는 줄 몰랐다.
이들에게는 나름의 전쟁 정치 투쟁, 사회적 변동, 문화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가령 중국의 황제나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에게
태즈메이니아는 목성의 위성 중 한 곳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즈메이니아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미국과 유럽 역시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에 서로 고립된 세계였다.
기원후 378년 동로마 제국의 발랜스 황제는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패해 사망했다.
같은 해 마야티칼의 착 톡 아이착왕은 테오티우아칸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해 사망했다.
(티칼은 마야의 중요한 도시국가였고, 테오티우아칸은 당시 아메리카 대룩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거주민이 25만명이 넘었다.
동시대 로마 인구와 같은 자릿수다)
로마의 패배와 테오티우아칸의 융성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로마는 화성에 있고 테오티우아칸은 금성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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