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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Ⅱ (삼상 17:12-40)
영적적용 : 쓴뿌리론-2
요약
본문에 쓴뿌리 제거의 기본적인 원리가 나타난다. 다윗의 족보 열거는 하나님
자녀라는 자부심과 그 생명에서 자라갈 때 이길 수 있음을, 또 가지고 간 볶은
곡식은 성령의 은혜를, 떡 열 덩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치스 열 덩이
는 아버지의 사랑을, 사울의 포상 약속은 쓴뿌리 제거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과 상급을, 물맷돌로 골리앗의 이마를 깨뜨림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
잘못된 의식을 깨뜨리는 일이 필요하다.
설명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과정을 통하여 쓴뿌리 인격을 치유하는 방법
을 발견하게 된다.
1.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경험하라.
12-14절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 다윗은 말째라 장성한 삼인
은 사울을 좇았고"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17-18절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1) 볶은 곡식 - 성령의 은혜
2) 떡 열 덩이 - 그리스도의 공로
3) 치스 열 덩이 - 아버지의 사랑
3. 쓴뿌리를 처리하면 많은 포상이 따른다.
25절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
고 그 아비의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1) 재물 - 영적인 부요
2) 딸 - 거룩한 영성
3) 자유 - 약속을 누림
4. 성령과 말씀으로 잘못된 관점을 깨뜨리라.
39-40절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 벗고 손에 막대
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
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강해
지난 시간에는 골리앗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골리앗은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형적인 인격 혹은 극대화된 육적인 사람인 쓴뿌리라고 했습니다. 이 골리
앗이 40일 동안이나 싸움을 걸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대항할 사람이 없었습
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이 그 골리앗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골리앗 둘째 시간으로 쓴뿌리를 이기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죄악의 쓴뿌리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입니다.
12-14절에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그 장
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
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제 삼은 삼마며 다윗은 말째라 장성한 삼
인은 사울을 좇았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이 대목에서 이새의 가문과 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토록 강하게
강조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새가
아닙니다. 이새는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내용으로 수식된 이새입니다. 즉 유다 베
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입니다. 유다지파는 영적 선두지파가 아닙니까? 유다지
파의 업적이란 이스라엘 역를 아름답게 수놓을 만큼 찬란합니다. 그리고 더 큰 것
은 이 지파에서 인류의 구원자가 날 것이라는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베들레헴 역시 메시야
가 탄생할 예정된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에랏은 에브라다로도 불었는데 베들레헴
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곳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묘실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특별한 지파 특별한 곳 특별한 약속 특별한 사랑을 가진 곳의 사
람이었습니다.
거기다 이새는 사울 당시 나이 많아 늙은 자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다 늙어
버린 연장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원래 성경에서 장로란 연장자를 뜻했는데 그 중
에서도 가장 늙었다란 장로 중에서도 가장 존경스러운 원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흰머리 앞에서는 존경의 표시로 일어났습니다. 그가 다윗을 전쟁터
로 보내어 마음대로 전쟁 상황을 알아 올만큼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기랴성 같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이 기름 부을려고 할
때 보여준 대로 외모에 있어서도 사울 못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런 아들들이 전
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니 원수와 말할 때 결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시127:3-5). 거기다 전쟁터에 세 사람이나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으
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거기다 이새의 장자가 '하나님은 아버지시다'는 뜻의 엘리압이라는 이름입니다.
또 둘째 아비나답인데 '아버지는 고상하시다' 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흐름이 아버지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버지를
자랑하며 자부심에 가득차 있는 이름들입니까?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메
아리치는 집안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이새의 가문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
님의 자녀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장성한 것
처럼 하나님 자녀로서의 자부심에서 장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로
발생한 비정상적인 인격의 쓴뿌리가 아무리 클지라도 이 복스럽고 자랑스러운 하
나님 자녀라는 확신 앞에 다 치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제
2탄 3탄이 나오지 정말 그 복됨을 깨닫는다면 이 자부심이 그 어떤 열등감도 수
치심도 원한도 우울증도 소외감도 이기심도 그 무엇도 다 치유되고 맙니다.
예를 들자면 가난한 시대에 우리에게 장애가 되던 것들이 부요한 이 시대에는
그것이 오락과 놀이와 스포츠와 취미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갖는 성도에게 오는 외부적인 상처들은 도리어 하나님 자녀로서의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촉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박해와 멸시와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충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들은 자
기를 파수하는 일에 급급하지 않고 남에게 아량을 베플고 화평하는 일에 힘씁니
다. 그래서 마5: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
컬을 것이요"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그 본질상 아버지의 속성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원초부터 죄악과 관계가 없는 생명의 속성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일5:4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
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고 요일5:18에서는 "하
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골리앗이 날 때부터 장수였던 것처럼 날 때부터 이미
이긴 자요 골리앗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새의
세 아들처럼 장상하고 장성하여 이 귀한 하나님 자녀의 본질의 생명에서 자라가
고 자라갈 때 쓴뿌리의 속성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오히려 원수까지도 사랑
하는 사랑의 천사가 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질적으로 이런 기형적인 쓴뿌리 인격의 마음의 병
이 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출15:25-26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
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
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낙심이나 증오나 미움이나 탐욕이나 부정의식 우울 자폐 등은 세상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이지 성령의 천국 안에 사는 성도는 걸릴 수 없는 병이란
점입니다. 여기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이란 한 마디로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
수 잘 믿으면 혹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질병을 육신의
병으로만 생각할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상에 존재한 성도가
육신의 질고가 존재하지 않을 만큼 성화된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질고
속에서 고통 당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신유가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육신도 돌보
심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좀 더 완벽한 적용은 신령한 차원입니다. 이 완벽이란
지상 성도의 신앙 안에서 마음의 질고란 없다는 뜻이라기 보다 주님을 의지한 만
큼 정비례로 마음의 질병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애굽 즉 세상사
람들이나 걸리는 병에 걸려 비틀거린다면 부끄러워 해야 하겠습니다.
2. 쓴뿌리를 치료하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해야 합니다.
17-18절에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
오라" 했습니다.
여기 이새가 전쟁터에 보낸 음식물은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와 치스
열 덩이였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먼저 볶은 곡식은 성령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볶은 곡식은 불에 볶은 것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이것을 먹고 가나
안을 정복했던 음식입니다. 상한 심령들이 성령의 기름을 받을 때 그 심령이 치유
가 됩니다.
그래서 엡3:16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
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했고, 사61:1-3에는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
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
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
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
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
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
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
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또 겔36:26-27에서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셨습
니다.
그리고 롬5:3-5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
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했습니다. 즉 마음의 상처로 남을 여러 가지의 환난이 도리어 소망으로
충만하게 하는 그 원인은 곧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에 부어
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볶은 곡식의 의미입니다.
또 떡덩이 열 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시107:17-20에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
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
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
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했습니다.
여기 떡은 말씀이요, 열 개는 전체 모두 충분함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을 모두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치유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치유신학에서 기
억치료라고 하는데 과거에 경험했던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떠올라서 삶에 많은 부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치료하는 영역입니다. 이 기억치유는 먼저는 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욥11:16). 어느 분이 타인에게 들은 악담이 밤이고
낮이고 떠올라서 심히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해
주었더니 그 현상이 사라져서 편히 잠잘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수납되기 쉬
운 영적치유라는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알고 보면 악령의 역사가 아니겠습
니까?
다음은 말씀을 통한 과거사의 재조명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재조명하므로 당시에는 고통이었지만 깨닫고 보니 도리어
기쁨과 감사의 조건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벧전1:6). 그래서 치유에서 말씀
을 통하여 많이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경우 요셉의 청년기는 고난의 상처투성이였
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마음의 상처는 이
미 치유되었다고 보고 다만 기억의 상처로만 취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형들이 부
친이 죽은 직후 자기를 두려워하여 빌때(창50:15-17)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
셉은 이것을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발견했습
니다. 그래서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
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
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복음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온
전한 생명의 떡 자체이십니다. 떡은 먼저 곡식이 가루되어 다시 뭉쳐지고 화덕에
구워지듯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
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는 우리의 상처를 다 싸매어 줍니다.
그래서 사53:3-5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
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
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책감 슬픔 고통 질병 절망 두려움 소외
등 모든 것을 처리하셨습니다. 상처를 받는다면 주님처럼 상처를 많이 받으신 분
이 어디 있겠습니까? 태어나시면서부터 거절과 미움과 가난과 아버지를 일찍 여
의고 광야 40일의 금식의 시험과 사역 기간 중 많은 집중적인 공격과 제자들의
배신 그리고 십자가에서 온갖 수치와 모진 고난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능히 다 도우실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을 생각하면 어떤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공로로 쓴뿌리가 치유되는 역사가 있기
를 원합니다.
그리고 치스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원문에 치스는 건조시킨 우유 덩어리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유는 어미 소가 온갖
애정 속에 분출시키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온갖 상처는 눈 녹듯이 다 치유됩니다. 도리어 핍박을 받음에 합당한 자로 자처하
면서 기뻐합니다. 그래서 고후13:13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축복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롬5:5의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의 구절도 여기에 적용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받으면 그 어
떤 응어리도 눈 녹듯이 녹아버립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숨기지 말고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슬픔에 겨워서 운다고
책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만은 보지 않습니다. 고통의 상
처를 가진 자녀가 아버지 앞에서 애통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 합니까? 애통할 때
아버지께서 사랑의 손길로 그 마음을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그 후에는 슬픔의 눈
물은 다시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그 러니까 쓴뿌리는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의 결핍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삼위일체의 은혜를 멀리하
지 마시고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치료 역시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는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마8:16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했습니다. 다음은 안수하여 고쳐 주셨습니다. 막
6:5에 "병인에게 안수하여고치시더라" 했습니다. 안수의 가장 큰 핵심은 동일시
즉 사랑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막3:5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즉 병만이 아니라 약한
것까지 고치신 것입니다. 이 한 편 손마른 사람은 교훈적으로는 인색의 병을 가리
키지만 신령한 면으로는 능력의 팔이 없음을 뜻합니다. 왜 동일한 능력을 받았는
데 권능이 없습니까? 타인을 위해 늘 섬겨 보십시오. 그러면 수십 수백 배의 능
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쓴뿌리를 처리하면 많은 포상이 따릅니다.
25절에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
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여기 골리앗을 죽인 자에게 주어질 사울왕의 포상이 나타납니다. 골리앗을 죽인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공주와 온갖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포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순간에 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 영광스
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왕족이 되는 축복입니다. 이처럼 쓴뿌리를 제거하면 영권
과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부요와 치유가 있습니다.
마치 갈렙이 기럇세벨을 취하는 자에게 딸을 주리라 약속한 것과 같습니다. 그랬
더니 갈렙의 아우 옷니엘이 목숨을 걸고 기럇세벨을 취하여 그 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만 생겼습니까? 아내와 함께 밭도 윗샘도 아랫샘도 얻었습니다. 이것
은 신령한 의미에서 거룩한 영성과 하나님의 나라와 두 종류의 성령충만을 뜻합
니다. 이처럼 포상이란 목숨을 걸고 담대히 적극성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교훈입니
다. 신령한 복으로 가득하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 속의 골리앗
을 처리한다는 부푼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쓴뿌리를 제거할 때 오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알 때 쓴뿌리를 제거하
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회개하면 천국이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
까? 또 행2:38에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회개하면 하늘이 열
리고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듯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또 회개하면 탕자에게 아버지께서 좋은 옷
에 좋은 신과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짐승을 잡아 잔치를 배설함과 같이 천국의
온갖 기업과 상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왕족의 즐거움을 누리는 축복
입니다. 그동안 이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면 우리 안의 쓴뿌리 때문입니다. 그러므
로 은혜생활하려면 미 쓴뿌리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이 엄청난 포상을 잊지 마시
기 바랍니다.
4. 쓴뿌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39-40절에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
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
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했습니다.
다윗에게 무거운 갑옷과 창칼은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의
싸움은 인간의 의나 율법이나 종교적인 의식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대신 시냇가에 흐르는 물 속의 돌맹이 다섯으로 해야 합니다. 흐르는 물은 행동하
는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다섯은 하나님의 손길을, 매끄러운 돌맹이는 깊
이 깊이 깨달아진 진리의 말씀입니다. 즉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성령을 통
해 깨달을 때 쓴 뿌리는 해결됩니다.
49절에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
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했습니다. 이 머리를 깨뜨림은 객
관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의 머리를 깨시는 십자가 승리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사고와 의식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 내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를 깨닫고 이것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고 사고를 바꾸면 세상에 쓴뿌리가 될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감사할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미 다 이긴 자이므로 생각만 바꾸십시다. 그러면 모든 쓴뿌리는 찬양의 제목으로
바뀌고 말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속에 골리앗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영광스
러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자녀로 자라가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리고 하나
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 우리의 지난 날은 감사와
찬송으로 바뀌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삼위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 약속
되어져 있습니다. 쓴뿌리를 회개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무궁한 축복을 주십
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속의 골리앗은 예수의 이름으로 꺼꾸러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