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역사와 문화를 여행하는 미식가들을 위한 안내서
한 번 끓여 사흘은 족히 먹는 ‘카레’가 ‘커리’랑 다르다는 건 알겠다. 커리에 들어가는 향신료가 일본에서 카레 가루가 됐다는 사실도 알겠고, 당연히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사실도 알겠다. 그런데 대체 커리라는 건 뭘까? 우리는 ‘카레’에 대해서라면 구구절절 할 말이 많지만, ‘커리’에 대해서라면 단 한 가지 사실밖에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인도 음식이라는 것. 물론 이것만 알아도 커리를 맛있게 먹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음식이란 자고로 먹기 위함이 아니던가!
이 책이 처음 시작된 순간도 그랬다. 직업은 건축가에,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가 아예 현지 설계회사에 취직해 3년을 살다온 지은이가 건축도 아니요, 여행기도 아니요, ‘인도 음식’에 대한 책을 쓴 것은 결국 매혹 때문이었다. 인도 음식이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머릿속에는 김치찌개나 떡볶이, 막창 같은 것들이 둥실둥실 떠다닌다는데, 그는 정반대로 인도 요리에 빠져들었다. 식당에서 먹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요리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알아듣지 못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마냥 쳐다보다가 향신료 이름들을 힌디어로 먼저 알게 됐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부엌 찬장이 온갖 향신료로 가득 찼다. 휴일이면 몇 시간에 걸쳐 장을 보고, 또다시 몇 시간 동안 찜통 같은 주방에 틀어박혀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이렇게 됐다. 지은이 홍지은은 3년간의 인도 생활을 끝낸 뒤 2년간 자료를 수집하며 글을 썼고, 사진작가 조선희는 함께 인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요리책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간단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기야 하지만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이렇게 저렇게 조리해서 이러저러한 음식을 만들어서 맛있게 드십시오’가 아니다. 인도 음식의 육하원칙에 가깝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음식은 언제나 낯선 세계를 여는 열쇠다
그렇다면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커리란 대체 뭘까?
인도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판을 펼쳐보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커리’다. 국물이 많든 적든, 어떤 재료를 썼든, 볶았든 끓였든, 전부 다 커리다! 얽힌 이야기가 많아 짧게 말하자면 이 ‘커리’라는 단어는 영국인들이 ‘까리’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해 만든 것으로, 영국의 식민 통치가 남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널리 통용됨에 따라 인도로 역수입됐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커리’는 이제 인도 전역에서 국물 있게 끓인 음식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이는 어떤 곳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음식이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라서 ‘커리는 뭘까’라는 질문은 동시에 ‘인도는 어떤 나라일까’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커리’라는 애매하고도 막연한 개념만큼이나 ‘인도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어디에서건 음식은 그곳 기후, 역사, 문화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지만, 인도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지위는 특별하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자 식사 자체로 제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힌두교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인도에는 눈을 씻고 봐도 쇠고기 요리가 없을 법한데, 그렇지만도 않다. 쇠고기 요리도 있고, 돼지고기 요리도 있다. 종교적 율법이 금하는 사항이지만 계급이나 출신 지역에 따라 자연스럽게 먹기도 한다. 때로는 같은 음식임에도 주州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이름도, 조리법도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는 음식을 둘러싼 무수한 맥락 속에서 빚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것 중 하나가 입맛이라는 말은 아마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맛의 역사를, 입맛을 길들여온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이해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바게트를 먹듯, 중국에서 젓가락을 쓰듯, 우리가 김치를 먹듯, 인도인들은 삼시 세끼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을까?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라면 인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도인들이 먹는 음식을 살펴보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이 책은 인도 음식에 대한 매혹으로부터 시작해 음식이 만들어진 손끝,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많은 유적지를 돌아보고 영적인 아우라로 가득한 성지도 가보았지만, 나를 인도라는 ‘이상한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멀고도 낯선 나라, 인도는 어떤 색과 맛과 향을 지니고 있을까?
국내 최초 본격 인도 음식 탐사기
물론 인도를 보고 듣고 맛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인도에 가는 것이겠지만, 굳이 9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딜 필요 없이 《스파이시 인도》를 펼쳐보자. 각 장마다 4~7장씩, 총 100컷이 넘는 사진들은 단순히 ‘간디,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 힌두교, 카스트 제도, 타지마할 등 역사책에서 잠깐 읽었던 인도’를 한편으로 밀어놓고 천의 색깔,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로 다시 보여준다.
먼저 1부에서는 딴두리 치킨에서부터 빠니르(인도식 생치즈), 난이며 로띠를 비롯한 갖가지 인도 빵까지, 한국에 있는 인도 음식점에서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인도 음식을 다뤘다. 2부에서는 모든 인도 음식을 관통하는 ‘향신료’에서부터 갖가지 반찬이며 채소 요리나 육류 요리 등 인도인들 식탁에 일상적으로 오르는 음식들을 담았다. 3부는 식도락 여행이다. 인도를 돌아보면서 각 지역에 대해 설명하고 해당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담았다. 가볼 만한 식당도 소개해두었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한국에서 닭고기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후라이드 치킨인데, 어째서 인도에서는 빨갛게 양념을 묻혀 화덕에 구워 먹게 됐을까? 이 화덕, ‘딴두르tandoor’는 어디서 유래한 걸까? 더욱이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는 종교가 아닌가? 소젖을 가공해 치즈로 만들어 먹는 것은 불경한 일이 아니었던 걸까? 음식은 오늘날에도 손으로 먹는 걸까? 인도에서는 짜이나 라씨를 토기 잔에 내주기도 하는데, 다 마신 후엔 어째서 잔을 깨뜨려야 하는 걸까? 깨끗이 씻어서 한 번쯤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청결 때문인 걸까?
이런 질문들에 차례차례 답하다 보면 3부만이 아니라 1부에서 3부까지를 통틀어 긴 식도락 여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인도 역사며 문화가 갖가지 반찬이라면, 음식은 쌀밥이니 말이다. 쌀밥 없이 반찬만 먹을 수는 없는 법. 쌀밥 한 숟가락에 반찬 한 점을 올려 먹듯이, 음식 이야기 한 숟가락에 인도 이야기 한 점을 올려 먹어보자.
글 홍지은
직업은 건축사. 요가와 명상을 배우겠다며 델리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도와의 첫 인연이었다. 절반은 비틀즈와 스티브 잡스처럼 리시케쉬Rishkesh에서, 나머지 절반은 여행하면서 보낸 한 해 동안 인도의 매력에 빠졌고, 아예 인도 설계회사에 취직해 다시 3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인도에 관한 책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공들인 이 책을 시작으로, 인도 건축 및 예술로 주제를 넓혀가며 인도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을 이어나가고 싶다.
사진 조선희
카메라를 잡은 지 28년, 인도와 사랑에 빠진 지 15년째다. 글을 쓴 홍지은이 사진을 제안했고, 인도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었기에 함께 인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인도 음식은 물론, ‘인도’라는 나라를 더 깊게, 더 넓게 알게 됐다. 이제까지 광고·패션 사진에 몸담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담긴 사진을 찍고 싶어 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여행하며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밴 사진, 감성적이고 미니멀한 풍경 사진을 선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