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과 푸른빛 꽃무늬가 어우러진 양산을 빙빙 돌려가며 그녀가 활짝 웃고 있다. 만개하고 있다. 함박꽃이다. 그녀의 웃음과 표정은 순간의 최대치 행복이 아닌가. 그 행복을 포착하기 위해 나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뛰어다니며 핸드폰 셔터를 수도 없이 누르고 있다.
땅을 사놓은 게 있고 그 땅에 이층집을 지을 계획이라고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결혼한 딸네와 함께 살 집이라고 했다. 그즈음 딸의 딸, 외손녀 셋을 돌봐주고 있었으므로 함께 살면서 더 적극적으로 손녀들을 돌봐줄 생각이란다. 새 집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는 게 역력했다. 여고동창들 일곱 명은 너만 고생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니 심사숙고하라고 이구동성으로 반대 깃발을 올렸다. 그러지 않아도 그녀는 시어머니와 외손녀들에 둘러싸여 잡다하고 고달픈 일에 매여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 고생이 많은 편에도 속했다. 홀어머니에 외아들. 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인물 구성 가운데 끼인 여자다. 심리적인 갈등과 고난의 연속선상에 있는 주인공이다. 거기다가 딸네와 함께 살게 되면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두 배로 고생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염려에서였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젊어서 홀로 되신 탓에 아들에 대한 염려와 사랑과 집착이 강했다. 아들은 자식이며 남편이었다. 아들이 출근을 하면 부리나케 며느리보다 앞서서 배웅을 한단다. 아들 내외 방에 들어가 침대를 정리하기도 하고 며느리 보다 먼저 아들 밥상을 차려준단다. 아들의 옆자리를 며느리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게 문제였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 그대로 아들을 사랑셨던 것이다. 그러니만큼 아내의 자리를 박탈당한 기분으로 삼십 해 넘게 살아온 그녀였다.
내 시어머니 역시 딸 넷을 낳고 아들을 낳았으므로 내 남편에 대한 사랑은 하늘에 닿았다. ‘내가 아들을 장가보내고도 살았는데 어떤 일을 견디지 못할까’ 어머니의 이 말씀 속에는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집착이 응축되어 있었다. 시부모님을 찾아뵙는 날이면 어머니는 오 내 큰아들 왔구나 라며 아들을 얼싸안고 반길 뿐 나는 그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도 내 어머니는 며느리인 나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아들을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니셨다. 물론 함께 살았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고통을 백퍼센트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며느리로써 여자로써 아내로써 그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다. 여고동창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보면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내보이기 마련인데, 그녀에게서는 분노와 절망으로 깊게 베어진 상처를 꽤 여러 번 목격하였다. 상처가 아물 때 쯤 다시 넘어져 상처가 생기고는 했던 내 어린시절 무릎처럼 아물지 않은 상처의 흔적들로 울퉁불퉁해진 그녀의 가슴팍을 보았다.
그러던 중 그녀가 새로 이층집을 짓는다고 말할 때의 벅찬 얼굴, 희망이었다.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보랏빛 나팔꽃을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꽃들을 가꿔낼 희망과 기쁨의 목소리도 들었다. 집을 어떻게 지을까 벽지를 무엇으로 할까 또는 주방을 어떻게 꾸밀까 등등을 생각하느라 가슴이 두근거린다고도 하였다. 깊은 늪을 벗어나 들꽃들이 일렁이는 푸른 초원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현재 진행 중인 고부간 갈등을 완화시킬 확실한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덩달아 두근거리고 가벼워졌다. 들뜨고 신이났다. 그래서였을것이다. 집 짓는 다는 그 말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편 썼다. 그녀에게 선물했다
집 짓는다는 그 말
집 짓는다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처럼 내겐 파문이 일지
어려서 소꿉놀이 해 본 사람은 알구말구
솔방울 달린 소나무 아래가 좋을까
앉을뱅이 진달래나무 옆이 나을까
방은 세개를 만들까 두개를 아래 위로 만들까
뒷산에 오르자마자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안달했지
흙을 파내고 방을 만드는 동안
그만한 몰두와 그만한 기쁨
사는 내내 몇 번이나 만났을까
갈래머리때 친구가 이층집을 짓는다는 말에
덩달아 들뜨네
보랏빛 나팔꽃을 좋아하는 그녀는 꽃밭부터 만들꺼구
나팔꽃은 하늘 향해 여름내 피어날꺼구
행복씨가 뭉개구름 타고 내게로도 날아올꺼구
집 지어본 사람들이 말하듯 그녀도 말할까?
살아생전 두 번 할 일은 아니지 아니라고
집 지어보지 않은 나는 오늘도 꿈꾸네
안방 대청마루 건너방 부엌 사랑방 툇마루 광
고향집 닮은 집 꿈꾸지
집을 짓는다는 그 말, 참 아늑하지
드디어 이층집이 완성되었고 그녀의 새 집에 도착했을 때, 햇살이 유독 푸짐하게 비춰드는 멋진 이층집과 뜰을, 새색시의 첫 인사인양 산뜻하게 만났다. 앙증맞은 꽃부터 묵화에나 등장하는 우아하게 굽은 소나무까지 아기자기하면서 운치가 곁들여진 공간이었다. 손바닥만한 뒤뜰도 정갈하고 알뜰하게 채소밭과 꽃밭으로 매만져 놓았다. 부지런하게 움직일 그녀의 일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살림 솜씨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나를 꾸미는 거 보다 집을 꾸미는 게 더 재미있다. 예쁜 이불 예쁜 접시가 더 좋은 거 있지'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그녀보다 그녀의 집이 훨씬 세련되고 우아하고 기품 있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내 글, 집을 짓는다는 그 말 이 담긴 액자를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었는데, 글씨체가 남다른 그녀의 남편이 내 글을 직접 정성스럽게 써서 액자에 넣은 것이었다.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그 마음. 감동이었다.감사함이었다. 내 글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는가. 그녀는 내 텃밭 종자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른쪽 자두나무 아래서 양자산쪽을 바라보는 구도를 섬세한 붓질로 그린 풍경화 한 점을 내게 주었다. 그녀의 초기 작품이므로 욕심이 많은 나는 은근히 고대한다. 그녀가 유명한 화가가 되어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날을 말이다. 후후후.나는 안방 침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그 그림을 걸어놓았다. 내 텃밭을 아침에 점심에 아무때나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동시에 환하게 웃는 그녀도 본다.
그녀의 새로 지은 집 곳곳에는 마치 전시장처럼 그 위치에 걸맞게 본인의 그림을 걸어두었다. 층계참에 거실에 복도에 안방에 하다못해 주방 싱크대 위에도 화장실에도 그녀의 그림을 올려놓았다. 공간공간이 겔러리였다. 그 그림들로 인해서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부드러우면서 정감 있게 살아있던가. 특히 희고 작은 꽃들이 화병에 가득하고, 의도적이겠으나 꽃가지 서너 개를 왼쪽 바닥에 놓아둔 그림 한 점은 내 눈을 화등잔 만하게 만들었다.전체적인 색감을 약간 어둡게 칠해 무게감이 있었으며 바닥에 놓아둔 꽃가지가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구도를 변형시켜 놓았다. 꽃의 얼굴과 각도와 크기 그리고 명암에 변화를 주어 꽃 하나하나에 특성을 살려 놓았다. 혼자서도 무대 위를 꽉 채운 듯 연기하는 배우처럼 화병과 꽃의 조화에서 허점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이었다. 빛의 방향이 다소 흐트러져 있어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을 단번에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한 게 약간의 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작업 공간은 이층 베란다였다. 꽃과 여자를 독특한 기법으로 그리던 여류화가가 떠올랐다. 그 화가의 작업실도 이층이었고 자신만의 고독과 자유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홀로 웃고 울었다. 그녀의 작업실을 바라보며 나는 기도한다. 지금까지 켜켜이 묻어둔 모든 고통과 고난들을 붓에 의지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그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럴 것이라 믿는다. 예술은 고통 가운데서 싹 튼다고 했다. 고통의 크기만큼 피어난다고 했다. 하나 더 바란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예술은 확 타오르는 장작불일 수도 있으나 오랜시간 끊이지 않고 천천히 타들어가는 잿불인 사람에게서 진솔한 작품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전시회에 간적이 있었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하늘과 구름은 다채로운 붉은빛으로 물들고 적당한 파고로 일렁이는 바다 역시 풍부한 색감들로 어우러졌다.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중인 배는 돛과 배를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그려 속도감을 완벽하게 나타냈다. 행복을 가득 싣고 순항하는 배였다. 그 배는 찬란하게 떠오르는 희망을 실은 그녀 자신이었다. 여덟명의 여고 동창들은 그녀가 마네와 모네같은 화가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그녀 이름 끝자를 따서 순네라 붙여주었다. 물론 이제 2년여 그림을 그린 초보 수준이라 개인전은 아니라지만 개인전 못지 않은 자부심이 그녀의 얼굴에 그녀의 그림만큼이나 풍부하게 그려져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자부심이 곁들여진 행복감! 그렇다. 무언가에 열중해있을 때 특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시간은 완전한 행복이다.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비교될 수 없는 행복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고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모든 고통과 갈등의 굴레를 훌훌 벗어던졌다는데. 그림을 시작한 이후로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몰라보게 살아났다. 우리를 초대한 오늘 역시도 생기와 기쁨으로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 그녀였다.
그녀가 차려준 구수한 오리탕과 맛깔스런 오이소박이를 맛나게 먹었다. 동행했던 친구가 양산을 선물로 사 왔다. 지난번 모임에서 그녀가 예쁜 양산을 갖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곁에는 마음이 아름다운 친구가 있게 마련. 보랏빛과 푸른빛 꽃으로 가득한 양산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빛깔이야’ 감사함과 기쁨으로 양산을 돌리며 함박꽃처럼 함박 웃던 그녀 웃음소리가,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자꾸만 따라왔다.
첫댓글 깊은늪을벗어나들꽃들이일렁이는
푸른초원을달려가고픈마음
그런마음이평화롭고좋은걸ㅡㅡㅡ
친구가그런맘
잘살펴
수필속주인공도되보니
난참행복합니다
멋진 이층집에 건강하고 밝은 딸내외와 귀여운 손녀딸들
입담이 좋아 지루하지 않을 남편에 아기자기한 앞뜰에
싱싱한 채소가 자라나는 뒤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에
더 행복한 여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양산을 쓰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걸
쭉 행복하셔!! 좋은 그림 많이 그리고!!
아유~~~~
그렇고 말고
삶을 유희 할줄 아는 소중한 내친구들!~~~
할줄 아는게 없는 사람이 친구 자랑이라도 하면서 살게 열심히들 작품활동들 하시게나!~~~
사랑해!
할 줄 아는게 없다는 말씀은 겸손의 말씀
칭찬이라는 선물보따리 나눠주는 건
아무나 하남?
그 칭찬이 있어
시인은 더욱 시인다워지고
화가는 더 화가다워지고
사업가는 더 사업가다워지고
친구들 자식들 이웃들 헬레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다워지도록 하는걸
입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해주는 칭찬은
세상을 줄기차게 굴러가게 하는 품질좋은 윤활류 역할이지
아무나 하남?
헬레나만의 달란트인걸
고맙다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