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권문숙
요즘 큰 아이의 출근시간이 새벽 5시30분이다. 아침 밥 챙겨주는 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사회초년생으로 D 건설회사에 입사한지 한 달 반 정도 지났다. 출근시간이 빨라서 아침밥을 못 먹고 출근하는 큰애가 안쓰럽다. 입사 이후 밥과 간단한 반찬을 주었더니 새벽에 일어나 입맛이 깔깔해서 먹지 못한다고 했다. 큰아이의 말을 존중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러 가지 죽을 요리해서 줄 요량이었다. 어제 저녁 삼계탕 재료를 시장에서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다양한 기업 문화의 속사정은 접을지라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출퇴근 시간을 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나와는 무관했다. 정작 취직이 되고 큰 아이가 대기업의 출퇴근 문화를 익혀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하다. 삼계탕을 끓이는 내내 마음을 담아 더 정성스레 끓이고 더 좋다는 재료를 넣어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마늘의 성분인 알리신은 피로회복에 으뜸이고 혈관의 노폐물을 걸려준다. 건설현장에서 주로 일하는 큰아이에게는 좋을 것 같아 마늘을 더 넣어 푹 고았다. 내 생활 패턴도 큰아이의 출근 시간으로 바꿨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시골 농경문화에서 자란 환경으로 새벽 형 활동은 무리가 없었다.
보통 큰 아이의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서는 새벽 5시전에는 일어나야 된다. 아뿔사! 오늘은 5시 20분에 일어났다. 큰 아이도 많이 피곤했는지 알람소리에도 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깨웠다. 바쁜 새벽시간에 출근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삼계탕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아침밥으로 김밥을 준다”고 했다.
꾸들꾸들하고 찬 김밥이 어찌 아침밥이 될 수 있을까. 배고프지 말고 현장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라고 삼계탕을 끓었는데 그 의미가 사라졌다. 남편을 깨워 가까운 지하철역인 화곡역까지 태워주면 안 되느냐고 채근했다. 조금이라도 삼계탕을 먹이고 싶었다. 잠에서 비몽사몽간인 남편은 싫은 내색을 하며 거절을 했다.
다 “큰 애고 성인인데 뭘 그러냐”고 도리어 나에게 핀잔의 화살을 날렸다. ‘열 달을 내 자궁 속에서 어미의 영양분으로 키운 모정을 당신은 아느냐고 궁시렁’댔다.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을 실감’한 나는 애가 안쓰럽지 않느냐고 남편을 구슬렀다. 그랬더니
“그러면 일영이 한테 물어보고 원하면 태워준다”는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큰아이는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간다”고 했다. 말의 여운이 채 가기도 전에 안방에서 살짝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구 맙소사. 어째 저럴까. 삼계탕은 어쩌노. 삼계탕을 조금이라고 먹여서 보낼 생각 이었는데 덩그런 냄비가 마치 엄마의 퉁퉁부른 젖가슴처럼 가스렌지 위에 놓여있다. 그 모양을 보니 속상했다. 이게 어미의 마음임을 남편은 아나. 혼자 식탁에 앉아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큰아이의 출퇴근으로 맘이 가볍지 않았다. 대기업의 문화
“빡시게 시키고 돈은 많이 받는다”는 세간의 말이 실감났다.
일주일 노동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빼고도 12시간 반 주 72시간이다. 이 긴 노동의 시간으로, 젊음의 여가시간은 엉감생신이구나! 막 피어오르는 사회초년생들, 이렇게 장시간 노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연애는 언제하고 , 친구는 언제 만나고, 퇴근 후 부모들과 한마디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어디 있으며, 혼술 혼밥의 유행어가 괜히 만들어지는 신조어가 아니구나! 다행히 취직이 돼 한 시름 놓는가 했더니, 취직하고 나니 우리나라 노동문화가 주는 일 바퀴에 치여 출퇴근으로 이리 신경 쓰이고, 마음이 순간순간 바꿨다 날은 밝아오고 핸드폰을 잡았다. 인터넷 뉴스가 나를 불렀다. ‘근로시간 68→52시간’ 근로기준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5년 만에 근로시간 단축 이뤄져. (서울=뉴스) 이후민 기자, 전형민 기자, 유경선 기자/ 2018-02-28 송고. 눈이 번쩍 띄어 기사를 상세히 읽었다. 아들과 직결되는 기사라 한 줄도 놓치지 않고 행간을 꼼꼼하게 읽었다. 그나마 5년 전부터 불씨를 지피던 사회이슈가 문재인 정부 들어 조금은 타 오르는 기색이 보여 다행이다.
나는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인 시야는 가지고 있다. 손학규 정치인이 말했던가! 저녁이 있는 삶을. 젊은이, 근로자, 우리 국민들이 다 같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노동법 개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편한 나라가 아니라 살기 좋은 나라를 이 근로시간에서 찾으면 어떨는지?
201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