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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과일향♡
사사시대의 특징 /삿 2장 6-23절
한성진목사
요약 = 기 도 론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심이 그 특징이다. 여기 여호와를 앎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인 성령체험을,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어야 보내시는 사사는 성령을, 장로는 주의 종들을, 여호수아의 부재는 예수의 승천과 교회시대를, 부르짖음은 기도를, 소견대로의 신앙은 말씀을 떠난 신앙을, 시대의 흐름 속에 더욱 강퍅해짐은 발전 없는 신자에 대한 경고를, 바알과 아스다롯을 좇음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각각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부르짖음의 부족으로 말미암는 사사의 부재에 있었듯이 우리에게 기도생활의 결여로 성령충만치 못할 때 신앙생활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교훈한다.
강해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사시대의 특징"입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실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사시대가 실패의 역사였는지 원인을 규명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기도의 부족으로 인한 성령충만의 부족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을 이러한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사사시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 세대입니다.
본문 10절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했습니다.
여기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로서 관찰과 사고, 마음 그리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에 대한 체험적인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삿2:22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나안인들을 남겨놓으신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험 자체이면서도, 여호와께 대한 산체험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남겨두신 열국들을 경계하고 쫓아내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신앙을 경주해야 하며 이것은 여호와께서 역사해 주심으로 연결되어지기 때문에 이 명령에만 충실한다면 여호수아의 시대와 같은 계속적인 여호와를 아는 체험이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계속적인 순종이 없었고 따라서 여호와께 대한 체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즉 안일한 생활은 기도의 부재를 낳았고 기도의 부재는 성령의 충만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라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2:10에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러면서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고, 16절에 신령한 자는 주님의 마음까지도 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알지 못한 세대란 영적으로 성령을 알지 못한 세대 성령 체험이 없는 세대를 상징합니다. 성령으로라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고 성령으로라야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있으며 성령으로라야 주님의 좋으심을 알고 성령으로라야 진정한 신앙의 체험이 있게 됩니다. 알아야 할 것은 오직 성령으로라야 중생하게 되며 또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중생한 생명이 성장할 수 없으며 그리고 성령으로라야 능력받아 주의 일을 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무엇입니까? 사11:9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했는데 이 충만할 여호와의 지식이 무엇일까요? 그래서 요일3:27의 기록대로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는 이 완전한 지식이 무엇일까요? 요일 3:27에 그것을 기름부음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기름부음은 곧 성령을 뜻합니다. 이상의 증거를 통해 우리는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고 하신 그 지식이 바로 성령을 암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친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 하면서 신령한 자만이 판단의 능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이 임하실 때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지고 구속의 진리가 믿어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은총이 비로소 적용됩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동시에 강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사사시대란 예수는 믿으나 성령체험이 없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2.사사시대의 특징은 타락의 시대입니다.
11-1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라 했습니다.
사사시대는 발전은 없이 계속적으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순환적인 역사가 그 특징입니다. 이것은 결국 실패의 역사를 뜻합니다. 초기를 제외하고는 가나안인들을 조금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전혀 발전이 없었고 도리어 시대가 계속될수록 더 강퍅해졌습니다(삿2:19). 역사로는 약 400년, 사사는 사무엘을 포함하여 모두 15명이었고, 횟수로는 모두 일곱 번입니다. 그 과정은 다섯가지의 반복입니다. 즉 복주시면 타락하고, 타락하면 징계받고, 징계를 받으면 회개하며 살려달라 부르짖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시고, 그래서 얼마만큼 믿음으로 바로 살다가 평안주시면 다시 타락하고, 이러한 반복적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바로 사사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들이 더욱 강퍅해짐은 신앙의 발전이 없는 신자는 오래될수록 더 강퍅해짐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기성신자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석가들의 견해를 참고해 보면 타락했다해서 완전한 불신자가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상 종교들을 따른 것을 가리킵니다. 이 혼합주의는 하나님을 우상의 차원으로 끌어 내리는 것으로써 큰 죄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는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바알 아스다롯 등의 신들로 모두 간음의 종교들입니다. 이것들의 현재적인 의미는 세상 사랑을 뜻합니다. 그래서 약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사단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바알을 섬긴 것은 바알은 농사의 신으로 그것을 믿으면 부요해진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고, 아스다롯을 섬긴 것은 육정에 끌려 음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사단을 겸하여 섬기는 세속적인 신자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사사시대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할 때를 가리킵니다.
3.사사시대의 특징은 지도자의 부재입니다.
7절에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서 지도자들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안타까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같은 체험적이고 투철한 믿음을 소유한 지도자들이 죽자 백성들은 죄악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경건한 신앙이 계속하여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이 여기 나타납니다. 여호수아와 그 시대의 장로들은 나이 많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후계자 양성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19절에도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살아있을 때도 백성들이 타락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만 그러나 지도자가 있을 때는 구원과 평안과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죽을 때가 문제였습니다. 영적으로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사는 성령을, 장로는 주의 종들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는 죽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암시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마다 사사를 보내시는데 우리가 부르짖을 때마다 오시는 분이 누구이실까요? 바로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신자에게 내주내재하시면서도 또한 부르짖으면 은사로서 강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니까 사사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사사는 언제나 온갖 능력과 신비한 은사로 충만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만 있으면 승리했고, 또 사사만 있으면 언제나 승리했고 평화가 찾아왔고 범죄하지 않았듯이,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언제나 구원과 승리와 평화와 축복과 거룩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의 종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도 결국은 성령의 도구라는 점에서 결국은 모두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사기도 복음적인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복음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구약은 고후3:12-18의 말씀대로 수건으로 덮인 말씀 즉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겉핥기식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의 사사의 부재는 바로 성령충만의 부재인 것입니다.
마지막, 기도생활의 부재가 사사시대의 특징이었습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이라 했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부르짖기만 하면 사사를 세워 도와 주심이 그 특징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어려울 때만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바꾸어 말하면 어려울 때만 부르짖음이 사사시대의 특징입니다. 어려운 때만 기도하고 평안할 때는 안하는 사람은 자기가 지금 사사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어려울 때나 아쉬울 때는 날마다 부르짖었는데 평안하니까 날마다 무사안일주의로 나가고 있다면 바로 내 생애가 사사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시대가 성령이 역사한다는 면에서 곧 사도행전의 연속이어야 하듯, 바른 신앙생활이 없다면 내 생애가 사사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기란 소견대로 하는 우리말로 정말 제 맘대로 하는 엉망진창의 신앙을 계시해 줍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사기 강해를 통해서 이러한 신앙이 바로 잡혀질 줄로 믿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부르짖어야 사사가 온다는 점입니다. 부르짖으면 사사가 오고, 부르짖지 않으면 사사가 오지 않고, 그런데 사사가 없던 때가 더 많았습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의 비극이요 사사기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기도해야 마음 속에 성령충만함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히6:11에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라고 하면서 12절에서 다시 반복하기를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 소망의 풍성함과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는 문구는 서로 동의어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여호와의 약속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약속은 메시야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럼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이 시대의 기다려야 할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행1:4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성령이십니다. 이 성령도 오순절에 이미 교회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히브리서 기자는 역시 성령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여기 히브리서 기자가 동일한 부지런함 즉 한결같은 부지런한 신앙으로 끝까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소망하라던 그 풍성한 기업이란 성령은 성령인데 이것은 각자에게 성령충만함을 적용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정말 풍성한 기업입니다. 그리고 충만한 기업입니다. 풍성, 충만, 넘침, 이런 용어는 대개 성령에 적용되는 용어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시대인 교회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낙심하지 말고 한결같이 게으르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백성들은 어려울 때만 부르짖었으니 이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사사가 끊어지지 않는 온전한 사사시대가 되어야 하는데 부분적인 사사시대가 되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기도가 없으므로 넘어짐과 쓰러짐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 없으면 시험들고 실족합니다. 성령충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주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바울도 엡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과 기도론, 이 주제가 본문의 핵심입니다. 즉 기도없이는 성령충만할 수 없다는 것이며 한결같이 부지런한 기도생활을 깨닫는 것이 본문의 목적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울 때만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사의 존재에 기복이 많았고 그것이 그들의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가 혹시 사사시대의 반복적인 신앙의 특징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보십시다.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을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충만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영의 사사시대의 성도임을 깨달으시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