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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일제 압제에서 벗어났지만 일제하에서 득세한 자들이 권력을 그대로 승계했다.
외세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지배 계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어설픈 반민특위(반민족행위 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의 실패는 수십만의
민초들을 보도연맹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살육한 무단 정치를 불러 온 측면도 있다.
4.19 혁명으로 잠시 돌려놓기는 했으나 더 혹독한 군사반란
정권을 불러 왔다. 대통령직선제를 성취했지만 3당 야합으로 밀어 버렸다. 이렇게 지배 계급은 얼굴만 바꾸면서 문민의 정부까지 계속
이어져 왔는데 3당 야합은 김영삼 정권 집권 내내 대 재앙적 상황에 처했으며 결국 서민들만 쪽박을 차는 결말을 보았다.
밥솥까지 팔아야 했던 IMF를 수습을 하느라 고투한 국민의 정부에서는 그간 지배세력이
공고히 쌓아 놓은 불의한 구조를 타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남북의 항구적 평화 공존에 기틀을 세워 놓았다. 지역주의
타파는 내부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남북의 평화 공존과 통일이 일괄 타결해 줄 수도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배계급의 몰상식과 무원칙의 구조에 메스를 댔다. 해부가 아니라
‘해체’를 시도한 일이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들은 노무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
데드 노무현 시대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자면 ‘분열’이다. 분열의 어원 중에는 한
교회에서 갈라져 나와(분파) 새로 대립적인 교회를 만든 집단을 가리키는데 지금 한국의 상황이 ‘분열’ 그 자체다, 분열의 양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의 집단이 갈라서는 분열과 대치된 집단이 서로 각을 세우는 일이다.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 분열은 그 서막을 올린 일이다. 이후로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이 차례로 분열하고 이제 한나라당이 기로에 서있다.
친이와 친박계는 지지자들의 성향도 전혀 다른, 원래 합쳐 질 수 없는 이질적
집단이다. 그들이 대립의 각을 세운 계기가 노무현이 제시한 국토의 균형발전으로 분출되었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상황이다. 다른
것으로는 설득력도 없을 뿐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일 야당인 민주당은 친노 그룹의 국민참여당이 출범하자 분열의 화신이라고 마타도어를
하고 있다. 유시민이 반 MB 정권 타도로 야당과 진보의 연합을 제시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분열의 극한 시대에는 덕담을
덕담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분열의 회신이자 박스 떼기당 주제에 민초들이 모여 세운 국민참여당을
가설정당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조중동의 폐해가 우리사회에 악질적으로 나타날 일인데 이를 송영길로 보고 있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말아 먹었고 열린우리당을 깼다고 조중동식보다 더한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당만이 아니라, 그렇게 공고했던 삼성내부의 핵심에서 배반자가 나타나서 고발했다.
말로써 안 되니까 책까지 내서 까발리고 있다. 검찰과 삼성을 한 번에 박살내서 10번 죽고도 남을 김용철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그가 아직도 쏟아 내지 않은 비장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의 사면을 무리하게 서두른 이유는 겉으로 들어 난 IOC 위원 자격 회복도
있지만 더 이상의 배신자가 나오지 않기 위한 내부 단속용 위력적 시위도 있다. 3.1 절 특사를 단 한명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대단한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일전에 이건희는 ‘국민이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삼성이 제일이라는 것을
인정함과 너나, 나나 다 같이 도둑질했는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의 솔직함을 요구한 일이다. 인재 제일주의가 진정이라면 자살한
부사장을 먼저 애도 했어야 한다. 죽은 인재는 가치가 없어서 일까? 삼성의 분열은 이미 정상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제 2의 언론 통폐합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나마 심정적으로 유대감을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언론계에 스스로 분열의 불을 집히고 있는 우매한 일이다.
법조계의 검찰과 법원의 대립에 대립을 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보수적 계층인
판사를 정권이 원하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좌파라고 몰아 부치고 있다. 이는 분열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이 제시한 지식기반 사회로 나가기 위한 초석인 국토의 균형발전의
핵심인 세종시 무산을 시도하여 전국을 벌집 건드려 놓기 식이 되었다. 4대강 죽이기 사업은 화석화 되가는 지방과 농촌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충청도 지역당은 전통적으로 집권 여당과 정권에 친밀한 무늬만 야당이었다. 이회창은
박근혜에게 러브 콜을 보냈지만 실패했다. 이게 이회창의 정치 실패다. 충청은 이제 세종시 문제로 살아 있는 권력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한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충청도의 정치인들은 오늘날 만큼 어려운 정치지형은 없었다.
노동운동계의 분열도 예외가 아니다. 양대 노총의 연대 파기와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가 줄을 서고 있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분열된 노동운동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며 앞으로 절대 편
가르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지만 분열로 가는 대세를 혼자 막아낼 일이 아니다.
대학은 교육의 서열화를 완성시키고 자기 이익에 함몰되어 등록금 인상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 현재 20대들은 스펙에 목숨을 걸어서 대학 당국과 투쟁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10대들인 촛불세대들이 입학하는 시점부터는
대학이 지금처럼 독주하지 못할 일이다. 정권에 대항해 본 그들에게 대학 당국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불의한 구조를 온존하게 하려면 치워 버리던가 아니면 완전히 해체해서 재조립해야 한다.
치워 버리는 것은 어느 한 쪽이 죽던 가, 살던 가 양자택일을 하는 것으로 피를 보는 전쟁을 의미한다.
노무현이 전쟁을 벌이기를 원했던 그룹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완전히 해체를 한 후에 온전히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온존한 조립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역사에 맡긴 일이다.
분열의 산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은 현재 대단히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더 나은 세상을
낳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분열로 가지 않는 집단을 주목해야 한다. 정동영의 복당 반대가 당론처럼 되었다가 복당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민주당 말이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창당은 대치로 인해 민주당이 자체 결집을 보인 일이지만 이도 분열의 한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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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명쾌한 분석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