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어의 다르마(Dharma)의 음역인데, 보리달마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며, 과거에는 달마(達摩)라고 쓰고, 원각대사, 성위대사라고 하였다. 중국음으로는 Damo. 남인도 향지국왕 제3자. 유아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로, 불타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하는 제27조 반야다라를 따라서 출가, 인가를 받아서 제28조 보리달마다라가 된다. 마침 남북조의 중기, 중국불교가 교학에 기우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멀리 전법을 시도하고, 해로(海路) 3년 후, 광주에 닿았다. 양의 무제를 만나지 않고 몰래 북상해서 위나라의 숭산 소림사에 들어가 제자 혜가(慧可)를 얻어서 정법안장을 전하고, 중국선종의 시조가 되었는데, 낙양교학의 대세를 차지하는 타파의 학도에 독살되어, 오판의 능이에 장사지내졌다. 결국 인도로 서귀, 또는 일본에 내화했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원래 달마가 전하는 정법안장의 본질은 자각성지(自覺聖智),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으로서, 이를 옛날부터 전승되는 『능가경(楞伽經)』에서 구하는 것과, 양의 무제나 제자 혜가와의 문답에서 구해서, 거기에 반야개공(般若皆空)의 이치를 중시하는 것, 또는 경전 일체를 버리고 이심전심을 주장하는 것 등 후대가 될수록 다수의 이설을 낳았다. 거기에 선(禪)의 이상화가 더해져서 원래의 사실을 소재로 덮는 결과가 되는데, 금세기 초기 이후의 돈황문서의 발견에 의해서 초기 선종사의 실태가 밝혀짐에 따라서 달마의 전승과 사상도 거의 그 정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즉, 종래는 낮게 평가된 『이입사행론』과 그 편자 담림이 정리한 서론이 원형으로, 그에 의하면 달마는 서역을 거쳐서 직접 북위로 온 유화승의 한 사람으로, 그 설은 『능가경』보다도 오히려 『유마경』이나 삼론의 사상 등 쿠마라지바의 대승불교를 중국 민족이 실천에 적합한 벽관의 설로서 구체화한 것에 있는 것 같다.
첫댓글 인도불교의 중국전래
불교가 후한시대부터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기시작하고
한나라멸망이후 유학이 권위를 상실하자 황필하안은 도교를가지고 시대의문제를 해결하려하고
동진시대에 중국사람들은 노장의 無를 바탕으로 불교의 空을 이해하면서 격의불교탄생한다
AD 401 중앙아시아 쿠마라집이 중국수도 장안방문하여 격의불교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남북조시대 보리달마 중국방문하여 선종확립한것은 맞읍니다
그러나 선종형태의 불교종파는 인도에는 없읍니다
1. 당시 중국불교가 경전위주로 상류층에게만 전도되면서
글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교를 알수도 없었읍니다
그래서 달마는 경전 ( 글자 )을 많이 공부하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실한 마음으로 내안의 불성을 찾으면 된다고 주장하죠
2. 인도에 선종종파가 있어 중국에 전도한것은 아니고
석가의 가르침이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고 표현이 산문식으로 되어있어
중국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중국사람들이 이해할수있는형태로 변형된게 맞는것같읍니다
선종이 대승이냐 소승이냐는 역사적사실일뿐 중요한게 아니고
언어의 미망을 걷어내고 나를 알고 나를 잊는게 선종의 정신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겠죠
불교는 무명(Ignore)에서 명(enlightment)으로 가는것이지만 무명이 없으면 명도 없고 명이 없으면 무명도 없게되는 상대적개념이므로 결론은 선(진리)이 없으면 악(허위)도 없게되죠
말장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