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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교직의 체험을 통하여 얻은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교사의 덕목을 한 단어로 요약해서 표현해 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교사는 ‘참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교육은 무던히 ‘참’고, 무던히 ‘용’서하고 무던히 ‘기’다리는 생활의 연속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교사라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비롯하여 대가족이 한 집안에서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할머니가 기거하시던 안방의 윗목에는 겨울 내내 콩나물시루가 있었다. 할머니는 콩나물시루에 콩을 넣고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주셨다. 그 것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물을 주어봐야 시루 밑으로 다 빠지고 콩은 그대로인데 왜 헛고생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에 그 콩에서 싹이 자라 콩나물이 되고 그 콩나물은 콩나물국으로, 콩나물무침으로 변하여 밥상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콩나물에 물을 부으면 시루 밑으로 물이 몽땅 빠져 버리는 것 같은데 그 물의 힘으로 콩나물은 계속 자란다. 이 콩나물시루의 원리가 교육의 원리가 아닐까? 학생들에게 던지는 교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학생들은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 콩나물로 변하여 예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나와 동학년 담임을 하면서 한 교무실에서 교육을 논하던 동료교사가 매일매일 되 뇌이던 기도가 생각난다.
나에게 겸손을 주소서.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항상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고도 학생에게 디딤돌이 되는 교사가 되는 겸손을 주소서. 나에게 인내를 주소서.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인내가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를 주소서. 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로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나에게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 학생을 대하게 하여 주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도 함께 주소서. 제자를 대함에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여 주소서.”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며 교사에 필요한 제일의 덕목은 ‘참용기’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
교육은 참음이다. 교사에게 분노가 올라오고 화가 치밀 때, 겸손과 인내를 가져야만 학생에게 평화가 찾아오게 할 수 있고, 이러한 교사의 겸손과 인내는 학생에게 인내심을 길러주게 되고 이 인내심만이 학생의 꿈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나라를 다스릴 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라고 하였으나, 호랑이는 이 시련을 참지 못했고,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린 곰은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는 꿈을 실현하였다.
교육은 용서다. 용서한다는 말은 상대의 잘못이나 실수를 덮어주어 나의 노여움이나 분노를 버리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여움이나 분노를 마음속에 품어 가장 고통스러운 상대를 바로 나 자신 속에 안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 자의 아픔도 크지만 용서하지 못한 자의 고통도 그에 못지않다.
또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듯이 용서를 받아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용서의 기쁨을 줄 수 있다. 용서를 실천하는 자만이 자아를 실현하고 마음에 평화의 씨앗을 뿌려 원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 정비 센터를 운영 할 때 직원의 실수로 불이 나 정비 센터가 모두 타버리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직원에게 호랑이 정회장이 미소를 띠며 "어차피 그 공장 다시 지으려 했는데 철거비용 굳었구먼, 자 그 비용으로 오늘 막걸리 파티 하자!"는 제안을 하여 직원들의 충성심을 자아내어 거대한 기업 현대를 얻었다고 한다.
교육은 ‘기다림’이다. '사랑한다.'는 말도 생각해보면 '기다린다.'는 말이다. 기다림 없이 할 수 있는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용서'도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한다는 말이고 앞으로의 더 많은 아픔과 눈물을 인내한다는 약속이다.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고 항상 급하게 행동하는 안타까운 학생들을 보면서 교사는 가슴이 아파온다. 기다림은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여유다. 참고 기다림으로 풍성한 삶의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교사에게는 오늘 하루도 기다림의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의 마음, 희망의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이해하고 격려하는 환경에서 학생의 꿈은 잉태하여 자라고 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한 참음(인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한 용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한 기다림 이 참음과 용서와 기다림은 가르치는 자의 기본일지니 교사의 참용기가 때로는 장영실이 되고 때로는 박경리가 되고 때로는 슈바이처가 된다. |
그는 참으로 훤칠한 키에 잘 생긴 학생이었다. 그는 부여 세도에서 임천까지 약 7km의 비포장도로를 오토바이로 등교하는 이색적이다 못해 도발적이었고 고등학교 첫 등교일인 예비소집일에는 예비군복을 입고 학교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목표했던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후 시골 면단위 고등학교에 마지못해 입학한 학생이다.
1학년 초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지 친구들과 “짱돌”이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학생과장이 제일 골치아파하는 학생이 되었다. 당시의 그는 정말 한심할 정도로 망가진(?) 모습의 학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8년의 만물이 생동하는 어느 포근한 봄날, 나는 의미 있고 감격적인 날로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시간을 맞이했다. 내가 있는 직장의 전 직원 특강에 그가 강사로 초빙 된 것이다. 직원들 속에서 나도 그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그의 강의는 나에게 30여 년 전 그 시골 학교 젊은 교사시절을 회상하게 했다.
“여러분! 저의 박사논문 주제는 자아개념(self concept)입니다. 그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학교 다니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 학교 교복을 입고 사는 것이 참으로 싫었고 그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늘 공격적인 것만 즐기며 좋아했기에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소위 말하는 타켓이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 큰 반항심만 생기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 정학 위기에 있을 때, 김덕주 선생님께서 나의 손을 잡고 잔잔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일태야! 나는 너의 심정 다 안다. 너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스스로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일태야! 너는 할 수 있다. 너에겐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이 말씀이 저를 교수로 만들고, 매년 200회 이상의 외부 강의를 할 수 있는 한국 제일의 유명 강사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ROTC로 군 생활을 막 마치고 찾아간 교직생활의 초임지인 임천을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의 제자들은 이제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40대 후반의 나이로 요사이 만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늙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나이이다. |
지금도 가끔 그들의 연락을 받고 그들의 친목모임에 참석하여 옛날을 회상도 하고 때로는 체육대회에 참석하여 축구를 같이 하기도 한다. 더욱이나 그 시절의 제자 윤교는 금강에서 잡아 올린 40cm가 넘는 초대형 붕어를, 종순이는 자신이 재배한 싱싱한 오이를 나에게 보내주곤 하여 그 한결같은 마음에 늘 고마워하며 교사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날 강의에서 김 교수가 말한 자아개념을 쉽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아개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무능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만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자기 스스로'를 나타내거나 반영하는 또 하나의 '자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음속의 '자아'는 유능하고 훌륭하며 자신감에 가득 찬 긍정적인 모습일 수도 있고, 무능하고 보잘 것 없고 비뚤어진 부정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긍정적인 자아 개념은 자기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고 부정적인 자아개념은 자기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대인관계도 부정적이다.
즉, 자아개념이란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품고 있는 의미, 태도, 감정 등의 총체에 관계된 관념으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지표이다. 즉, ‘자아개념이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를 의미한다.
나는 교육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이 활동이 학생들의 긍정적인 자아개념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한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힘, 나태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힘,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힘을 불어넣어 학생 스스로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게 해주는 것, 이것이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길러주는 교육의 진수가 아닐까!
지난 어느 날인가는 연수원에서 교감 자격연수를 마친 선생님 3분이 나를 찾아 왔던 적이 있다. 그 연수에 김교수가 강사로 초대되었단다. 그 후배들이 하는 말이, “저희는 김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제가 얼마나 부족한 교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는 저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
그리고 그런 제자를 둔 선배님도 몹시 부러웠고요.”였다.
몇 해 전 내가 대전송촌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김교수를 초청해 강당에 학생을 가득 모으고 강의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놀라웠다. 평소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잘대며 몸을 뒤틀어대던 그 수 백 명의 학생들이 1시간 내내 강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제자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강의 도중 PPT를 통해 임천고등학교 재학시절 나와 함께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을 격려했었는데 이를 보면서 이것이 교사의 행복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강의 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은혜에 감사한다며 자기가 집필한 책을 나에게 선물 하고 큰 절을 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이 사진을 내 싸이의 미니홈피에 띄워놓고 가끔 자랑을 하곤 한다.
지금까지 말한 제자는, 현재 수원여자대학 아동미술과 김일태 교수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초청을 받는 유명 강사이며, 서양화가로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개인전을 열고 있고, 전국 서점에는 그의 저서가 20여권이상 진열되어있다.
나는 참으로 부족하다. 말로는 ‘교육자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막상 제자들에게 별로 해 준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중시했던 교육 철학은 학습자의 긍정적인 자아개념 형성이다. 잔잔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너를 믿는다.’는 길지 않은 말 한마디를 제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나의 교직 생활을 생각하며 그 시절 수많은 제자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사랑하는 제자 김일태 교수를 생각하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의미가 나에게 행복하게 다가온다.
♡ 나의 마음은 ♡
나의 마음은 늘 아지랑이 자욱한 고향집처럼 포근했으면 좋겠다. 그 포근함 속에서 사랑스런 제자의 마음이 넉넉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나의 마음은 늘 함박눈 내리는 날 아빠의 선물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기대에 부풀어있었으면 좋겠다. 그 기대속에서 사랑스런 제자의 꿈이 잉태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늘 봄비 내리는 날 봉숭아 꽃밭처럼 촉촉했으면 좋겠다. 그 촉촉함 속에서 사랑스런 제자의 미래가 영글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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