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은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로, 심야에만 문을 여는 식당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지친 삶을 음식으로 위로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자신만의 음식으로 묵묵히 위로를 건네는 셰프의 모습과 더불어 드라마의 요리 스타일링을 맡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로 인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이러한 콘셉트를 모티브로 한 술집들이 군데군데 생겨났다. 아니, 어쩌면 훨씬 전부터 동네 곳곳에서 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위로해주는 술집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찾은 두 군데의 심야식당은 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시즌 2를 시작한 곳들이다. 이태원에 위치한 ‘심야식당 시즌2’는 이태원시장 입구의 명물이었던 원스키친의 권주성 셰프가 오너 셰프로 지난 6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매일 페이스북으로 메뉴를 공지하고 예약은 필수다. 건물 5층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서니 용산구청을 비롯한 이태원의 주변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좁고 어두컴컴한 드라마 속 심야식당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바 너머에 위치한 오픈 키친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요리를 하는 권주성 셰프가 보였다. 헤드 셰프로 있던 원스키친은 분위기조차 드라마 <심야식당>과 꼭 닮았지만, 이곳은 더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되 일정한 메뉴가 없는 콘셉트만은 그대로 남겨뒀다. 그리고 사람, 그것만은 그가 끝까지 놓지 않는 키워드다. 가끔 식당을 둘러보면 아는 얼굴이 절반이 넘을 때가 많다고 했다. 술로 맺어진 인연은 피보다 진한가 보다. 원스키친 때부터 인연을 맺고 탄생한 1호 커플은 부모님보다 먼저 결혼 날짜를 알려오기도 했고, 식당을 찾은 셰프들과 즉석에서 메뉴 구상을 하기도 한다. 술 마시러 왔다가 바 위쪽에 메뉴판을 그리게 된 웹툰 작가도 있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인연은 시작된다. 심야식당의 시그너처 메뉴인 스위스 감자전과 한라산 소주와 함께 말이다. 혼자서 바에 앉아 술 한잔을 기울이다 보면 언뜻 배우 유준상을 닮은, 사람 좋은 권주성 셰프와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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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심야식당인 소년상회는 자양동 아파트 상가 1층에 자리를 잡고 이제 막 영업을 시작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오픈 전 지인들과 모여 축하파티를 하던 날이었다. 기존 소년상회는 새로운 콘셉트로 재오픈할 예정이라 멀지 않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소년상회에도 가보지 못했던 기자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도착해보고 깜짝 놀랐다. 오래된 듯한 아파트 상가 제일 구석에 위치한 심야식당 ‘소년상회’는 상상했던 심야식당의 비주얼에 딱 들어맞았다. 나무로 만든 문과 어둑한 실내, ㄱ자 형태로 만든 바는 어디 앉아도 주방과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한 달에 한 번씩 계절과 어울리는 메뉴로 변경한다. 파스타에 소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진 소년상회는 양식 같은 한식을 모토로 메뉴를 선보인다. 소주와 궁합을 맞추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겁게 이곳을 찾는다. 정식 오픈을 하지 않은 그날도 동네 주민들 몇몇이 호기심을 보였다. 채낙영 셰프는 바로 이런 것을 노렸다고 했다. 핫 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가게를 오픈하기보다는 내가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맛집을 만드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기꺼이 찾아오는 것을 말이다.
기자가 찾은 한국 스타일의 심야식당 2곳은 운영방식 등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다. 출출함을 달래러 오거나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치이고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으로 위로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혹은 혼자서 술집에 가기가 어색해 조그마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두 가게의 셰프들 역시 손님을 받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음식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공간과 시간을 내주고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심야식당의 불을 밝히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