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은 장래, 이제야 완전한 코로나19의 종말이 왔다.
WHO는 3월 1일을 기해, 코로나 팬데믹은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이 발표에 축제를 벌였고, 기쁨에 도취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Happy New Year!
Congratulation!
사람들은 새해가 아님에도 이렇게 인사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죽음의 바이러스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재차 변종을 일으켰다.
결국 더욱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인간 변이종 바이러스였다.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린 자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다시 세상은 난리가 났다.
괴물의 출현으로 도시는 괴물 반, 생존자 반으로 급격하게 나뉘기 시작했다.
이에 세계 각국 정부는 공동으로 시베리아 등에 안전지대(Safe Zone)를 마련했다.
그리곤 중요기관과 의료진, 부유한 생존자와 주요 물자를 그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즉각 비상 상태를 선포하고 시베리아에 이주하기로 하였다.
그곳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일부 생존자를 보호하면서 본국에 남은 주요 기관과 계속 교신하기로 하였다.
본국에 남을 기관은 대략 과천 정부 청사, 국정원, 자체 안전지대를 확보한 향토사단, 경찰서, 통신사, 신문사 등이었다.
그곳엔 극히 일부 요원들이 남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법무부 교정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밀리에 회의를 열어 전국 교도소 재소자들의 절반을 사살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이 괴물이 될 경우, 엄청난 폭발력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를 끝까지 반대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무산교도소 소장, 한기백이었다.
“안 됩니다. 그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요.”
“국민은 젠장, 세금만 축내는 밥벌레지.”
“한 소장! 이미 위에서 결정된 거요. 그냥 넘어갑시다.”
“도대체 누구 지시입니까? 교정국장 아니면 법무부 장관이요?”
“더 높은 곳이요. … 대통령실!”
“이런 씨벌!”
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결국, 전국 교도소 재소자들의 절반은 죽을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이 공모를 눈치챈 자가 있었으니, 그는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조이태이다.
“뭐? 우리 절반을 다 죽여? 이거, 미친놈들 아냐?”
그의 재기발랄한 재치로 전국 교도소의 절반의 재소자가 죽음을 면하게 된다.
이에 재소자 번호 2154, 조이태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한다.
‘괴물 박멸! 그리고 우리 사회의 완전한 변혁(revolution)을 위하여!’
조이태는 재소자들을 선동하여 괴물들을 섬멸하고 생존자를 구하기로 작정한다.
결국, 조이태는 전국의 괴물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그 때문에 그는 생존자들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시베리아로 도망간 썩어빠진 정부 요인들과 부자들을 응징하고, 그의 전 연인인 유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닥쳐라! 새 세상은 우리가 만들 터이니.”
* * *
그해, 여름 무산교도소 7동 상, 5번 방이었다.
일단의 재소자들이 창문을 통해 근무 중인 교도관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간, 몹시 무더운 여름 저녁 무렵이었다.
“부장님! 아직 공사 중인교? 무슨 놈의 전기 공사가 이리 더디노?”
교도관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보면 몰라? 지금도 공사하고 있잖아.”
“아니, 벌써 한 달째 TV가 안 나오면 우리는 우짜란 말잉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어떤 재소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재소자가 입을 대었다.
“쓰발! TV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문이라도 줘야지!”
“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도 알아야 할 것 아뇨?”
그런데도 교도관은 별말 없이 방만 씩, 하고 둘러보더니 제자리로 가버렸다.
이에 할 말을 잃은 재소자들은 이불을 걷어차며 더위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밖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교도관들은 애써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교도소 내 작업장엔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사동 전기 공사는 거짓말인 것 같았다.
그때 방장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이봐, 이태!”
“네, 방장님.”
방장은 입맛을 다시며 그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내일 총반장을 한번 만나 봐.”
“총반장 말씀입니까?”
“그래, 그래서 지금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알아봐. 응?”
“알겠습니다.”
이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개 재소자가 총반장을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총반장은 사회에 있을 때, 목포파의 두목이었다.
지방의 조폭 두목이었지만, 사실은 전국구였다.
몇 년 전 그는 조직 간의 전쟁 때 상대편 두목을 도끼로 살해한 죄로 들어왔다.
한마디로 어마무시한 자였고, 매우 흉폭하고 잔인하였다.
그래서 그는 입소하자마자 총반장을 꿰찬 인물이었다.
언제나 말없이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였다.
이태는 입소 첫날, 그에게 인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조금 버벅거렸다,
“안, 안녕하십니까? 총반장님.”
“뭐야? 왜 이리 더듬거려? 뭘 잘 못 먹었어?”
이 때문에 부하들에게 머구리를 당한 경험이 있어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그나마 최근에 그에게 ‘가석방’ 등 법률적인 조언과 자금세탁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상태였다.
이태는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사에서 회계를 담당한 재원이었다.
비록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지만, 이태는 이곳에서 인텔리로 통했다.
다음날, 이태는 총반장이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은 교회 뒤편 빨래터를 임시 조립하여 쓰고 있었다.
교도관들의 묵인하에 운영되는 그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저놈, 또 왔어?”
문 입구를 지키던 그의 수하들이 이태를 째려보았다.
“이봐. 먹물! 오늘은 또 무슨 꿍꿍이로 우리 총반장님을 찾아왔냐?”
그의 수하들은 이태가 그들과 달리, 가방끈이 긴 것에 마음이 상해있었다.
“안에 계십니까?”
그러자 수하 중 한 명이 손을 내밀었다.
뻔한 일이었다.
이태는 얼른 작업복 안에 손을 넣어 담배 한 갑을 쥐여 주었다.
“좋아. 들어가 봐. 형님! 먹물이 찾아왔습니다요.”
이태가 문을 열고 인사할 때 총반장은 술에 취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대낮인데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태? 그래, 웬일로.”
‘대낮에, 그것도 교도소에서 술을?’
이태는 아니꼬웠지만, 꾹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방뿐만 아니라, 모든 재소자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뭘?”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요?”
그러자 총반장은 이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는 둥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TV도 신문도 안 되니 그럴 수 있지. 이리와 앉아.”
그러면서 그는 바로 앞에 있는 TV를 켰다.
이태는 TV를 응시하며 그의 곁으로 가다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럴 수가!”
화면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가감 없이 나타났다.
크렁, 크렁, 크러릉, 카아아아아악!!!
일단의 괴생명체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이리 물고 저리 뜯고 있었다.
당황한 시민들은 발버둥 쳤으나, 이내 한 무리의 괴물들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었다. 그중엔 노인은 물론 어린 소녀, 소년도 있었다.
“세상이 말세야. 말세.”
총반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주를 병나발 불고 있었다.
“반장님! 저게 뭡니까? 괴물인가요?”
“나도 몰라.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한 거라던데, 확실한 용어를 말하지 않아.”
“아니? 대체 이 사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이태는 이런 사실을 재소자들에게 말하지 않은 교도소 측에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한 달쯤 되었다던데.”
“네? 벌써 한 달요?”
“그래, 밖은 난리가 아닌가 봐. 이미 국민의 반 정도가 감염되었다는군.”
“그래요?”
그때 화면 밑으로 자막이 떠올랐다.
「대통령과 정부, 시베리아 이주 결정 」
이어서 또 다른 자막이 올라왔다.
「시민 중 이주 희망자는 외교부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신청하기를 바랍니다.」
기가 찰 일이었다.
‘뭐야? 뭐야?’
현 대통령과 새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하여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일수록 국민을 다독이며 괴물과 일전을 벌여야 할 정부였다.
그런데 되려, 부자들과 재벌을 독려하며 제 살길만 찾는 것 같았다.
‘이런, 이런 상황에서 시베리아행이라니?’
이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작년부터 경기는 최악으로 다다르면서 물가는 폭등하고 있었다.
공공요금 또한 대폭 인상되어 돈 없고 배경 없는 자들은 살기가 팍팍했다.
결국 노동자, 농민, 청년, 소상공인 등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자신이 갇힌 교도소엔 절반이 생계형 죄수였다.
일자리가 없어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활동하다 잡혀 들어온 청년,
방학 때 알바하다, 악덕 주인에게 따지다 명예훼손으로 들어온 대학생,
건폭으로 낙인찍혀 무전취식으로 들어온 노동자,
지주에게 항의하다 빨갱이로 몰린 초로의 농부 등등 …….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죄명으로 징역을 사는 이가 태반이었다.
이태는 어처구니가 없어 속으로 질러버렸다.
‘이 망할 놈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