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안숭범
십수 년만의 두근거림을 십수 년 전으로 돌려보내며
아빠는 퇴근한다, 사소한 것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옛집 장독대 옆에서 해종일 웅크린 검둥이처럼
버리기는 아까워 모아둔 서류 봉투처럼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늘 내년에 살지
감정 없는 구름이 어제의 입장을 보채는 계절이고
일단 몸을 출근시키면 마음은 뒤따라가는 습관으로
오늘도 표정 없는 친절이 발명되는 의자에 앉지
뭐든지 오래 연습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아이에게 해줄 말이 사는 나라를 찾다가
벽시계는 늘 다음 순간으로 망명을 가는구나
이제는 누구에게도 연필 하나 다 닳아지는 시간을
견디지 않지, 그것은 구멍을 견디는 마음
빠져나갈 것들은 다 빠져나갔다고 말하면
라흐마니노프의 큰 손, 포지타노의 레몬 캔디
독수리성운의 기둥, 앤디 워홀의 수프 캔
그러나 내 발바닥에 들러붙은 안개와 밤
어쩔 수 없이 밤의 안개, 네가 있는 여름에서
식지 않는 것들이 있어도 두근거림 없이
십수 년을 살 수 있는 쪽으로, 내일이면
정말이지 기계적인 걸음걸이가 완성될 거야
늙은 자동차는 바꿀 수 없거나 바꾸지 않고
화창한 날씨가 세 들지 않는 빈방은 안전하여라
잠시라도 내 것이었던 이의 혈관 속 음악은
내 뼈를 그리워할 일이 없고, 이것은
신앙생활, 사소한 건 알 턱이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십수 년 전부터 오래 연습한 마음으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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