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 13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하) - 요 11: 14 밝히 이르시되
⑥ 둘째 사망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이 이 심판을 면하게 되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전부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 이것은 둘째 사망이다.
계 2: 10에 서머나 교회에 말씀을 주시기를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견디며 죽도록 충성한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신다고 했으니, 이 시대에 우리는 정말로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다.
지금까지 늙어 죽었거나 병들어 죽었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지라도 이때에는 전체가 부활하게 된다. 모든 무덤이 열리고 바다가 죽은 자를 내어준다.
* 사 26: 19 하반절 -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육체로 부활하며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심판을 받게 된다.
* 요 5: 28-29 –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생명의 부활로 나온 자는 천년왕국을 거친 후 영원 세계에 들어가게 되며 심판의 부활로 나온 자는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 이 심판을 함께 받을 자들 (계 21: 8).
두려워하는 자들(두려워서 말씀대로 못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들(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
흉악한 자들(포악하고 악독한 자 변화되지 못한 자)
살인자들(남을 미워하는 자)
행음자들(비진리와 타협한 자)
술객들(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고 요행이나 예언만 믿고 따르는 자)
우상 숭배자들(마음속에 다른 주를 버리지 못한 자)
거짓말하는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간다.(말씀대로 살기로 "아멘"하고 따르지 않는 자).
* 고전 15: 26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사 25: 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본 절의 '사망과 음부'는 의인화된 표현이다.
* 계 6: 8 -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이 '사망과 음부'는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유황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같이 동일하게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신 후에는 더 이상 사망이 필요 없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Johnson).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즉 이것은 사망이나 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암시한다.
* 고전 15: 16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백성이나 불신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첫째 사망과는 달리 오직 불신자들만이 겪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둘째 사망이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6절).
'불못'은 일반적으로 지옥을 의미하는 '게헨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 힌놈'은 예루살렘 성 밖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 성의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늘 불이 붙고 있었다.
또한 몰렉 우상을 숭배하면서 인간을 희생 재물로 드릴 때 불로 태운 곳이기도 하다.
* 왕하 16: 3 -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왕하 21: 6 -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골짜기를 살육의 골짜기로 부르고 있다.
* 렘 7: 31-32 –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Beasley-Murray).
이러한 불과 하나님의 심판이 연결되어서 '게 힌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으로 인식되었다.
* 사 66: 24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게 힌놈'과 같은 의미를 지닌 불못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그들의 최후의 패배를 시사한다(Mounce).
2]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
역사상,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죄를 물질적 몸의 특질, 진화되지 못한 동물성, 존재의 부정 혹은 제한, 단순한 결핍, 실재(實在)하지 않는 착각, 정신의 불건전한, 병적 상태, 선에 대한 필요한 대립 원리, 사람의 이기심, 하나님 의식에 대한 인간 자아의식의 투쟁,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등으로 보는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죄에 대한 바른 개념은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이었다.
* 요일 3: 4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라는 히브리어(핫타트 תא)는 ‘표적을 맞히지 못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4 문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commission)이나 그 법을 지키지 못한 것(omission)이나 둘 다 실상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이므로,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특히,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과 권위을 반영하므로, 죄는 그 성격상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을 모독하는 것이요 그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죄의 사악성과 심각성이 있다.
* 창 39: 9 -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 시 51: 4 -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또한 죄는 항상 적극적 성격을 가진다. 소극적 죄, 불이행과 태만(ommission)의 죄도 결국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가 된다. 또한, 죄와 죄 아닌 것 간의 선이 분명하다. 그 둘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다.
둘째로, 죄는 죄책(罪責)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죄책이란,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법적 책임을 가리키는데, 좀 더 분석하면, 그것은 첫째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과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죄책이다.
부패성이란, 죄인이 가지고 있는 죄악된 성질(죄성, 罪性), 죄를 향한 경향성 혹은 연약성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나는 죄인이다’고 느끼는 것은 이 부패성 때문이다.
* 렘 17: 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셋째로,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죄악 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도 죄로 간주된다. 특히 이 점에서 잘못된 견해들이 있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는, 죄가 항상 인간 의지의 의식적 행동이어야 하며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죄악 된 성질과 습관은 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의 죄악 된 욕구(concupiscence)는 죄의 기회일 뿐이며 그 자체가 형벌 받을 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알미니우스주의도, 죄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인간의 자발적 행위라고 보며, 비(非)자발적 범죄는 인성의 자연적 결과로서 죄책을 돌릴 수 없으며 엄밀히 말해 죄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 견해들은 공통적으로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을 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도 죄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 출 20: 17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 잠 21: 4 -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은] ... 다 죄니라.
* 렘 17: 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마 5: 22, 28 -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마 15: 19-20 -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 롬 7: 17 - 내 속에 거하는 죄.
* 요일 3: 15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사람은 이 죄에서, 즉 죄책과 부패성, 그리고 죄악 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요 11: 14 밝히 이르시되 -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
예수는 비로써 나사로가 죽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다.
1]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의 죽은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은 잠들었다는 말로 비유하셨다(11절).
그러나 이제는, 그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고로 밝히 해석하여 주신다.
처음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신령한 지혜를 사용하여 보도록 하셔서 그들을 연단시키시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그들에게 명확히 그 말씀의 뜻을 알려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 방법이다.
2]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륜은 아무런 노력 없이 수확이 있도록 하시지 않는다.
마침내 주시기는 하되, 인간으로 하여금 먼저 노력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