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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 / 김인숙
1.
델마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 여든 일곱이었다.
유품으로 알루미늄 지팡이와, 가볍고 신기가 편해 효도신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화 한 켤레와, 가늘어진 손가락에 맞추느라 실을 친친 감아서 구멍을 좁혀놓은 금반지 한 개가 있었다. 나중에 그녀의 방에서는 세 개의 이빨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인 온갖 종류의 건강식품과 약, 돋보기안경 등이 나왔다. 치석이 제거되지 않은 노랗고 까만 이빨은 두루마리 휴지에 곱게 쌓여있었다. 델마의 입속에 빠지지 않고 남아있던 치아는 몇 개였을까.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었다.
죽기 전에 델마가 집을 떠났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2.
델마가 집을 떠나기 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늦게 잠에서 깨 부은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날이 흐려서인지 집안이 흐릿했다. 거실 등을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위치를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다. 곧 낮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던 델마의 아들은 물소리 때문에 아내의 비명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덜 마른 몸에 샤워코롱까지 뿌린 후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코롱은 큰아들의 여자친구가 그의 생일날에 선물한 것이었다. 향수 따위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은 항상 긴장 속에서 치러졌다. 미세한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은 향기였으나, 향기는 때때로 얼룩으로 남았다. 그는 그 미세한 향기와 얼룩을 소중하게 여겼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화장품 냄새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도 이제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향수를 선물했을 때 그는 기쁜 얼굴로 그것을 받긴 했지만, 나중에 아내와 단 둘이 방에 있게 되었을 때는 우울한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서 냄새가 나나? 아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자신의 질문에 아내가 당황하고 있다고 여겼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샤워코롱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 델마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 그것에는 어머니의 냄새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진한 냄새가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팔을 이마 위에 올린 채 눈을 감고서였다. 샤워를 하다가 들은 듯 했던 이상한 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가 묻자 아내가 손가락만 움직여 방 밖을 가리켰다. 거실로 나가던 그도 그의 아내처럼 걸음을 멈칫 했다.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 가슴이 내려앉았던 것 같기는 했다.
“당신도 놀랐지?”
그가 침실로 돌아왔을 때 아내의 말이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
열흘 쯤 전부터 이모가 그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몇십 년 만에 귀국을 해서는 그의 집에 눌러 앉아버린 것이다.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겠다고는 했지만, 그 며칠이 도대체 며칠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는 그 후로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늙은 자매는 그날 아침 같은 시간에 깨어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둘이 그토록 닮은 얼굴이라는 것을, 그 역시 그날 아침에 처음 알았다. 이모는 델마의 자리옷을 입고 델마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여든 일곱과 여든 아홉의 노인네 둘이 자식들을 골려 먹자고 모의를 한 것은 아니겠지만, 소파 아래로 다리를 내리지 않고 오도카니 올라앉아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가 침실 밖으로 나갔을 때, 둘은 똑같이 고개를 돌렸고,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앞니가 빠져있는 것도 똑같았다. 어머니에게 그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 분명했음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 그도 어쩔 수 없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둘은, 귀신같았던 것이다.
제발 좀, 새벽마다 불도 안 켜고 그렇게 앉아 계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겠냐고, 울컥 터져 나오려는 말을 그는 눌러 참았다. 이모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곧 결혼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인들의 저물어가는 시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것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를지도 몰랐다. 두 노인이 귀신처럼 함께 앉아있는 것을 보니 그 느낌이 더욱 울적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는 흘리듯이 말을 하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3.
델마의 아들은 정년퇴직 후 횟집을 했다. 그의 아내도 가게 일을 같이 했다.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먼저 가게에 나갔다가 남편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며느리가 밤늦은 시간에 들어와 지갑과 열쇠를 내려놓고 겉옷을 벗을 즈음이면, 델마가 자기 방에서 나왔다. 왔니? 델마가 묻고 며느리가 네, 하고 대답했다. 손님 많니? 델마가 또 묻고, 며느리가 또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대화는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이어질 것도 없었다.
대개는 늘 곯아떨어졌지만,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며느리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 중에는 시어머니에 관한 생각도 있었다. 이 날들이 언제까지 갈까. 그녀는 간혹 한숨을 내쉬기도 했는데, 그것은 싫다거나 지긋지긋하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심각하게 불화한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의 큰 분란은 없었고,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시어머니는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그녀에게 그런 것처럼. 늙어갈수록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졌다. 이제 와서는 시어머니가 빠져나간 가족의 형태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척 외로울 것 같기도 했고, 평생 처음으로 아주 편안할 것 같기도 했고, 또 그런 마음이 기억나 죄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델마의 언니가 난데없이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그녀의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하루 이틀 묵고 가는 것과 ‘얼마동안’머무는 것은 결코 같은 문제일 수가 없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80이 넘고 90이 가까운 노인네 둘을 한꺼번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노여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델마의 언니와 함께 귀국했었던 큰아들은 곧 다시 귀국할 일이 있으니 그때 모셔가겠다고 했다. 노인네가 너무 고집을 피워서 당장 모셔갈 수가 없으니, 그저 며칠만 모셔달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거짓말 마세요!’악쓰듯이 터져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터뜨리지 못한 욕설과 분노는 고스란히 남편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도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이제 와서 나쁜 며느리에 나쁜 질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제 와서 착한 며느리 착한 질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식당에 나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고 델마의 방문을 열어보았을 때였다. 델마가 혼자 있을 때는 방문도 안 열어보고 나갔다 올게요, 밖에서만 말할 때가 많았지만 델마의 언니가 집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래도 방문은 열어보았다. 방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서있어야 했다. 델마와 델마의 언니가 마주 앉은 채 서로 머리채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둘은 기운이 빠져서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두 노인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싸움을 하고 있는 풍경이라기보다는, 같이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는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보다도 더 무거운 것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누군가 내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그러고 있어야할 것처럼.
못 본체 하고 싶은 마음이 역겨움과 함께 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다가가 둘의 엉켜 있던 손가락을 풀어주었고, 둘은 동시에 뒤로 자빠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 않았다.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매가 추억하는 것 중에 노여운 일이 왜 없으랴. 사소한 일일수록 용서할 구실이 없어 더 마음에 깊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남편을 결코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델마가 집을 떠났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걱정보다 앞선 것이 다시 격렬한 분노였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든 간에, 델마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87세 노인이 집을 나갈 수는 없는 거였다. 40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으니, 거의 반백년이다. 그런 시어머니가, 이제 와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거였다.
4.
“저기에서 내려 주시우.”
노인의 말을 최창식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뒤에 앉은 노인이 어깨를 건드리며 다시 한 번 말했을 때야 최창식은 뭐라 그러셨어요? 되물었다.
“저기 말이요, 저기.”
최창식의 입이 벌어졌다. 국도변에 웬 성채가 하나 보였던 것이다. 그는 곧 그것이 그 지역에 새로 개장한 모텔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양의 성 모양을 흉내 내 지은 건물인데, 있는 대로 조명을 밝혀놓아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기가 그지없었다. 방송에 인근 저수지의 풍광이 소개된 뒤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다.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속도보다 모텔이 들어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모텔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성채처럼 세워졌고, 하나같이 있는 대로 조명을 밝혀 놓고 있었다.
노인이 저기라고 가리킨 모텔을 그가 그날 처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지역에서만 10년이 넘게 택시기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새로 세워지는 모텔들은 언제나 낯설었다. 게다가 그런 모텔 앞에 내려달라고 하는 할머니들이라니.
국도변에서 할머니 둘이 차를 세울 때부터 최창식은 기분이 찜찜했었다. 노모의 상을 치룬 것이 고작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그 한 달 내내 그는 괴로움과 고독함과 술에 빠져 사느라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온통 기억나는 것이 어머니에게 잘못했던 일들뿐이었다. 잘못한 일들이 많아서 기억할 게 그것밖에는 없는 것도 있겠지만, 죄스러운 마음을 눙치려고 부러 더 그런 기억들만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발버둥을 쳐가며 울었고,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벌을 다 받은 것 같기도 해서, 술을 마시러 나갔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그날 간신히 다시 운전대를 잡았더니, 첫날부터 차를 세운 사람이 할머니들이었다. 자식들도 없이 단둘이 택시를 잡아타기에는 둘 다 너무 늙어보였다. 세상을 뜬 늙은 노모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노인 둘을 차에 태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글러먹게 변해, 노인들이 자식도 없이 늦은 길거리에 서있었다. 그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늙은 어머니도 홀로 나갔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마침 가까운 곳에 있던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디에든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에게 그런 일로 전화를 거는 적이 결코 없었고, 어머니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가 일부러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일은 사실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고를 당하고도 1년 가까이나 병원 침대에서 생을 지탱했는데, 그 시간이 그에게는 지옥 같았다. 어머니가 언제쯤에나 마침내 숨을 놓게 되실지만 손꼽아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에 지옥 같은 마음이 더 얹어졌다.
두 노인이 차를 세웠을 때, 그는 일부러 차 밖으로 내려서 노인들이 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새털같이 가벼운 노인네들이었다. 운전석에 돌아와 룸미러로 뒤를 보니 나란히 앉은 두 노인네가 마치 인형 같았다.
“할마씨들, 어디로 갈까요?”
그가 부러 더 밝은 음성으로 물었을 때, 노인 하나가 쭉, 가자고 했다.
“쭉, 어디로 갑니까?”
“쭉, 가자니까. 쭉.”
최창식은 차를 천천히 몰았다. 마침 곧은 길이어서 길목마다 이리 가느냐, 저리 가느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차가 5분쯤 달렸을 때, 노인 하나가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다 왔습니까, 물었더니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노인이 어두운 국도변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데, 오줌소리가 물새는 소리처럼 똑똑 들렸다.
“할머니, 어디 가는데요? 자식들 집에 갑니까?”
노인 하나가 오줌을 누는 동안, 최창식이 차에 남은 노인에게 물었다. 쭉, 가자고 말을 했던 노인이었다.
“갈 데가 자식 집밖에 없나.”
“그럼 놀러 가십니까?”
“놀러 가지.”
“할마씨 둘이 놀러 갑니까?”
“할마씨 둘은 놀러 가면 안 되나.”
“자식들이 걱정 안합니까? 연세가 보통 아니실 것 같은데요.”
“걱정 좀 하면 안 되나.”
“집 나오셨습니까? 자식들이 속 썩여요?”
그때 오줌을 다 눈 노인이 차 문을 두드렸다. 최창식이 다시 내려 노인을 차에 태웠다. 바지자락이 젖어있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오줌을 지렸거나 덜 눈 지도 모르고 옷을 추켜올렸거나 했을 것이다. 그의 차 시트에도 노인의 오줌이 묻을 것이다. 죽은 노모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의 입에서 틀림없이 욕설 같은 것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노인네 둘을 모텔에 내려놓은 뒤, 최창식은 지서에 전화를 했다. 가출 노인네 둘을 신고한다고 했더니, 술에 취해있던 소장이 네 엄마냐고 농담을 했다. 소장은 그의 친구였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영안실에서 자기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던 자식이었다. 최창식은 그 길로 지서로 차를 몰고 달려가, 친구인 소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나중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던 소장은 미안하다고 말할 틈도 없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코피를 쏟았다. 늙은 남자 둘이 지서 안에서 육탄전을 벌였다.
5.
모텔의 카운터는 젊은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 두 노인네가 무거운 문을 열지 못해서 바깥에서 있는 힘을 다 하는 것을 청년은 멀거니 내다보기만 했다. 카운터를 지키면서 온갖 것을 보았지만, 할머니 둘이 모텔에 들어서려고 기를 쓰는 것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거나, 할머니 둘이 헛것에 매달려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노인들이 곧 문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달려가 문을 열어주고 어서 오시라고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뒤따라온 노인들의 가족일까. 번쩍번쩍 조명을 밝혀놓은 모텔에 가족들이 숙박을 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펜션이 있었고, 민박도 있었다. 저수지의 풍광을 소개하는 방송이 뜨기는 했지만, 일가족이 할머니까지 모시고 관광을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대개는 남녀가 와서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저수지변에서 민물매운탕을 안주로 시켜 술을 마신 후, 펜션이든 민박이든 모텔이든, 잠을 자러 들었다. 술 취한 여자를 업고 들어오는 남자도 있었고, 얼굴에 시뻘겋게 멍이 든 여자를 끌고 오는 남자도 있었다. 남자 혼자 들어와 열쇠를 받고, 여자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서 등만 보이고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드물게 여자가 벌거벗은 채로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뛰어내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청년은 재빨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친구들 모두에게 그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아무튼 그가 일하는 모텔이란 그런 곳이었다. 할머니 둘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라는 소리다.
뒤에 들어왔던 차가 문 앞에 잠시 섰다가 그냥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텔의 정체성을 의심했던 게 분명했다. 청년도 더 이상은 카운터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청년이 카운터에서 나와 문으로 다가갔고, 그가 문을 열자 할머니들이 오종오종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라니? 자러 왔지.”
“할머니들이요?”
“할머니들도 잠은 잔다우.”
카운터의 청년은 키가 컸다. 그는 자신의 가슴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할머니들을 난감하게 내려다보았다. 사진을 찍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재밌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둘이 와서 방을 달라는데요? 사장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노래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뭐라고? 외치는 동안 반주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잠시 뒤 반주소리가 툭 끊기고, 사장의 악 쓰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할머니들은 잠 안 자냐? 너는 할머니도 없냐, 이 새꺄! 청년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숙박료를 얘기했다. 할머니 하나가 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서 카드를 끄집어냈다. 청년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할머니, 돈을 내셔야하는데요. 이런 건 안 되거든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안 돼? 왜 안 돼?”
“뭐요? 무슨 카드요? 아무튼 이건 안 돼요.”
“그건 미국 카드야. 내가 미국에서 왔거든. 긁어봐. 안 되면 비자로 줄게.”
청년이 카드를 긁었고, 카드는 승인이 떨어졌다. 청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멕스라니, 젠장…… 그도 그 정도는 알았다. 다만 해외에서 발행된 카드를 처음 보았을 뿐이었다. 사진을 찍어둘까? 모텔에서 아멕스 카드를 긁는 미국 할머니라니…… 그러나 친구들은 재밌어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비웃으려고 들 것이 틀림없었다. 청년은 3층 방의 키를 내밀었다. 딴에는 신경 쓰느라고 볕이 잘 드는 남향 방의 키를 골랐다. 그때 무언가가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어느 틈에 할머니 하나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절한 눈빛이었다.
“화장실이 어딨수?”
“방에 있지요!”
“내가 지금 급하다우. 쌀 거 같아.”
쌀 거 같다는 그 말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말처럼 놀랍게 들렸다. 청년이 다급하게 노인의 손을 붙들고 로비의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나중에는 번쩍 안다시피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새털같이 가벼운 할머니였다. 너무나 가벼워서, 그것을 존재의 무게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카운터로 돌아와 로비에 걸려있는 저수지 사진을 바라보았다. 새떼가 날아오르는 노을 녘의 풍경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수지에는 그토록 많은 새떼가 살지는 않았다. 그가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수지가 새떼 천지였다. 해마다 새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이사를 왔다니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가 5년 동안을 밑바닥에서 뒹굴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졌지만 나중에는 길바닥에서도 잤고, 조금 형편이 나을 때는 일자리를 잡아 들어갔던 술집의 홀에서도 잤다. 그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들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았다. 일자리를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들이 한 달 일을 채워야만 급료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한 달을 채울 수 없었고, 그래서 언제나 돈을 벌 수 없었다. 살자니 돈이 필요했다. 그는 몇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내려와 집의 돈을 훔쳤다. 집에서 들고 나올 물건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들고 나왔다. 그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 것은 집에서 더 이상은 훔쳐갈 돈도 물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도둑질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집을 나갈 때 그는 조폭이 되거나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
모텔의 일자리는 아버지의 소개로 얻게 되었다. 모텔의 주인은 아버지의 군대 시절 부하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월남참전용사였고, 사장도 그러했다.
“그래도 이 애가 남의 것에 손을 대는 아이는 아니라네. 그거 하나만은 보증하네.”
아버지의 믿음은 틀렸다. 그는 그날 남의 것을 훔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낼 때, 함께 딸려 나왔던 종이에 적힌 숫자를 보았었다. 할머니가 적어놓은 비밀번호일 것이 틀림없었다. 아멕스 카드를 갖고 있어도 할머니는 할머니인 것이다.
어머니만 멀쩡했어도, 그는 어떻게든 버텼을 것이다. 자식이 언제든지 나타나 손쉽게 돈을 훔쳐갈 수 있도록 늘 집안에 돈을 마련해두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농담도 잘 하고 재기도 발랄한 여자였다. 그가 돈을 훔치러 왔다가 그 쉬운 도둑질에 혹시라도 자괴감을 느낄까봐, 마치 보물찾기처럼 돈을 숨겨두던 사람이었다. 그가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개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장독대를 뒤져 돈을 찾아냈는데, 돈을 싸놓은 손수건 속에 박하사탕이 함께 들어있기도 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면 생각해낼 수 없는 농담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훔쳐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품팔이를 했던 어머니는, 남의 밭을 매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퇴원을 해도 당분간은 바깥일은 못 할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집에 돈을 훔치러 갔을 때, 집안에는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싸놓은 돈 대신에 병원의 이름과 병실 호수가 적힌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글씨였다.
종이에 적혀 있던 할머니의 아멕스 카드 비밀번호가 아버지의 그 무뚝뚝한 글씨체와 비슷했다.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어머니에게 빨간 내복을 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긁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겨울이 아닌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6.
신고를 해야 할까. 델마의 아들은 생선뼈다귀에 찔린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제법 깊이 찔렸는지, 검지손가락 끝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니와 이모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벨이 울릴 때마다 걸려온 전화는 동생들의 것이었다. 동생들의 목소리에서는 비난이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노인네들이 집을 나간 거냐는, 말과 말 사이의 숨소리에서 그런 말들이 욕설처럼 들렸다. 미국에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집을 나갔다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미국에 전화를 넣었었다. 노친네, 정말 미치게 만드는구만, 이라고 거칠게 말했던 이종사촌은 혹시 신고를 해야 할까, 혼잣말처럼 말하는 그에게 왜냐고 물었다. 그 물음이 당혹스러워서 그는 대꾸를 하지 못했고, 이종사촌의 말이 이어졌다.
“혼자서 한국 가겠다고 하는 걸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모시고 갔었어요. 안 그랬으면 혼자서라도 갔을 분이에요. 미국에서 한국도 혼자 갈 수 있는 분이라고요.”
이종사촌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와 역겨움이 느껴졌다.
“연세 때문이라면 걱정도 하지 마세요. 펄펄 날아다니는 분이에요. 아마 백 살까지 그러실 걸요. 팔십이 넘어서 옆집 아르헨티나 할아버지랑 연애까지 한 분이에요. 두 사람이 여행까지 다녀왔다니까요. 원 참…… 여행을 가서는 뭣을 하셨을는지.”
이종사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난감한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팔십이 넘어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와 연애를 한 이모라니…… 그의 어머니는 마흔에 홀로 된 후, 그를 키우는 것 이외에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그러했다. 그가 40무렵이 되었을 때 그 나이가 여전히 펄펄한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잠시 어머니의 고독했을 삶을 떠올려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뿐,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여자인 어머니를 떠올린다는 것이 어색함을 넘어 무슨 몹쓸 죄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종사촌은 어땠을까. 이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것에 반해 사촌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은 생생했다. 사촌이 농고를 졸업할 때까지 이모의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했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학교 수업료조차 제때에 마련하지 못할 정도였다. 친척집으로 돈을 꾸러 오는 소년은 고독해보였다. 집에 들어서서 집을 나갈 때까지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회사에서 돌아오던 길에, 집에 들렀다 돌아가는 길이던 사촌을 골목에서 스친 적이 있었다. 사촌은 그가 첫 월급으로 샀던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로서도 큰맘 먹고 장만을 한 것이고, 얼마 입지도 않은 옷이었다. 게다가 덩치가 큰 소년에게는 그 옷이 너무 작아보였다. 그는 사촌을 아는 체하지 못하고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골목을 나서면서 사촌이 점퍼를 벗어 옆구리에 끼는 것이 보였다. 아직 덜 추운 날이어서 그 벗은 등이 시려보이지는 않았다.
그날 돈을 빌리러 왔던 사촌에게 어머니가 돈 대신에 점퍼 하나만을 입혀 보냈다는 것을 그는 집에 돌아 와서야 알게 되었다. 사촌이 받았을 모욕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러나 사촌은 그 점퍼가 그에게 있어서도 유일한 것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고 한들 자신이 받은 모욕이 보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욕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날 사촌의 내부에는 또 어떤 균열이 새겨졌을까.
한국에서 사촌의 삶은 줄곧 고단했었다. 마지막 희망이 처가의 연줄로 가게 된 이민이었는데, 그때에도 그의 표정이 내리 착잡했었다. 노모를 모셔가지 않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노모는 추가되어 할증료를 내야하는 수하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그 무거운 짐을 끌고 갔고, 그 후 30년, 그들에게서는 그 어떤 불화의 소식도 없었다. 그렇더라도 그는 사촌의 분노와 역겨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세상 떠나는 것만 잘 지켜드리면 일생의 고단했던 과업이 끝나는 참인데, 90이 가까운 노인네가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저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엿먹어봐라, 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시피 할 때 사촌이 이미 그 기분을 한번 느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사라져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머니가 늙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80까지는 늙어간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80이 넘으면서부터는 그런 말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자식으로서 그렇게 말해도 된다면, 80이 넘은 어머니는 늙는다기보다는 소멸해간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았다. 생의 기운이 모두 다 빠져나가고, 가벼운 껍질만 남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자식들을 걱정했고, 여전히 자식들의 소원한 행동에 노여움을 드러냈지만, 그런 것들조차도 그저 오래된 습관 같아 보일 때가 있었다. 생이 만들어준 지울 수 없는 습관…… 그리고 더는 남은 것이 없어보였다.
어머니는 어디 멀리 나가려고 들지도 않았다. 길을 나섰다가 무슨 일이 생길 것을 늘 두려워했다. 멀미가 나는 것도 두렵고, 참지 못하는 오줌도 두려웠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결국 그렇게 되겠지만, 당장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몸이 깨지기 직전의 유리그릇 같았다. 가벼운 금 하나만 더 그어져도 완전히 박살이 나버릴 것 같았다. 완전히 박살이 나 한 번에 죽을 수 있다면 마다할 일도 아니겠으나, 박살이 난 후에도 죽음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녀가 원치 않고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원치 않았던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그 무엇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이제 더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자식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어 했다. 길을 걷다 넘어지는 것도, 잘 자고 일어났는데 툭 하고 빠져나오는 이빨도,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먹히지 않는 밥도, 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자식들에게 매순간 증명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므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그의 곁에 있어줄 줄 알았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7. 모텔 쌘프란시스코의 사장 윤기만이 두 할머니를 만난 것은 오전 여덟시를 막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는 새벽부터 그때까지 모텔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새벽에 숙직을 하는 청소부 아줌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때 그는 모텔 쌘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모텔 미라보에서 여자를 끼고 자고 있는 중이었는데, 청소부 아줌마가 난데없이 하는 말이, 새벽 세시에 중년남녀가 소동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퇴실을 하려고 하는데 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어야할 명석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윤기만이 모텔로 달려왔을 때, 중년남자의 눈빛이 거의 그를 잡아 죽일 듯했다. 사라진 차는 그랜저라고 했다. 그날 모텔에 주차된 차들 중 가장 좋은 차였다. 명석은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확인해보지 않아도 카운터의 금고가 비어 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모텔의 숙박료는 대개 현금으로 치러졌고, 당연히 금고에는 언제나 돈이 많았다.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지요?” 윤기만이 말했을 때, 중년남자가 달려와 윤기만의 멱살을 거머쥐려고 들었다. 신고를 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윤기만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경찰 운운한 것은 남자의 약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을 뿐이다. 윤기만은 다시 명석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받을 리가 없겠지만, 아무튼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 세 번째로 번호를 누르는 사이에 문자가 왔다. - 신고하셨어요? 이런 개자식을 봤나. - 차는 오늘까지만 쓸게요. 바다에 가고 싶은데, 차 없이 갈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이 차 안에 여자 빤쓰가 있네요. 앞자리에서 한 번 했나 봐요. ㅋㅋㅋ 윤기만은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쉬폰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스커트 속 여자의 거웃이 상상돼 그의 아랫도리가 그 와중에도 묵지근해졌다. 여자가 그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택시 타고 갈래. 똑 부러지는 반말이었는데, 중년의 사내가 악을 썼다. 개 같은 년, 아가리 닥치고 있어! 두 남녀를 택시에 태워서 보냈을 때, 이미 시간은 새벽 네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윤기만은 명석에게 문자를 쳤다. - 너 이 새끼, 잡히기만 해봐. 죽을 줄 알아. 아주 갈기갈기 찢어놓을 테니까! 답문이 왔다. - 무서워요. ㅋㅋ 새벽 네시부터 오전 여덟시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운 피로가 뒤늦게 몰려와 윤기만은 뒷목을 주물렀다. 믿을 수 있는 카운터를 구할 때까지는 그가 꼼짝없이 밤새도록 카운터를 지켜야할 판이었다. 그는 자신이 늘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임대업을 할 때는 제때 돈을 내는 입주자가 없었고, 갈비집을 냈을 때는 종업원들이 전표를 속이거나 생고기를 훔쳤다. 그의 아버지도 수시로 그의 돈을 훔쳤다. 도무지 믿을 사람이 없었다. 노인 둘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기분 때문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늙은 어머니가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를 속이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었다. 술을 마시고 여자와 모텔에서 뻗어 있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 앓던 끝에 생의 최후를 맞이한 어머니가 임종 무렵에 그를 몹시 찾았다고 했다. 그놈은 자식도 아냐. 숨이 넘어가기 전에 어머니가 남겼다는 그 말을 그는 믿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꾸며서 전한 말이었을 것이다. “아침 뷔페는 어디서 하우?” 노인 중의 하나가 말했다. 그는 우선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할머니 둘이 와서 자고 간다는데요, 전화를 걸어 묻던 명석의 말이 비로소 떠올랐다. 그러나 이 정도 할머니일 줄은 몰랐다. 세상이 정말 글러먹게 변했다. 할머니들이 모텔에 와서 잠을 자질 않나, 아침을 달라고 하질 않나…… “여긴 그런 거 없어요, 할머니.” “호텔에서 아침도 안 주나?” 우라질 …… 하마터면 윤기만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올 뻔 했다. 돌아가시기 전 그의 어머니는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많이 먹으면 많이 싸셨으므로 음식조절을 해야 했는데도, 늘 배가 고프다는 타령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먹는 얘기 좀 그만 좀 해!’라고 그가 악을 썼던 기억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의 나이 쉰여덟이었으나, 그는 그때까지도 어머니에게 반말을 했다. “바로 옆에 식당들이 있어요. 스물네 시간 영업하는 데도 있으니까, 그리로 가보세요.” “매생이국밥집이 있나?” “모르겠어요. 아마 없을 걸요.” 말을 하는 중에 다시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차를 잃어버린 놈의 번호가 뜨고 있었다. “있을 지도 모르지요. 나가서 찾아보세요.” “어디에 있는데?” “모른다고 했잖아요.” “있을 거라면서. 늙은이들끼리 찾기가 어려워서 그런다우. 어딘지 방향이나 알려 주시우.”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더는 무시하고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그가 손만 들어 올려 되는대로 아무 방향이나 가리켰다. 노인의 얼굴이 그의 손을 향해 반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였다. 8. 햇살이 낯설었다. 그처럼 낯선 햇살은 처음이었다. 아침에 커튼을 젖혔을 때의 놀라운 마음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낯선 방에서의 밤은 너무 길었다. 몇 번이나 깨어서 델마가 잠든 언니를 흔들어 깨우며 묻곤 했다. 왜 이렇게 날이 안 새우? 정말이지 밤이 너무나 길고, 너무나 칠흑 같아서 혹시 여기가 저승이 아닌가 싶었다. 언니가 잠에서 깨 더듬더듬 일어나다가 커튼을 건드렸다. 무겁고 두터운 커튼이어서 있는 힘을 다하지 않고서는 밀어낼 수도 없었다. 햇살이 유리조각, 혹은 양철 깨진 조각처럼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방 안의 어둠과 창문 밖의 햇살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하기야, 집을 떠날 때부터 그녀는 그녀가 알아왔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델마의 언니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안 것은 24시간 민물매운탕 집에서였다. 민물매운탕 집에서는 아침 식사로 해장국도 팔았다. 매생이국밥은 없었다. 선지해장국 두 그릇을 시키는데, 자제분들 것은 안 시키십니까, 주인이 물었다. 으레 가족과 함께 왔다가 식당 안으로 먼저 들어온 노인네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네 그릇 주시우. 언니가 말했고, 델마는 깜짝 놀랐다. “밥 남기고 가면 죄유. 왜 그러우?” “성가셔 죽겠잖니.” 짓궂은 장난을 친 듯 합죽 웃어보이던 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하고 내가 이제는 한 몸이 아니다. 네 몸에도 하나 붙어있고 내 몸에도 하나가 붙어있다. 보시하면 되지.” “숭한 소리도 잘 하오.” 델마가 얼른 ‘두 그릇만 먼저 주시우’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수저 네 개를 가지런히 놓는 언니를 말리지는 않았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쫓아와 같이 밥을 먹어줄 귀신이라면, 그게 누구일까. 오래 전에 죽은 남편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려서 병으로 잃은 자식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 애가 여기까지 와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갑이 없어졌다.” 손가방을 열어보던 언니가 가방 속의 내용물을 식탁 위에 전부 꺼내놓으면서 말했다. “자제분들 안 오십니까?” 할머니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식당 주인이 물었다. “지갑이 없어졌어.” 언니가 식당 주인의 물음에 대꾸했고,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다가왔다. 여자아이가 해장국 두 그릇을 가져왔다. 탁, 탁. 맛있게 드세요, 말도 없이 여자아이가 식당용 밀차를 밀고 돌아섰다. 언니가 식탁 위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다시 하나하나 뒤집었다 놓았다 하는 동안, 델마는 언니의 손가방을 다시 뒤졌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잃어버린 사람 마음이 뭘 훔친 사람 마음보다 더 뛰었다. “자제분들은 왜 안 들어오세요? 할머니들, 자제분들 없이 오셨어요?” 그 와중에도 식당 주인은 끝없이 ‘자제분들’타령이었다. 델마조차 듣기가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오줌이 마려웠다. “전화기 좀 줘봐.” “자제분들한테 전화 거시게요? 전화번호는 아세요?” “글쎄, 전화기 좀 줘봐.” 언니는 어디로 전화를 걸려는 것일까. 델마의 마음이 또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벌렁벌렁 뛸 때마다 머릿속에 있던 숫자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마침내는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지난 밤 모텔에 들었을 때도 델마는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것을 잊고 살기는 했지만 자식들의 전화번호만큼은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정수기 물을 갈아주러 들어왔던 청년이 9번을 먼저 누르고 뚜 소리가 나면 그때 다시 전화번호를 누르라고 말해주었더랬다. 모든 전화번호가 뒤엉키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9만 없으면 생생한 전화번호가 9를 앞에다 붙이기만 하면, 까맣게 사라져버렸다. 언니가 대신해보겠다고 나섰을 때는 9를 앞에다 붙이지 않아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 아무 번호도 기억이 안 나니? 언니가 물었을 때, 번호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 생애 처음 가졌던 백색 전화기의 전화번호였다. 그것은 40년도 더 전의 옛집 번호였다.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제가 대신 걸어드릴게요.” 식당 주인이 휴대전화를 꺼내며 델마의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가 식탁 위에 늘어놓았던 물건들 중에서 곱게 접힌 쪽지 하나를 집어 내밀었는데, 그 종이를 펴보던 식당 주인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면서 순식간에 험상궂어졌다. “할머니 이게 무슨 번호에요? 무슨 번호가 이래요?” “미국번호야. 내가 미국에서 왔거든.” “그러니까 미국에 전화를 걸겠다고요? 이 할머니들, 진짜 웃기시네. 그럼 밥값 가져오라고 미국으로 전화를 걸겠다는 소리에요? 이 할머니들, 이거 어디서 도망쳐 나온 할머니들 아냐? 밥은 왜 네 그릇씩이나 시킨 거야?” 주인이 땅땅 소리를 지르는 동안, 여자아이는 창밖만 내다보고 서있었다. 사장이 뭐라고 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여자아이가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단체 손님 들어오는데요. 사장이 할머니들을 노려보다가 일어서 창가 쪽으로 갔다. 관광버스에서 손님들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사장이 바깥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가다가 여자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저 할머니들 잘 보고 있어!” 여자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사장이 문 밖으로 나간 후, 델마의 언니가 일어섰다. 델마에게 가자고 했다. 델마는 일어서지 못했다. 언니가 식탁을 돌아와 델마를 부축했다. 몇 걸음을 걷다 말고, 델마의 언니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전화기 없어? 카드 정지 신고를 해야 하거든.” 여자아이가 턱 끝으로 그들이 앉아있던 식탁을 가리켰다. 사장의 휴대전화가 놓여있었다. 델마의 언니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여자아이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여전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사장이 단체 손님을 2층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바쁜 시간이 시작될 듯했다. 여자아이는 매운탕집의 종업원 노릇이 지긋지긋했다. 지난밤에 남자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자아이는 모텔에서 일하는 남자와 지난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었다. 모텔의 욕조에는 스파 시설이 되어 있었다. 여자아이는 그 욕조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지난밤 여자아이가 모텔에 갔을 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만 달랑 한 통이 왔을 뿐이었다. 난 바다로 가는 중이야. 미안해. 너랑 같이 가면 다시 돌아와야 할 거 같아서. 여자아이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랑 같이 가면 다시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는 문자의 마지막 말이 모래 알갱이처럼 가슴속에서 드글거렸다. 적어도 바다라면, 같이 가줄 거라고 믿었다. 겨우, 바다라면 말이다. 할머니들은 천천히 사라졌다. 여자아이는 그들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식탁을 치우려고 다가가보니 사장의 전화기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로 돌아왔을 때는 거기에 놓여있던 사장의 지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상관인가. 여자아이는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9. 내가 미국에서 영화를 봤어. 여자들 둘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그 여편네들 얼굴이 지금도 아슴아슴하네. 여편네 둘이서 여행을 떠나는 거야. 늙은이들이 아니라 여편네들이었다니까 그러네. 늙은이들이 무슨 여행을 간다고 그래. 아무튼 그 여편네 둘이 여행을 떠나는데, 웬 놈팽이가 그 여편네들 돈을 훔쳐가지고 달아난 거야. 그놈이 얼굴이 아주 미끈하게 생긴 놈이라서, 여편네 하나가 그놈한테 혹해가지고는, 제 돈 훔쳐서 달아날 것도 모르고 붙어먹었거든.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니까 돈이 없잖아. 어쩌겠어. 미국에서 돈 없이야 한 걸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나. 여편네 하나가 총을 들고 가게를 털어. 그렇지. 도둑질 당한 후에 강도질로 나선거지. 그 영화가 아주 재미져. 무슨 여편네들이 강도질을 어찌나 신나게 해대든지, 남자들이 꿈쩍도 못한다 이거야. 여행이 아주 신나게 돼버렸지. 영화제목이 뭐였더라. 여편네들 이름이었는데…… 그런데 그 여편네들이 서로 상피를 붙는 것들이라대. 그런 얘기는 영화에선 안 나왔는데, 상피 붙는 영화라고. 숭하지? 미국에는 그런 것들 투성이야, 아주. 나 살던 옆집에는 중늙은이 둘이 같이 사는데, 이 중늙은이들이 벌써 이십 년이라나 삼십년을 같이 산대. 어이구 금슬 좋은 서방 각시가 따로 없어. 아니지, 내가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그 늙은 놈의 지갑을 안 가져왔으면, 강도질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 늙은 손에 무슨 힘이 있어. 총도 없고. 그런데 말이야. 총만 있으면 한번 갈겨보고 싶어. 내가 미국에서 온갖 것 안 해본 게 없는데 총은 못 만져봤어. 미국사람이라고 다 총이 있는 건 아니야. 그게 슈퍼마켓 가서 식칼 사듯이 사는 물건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총질을 하는 건 봤지. 내가 참 미국에서 볼꼴 못 볼꼴 많이 봤어. 그런데 죽을 날 가까우니까 그 볼꼴 못 볼꼴 다 본 건 관두고, 그냥 한국만 떠오르는 거야. 평생 좋아하지도 않았던 매생이 국밥은 왜 그렇게 떠오른다니. 그냥 한국 가서 매생이국밥 한 그릇만 다시 먹어보고 죽고 싶다, 그랬어. 아니지. 말은 바로 하랬다고, 그거 한 그릇만 먹으면 백 살까지도 너끈히 살아낼 거 같았다 이거지. 넌 죽고 싶어? 빙충이 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라. 누구 좋으라고 죽니? 늙은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거짓부렁이 없다고 했다. 안 아프고 오래 살면 그만이지, 왜 죽는다니? 난 안 죽어. 삼천갑자 동방삭이처럼, 저승사자 피해감서 오래 오래 살 거야. 그래서 총도 한번 쏴보고…… 흐흐흐…… 우스워? 너 웃는 소리 참 좋다. 숨 넘어가게 웃으니, 죽더라도 너처럼 웃다가 숨 넘어가면 좋겠구나. 10. “총은 우리 집에도 있어요.” 식당 여자가 말했다. 티브이만 보고 있는 줄 알았더니, 델마의 언니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틈에 티브이의 볼륨이 아주 낮아져 있었다. 이상한 식당이었다. 델마와 델마의 언니가 들어와서 한 나절이 지났지만, 손님이라고는 어쩌다가라도 들어오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손님이 없어도 명색이 식당인데, 델마의 언니가 드러누워 잠이 들어버리는 것을 보고도 식당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델마가 옆에서 같이 졸다가 같이 드러누웠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저녁 무렵이 되자, 저녁은 뭘로 드시겠어요? 물었다. 아무 거나 달라고 말했고, 여자는 점심때와 똑같은 반찬 똑같은 국을 내놓았다. 수저가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였다. 주방을 통해 24시간 매운탕집에서 보았던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여자와 여자아이가 같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식당여자는 밥값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신랑이 뭐하는 사람인데 총이 있어?” 델마의 언니가 물었다. 여자가 무심히 대꾸했다. “사냥꾼이에요.” “한국에 무슨 짐승이 있어서 사냥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 “사냥으로 지 입은 채우지요. 잡은 고기도 먹고, 술도 먹고 기집도 끼고 자구. 노름도 하고, 뭐 안하는 것 없이 한답니다.” “어이구…… 숭한 신랑을 뒀구만. 그 얼굴이, 그게 신랑한테 맞아서 그런 거야?” “그 쇠새끼가 그래도 총은 안 쏜답니다. 마누라가 멧돼지로도 보이고, 살쾡이로도 보인다는데, 총으로는 안 쏘대요.” “자네가 무서운 거야. 무서우면 총도 못 쏜다네.” “그러게요. 어느 날엔가는 자다 벌떡 일어나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네가 무서워 못 살겠다 그러던걸요.” 여자는 그날 밤의 일을 생각했다. 눈이 쏟아져 내리던 한겨울밤이었다. 멧돼지 수렵기간이라 남편은 하루도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었다. 수렵기간이 아닐 때는 밀엽을 했지만, 수렵기간이니 더 붙어있을 새가 없었던 것이다. 새벽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몸에서는 찬 기운이 훅 끼쳤다. 벗은 옷에서 눈이 뭉텅이채로 쏟아져 내려 방바닥에 금방 물이 고였다. 눈이 녹은 물이었으나 풀잎과 겨울나무와 젖은 흙의 냄새가 나는 대신,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것은 남편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사냥꾼이 된 후 남편의 몸에서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것은 싱싱한 선지의 냄새이기도 했고, 썩어 문드러져가는 부패한 피고름의 냄새이기도 했다. 그의 몸이 피의 냄새를 발효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혔다가 그대로 썩히기를 반복했다. 독한 거름을 먹은 흙처럼, 억센 잡초 같은 털이 숭숭 돋아났다. 눈 내린 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한 마리의 멧돼지였다. 입 밖으로 솟구쳐 나온 송곳니로 멧돼지가 여자의 엉덩이를 찔렀다. 맹수보다 더 사나운 사냥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남편의 정액에서는 화약냄새가 풍겼다. 쓰러져 잠든 남편이 새벽녘에 깨어났다. 쌓인 눈 때문에 새벽이 환했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의 곁에서 엉덩이를 까고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여자가 아니라 오소리나 살쾡이였다. 화다닥 뛰어 일어나 벽에 기대었던 산탄총을 들고 그 오소리나 살쾡이 같은 것을 향해 겨눴을 때, 그것이 사람의 목소리를 냈다. - 쇠새끼. 그는 여자에게 총을 발사하는 대신,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 공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가 탕, 하고 총을 쏘자 먼 산에서 탕, 탕하고 총소리가 되돌아왔다. 남편은 다시 젖은 옷을 입고, 사냥개를 끌고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가기 전에, 여자에게 말을 남겼다. - 나는 네가 무서워 못 살겠다. 남편은 한 겨울이 다 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눈 내리는 계절이 끝나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의 몸은 촘촘히 돋은 털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손두부집을 했는데, 남편이 그런 몸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두부에서 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두부 속에 짐승의 털이 박히기도 했다. 어떤 때는 두부가 선지처럼 붉었다. 여자의 가게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고, 남편은 돈을 벌지 못하는 여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쇠새끼가 맞네.” 델마의 언니가 대꾸를 하는 동안, 여자아이는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아무 관심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이었다. 델마가 식당 앞에 서는 차 소리를 들은 것은 안채에 딸려있는 화장실에서 오줌을 졸졸 누고 있을 때였다. 차 소리가 아주 대단했다. 그것이 식당여자의 남편인 ‘쇠새끼’가 타고 온 트럭소리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델마가 바지춤을 치켜 올리고 있을 때 총소리가 났다. 마저 떨구지 못한 오줌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툭하고 떨어졌다. 11. 트럭은 여자아이가 몰았다. 저 나이에 면허나 있겠는가 싶었으나 운전은 제법 잘했다. 여자아이의 옆에 여자아이의 엄마인 식당여자가 앉았고 뒷자리에 델마와 델마의 언니가 앉았다. 트럭의 뒷자리에는 사냥총이 두 자루 더 있었다. 델마의 언니가 자꾸 그 총을 만지작거려 델마가 질색을 했다. “그러다 큰일 내우.” “큰일은 벌써 냈다.” 델마의 언니가 합죽 웃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앞자리에 앉은 식당여자에게 물었다. “꽁꽁 묶기는 잘 한 거야?” “죽지는 않을 걸요.” ‘쇠새끼’는 만취를 한 상태로 식당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그가 언제나처럼 그 총으로 그의 아내를 겨누었다. 어쩐 일인지 아내의 모습이 자꾸 멧돼지로도 보이고 살쾡이로도 보였다. 아내가 자꾸 무서워져 그가 술을 마시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아주 안 돌아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돈이 때마다 떨어지니 안 돌아올 수도 없었다. 아내가 일어나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그를 바라보았다. 죽이든가 말든가 하는 듯한 그 눈빛이 그를 진저리나게 했다. 저것은 짐승도 아니다. 쇠의 냄새도 못 맡고 화약 냄새도 알지 못하니, 저것은 짐승조차 아니다. 그가 총을 갈기는 대신 다짜고짜 여자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달려들 때였다. 엉덩이께에서 뭔가가 그를 툭툭 건드렸다. 돌아보자마자 그의 입에서 헉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늙은 여우 한마리가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흰털로 뒤덮인 늙은 여우,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였다. 총이 발사되었다. 여우가 요술을 부려 총알은 앞으로 뻗지 못하고 위로 향해 천장을 뚫었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어디 가시는 거에요?”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한마디도 않고 있던 여자아이가 그 모든 일이 다 마무리된 후에야 델마와 델마의 언니에게 물었다. “바다에 간다우.” 델마의 언니가 대답했고, 여자아이가 그날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해보였다. “할머니들이 무슨 바다엘 가요?” “할머니들도 놀러는 간다우.” “어디서 오셨어요?” “미국.” “진짜요?” “진짜지.” 여자아이가 이번에는 소리를 내 웃었다. 이런 재밌는 일은 처음 봤다는 듯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였다. 몸이 꽁꽁 묶인 쇠새끼가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그런 아버지의 몸을 뒤져 차 키를 꺼냈다. 12. 최창식의 택시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모텔 사장 윤기만과 그와 아삼륙인 24시간 민물매운탕집 사장 송효보가 그 둘이었다. 송효보는 위치추적을 통해 자신의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다. 거기에는 그의 지갑도 있을 것이었다. 핸드폰은 신형이 아니고 지갑에는 큰돈이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그냥 재수 옴 붙었다 해버릴 수도 있긴 했지만, 그 할망구들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지갑 속에는 로또 한 장이 들어있었다. 그는 매주 로또 한 장씩을 샀는데 매번 그 한 장의 로또가 1등이라고 믿었다. 윤기만은 명석의 아버지를 통해 명석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개자식이 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곳이 근처의 바닷가라고 했다. 그놈이 몸을 숨기기는 쉬워도 차를 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놈을 잡아서 아주 아작을 내버릴 작정이었다. 차 안에서 곯아떨어져 있던 송효보가 갑자기 번쩍 잠에서 깨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우리 엄마만 아니었어도!” 자기 노모만 안 떠올라도 그 늙은이들을 아주 절단을 내버릴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최창식은 60이 넘고 70이 가까운 송효보가 여전히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게 좀 우습게 여겨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죽은 노모를 떠올렸고, 택시를 탔던 늙은 할머니 둘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혀를 쯧쯧 찼다. 그 자식들이 오죽했으면 할머니들이 집을 나와 그러고 다닐 것이란 말인가. 윤기만도 자신의 노모와 그날 아침에 모텔에서 나가던 할머니 둘을 떠올렸다. 윤기만은 할머니들에게는 아무 유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 할머니들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의 노모가 동시에 떠올라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그날 아침에 매생이국밥집을 찾을 때 좀 친절하게 말할 걸. 어쩌면 가출 할머니 신고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릴 걸. 그러면서 그는 송효보를 흘깃 째려보았다. 이 새끼는 애미도 없이 태어났나. 그렇게 늙은 할머니들이 잘못을 했으면 뭘 얼마나 잘못을 했을 거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야. 아무튼 근본도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총소리를 들은 것이 그때였다. 송효보가 줄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택시 창문이 닫힐 새가 없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느새 깊게 어두워져 바다는 시커멓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우물처럼 바라보였다. 최창식이 총소리에 놀랐는지 급정거를 했다. 핸들이 꺾이면서 차가 하마터면 언덕의 난간을 들이받을 뻔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차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난간을 붙잡고 섰는데, 차에서는 시꺼멓게만 바라보였던 바다가 그곳에서 좀 더 가깝게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은 그때였다. 찰라지간에 하마터면 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릴 뻔한 것이 아닌가. 아직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던 것이 아닌가. 송효보의 나이 68세, 윤기만의 나이 67세, 최창식의 나이 58세였다. 13. “할머니 미국 살았으면 미국이름도 있어요?” “그럼 있지.” “뭐예요?” “루이스.” 여자아이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할머니는 델마에요?” 델마가 그게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한 채 합죽 웃음을 띠었다. “아이고, 이제 그 영화제목이 생각나는구만.” “이제 총 쏴봐서 좋아요?” “그게 쏜 건가, 어디…… 어쩌다 그리 되었지. 아이구, 그래도 그게 진짜 총이기는 하대. 좋네. 아주 좋아. 내가 이제 총도 만져봤으니 세상에 여한이 없네.” “그럼 이제 우리 매생이국밥 먹으러 가요?” “남자 친구 먼저 안 찾고?” “그런 새끼가 무슨 남친. 웃겨.” “웃기면 웃어야지. 너 웃는 거 참 보기 좋다. 그러니까 자꾸 웃어라.” “그러게요.” 식당여자가 처음으로 말을 끼어들었다. “얘 이렇게 말 많은 거 첨 보네요.” “그럼 내킨 김에 노래도 불러드릴까요?” “그거 좋다.”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악을 써가며 ‘말 달리자, 말 달리자’노래를 불렀다.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인데 델마와 루이스의 어깨가 흔들흔들했다. 어둠 속으로 멍 자국이 사라진 식당여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와본 게 언제 적의 일이었더라. 바다는커녕 근처 저수지도 일없이는 가본 적이 없었다. 이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식당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엄마 손을 잡듯이 델마의 손을 잡았다. 델마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쪽지 한 장만 달랑 놓고 떠나온 집의 자식들을 떠올려서는 아니었다. 델마가 자식 생각들을 그때 아주 잊었다. 첫 새끼를 낳고부터 그날에 이르도록까지 60여년이 넘게 자식 생각을 잊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러나 그날 델마는 바다만 생각했다. 바다가 이렇게 좋으니 매생이국밥은 안 먹어도 어떠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지탱해왔던 마지막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충만되는 것이었다. 바닷바람이 그녀 안으로 전부 쏟아져 들어와 그녀의 모든 빈틈을 채웠다. 그녀가 언니의 손을 잡았다. 어린 시절에는 쌍둥이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닮은 자매였었다. 열두 살에 그 자매 둘이서 가출을 했었다. 바다에 놀러간다고 기차까지 탔다가 바다에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내렸다. 그날 어찌나 호되게 매를 맞았던지…… 델마의 얼굴에 또 웃음이 어린다. 곧 그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꼭 말씀드려야지. 엄니 아부지, 우리가 바다에 갔다 왔네. 바닷바람이 더는 차갑지 않게 부드럽게 흘러왔다. 그녀의 미소도 그렇게 부드러웠다. 그런데 그 상피 붙은 여편네들이 등장한다는 영화…… 그 영화 속에서 그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었더라도 늙은 그들과 같지는 않으리라. 이제 늙은 그들의 죽음은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한 몸이었다. 그러니 이제 집에 돌아 가야할 시간이었다. 삶이 그곳에 있어서가 아니라 죽음마저도 그곳에 있으니, 집에 돌아가 늙은 아들의 손을 붙잡듯이 그것의 손을 붙잡고, 너무 멀리 갔다 왔네, 미안하네, 인사해야할 것이다. 어디선가 괜찮다, 말하듯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