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4. 부동주 개념을 통한 공존 ③
‘화장실 사용 규칙’ 어긴 스님 참회
‘화합포살’로 분열된 승단 재결합
서로 대립하다 결국 경계 안과 밖에서 나뉘어 개별적으로 승단회의를 개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꼬삼비 스님들의 행동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신다. 한편, 분열한 꼬삼비의 스님들은 함께 승단회의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의견 충돌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식당이나 길가에서 마주치면 여전히 큰 소리로 말다툼하고 심지어는 멱살을 잡기도 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들을 불러 타이르셨다. 그러자 그 중 한 스님은‘이 싸움은 저희들의 일이니,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십시오’라며 오히려 부처님에게 설교했다.
실망하신 부처님께서는 ‘승단이 분열하고 있을 때, 범부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내며 아무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현자인 척 하며, 끝없이 서로 질책하며, 찢어질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떠들어대며, 인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구나’ 라고 한탄하시며, 다른 마을로 떠나버리셨다.
그러자 이 사정을 전해들은 꼬삼비의 재가신자들은 꼬삼비 스님들이 참회하지 않는 한, 두 번 다시 그들에게 합장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보시도 끊어버리자고 약속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국 궁지에 몰린 꼬삼비 스님들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할 것을 결심한다.
부처님께서는 찾아 온 꼬삼비 스님들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양쪽 스님들의 자리를 마련하도록 지시하셨다.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옷이나 음식 등을 똑 같이 분배하도록 하셨다. 서로 의견의 차이로 싸우고 있지만, 불교승려라는 점에서 동등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문제의 스님, 즉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통에 물을 채워두지 않고 나왔던 그 스님에게 문득 참회의 마음이 일어났다. 승단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자신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편에 서 주었던 많은 스님들에게 참회의 뜻을 밝히고, 대립하던 다른 그룹의 스님들과도 다시 화합할 것을 원하며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분열했던 승단의 재화합 방법으로 ‘화합포살’의 실행을 가르치신다.
원래 포살이란 보름에 한 번 동일한 경계 안의 모든 스님들이 전원 모여 바라제목차라 불리는 규율집을 낭송하며 그 동안의 행동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모임인데, 화합포살이란 이 정기적인 포살과는 달리 언제든지 분열한 승단이 재화합을 원할 경우 양쪽이 모여 바라제목차를 낭송하며 포살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꼬삼비스님들의 싸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사건의 계기는 화장실의 물 사용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지만, 한 번 어긋난 양쪽의 감정은 마른 산에 불붙듯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갔다. 이때 ‘화합’이라는 이름하에 무리하게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고자 한들 그것이 어찌 진정한 화합의 실현이 될 수 있겠는가.
부동주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허락하시고, 마지막까지 똑같이 대우하며 그들 스스로의 참회와 화합을 이끌어내신 부처님의 의도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전(現前)승가라는 점 단위의 화합이 곧 사방(四方)승가라는 아름다운 선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아신 것이리라.
우리의 삶에서도 부동주의 입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살다가 누군가와의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싶으면, 한번 돌아보자. 내가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무시한 채 스스로의 판단이나 가치관 속에 상대방을 무리하게 짜 넣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또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지우고자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색깔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리라.
이자랑
(도쿄대 박사)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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