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체험활동: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영화토론
*영화는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는 매체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영화는 문학(시나리오)을 중심으로 연극, 미술, 음악 등의 요소가 모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각각 또는 함께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비유와 상징, 시간 순서의 뒤바꿈, 생략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표현한다. 영화는 책과 달리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큰 영향을 받는 매체다.
영화를 통한 공부는 아이들의 흥미를 잃지않게 하면서 연결, 통합, 추상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다. 그대신 어려운 점도 많다. 영화를 감상한 후 토론을 해야 하는데 토론은 건방진 아이의 서열파괴 문화라고 봐서인지 시간 잡아먹는 비효율이라고 봐서인지 토론장은 곧잘 침묵의 공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으면 당초의 취지는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화감상 후 토론에 디베이트 요소를 넣어봤다.
*영화에 나오는 비유와 상징 이해하기
아이들에게 영화는 흥미있는 매체이긴 하지만 소화하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만큼만 보기 때문이다. 영화는 너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주인공빙의 관점에서 영화를 따라가서 스토리에 빠지기 쉽다.
왜 영화는 어려운가? 사람은 낯선 것에 대해 생각해서 얻은 결과에 감동할 뿐,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욕망이든, 낯선 방법으로 제시하여 호기심과 궁금증이 커지게 하고, 결국 자발적으로 생각하여 감동이라는 정서적 각성을 촉발하는 것이다. 짧은 시에서 큰 감동을 받는 이유가 어려운 비유와 상징을 뚫고 들어가 스스로 뜻을 깨닫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은 안타깝게도,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더라
아이들에게 비유와 상징의 이해를 통한 사고력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하는 갈대' 즉 인간이 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안타깝게도, (항상 또는 자주, 심지어 이따금)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할 수 있다. 주체적인 사람만이 생각하고 질문을 한다. 아! 아이들에게 생각을 쥐어짤 게 아니라 질문을 습관화시키면 되겠군! 주체적인 사람만이 자기주도적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주체적인 아이만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
* 영화감상에 디베이트 요소를 넣은 이유
영화감상 토론은 늘 어색한 침묵의 장이 되곤 한다. EBS 다큐프라임 <왜 대학에 가는가>에서는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망신이라거나 질문은 튀는 짓이란 통념이 아이들의 입을 닫게 했다고 하는데 그 침묵의 결과는 무섭다. 말로 할 수 있어야 아는 것이고 생각해야 질문할 수 있는 법이다. 배우는 아이들에게 침묵은 모르는 것도 아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며, 어떤 경우에도 생각할 필요가 없이 단지 반응하도록 만든다.
반면에 디베이트는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편이다. 사전 준비가 소홀하거나 논리적 토론 경험이 없을 때는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 동문서답으로 흐르기 일쑤이고, (지적 허영심이 큰 아이가) 어려운 용어 한 두개 섞어 자신있게 주장하면 상대방은 기꺼이(?) 침묵으로 패배감을 곱씹는다. 사실은 다 모르는 용어인데(!) 용어를 자기만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만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한다. 이 대목에서 어떤 신이 '나는 유일신이다' 했더니 나머지 여러 신들이 이 말을 듣고 웃다가 모두 죽었다는 니체의 표현이 생각나 나도 웃다가 죽을 뻔 한 적도 있다.
영화감상후 침묵을 디베이트의 (승부가 있되 경쟁은 아닌) 놀이적 요소로 깨는 방법이다. 토론 주관자의 사전 준비 및 진행 방법에 따라 흥행(토론 성과)이 크게 갈릴 수는 있겠다.
* 영화감상토론 프로그램 진행 순서
예비1단계 : 함께 영화를 감상한다.
예비2단계 : 각자 부분 다시보기, 인터넷 검색, 의견/인상 메모 및 질문지 작성 시간을 준다 (2회 한시간 반씩, 총3시간)
:삼일 정도 소요된다.
메인1단계 : (30분) 질문, 대답, 의견/느낌/인상을 말하기 단계
(적극 참여 유도, 상대방의 발표를 방해만 안하면 됨, 발표할 때마다 가산점, 내용 좋으면 추가점)
메인2단계 : (30분) 주관자가 질문(사전 준비)하기
(대답할 때마다 가산점, 내용 좋으면 추가점)
메인3단계 : (30분) 주관자 총평, 영화 해설, 아이들 각자 발표
* '센과 치히로의 모험'으로 첫 번째 영화감상 문답토론 진행
아이들에게 먼저 프로그램 진행 순서를 주지시킨 후 함께 영화 <센과 치히로의 모험>을 봤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해준 시간(아이들은 장고하면 악수둔다.) 안에서 문답토론 준비를 하게 한다. 각자 자기 노트북으로 부분 다시보기를 통해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확인 또는 메모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리뷰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렇게 조사하면서 인상/느낌을 메모하고 질문을 만든다. 영화보기, 문답토론 준비, 문답토론 과정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눠서 해야지 계속 이어서 하면 아이들 머리가 터지거나 엉킬 것이다.
문답토론을 시작했다. '성장 이야기다', '마법은 과정없는 결과 즉 판타지다', '숯검댕들 파업의 의미는?', '호의가 동정이 됐다. 나쁘다! 니체는 동정을 끔찍하게 말했다', '센이 차 안에서 꽃을 꽉 잡고 있어 빨리 시들었다는 장면의 뜻은?', '과거에 붙잡혀 있지말고 현실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부모가 주인없는 가게에서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하게 한 의도는?', '유혹, 욕망에 쉽게 붙잡히는 인간을 뜻한다', '일에 대한 얘기가 많다', '일은 그 사람의 정체성 확인이다', '거대아기가 여행 중에 성장한다', '외로움에 빠진 가오나시는 사금으로 친구를 사려고 한다' ....
겨우 셋이서 하는 문답토론인데 쉴 새가 없다. 곁에서 말만 하면 1점, 의미가 있으면 +1점, 인상적인 의미가 있으면 +1점 하는 식으로 크로키하는 능숙한 화가처럼 체크하면 된다. 시간을 정해놓고 진행한다.
다음은 주관자가 질문하고 아이들이 답을 찾는 단계. '유바바의 거대 아이가 상징하는 바는?', '가오나시의 캐릭터는?', '마법의 의미는?', '이름을 잃어버린 안된다는 의미는?', '일의 의미는?','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 이렇게 질문하고, 아이들이 대답하고, 마지막에 전체적으로 영화 이해를 위해 정리해준다.
* 영화토론 진행후 느낀 점
아이들이 사전에 준비를 해서인지 말문떼기를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에 디베이트 형식의 놀이적 요소를 더하니 아이들의 토론 활성화에 안성마춤이다. 아이들의 영화감상후 문답토론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아이들은 비유와 상징에서 의미찾기 놀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표현한다.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먹는 방식이다. 놀이에 참여해야 하니 얼마간의 준비 부담이 없을까마는 스스로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인터넷 서핑시 정보의 가치를 구분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겠다. 문답토론에서 아이들의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랬다. 유바바의 목욕탕이 에도(?) 시대에 매춘 장소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성매매 영화라고 하니 말이다. 어떤 정보에 의해 이 영화는 미성년 성착취 영화가 되어버렸다. 아마 영화의 맥락과 상관없다면 옛날에 목욕탕 용도가 그랬다는 정보로서의 가치는 있겠다. 지엽적인 것에 붙들리다니!
하지만 어차피 웹 세상은 좋은 정보 두셋에 걸러낼 정보 칠팔 비율로 있다.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검색자 본인에게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지못할 이유는 없다. 아이들이 토론 준비를 위한 정보검색을 통해 좋은 정보를 가려낼 줄 아는 힘을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검색은 해야 산다.
셋째, 각 단계마다 시간을 적절하게 배정해야 할 듯 싶다. 시간이 짧으면 부실해지고 길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에서는 시간이 넉넉해도 상관없지만 비몰입 상태에서는 노이지가 심해진다. 참여자들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좋다.
*말문을 터라, 질문을 하라. 질문이 없으면 생각은 없다
얼마 전 EBS 다큐를 통해 '하브루타' 교육법을 처음 알았다. 유태인 교육법으로 유명한 말인데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알고보니 하브루타는 일대일 대화를 통한 공부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은 유태인 학교 도서관일 듯 싶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말문을 터라, 말문이 닫히면 생각이 사라진다. 질문을 하라, 질문이 없으면 생각은 없다"
첫댓글 이번달에 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말문을 터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그냥 틀리더라도 말을 해야겠어요...
영화토론 때와 오늘 니체강의를 할 때 저를 좌우한 것이 무엇보다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요. 얼만큼 내가 준비한 것에 대하여 자신있어하는지에 달려있는데... 두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열정의 정도에서도 또한 차이가 느껴졌어요. 문제를 알았으니, 다음번에는 꼭 해결한 모습으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