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레비 스트로스와 구조주의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사상가인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광범한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사상계>를 통하여 불어 불문학자들이 단편적이나마 처음으로 레비 스트로스와 구조주의의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언어학자나 문법학자 또는 문학평론가들이 구조주의적 방법론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1970년대에 접어들고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레비 스트로스에 대한 관심은 문학이나 언어학의 영역으로부터 철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존주의가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5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던 구조주의에 의해서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역사관, 또는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이라는 신국면을 맞이했다. 일반적으로 구조주의의 창시자는 레비 스트로스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구조주의에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독립적 지위를 지니고 있는 적어도 다른 네 사람의 인물 -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 을 들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학에서 구조주의를 발견. 응용하고 있는 것처럼, 라캉은 프로이트류 의 초현실주의로부터,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바르트는 문학비평으로부터, 푸코는 철학으로부터 각각 그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파들을 구조주의라는 단일한 명칭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이들 각각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강조에서는 놀랄 만한 차이점이 또한 존재하고 있다. 예컨대 라캉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언어학자 야콥슨의 구조주의 언어학 간의 상호 관련성을 확신하여 의식과 전의식, 또는 자아와 원초적 자아의 분석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에, 알튀세르는 구조의 개념이나 이론을 채용함이 없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인간주의적. 반역사주의적 해석을 시도하면서, 특히 <지본론> 가운데 나타난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주장하고 있다. 구조주의자들의 이처럼 다양한 견해는 우리들로 하여금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도록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민족학자로서 남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회조직이나 행위를 연구함에 있어서 그가 사용했던 방법을 구조주의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분야에까지 무분별하게 적용되었으며, 구조주의는 민족학적 분석방법으로부터 하나의 철학적 주장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의 유행에 당황하여, "오늘날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구조주의자가 아니다. ....... 나는 결고 어떤 지적운동이나 주의를 주장하거나 이끌지 않았으며, 오직 민족학자의 집단에 둘러싸여 고립적 활동을 계속하였을 뿐이다. ........ 어떤 철학자나 문학자들과 관련된 구조주의는 나의 방법과는 완전히 혼란된 것이다. 나는 푸코와 같은 사람의 지성과 재능에는 무한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행하는 작업과 내가 하는 일 사이에서 나는 극히 사소한 유사성도 발견하지 못한다"라고 그의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조화에 대한 탐구이며, 어떤 대상들 가운데 내재하고 있는 관계의 체계를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구조주의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의 화학적 요소처럼 과학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임의적인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비교적 정적인 원주민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선택하여 이 사회 내에서 신화. 친족. 결혼 따위의 법칙과 체계를 규명해내는 것이다. 미개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인류학자의 목적은 하나의 인간성을 탐구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미개사회에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신념이나 생활양식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인간성의 한계에 존재하는 인간활동들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업으르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과학은 구조주의적 방법을 선택하거나 또는 전혀 다른 분석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단지 인류학자는 수많은 사회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실들에 직면하여 양자택을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 모든 현상의 다양성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거나 또는 이 다양성의 배후에 무언가 보다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바로 이 다양한 표현들을 이처럼 하나의 언어(또는 관계나 법칙의 체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다. 다양한 현실의 배후에서 보다 심층적이고 진실한 어떤 실체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불리든 간에 레비 스트로스에게는 인간과학의 존속에 필요한 조건이다. 물리학자가 빛을 하나의 파동으로서 혹은 방사체로서 연구하듯이, 인간현상은 역사적으로나 혹은 구조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타당성을 지닐 수 있으나, 어느 하나가 보다 우위적이거나 특권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오직 후자의 구조주의적 방법에만 관심을 지닌다.
결국 오늘날 우리들이 구조주의라는 부르는 것은, 적어도 그 방법론적 차원에서는 레비 스트로스에 의해 가장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미 구조주의는 인류학적 문제의 제한된 분야나 한 사회인류학자의 이론적 성과를 훨씬 넘어서서 하나의 세계관 또는 이데올로기까지 확대되고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그의 생애를 통한 학문적 전개 방향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레비 스트로스의 생애
레비 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부친은 유대계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생후 얼마 안되어 베르사유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부친과 숙부는 모두 하가였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베르사유의 유대교 율법 선생으로서 교회를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레비 스트로스는 어려서부터 교회의 벽화나 성화들 혹은 다른 명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또 그 자신도 일찍부터 그림. 조각. 골동품 따위를 수집함으로써 회화에 대한 높은 안목과 식견을 지닐 수 있었다. 이같은 그의 재능은 <슬픈 열대>에서 카두베오족이나 보로로족의 신체장식이나 조각의 문양과 구도를 분석함에 있어 놀랄 만한 경지를 보여준다.
레비 스트로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파리에서 거주하였고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1931년에는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자(23세)로 합격하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리세(프랑스의 국립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35년에 선배인 셀레스탱 부글래의 소개에 의해서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는 그의 학문적 진로에 하나의 주요한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브라질에 체류하는 동안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아마존강 유역의 원주민 사회를 답사하는 가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원주민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민족학적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고, 1936년에 처음으로 인류학적 논문을 발표하였다. 1938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후원 아래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고, 이때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가 바로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통역장교로 근무하였는데,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유대계 프랑스인이었던 레비 스트로스는 미국으로 탈출하여, 동료학자들의 도움으로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향후 8년간의 연구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당시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들인 로위, 보애스, 크로버, 린튼 등과 친교를 맺어 그들로부터 많은 이론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였던 야콥슨과의 학문적 대화를 통하여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하였으며, 그 성과로서 1954년에는 야콥슨과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이란 논문을 집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부터 2년간은 주미 프랑스 대사관의 문화고문 직책을 맡았으나 1948년에는 파리로 돌아와 인류학박물관의 부관장직을 맡게 된다.
1950년에는 파리 대학 고등연구원 제6분과(원시종교)의 연구교수로 취임하여 단기간의 아시아 지역(파키스탄. 인도 등)을 여행한 것 외에는 직접 현지조사는 실시하지 않고 주로 연구와 저술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 중에 나타난 그의 중요한 업적들로는 <인종과 역사 1952>, <슬픈 열대 1955>, <구조인류학 1958> 등을 들 수 있다.
1959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 사회인류학 연구실이 특별히 레비 스트로스를 위하여 개설되었는데, 그의 취임강연은 유명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사회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그의 구조주의 방법을 두번째로 적용하기 위해 신화학의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2년에 출간된 <야생의 사고>는 그 난해성과 사르트르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으로, 당시의 사상계에 던진 충격과 파문은 굉장하였다. 그러나 <야생의 사고>는 레비 스트로스의 다음에 나타날 방대한 저서인 <신화학>의 사상적 기초에 해당하는 하나의 전주곡이었다.
1964년부터 1971년에 걸쳐 레비 스트로스는 그의 명석한 지성과 화려한 천재성을 4권의 저서에 쏟아놓고 있다. 1964년에는 <신화학> 제1권 <날것과 익힌 것>을, 1966년에는 <꿀로부터 재까지>를, 1968년에는 <식사법의 기원>을, 그리고 1971년에는 <벌거벗은 인간>이 출간되어 신화학의 전 체계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 저서에 담긴 내용과 분석 방법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지만, 제1권 <날것과 익힌 것>에 주어진, 인류학자의 최고 명예라 할 수 있는 바이킹 재단상 수상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의 업적이 얼마나 큰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매우 간략하게 열거한 그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을 통해 우리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연구활동과 현대 사상계나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요컨대 레비 스트로스의 수백 편의 논문과 많은 저서,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를 대상으로 씌어진 논문들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한 권의 방대한 책이 출간되어야 할 형편이다.
3. 구조주의의 이론적 배경과 성과
흔히들 인류학을 신체적 특성을 연구하는 형질인류학과 인간과 문화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으로 분석하지만, 인류학의 본질적인 탐구대상은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서 '인간이란 무엇이냐' 하는 주제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인류학은 그것의 구체적 관심분야가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인간성이 어떻게 자연과 대립을 이루거나 혹은 조화하면서 하나의 문화 속에서 인간성의 특질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에게서도 그의 모든 인류학적 연구가 인간정신을 보편적으로 입증하는 사실들을 추출해내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프로이트로부터 인간이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도 가진 존재라는 이론을 확대하여 무의식적인 이드는 자연적인 것이며, 의식적인 에고는 문화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이 무의식의 구조적 측면을 통해서 인간정신에 접근하려고 하였는데, 그의 접근방식은 심리학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구조언어학을 통해서였다.
실제로 인류학에서의 주요한 가정이나 방법은 많은 역사적인 이론체계들로부터 파생된 것이다.레비 스트로스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위해서도 그의 구조인류학이 영향받고 있는 루소, 뒤르켐, 마르크스, 프로이트 같은 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며, 나아가 구조언어학의 기본적 방법론의 특성을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방법론의 수준에 있어서, 레비스트로스는 이들 가운데서 특히 뒤르켐과 뒤르켐의 후계자인 모스의 연구로부터 많은 시사를 받았다. 아마도 뒤르켐이 처음으로 인간과학에 한정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꼈으며, 그로부터 대부분의 인문과학, 특히 언어학의 혁신이 나타날 수 있었다 하겠다. 뒤르켐은 모든 형태의 인간사고와 생활에서 우리는 현상을 결합하고 있는 관계들이 이 현상들을 구별하여 분석해내기 전에는, 현상의 본질이나 기원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뒤르켐은 이같은 원칙을 적용하여 하나의 독립된 범주로서 '사회적인 것'을 이 현상들 가운데서 구성해내려 했고, 원 - 여러 가지로 나누어졌으며, 서로 구별되면서도 하나의 관련된 차원을 지닌 전체성의 개념 - 가운데서 통합하려 하였다.
모스는 뒤르켐의 이론을 더욱 전개시켜서 이 전체성은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혹은 미적인 현상들의 특수성을 억압하지 않고, 모든 차원간의 기능적 상호관계의 체계 가운데서 존재한다고 느꼈다. 이처럼 모스의 경험적 태도는 인류학을, 딜타이나 슈펭글러와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서 구분된 자연과학의 해석과 인간과학의 해석 사이의 그릇된 대립관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뒤르켐-모스의 방법론적 전제를 통해서 친족체계 내의 혼인법칙을 호혜성에 의한 교환의 체계로 설명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의 방법론에서는 말리노프스키와 영국의 사회인류학파의 주장들에 대립되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영국의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관습의 다양성을 어떤 보편적인 사회적 목적을 산출하는 여러 가지의 방식으로서 해석하는 기능론적 분석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가 지향하는 인류학은 생물학적 기반, 심리학적 내용 혹은 제도와 관습의 사회적 기능에는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 브라운은 생물학적 유대가 모든 친족관계의 기원이며 모델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레비 스트로스와 같은 구조주의자들은 친족법칙의 인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프랑스 사회학파의 논리란 선택적이며 합리주의적 철학의 영향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영미 인류학파의 논리는 대체로 경험철학의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 양 학파의 내적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각각은 상호관련된 전제. 방법.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적 진통의 주창자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정신의 우위를 가정하여 그들의 연구는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경향을 따르며, 또 그들의 문제들을 공시적-관계적-연역적으로 취급한다. 한편 영미 전통의 옹호자들은 - 가장 넓은 의미에서 - 행태적 사실이나 활동의 우위를 가정하며, 그들의 방법은 본질적이고 양적이고 기술적이며 통시적-인과적-귀납적으로 전개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레비 스트로스는 철학적으로는 합리주의자로서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과 논리는 동일한 변증법적 과정을 따르며, 관념과 행위는 인간정신의 근본적 범주로부터 파생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 보편적인 인간정신은 경험적 실체를 구성적 단위로 분화시키고, 이 단위들은 상호관계의 체계로 조직되며, 또 이 체계들은 그것들의 가능한 조합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을 이루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인간정신과 언어의 성격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모든 사람들은 상징을 만들어 사용하는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모든 언어는 대상에 관한 보편적 특징을 표현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의 보편적 법칙을 인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용하는 어떠한 특정언어에도 하나의 구체적인 일반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정신의 구조가 무의식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가정은, 레비 스트로스로 하여금 다양한 사회현상을 하나의 보다 근본적인 무의식적 실체의 의식적 표현으로서 해석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과 언어의 세계는 그것의 내용이라는 면에서는 무한히 다양하지만, 그 법칙에서는 항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현사잉다. 그리고 모든 사회현상들 가운데서 언어는 과학적 연구가 가능한 두 개의 기본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다. 첫째, 많은 언어행위는 무의식적인 사고의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보통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언어의 구문론적. 형태론적 법칙을 의식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보통 상이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운 혹은 음운론적 대립을 의식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같은 의식의 부재는 우리가 언어의 문법이나 음성학을 깨닫게 되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에 관한 한 관찰과 현상에 관한 관찰자의 영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관찰자는 단지 그것을 의식한다고 해서 그 현상을 수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구조와 사회관계의 복합적 전체는 현대언어학의 방법론을 응용하여 가장 적절히 연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그는 현대의 구조주의 언어학, 특히 야콥슨의 이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모든 문화현상은 하나의 언어라는 견해를 세련시켰다. 문화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하나의 구문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구문의 이해를 통하여 우리는 특정한 의식. 교환. 신화 등의 인간행위를 음운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 이같은 분석은 서로 다른 종류의, 혹은 서로 모순적인 요소들의 진실한 상호관계를 나타내준다. 구조언어학의 경우처럼,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은 사회현상의 각 요소는 오직 내재적인 체계의 수준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문화를 하나의 의사전달부호로 간주하고, 모든 사회과정을 하나의 문법으로서 취급한다.
1) 구조의 개념
여기에서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프라하학파의 구조주의 언어학 간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그의 '구조'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자.
'구조'를 연구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우리들이 어떤 전체적 실체 혹은 전체 내의 부분들의 상호관계를 탐구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 적용시킨 구조의 개념을 고찰한다면, 구조적 분석의 주요과제로서 취급되는 전체적 실체에 관해서는 아무런 논란이 없지만, 부분 자체의 성질에 관해서는 매우 상이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사회구조의 연구 목적은 모델의 도움으로써 사회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회구조란 경험적 실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단지 경험적 실체를 따라 설립된 모델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은 주장은 그가 사회구조와 사회관계를 범주적으로 구분한 데서 나온 결과이다. 그에게 있어 사회관계는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모델이거나 혹은 모델들이 설립되는 사회적 경험의 원자료이고, 반면에 사회구조는 이와는 다른 인식론적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회구조는 결코 주어진 사회에서 기술될 수 있는 사회관계의 전체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하나의 구조는 다음의 몇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모델로써 이루어졌다고 한다. 첫째, 구조는 한 체계의 특성을 나타내며, 구조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의 변화는 다른 모든 요소에 변화를 초래하게 한다. 둘째, 어떤 주어진 모델에는 일련의 변형을 동일한 형의 모델들의 한 집단으로 귀착되도록 정돈하는 가능성이 있어야만 한다. 셋째, 상기의 특성은 만약 모델의 요소들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수정을 받게 된다면, 그 모델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끝으로 모델은 모든 관찰된 사실들을 즉각적으로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모델 혹은 모델들의 집단은 이처럼 내적 일관성을 지녀야만 그것의 타당성에 기본적 입증을 제공할 수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와 모델에 관한 개념은 프랑스 사회학파의 방법과 프라하 언어학파에 의해 발전된 양분법과 결합되어서 하나의 독특하고도 강력한 분석체계를 구성하였고, 그의 구조주의적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연구과정은 최종적 체계화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정신적 구속에 관한 목록작성, 임의성을 하나의 질서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자유의 환상에 내재하는 어떤 필연성을 발견하려는 탐구로서 간주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그의 주요한 작업들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2) 연구작업
레비 스트로스의 첫번째 작업인 <친족의 기본구조>는 미개인이 생물학적 충동으로 단순히 반응하는 '자연'으로부터 미개인이 그의 사회집단을 기능화하는 '문화'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을 탐구한 것이다. 그는 미개인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견해와는 반대로, 자연적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화한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기존의 사회집단에 의해서 동등하게 실천되고 있던 근친금혼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와 딸의 결혼, 어머니와 아들의 결혼, 그리고 같은 부모로부터 출생한 남매나 가까운 친척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근친금혼의 습속이다. 이 제도는 문명사회나 미개사회를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시켜주는(다시 말해서 자연과 문화의 경계가 되는) 경계선이다. 이와 같은 근친금혼의 원인에 대해서는 유전적인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모건식의 생물학적 해석과 친족체계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웨스터마크식의 도덕적 혹은 심리학적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친족체계의 기능은 남녀의 성적 결합이나 위계질서의 유지라는 면보다는 한 집단이 근친금혼에 의하여 사회적(보다 구체적으로 경제적)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사회적 이익이란 경제생활에 있어 재화와 용역의 순환과 유사한 '여자의 자유로운 순환'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집단들은 여자를 집단 간에 교환할 수 있는 기호로서 간주하여, 이 기호들을 교환함으로써 서로가 공통적인 유대와 협력관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와 같이 근친금혼을 결혼제도에서 호혜성의 원칙이라는 교환구조에 의해서 설명한다(교환에 관한 그의 이론은 모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 호혜성은 자연적 질서의 모순을 합치시키고, 또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확신하는 인간의 수단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연의 영역과 문화의 수준 사이에 기본적인 대립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작업을 시작한다. 원래 성욕이란 인간의 본능 가운데서 가장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지만(그것이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느 점에서), 그것의 구체적 표현은 닥치는 대로 혼교를 하든가, 또는 난혼과 근친상간이라는 모순적인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에 의한 집단 간의 규칙적인 여자 교환은 이와 같은 자연과 문화의 대립관계를 해결하고, 여자에게 자연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기능과 문화적 가치의 이중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집단들의 상이성을 확립하여 사회집단을 서로 구별하고 또 결합시키는 주요한 수단인 호혜성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인간사회 내에서 '우리들과 그들'이라는 기본적 구별이 호혜성의 원칙과 연관되어 근친금혼에 의해서 확립되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가 언어학에서 도입한 방법론을 가장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요리의 삼각형>이라는 논문으로서, 이것은 구조적 분석의 기초를 이루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예컨대 야콥슨의 '음소 간의 유형'은 레비 스트로스의 '요리법의 유형'으로 변모하고, 이것의 치환은 '친족의 기본구조'에도 적용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모든 분석체계에서 - 예를 들면 야채와 육류, 바다와 육지, 동과 서, 정의와 정의의 부재가 대립되는 식으로 지리적 차원과 음식물의 범주가 결합되기도 하는 - 고도로 복잡한 삼각형을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에게 있어서는 친족구조에 관한 이 첫번째 실험으로는 불충분하였다. 왜냐하면 친족관계에서는 정신적 구속성이 본래 순수하게 내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친족구조에 나타나는 결과들은 사회생활의 필요, 그리고 이 사회생활이 그 자체의 구속성을 사고의 실천에 강요하는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들이 전적으로 인간정신의 구조에서 파생된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곤란성을 제거하고 정신이 어떤 법칙에 따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정신이 가장 자유롭게 그 자체의 구조적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음직한 신화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신화의 분석에서도 그의 궁극적 관심은 표면적인 현실의 무의식적 심층구조를 밝혀내어, 모든 인간정신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사고형성의 원칙들을 발견하려 한다. 만약 이와 같은 보편적 원칙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두뇌 속에서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두뇌 속에서도 작용하는 것이다. 단지 현대인의 경우에는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의 생활을 통해 그들이 받아들인 문화적 훈련이 야성적 사고의 보편적 논리를 은폐시키고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신화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현상의 설명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의 이론적 질서를 지닌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연현상을 사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화란 인간정신의 구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관한 하나의 영상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의식적인 경험으로는 부적당하지만, 신화는 한 집단이 갖는 꿈이나 그 집단의 심층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경험이 일정한 사고형식의 법칙에 따라 표현되는 것이다(여기에서는 그의 방대한 신화학적내용을 소개하지 못한다)
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언어학자가 음운과 언어체계를 관련시키듯이, 여러 가지의 상이한 신화를 상호 관련시키는 결합관계를 탐구한다. 하나의 복합체계 내의 모든 요소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것들의 의미는 그 단위가 나머지 부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분석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는 언어학적 과정에서 출발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수백 가지의 신화들을 하나의 동일한 유형에 짜맞추었다. 그렇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학의 연구에서 신화. 전설. 의식. 축제 등의 자료를 무시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으로부터 벗어난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물론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해도 자신의 고찰에 필요한 신화들을 어떻게 선택하였는지를 우리들에게 전혀 제시해주지 않고, 오직 양극대립의 변증법으로 체계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신화가 하나의 언어이며, 또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써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적 분석이 타당성을 지닌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신화란 언어 그 자체도 아니며, 단지 그것은 언어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을 뿐이다. 내용에 형식을 부여하는 정신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고대나 현대에 걸쳐 모든 정신에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며,현대의 과학적 사고와 선사 시대의 신화적 사고 간에 아무런 질적 차이를 두지 않는 그의 기본적 입장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의 신화적 구조의 성격에 대한 놀라운 분석은 분명히 오늘날 상징주의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고 있다.
4. <슬픈 열대>의 내용
<슬픈 열대>는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떤 1937년에서 38년까지의 기간 중 브라질 내륙지방에 살고 있던 네 원주민 부족인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에 관한 민족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민족지에서는 볼 수 없는 레비 스트로스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 그리고 그가 왜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하는 내용들이 일종의 지적 자서전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을 집필한 것은 그가 브라질을 떠난 지 15년 뒤의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그 뒤에 유태계 프랑스인이었던 레비 스트로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 망명하게 되는 과정이나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였던 여행기도 여기저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세유로부터 밀선을 얻어 타고 뉴욕으로 밀항하기까지의 과정과 선상여행의 쓰라린 추억담이 회상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제2부에서는 시간적으로는 앞의 내용으로부터 후퇴하여 1934년에 그가 브라질의 상파울로 대학의 사회학 교수에 취임하게 되는과정과 그가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주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제7장의 '일몰'에서는 브라질로 향하는 선상에서 수평선상의 대기와 구름의 변화에 대해 어떤 훌륭한 문장가 못지 않을 만큼 섬세한 관찰력과 예리한 필치로써 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항해과정이 계속되어 적도 부근의 무풍대를 통과하면서 느끼는 신세계와 구세계 간의 희망과 몰락, 정열과 무기력을 표현하고, 또 그가 처음으로 도착하게 되는 상파울로와 열대지방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다.
제4부에서는 브라질에서의 생활과 앞으로의 현지조사를 위한 예비답사의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제5부. 제6부. 제7부 및 제8부에서는 앞에서 지적한 네 부족들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과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소개. 분석되고 있다.
마지막 제9부 귀로에서는 인도. 파키스탄의 여행기가 추가되어 있고, 지금까지의 모든 개인적 체험과 현지조사의 내용들을 종합. 정리하면서 레비 스트로스 자신이 인류학적 연구에서 직면하였던 문제점과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1) 민족학에의 입문
다음에는 이 책의 내용 가운데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레비 스트로스의 민족학에 대한 입문과정, 원주민 사회의 조사를 통해 표현된 세계관 내지 문명관, 그리고 민족학적 연구에 발생하는 모순과 그 해결방향을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원래 레비 스트로스는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식으로써 의식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명상에 몰두하는 그 당시의 철학적 연구 풍토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가 소르본에서 배웠던 철학이란 지능을 훈련시켰을 뿐 정신을 건조한 상태로 방치하고, 사유의 많은 가능한 형식과 변수를 간과함으로써, 오직 어떤 특정한 불변적 도구를 탐구하게 하는 기본적 적응의 정신훈련만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물론 레비 스트로스가 전문적인 철학을 혐오하여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인류학으로 전향한 데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가 고등학교 교사로서 생활하면서 자기 인생의 나머지 세월도 계속 똑같은 강의를 하면서 보내야 될지도 모를 미래가 끔찍했던 것이다. 후일 그는 민족학의 주제인 문명들과 그 자신의 사고과정 사이의 어떤 구조적 유사성으로 인해 그가 민족학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하고 술회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철학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서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할 생각을 포기하고 법학부를 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법학에서도 어떤 뚜렷한 학문적인 객관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이 앞으로 택할 직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는 인간이란 한편으로는 직업이라는 안정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험이라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면서 사명과 피난 사이에서 동요하고, 이들 양자를 취하면서도 어느 한쪽 편을 항상 뚜렷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율배반에 직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의 생각으로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두번째의 선택을 대표하는 민족학에 대해 공감을 느낀다. 예컨대 민족학자는 결코 그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다른 인간들을 하나의 초연한 관점으로부터 평가하려고 함으로써 여러 문명의 우연성으로부터 그것들을 추상화시킬 수 있다. 또 민족학자의 생활이나작업조건들은 그를 오랜 기간 동안 그 자신의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격리시키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직면하는 환경적 변화로부터 어떤 만성적 고립감을 얻게 된다. 그는 어떤 곳에서도 결코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없는, 말하자면 심리학적으로 절단된 인간이다. 그리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민족학은 음악이나 수학과 함께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진정한 천직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게 된다.
이와 같이 레비 스트로스는 학문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내면적 갈등과 변모의 과정을 겪는 동안, 또한 지적인 차원에서의 새로운 영감과 계시를 받게 되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주었고, 그의 구조주의를 위한 착상을 일깨워준 세 가지 지적 특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첫째는, 그가 17세 때 처음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에 접하게 된사실이다. 그는 마르크스를 통해 칸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철학의 조류를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었으며, 마르크스는 루소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은 물리학이 감관지각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듯이 사건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목적이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속성과 그것이 실험실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방식을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관찰 결과를 경험적 사건들의 해석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그는 믿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부터 우리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이율배반은 진정한 이율배반이 아니란 점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견해에 의하면, 현실에서 가장 감정적이라 할 수 있는 활동들이나, 가장 비논리적인 결과들이나또는 이른바 전 논리적이라는 입증들이 실제로는 가장 최고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과 사물은 그 형체를 손상시킴이 없이 본질 가운데서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의 기본적인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세번째로는, 레비 스트로스가 지질학의 연구에 관심을 지니게 되면서부터, 겉으로 보기에는 무질서한 풍경 가운데서도 그 풍경의 발달의 역사와 그 풍경을 구성하는 암석들의 내재적 구조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시간과 장소 간에는 서로 소통될 수 있는 하나의 공통언어를 통해 서로 융합될 수 있음을 인식하였다.
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이 세 가지 학문이 모두, 우리들의 '이해'라는 것은 한 형의 현실을 다른 형의 현실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진실한 현실이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 표면적 현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색을 회피하는 '표면의 심층'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연구방법이 감성으로써 지각할 수 있는 것과 이성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것, 즉 감성과 이성의 관계에서 감성적인것을 그 속성을 희생시킴이 없이 이성적인 추론에 통합시키는 일종의 초이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험과 현실 간의 연속성을 가정하는 한에 있어서 현상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경험이 현실을 포괄하여 현실을 설명한다는 점은 기꺼이 동의해도, 우리가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을 포기해야만한다고 생각하였다.또 레비 스트로스는 실존주의가 주체성이라는 환상에 빠져들어 사적인 선입관들을 철학적 문제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철학자의 과업은 존재를 즉자의 관계에서 이해하려는 것이지 대자의 관계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상학과 실존주의는 형이상학을 없애지 않고, 형이상학을 위한 입증을 발견하려는 새로운 방식을 단지 이끌어낼 뿐이라고 하였다.
요컨대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청년기의 지적 갈등을 통하여 결국에는 인류학으로부터 지적 만족감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인류학은 세계의 역사와 그 자신의 역사를 재결합시켜주고, 세계와 그 자신의 공유된 동기를 동시에 해명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의 다양한 습관. 태도. 제도를 연구하는 인류학 가운데서 그 자신의 삶과 성격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리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로 건너가 원주민 사회를 직접 대면하게 되고, 그의 민족학적 조사가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는 오늘날 우리 문명인들이 상실해버린 원시적 행복과 결백성의 개념이 레비 스트로스의 과학적 연구에 하나의 낭만적 대칭을 이루면서 전개된다.
레비 스트로스는 서구문명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걸쳐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는 침략성에 대해 명백한 분노를 나타내며, 그로 하여금 이제는 '하나의 사라져버린 실체'를 탐구하도록 만들고 있는 민족학자로서의 그의 직업의 역설을 비통해한다. 현지조사를 통하여, 그는 눈앞에서 원주민 사회가 진보된 사회와의 접촉으로 인해 변질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현대의 지식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반성이 어떤 진실성을 밝혀줄 것도 같다. 현대사회에서도 기술적 근대화의 성취는 고통스런 정신적 희생 하에서 얻어진 것이다. 따라서 레비 스트로스가 오늘날의 사상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정력적이고도 엄격하게 과학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그의 능력과, 이와 아울러 이 작업을 철저히 반성하고 검토하여 거기에서 철학적 요소를 추출하여 루소와 동일한 방식으로 비관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류의 친구로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해방을 불교적 기원의 정신적 자유로서 완결시킴으로써 동서세계를 조화시키려는 이러한 그의 세계관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그는 남비콰라족 가운데서 '오직 인간만이 남아 있는 사회'를 발견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루소가 자연상태를 이야기했을 때 마음속에 지녔던 것과 같은 종류의 관점이 될 것이다.
그의 현지조사가 전개되어감에 따라, 루소에 대한 레비 스트로스의 존경심을 더욱 커져갔다. 레비 스트로스의 생각에 의하면, 루소는 우리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인간사회에 공통적인 특성들을 구분해냄으로써 우리들의 미래의 연구방향을 제시해줄 '어떤 (존재하지 않는) 사회상태'에 관한 모델을 설정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루소나 레비 스트로스는 이와 같은 모델에 가장 접근하는 사회는 이른바 '신석기시대'라고 생각한다.
2) 원주민 사회의 비애감
<슬픈 열대>에는 저주받은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비애감이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광대한 열대가 이미 황폐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곳의 자연은 풍요하지가 못하며, 원주민들은 생존의 한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어떤 부족들은 아직까지도 도기제조나 직조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들 원주민 사회는 선교사. 대농장 지주. 식민주의자. 정부기관의 직원 등 여러 사람이 현대의 문명을 침투시켜 - 기술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상업주의적 이해, 게다가 기타 정신적 해악까지도 - 이사회들을 존속시켜왔던 미묘한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서구사회가 세계의 다른 나머지 부분에 대해 그 자체의 기준을 부여하려는 오만하고도 잘못된 전통에 대해서 반대한다. 그는 이들 원주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반박하며, 이른바 미개사회는 인간성에 관한 전체적 체험을 거의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 사회는 오직 우리들의 사회와는 다른 종류의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는 더 우월한 사회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서구사회가 기술적으로는 이들 원주민 미개사회보다 더 우월할지 모르나, 그것이 정신적인 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우열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무뿌리나 거미 또는 유충들을 먹기도 하고, 벌거벗은 채로 생활하는 부족이라 할지라도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그리고 만족스럽게 사회조직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구사회의 폭군적 습관과 서구인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려는 사회를 야만적이라고 경멸하는 것은, 서구사회 그 자체가 하나의 부족적인 편견 또는 '민족적 우월감의 사상'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현재 서구인들의 사회처럼 진보적이며, 업적을 중요시하는 사회를 '과열된 혹은 동적 사회'라고 부르며, 종합의 재능과 인간적 교환의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사회를 '냉각된 혹은 정적 사회'라고 부른다.
냉각된 사회는 기술적 진보에서 하나의 척도가 되는 개인당 에너지의 양을 거의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계적이다. 이 사회는 원초적 상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또 기록된 전통이나(우리들이 사용하는 의미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이 사회들은 매우 민주적이며, 거기에는 위게의 서열에 의한 인간적 파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한편 '과열된 사회'는 열역학적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하나의 스팀엔진처럼 에너지를 산출하고 소비하면서 갈등을 통해 발전하여왔고, 기술적 비약을 이룩해왔다.
따라서 우리들이 진보라는 것을 개인당 가용 에너지의 양에 의하여 측정한다면 사구사회가 훨씬 진보한 사회이겠지만, 만약 그 기준이 불리한 지리적 조건을 극복함에 있어서의 성공에 주어진다면 에스키모족이 첫째일 수도 있고, 만약 진보라는 것이 가족 및 사회집단의 조화로운 유지에 있느느 것이라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떤 원주민 사회가 가장 으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현대의 서구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낫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이것은 보다 유동적이기 때문에 더욱 축적적일 뿐이다.
초창기의 인류학자들은 그 자신들사회의 '문명의 영광'에 대한 입증을 다른 미개민조고의 후진성에서 발견하려 했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탐구를 시작했다. '과열된 사회'에 사는 서구인들은 변화의 궤적이 거의 없는 미개사회로부터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의 분석의 초점은 여러 가지의 다양한 문화유형과 생활형태 중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균형과 조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시점으로 쏠리고 있다. 예컨대 그가 답사한 카두베오족의 신체장식은 자연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하고 인간을 동물과 대칭적인 차원에서 표현하기 위하여, 갖가지 형태의 문양을 사용하는 회화구도를 지녔다. 그래서 카두베오족의 예술에서 발견되는 이원주의는 남자의 조각과 여자의 채색활동이라는 실제적 기능을 통해서, 각에 대한 곡선, 대칭에 대한 비대칭, 선에 대한 면 등으로 이루어져서 전체 구도는 양화와 음화의 조화 가운데서 완성되었다.
보로로족의 경우에는 계급적 위계라는 비대칭성이 반족이란 대칭성에 의해서 균형을 이루며,기타 주거지역. 결혼법칙. 무기나 도구의 장식. 장례의식. 종교생활 등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이원주의가 적용되어 기능적 조화를 이룩한다. 뿐만 아니라 남비콰라족의 경우에는 족장의 일부다처제와 그의 역할을 설명함에 있어서 직무에 따른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심리적 위안과 격려를 제공하는 일부다처의 특권을 대칭적으로 설명하면서, 역할과 권력 사이의 균형관계란 루소가 의미했던 바의 '동의'나 '계약'을 기반으로 하여 집단이 족장에게 일부다처의 특권을 제공함으로써, 그 집단은 일부일처제에 의해서 보증되는 개인적 안전의 요소들을 교환하고, 족장으로부터 집단적 안전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때로 레비 스트로스는 이같은 원주민 사회의 관습이나 생활원리를 연구하는 가운데서 우리들 문명사회의 관습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미개사회에는 야만적인 식인풍습이 있다고 비난하지만, 대부분 그와 같은 식인풍습은 원주민들에게서는 영혼과 육신의 일체화나 중화, 또는 종교적 의식의 차원에서 거행될 뿐인데, 서구 문명사회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비인간적인 행위들 - 유대인 학살이나 고문 따위 - 이나 과학의 이름 아래서 '그리스도교의 영혼과 신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시체해부 따위의 모순적인 관습들을 밝히기도한다. 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사회와는 다른 사회에 대해 편견이 아닌 객관적 관점을 지니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의 사회가 지닌 관습들의 정당성이나 자연스러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비판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해, 다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류학자란 필연적으로 자신의 사회 내에서는 비판자가 되며, 자신의 사회 밖에서는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학자는 자신의 사회에 대해서는 이상한 반항을 느껴 다른 사회를 조사하며, 이 다른 사회가 자신의 사회에서는 결여되어 있는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는지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인류학자의 이와 같은 모순적 입장에는 더욱 회피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 만약 인류학자가 자신의 사회의 개선에 공헌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기가 조사하는 다른 사회에서 그 자신의 사회에서 제거하려는 것들과 유사한 조건들은 경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상실하게 된다. 만약 인류학자가 현실로부터 초연하여 그가 연구하는 사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한다면, 그는 자신의 사회에 대해서 비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사실들에 관한 생각을 단념해야만 한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이 모순이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인류학자는 자기 직업의 숙명인 양자택일을 통하여 절단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현대문명사회에 대하여 자기 세대의 다른 지적 동료들과는 다른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의 기본적 입장은 진보에 대한 단순한 반대론자를 벗어나서 불교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일조으이 용인과 우주론적 체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진보가 수반하는 문화적 기형과 추악함을 경계하면서, 그의 세계관을 인간의 욕구나 고난이 감소되는 어떤 종류의 변화를 추구하게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진보의 절대성이 그 작용을 멈추고, 기계가 사회적 개선의 과제를 떠맡아 '과열된 사회'와 '냉각된 사회'의 특징들이 단계적으로 융합되어서, 적어도 진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노예화시켰던 구시대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성이 해방되는 먼 후일의 시대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비 스트로스의 탐구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해답은 루소가 말한 다음과 같은 상태, 즉 '이미 존재하지 않고, 과거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미래에도 결코 존재하지 안을 어떤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회란 - 그가 조사한 몇몇 사회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 - 어떤 안정된 전체감을 인간에게 제공하며, 인간은 슬픔을 축제에 의해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영혼의 지배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황금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루소로부터 가장 적절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 과연 루소는 현재의 인간들이 '황금 시대'나 원시인의 순수한 생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던가? 레비 스트로스는 사람들이 루소가 자연상태를 그 자체로서 미화시킨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다고 한다. 루소에게 자연인은 사회인과는 분리된 것이 아니며, 사회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었다. 루소가 의문시했던 것은 단지 '사회의 악이 선천적인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였다. 따라서 레비 스트로스는 우리들의 과제란 이 사회적 상태에서 자연적 인간을 발견해내는 것이라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슬픈 열대>의 주제는 여러 각도에서 복합적으로 전개되어 문명의 고발과 함께 신세계의 붕괴, 이국적인 것에 대한 환멸, 그 자체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경험의 무능력, 그리고 '아마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상태'에 대한 탐구 등의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비관주의적 어조로 지적 초탈과 정신의 평정을 강조할 뿐이다 그에게 악의 기원이란 육체나 욕망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문명의 역사로서,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지녔던 원시적 과거가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파괴되어 소멸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열대 원주민 사회는 슬픈 것이다
5. 구조주의와 반역사적 성격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하나의 사상체계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되는 것은, 그의 <야생의 사고>에 나타나 있는 초이성주의의 조합과 구조적 방법에 의한 새로운 역사의식에 기인한다. 특히 사르트르와의 논쟁은 레비 스트로스의 입장을 보다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차원으로 고양시킨 결과가 되었다. 물론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적 특징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어떤 통일된 체계를 주장하거나 그의 사상적 입장을 집약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그리고 구조주의적 방법론이 함축하는 성격에 국한하여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인(미개사회의 원주민)의 사고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거나 무질서한 것이아니라고 여긴다. 원시인들도 고도의 복합적인 형식으로 사고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란 단지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추상과학의 논리와는 다른 종류의 질서를 지녔을 뿐이다. 현대의 과학적 사고가 하나의 단일한 부호(code)를 추구하는 데 반하여, 야생의 사고는 그 자체를 계속하여 집단화하고, 많은 불연속적 요소들을 단순화시키지 않은 채로 경험세계의 자료들을 재정리하는 하나의 의미론적 체계이다. 예컨대 미개인의 사고세계에서 주술 도한 그 자체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주술은 추상적인 과학적 사고와는달리하나의 '완전한결정주의'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 결정주의적 원칙들은 전통적인 지식의 조각들을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적 유형의 무한한 변수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아무튼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적 사고란 동식물의 세계를 민감하게 이해하고, 우주적 조화를 구축하려는 감각 속에서는 균형과 연속성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과학적 논리와는 다른, 어떤 지식 획득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인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세련된 논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시적 사고를 단순하고 유치하며 미신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한다. 원시인이 사용하는 논리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감지적이며, 심미적인 논법인 것이다. 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의 특징을 무시간성에서 발견한다. 왜냐하면 야생의 사고의 목적은 세계를 하나의 통시적. 공시적 전체로 파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레비 스트로스의 관점은 그가 역사적인 진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레비 스트로스의 역사의식에 따른다면, 인류역사의 전 과정은 하나의 동일선상에서 유지되어온 의미나 지식의 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 시대와 공간적 특성에 따라, 동일한 구조가 다양하게 변모하였을 뿐인 것이다. 물론 그는 진보의 개념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결코 지니지 않았다. 단지 그는 진보란 인간발달의 차원에 대한 하나의 범주로서, 어떤 사회가 자기 인식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언제든지 다른 차원으로 이전되어버리는 동일한 구조 내의 불연속적 다양화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이 점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일종의 절충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는 사실의 묘사에서는 실증주의자지만, 구조적 분석을 시행하는 데서는 변증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 분석방법에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와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과정의 정점을 서로 다른 통로에 의해서 도달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그들의 작업과정에서 하나의 강력한 역사적 지향과 계급사회의 모순에 대한 강조를 주장한다. 반면에 레비 스트로스는 역사 그 자체가 하나의 부분이 되고 있는 실체론에 보다 관심을 둠으로써 역사를 상대적으로 경시한다. 마르크스의 이론체계가 역사에 의해서 방향을 잡고 있다면 레비 스트로스는 이성에 의해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레비 스트로스의 반역사적인 측면을 공격하고 그가 진보의 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와 같은 레비 스트로스의 역사관은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통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의 <야생의 사고>에서 인간들이 무의식적으로 만든 역사,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역사, 그리고 철학자들이 앞의 두 종류의 활동에 부여하는 해석 사이에서의 의미의 상이성을 제시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사르트르의 역사관은 대부분 세번째의 규정에만 얽매여서 우리들의 현재의 역사와는 다른 모든 형태의 역사는 오직 우리들 자신의 역사와 비교될 때만이 의미를 지닌다고 믿음으로써 지적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하나의 역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역사가 존재하고, 또 이들 각각의 역사는 철학자나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들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 자신의 사회척도에서는 진실된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할 수 있는 사실도, 인간성의 척도라는 면에서는 질실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레비 스트로스가 항상 회피하려고 노력했던 정치적 수준의 토의를 포함시켜, 구조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부르주아 사회의 최후의 보루로서 변화를 무시하며, 질서가 특권적 위치를 점유하는 하나의 폐쇄적이고 무기력한 체제를 설립하려는 시도라고 반격한다. 이에 대해 레비 스트로스도, "전후에 그처럼 유행하였던떤 실존주의에는 지금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어떤 역설적이고 모순된 점이 있다. 실존주의는 매우 진보적인 정치적 위치를 채택하는 반면에 또한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보수주의적이고 반등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다. 실존주의는 과학적 사고의 위대한 전진 앞에서 창조되고, 인간에게 귀속되는 어떤 특권적 영역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일종의 침울한 후퇴, 예컨대 휴머니즘을 구제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를 나타내었다. 그렇지만 구조주의의 본질은 한편으로는 과학주의의 성과를 솔직히 받아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이란 이미 어떤 특권적 영역이 아니고 오직 과학적 사고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형태로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초월적휴머니즘의 마지막 피난처로서 결코 역사성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구조적 변형들을 수세기에 걸쳐서 통시적으로 기록하나 인류학은 그것들을 공간을 초월하여 공시적으로 기록한다.통시적 변형의 명확성은 공시적 변형의 명확성보다 더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인류학적 다양성의 공시성은 야생의 사고 그 자체의 특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야생의 사고는 어떤 진실을 하나의 전체 가운데서 중복되고 있는 많은 부분적 영샹들을 총화시킴으로써 표현한다. 반면에 역사는 연속성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전체성을 희생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레비 스트로스도 결코 역사적 분석의 중요성을 배제하지 않고, 우리는 역사에 의해서 우연적인 현상들로부터 필연성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역사적 지식이 최고의 특권적 지위를 지닌 것으로서, 다른 형태의 지식보다 우월한 것이라고는 간주하지 않을 뿐이다. 인류학자는 역사를 도외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역사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역사를 그 자신의 연구에 보조적인 연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문사회의 범위를 시간상으로 전개시키고, 인류학은 공간상으로 전개시킨다. 역사학자는 (사라진 과거의 사회가 현재의 사회와 관련되는 어떤 시점에 있는 것처럼) 사라진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하려는 반면에, 인류학자는 시간적으로 이미 사리진 사회의 기존형태보다도 선행하였던 역사적 단계를 재구성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처럼 레비 스트로스나 사르트르에게서 마르크스는 그들 사고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는 마르크스 지향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마르크스에게서 역사는 변증법적인 것이고 동시에 진보적. 발전적인 것으로 해석되나,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역사란 인간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식의 양식을 기본적으로 변경시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르트르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연속성을 가정하여 의식의 우월한 양식과 열등한 양식을 구별하여 원시인들이 복합적. 논리적 사고와 이해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역사란 시간상으로 펼쳐진 인간의식의 조합과정으로서, 인간정신의 구조적 변형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구조주의를 마르크스 지향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인간이 과학적으로 탐구되어야만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레비 스트로스가 받아들였고, 그의 구조적 분석이 변증법적 방법을 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구조주의의 이단적 성격은 비역사적. 비실존적 정신으로서 인간을 추상적. 이념적으로 파악하고,인간의 목적과 원리들에 있어서 현실성을 감소시키며, 또 역사가 이같은 목적과 원칙을 위해 행동할 아무런 의무감도 느끼지 않는 기계론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조주의는 어떠한 현실적인 요구도 주장함이없이 오직 사실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방식을 제공하려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조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많은 불규칙성과 비일관성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생생한 현실을 거부하는 한편,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열렬히 추구한다. 또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과 인간의 역사는 화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기계적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유물론자의 어조를 지니는가 하면, 인간과 인간의 역사는 정신의 일정한 구조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한 사람의 관념론자처럼 이야기한다. 또한 구조주의는 비정치적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만, 기득권을 옹호하고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있다. 구조주의가 지닌 이 모든 비일관성은 구조주의가 감소시키고 불신하려는 바로 이 회피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서 증명되고 있다.
6. 레비 스트로스 사상의 쟁점과 전망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방법과 그것이 내포하는 사상적 특성에 대해서 지식인들 사이에 매우 격렬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몇 가지 중요한 쟁점들을 소개하면서, 그의 이론 및 사상체계에 관한 종합적인 평가와 전망을 부가해보기로 한다.
우선 민족학자로서의 레비 스트로스를 불신하려는 태도가 있다. 비평가들은 그가 매우 적은 현지조사의 경험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에 적합하도록 자료들을 선택했기 때문에, 만약 다른 자료를 사용한다면 그의 주제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자료수집의 선택성을 지적한다. 그의 구조주의 방법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방법이 쉽게 적용될 만한 지리적. 문화적 영약(예컨대 고대의 토테미즘과 신화적 환상의 영역)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용이한 영역이란 바로 구성적 짜임새는 대단한 반면에 내용은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로 특징지을 수 있다. 공시태가 가장 잘 파악되기 쉽도록 되어 있는 체계 안에서는 통시태는 대체로 교란된 상태로 나타날 뿐이다. 바로 이와 같은 구조와 내용의 뚜렷한 대비로 인하여 구조주의가 쉽사리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레비 스트로스가 모든 사회적 활동들을 인간정신의 기계적 요소로 환원시키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그들은 레비 스트로스가 인간을 응결. 압축시켜서 생활과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며, 자신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대신에 레비 스트로스의 인간은 하나의 형식적 체계의 창조물로서, 그의 생활은 일정한 구조들에 지배받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앙리 르페브르와 같은 비평가는 구조주의가 내포하는 역사적 발전에 대한 무관심은 기존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반혁명적 방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라고 비난한다. 물론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와 정치 체제 간의 어떤 연결도 상정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현재로서는 구조주의의 방법론에 보다 철저한 관심과 검토를 가해야 하며, 구조주의 철학에 너무 성급히 초점을 맞추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레비 스트로스도 그의 구조주의가 초월적 주제가 없는 칸트주의에 가깝다는주장에 대해서 일종의 긍정을 시사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그의 구조주의가 지닌 철학적 의미가 변증법적 철학의 변형으로 해석되든 모든 구조를 자연적이라고 간주하는 의미에서 유물론적 철학으로 해석되든, 구조주의는 아직까지 여러 가지 철학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레비 스트로스 자신도 철학체계를 수립하려고 계획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의 작업의 어떤 면이 내포하는 철학적 암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의 작업이 의도하지 않았던 근거에서 그를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과학적 검증에 관한 그의 가정들이 적절한 것인지를 의문시해도 좋다. 물론 그는 때때로 그의 입증의 범위를 벗어나는 과도한 자유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며, 또 표현의 정확성을 수사에 희생시키며, 그와 같은 과시가 끝났을 때의 그의 웅장한 이론적 구성물에 남는 의미가 항상 명확한 것도 아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제한된 질문영역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에는 두 개의 야심이 함축되어 있다. 인간과학과, 인간의 행위는 정신과정의 구속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조주의는 자연과학자가 수학적 논리로써 자연현상을 이해하듯이 구조적 논리로써 문화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사실 수학적 연구와 구조적 연구는 둘 다 기호논리라는 점에서 구조적 논리를 일종의 수학적 논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 논리에 사용되는 상징들은 감정적으로는 중립적인 반면에 구조적 연구에 사용되는 상징들은 사회적 가치에 의해 침투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레비 스트로스의 측정이 그가 제시하려는 것보다는 훨씬 덜 정확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컨대 레비 스트로스가 그의 이론적 출발점을 야콥슨식의 언어이론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에, 그는 야생의 사고의 전체구조가 양분적이고 대립적인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양분적. 대립적으로 작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또한 다른 방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무의식의 구조적 측면을 통해서 인간정신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그의 접근방식은 언어학의 방법을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가 채택하고 있는 언어학적 모델은 오늘날 대부분 낡고 부적합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비록 우리들이 레비 스트로스가 제시하는 구조들이 무의식적인 정신과 정의 표현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이 구조를 하나의 특정한 문화집단이나 특정한 개인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성에 공통되는 하나의 속성으로서 간주하는 데 오직 부분적으로만 동의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인간이 레비 스트로스의 입장처럼 행위에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정신 대신에 구조라고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고 한다면, 구조주의는 모든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위협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언어학과 구조주의적 연구들이 아마도 현대의 가장 완전하고도 엄격한 무신론을 설립할지도 모른다"라는 장 라크루아의 표현처럼 과학적 구조주의를 극단으로까지 밀고 간다면, 인간사회의 여러 현상의 배후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이 존재할 것인즉, 인간의 자유의지는 부정되고 말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의 적용을 사회인류학의 어떤 부분에만 국한하여 그 범위를 조심스럽게 넓혀오고 있지만, 라캉, 알튀세르, 푸코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구조주의가 발산하는 일반적 분위기는 '인간이 죽어가고 있다'는 묵시적 시사를 던지고 있다.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주체의 철학이 구조주의에 의해 그 주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조주의는 역사란 오직 우리들 자신의 사회의 신화학일 뿐으로,과학적 연구에 부적합한 집단적 환상으로 간주하는 반역사적 성격까지 띤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상적 특성들은 새로운 시대의 사상적 사표가 교체되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면에서 구조주의는 수사적 철학이나 역사가의 시대에 대한 반발이며, 오늘날 인간에 관한 지식은 거대한 과학적 전진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하나의 각성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하나의 도덕적 선택이며, 사회적 완전을 추구하는 하나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일종의 반역사주의자로서 - 비록 그는 자신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를 거부하지만 - 원시사회와 역사적 사회 간의 단절을 거부한다. 오직 역사적 진보라는 채찍에 의해 과열화되고 있는 사회와 정적이고 결정화되었으며 조화스러운 원시적 사회가 존재할 뿐이다.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인간사회의 유토피아란 역사적 온도를 훨씬 낮춘 곳에 존재할 뿐이다. 그는 인간이 진보를 위해 노예화되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인간성이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도로 구현되는 어떤 자유의 시기와 조화의 사회를 상상한다. 바로 이와 같은 유토피아적 관점에서만이 사회인류학은 최고의 정당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회인류학은 인간의 가장 암흑시기에서도 이러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임무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명백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첫댓글 그당시 인류학자 사이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것같네요.. 슬픈열대 한번 빌리러 가겠습니다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