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近況)
김경호
어이, 자네 이제 퇴근길인가
기다리지 않아도 가을은 와
은행나무 잎 물들기 전에
은행 열매 먼저 익어 떨어지고
철거된 지 오랜 골목 빈 터마다
가로등조차 고개 젓는데
어디서 여태 빈 지갑 흔들다
이제 오시는가
어린 시절 자네 고향 과수원집은 홍수에 묻고
코흘리개로 도회 변방 여기
다섯 살에 이사 나와
한 동네서 사십오 년,
한 집에서 이십오 년,
무슨 동장(洞長)할 일 있다던가
요즘 운 좋은 자네 또래들
위장전입, 병역기피, 땅 투기, 세금탈루
대서특필 행차하는데
저 동네 산 아래 갇혀 살아 온 그 세월 동안
자네 온기 없는 빈 방엔
푸른곰팡이는 휘날리고 때로
비도 새지 않던가
그래도 아침이면 눈은 떠져
안경 더듬어 빛바랜 넥타이 찾고,
이 달도 어김없이 봉급날엔 칼치떼 번쩍이며
뒤꿈치에 달려드는데,
아득한 강물 같은 서른 해 출근길
부리는 이는 많고
부릴 이 없는 그 자리에서
돌려 세운 세월이 얼마인가
이제 그만 들어가게,
자네 목소린 그 옛적
서리 내린 먼 새벽길
빈 지게 얹어 리어카 끌고
싸리나무 하러 나가시던
그 어른 목소릴세,
보게,
저 앞산 용두골
해마다 송이 따던 우거진 솔숲 다 베어지고
집집마다 아궁이마다 고기타는 연기 매운데
어쩌자고 보름달은
저리 밝아, 이젠 영영 부엉이도 울지 않고
안부 하나 그립지 않을
이 빈 마을 휘영청 비추고 있는가
김경호
경북 의성 출생. 1977년 영남일보, 198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에티카』2010. 상반기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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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지 『시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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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近況)/김경호
황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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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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