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윌8일이 내가 맞는 81번째의 생일이다.
작년 팔순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인생의 내리막길은 유난히 속도가 빠른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45 년생 해방둥이다.
만 5세때 6.25 전쟁이 발발하여 피난하면서 처참한 광경들을 많이 보았다.
6.25 전쟁 발발 당시는 피난을 못한 가족들이 많았다.정부의 안일한 방송과 대처를 국민들이 믿었고 한강 인도교가 일찍 끈어져
민간인뿐만 아니라 후퇴하는 군인들도 도강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우리도 당시 용산구 신계동
(현 용산 전자상가 근방 효창공원쪽)
남정국민학교 정문 근방인 집으로 돌아왔다.
몇주후 점심 식사중 요란한 비행기 소리와 함께 용산 철도 공작창 B29의 항공 폭격이 시작되었다.
대한 청년단 간부인 아버지는 공산당을 피해 시골로 대피 하셨고 옆집에서 무서움에 떠는 어머니와 우리 아기 형제들을 불러 그가족들과 같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대피 했었던 기억이난다.
꿈같은 기억속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고 몸위에서 흙을 파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은 느낌.
멍텅구리 폭탄이 바람에 밀려 철도 공작창이 아닌 우리동네에 일부가 떨어졌단다.
우리집 자리는 깊은 웅덩이가 파이고 나는 폭풍에 날려 흙속에 얕게 파묻혀 왼발이 밖으로 나와있어 구조되었으나 몸에 상처하나 없었다. 그러나 어린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계시던 어머니는 대들보에 맞아 허리를 다치시고 젖을 먹던 동생은 왼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런 고생속에서 휴전 무렵 아버님이 당시 37세로 돌아가셨다.
32세인 어머니와 초등학교 3형제(4학년.1학년. 4세)
개성분이셨던 어머님 참고생 많이 하셨다. 생활력도 강하시고. 예전에는 월사금을 학교에 내야하고 납기가 지나면 선생님들의 독촉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열이 강하신 어머니 때문에
우리는 납기를 지나 월사금을 내본적이 없다.
우리 삼형제는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대학을 졸업했고 나는 공군 장교로
임관 대위 예편후 당시 대기업이던 GM Korea에 입사하여 대우그룹에 일원이 되었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건설 에서 30여년 근무
임원으로 퇴직 하고 중소 건설회사 CEO로 근무 70세에 은퇴하여 6년전 미국으로 이주. 현재는 부부가 LA에서 외손주들과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돌이켜보면 국내와 해외 현장에서 10여년을 포함 40여년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
롱비치항에 정박중인 Queen Mary호는 스코트랜드에서 건조하여
1936년에 진수. 31년간 매주 5일에 걸쳐 영국 사우스햄프턴에서 뉴욕까지
대서양을 횡단하던 초 호화여객선으로 한번에 3,000명의 승객과 81,237톤의 화물을 싣고 항해속력
28.5Kn 운항하였다.
당시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함선. 상류사회의 최고위층들은 퀸메리호로 북대서양을 횡단하는것이
가장 문명화된 방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 발발로
1940년3월 병력 수송선으로 징집당한다.
이함선은 독일 U-Boat와 수상함들의 공격을 피하기위해 위장및 방어 메커니즘으로 회색을 칠해
"회색유령" 이라는 별명도 었얻다. 퀸메리호는 역사상 810,730명의 군인들을 수천마일에 달하는 바다를 가로질러 수송했다. 이배는 종전후인 1946년까지
병력 수송과 신부 아기들 수송선으로 계속 사용했다.
전쟁 수행중에도 윈스턴처칠은 이함선에 자주 탑승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등 중요 전쟁계획이
이함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부터 제트항공 여행이 대서양 횡단 여행의
중요 수단이 되면서 채산성
악화로 퀸메리호는 매물로 나왔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시가 345만달러에 매입을 결정. 39일간의 마지막 항해 끝에(배가 커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못하고 브라질 남단 케이프혼으로 돌아왔다) 12월9일 롱비치항에 도착 몇년동안
호텔,컨벤션 센타등으로 개조, 관광명소로 탈바꿈하여 1971년 부터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993년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 미국 국립 사적지로 등재되었다.
퀸메리호는 개방이후 5천만명 정도가 방문한 LA의
Long Bech항의 명소다.
이제 팔십이 넘어가니 아무 회환이 없다.
욕심도 없고 크게 바라는 것도 없다. 가끔 한쪽 무릎이 시끈거리고 굽혀서 뭘좀하면 허리에 통증이 오나 일생생활에 큰지장은 없다.
남은생 건강 조심하며 85세 고지를 향해 나가 본다.
첫댓글 이영효장군,
호화로운 생신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