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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코스 : 도심2리공원~새터농원~거포사과마을~서동리 동·서 삼층석탑~만산고택~춘양면사무소
도심 2리 공원에서 점심과 휴식으로 30여 분을 머물다 다음 진행방향으로 이동한다
아직 목적지까지는 12.5km가 남았으니 절반도 오지 못했다.ㅠㅠ
도심 2리 공원에서 나와 운곡천을 가로지르는 애당교를 건너 우측 제방을 따라 이동한다
과거 선답자들의 이동 경로를 보면 공원에서 애당교를 건너지 않고 바로 우측 제방을 따라 새터농원까지 이동하였었는데
그새 코스가 변경되었다
외씨버선길은 불변의 고정된 길이 아니라 그때그때 현지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운곡천은 현재 작년 여름(7월) 봉화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흘러내린 토사석을 걷어내는 대규모 하천 정비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의 규모를 보니 그때의 폭우 상황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요즘 방송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는 해병부대 채상병의 사망사고도 그때 당시 충북과 경북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인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다리를 건너면 제방 옆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 작약꽃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후 '수진교'까지 벚나무 가로수가 조성된 운곡천변 제방길을 따라 약 5백여 미터를 이동한다
개복숭아
제방이 유실된 지역에서는 잠시 우회하고...
애당교
다리 건너편 사과밭 사이사이로 보이는 도심리 감동골마을은 평온하면서도 풍요롭게 보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가수원 집' 사람들인가?
'수진교' 다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70~80m를 진행하다 88번 국도 애당교회 앞에서 '무지개펜션식당' 마당을 끼고 우측으로 이어간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도 조우한다)
애당교회 앞에서 우회전
'애당교'를 건너 우회전하여 '월로천'변 길을 따라 이동
'애당교'를 건너면서 보는 좌측의 '구룡산' 방향
월로천(운곡천 방향)
그건 뭔가요?^^
다시 운곡천 제방에 들어서니 멀리 '옥석산'이 보인다
애당리 마을 풍경
순간적으로 '도담삼봉'을 생각하며 담은 사진이다.^^
고추나무
운곡천은 춘양면 '도심리'와 '애당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도라지밭
운곡천변 제방길을 따라 한참 '신기교'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건너편에 되돌아오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딘가 탐방로가 막혀 되돌아오나 싶었는데 정상적인 코스가 그렇게 된 거란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천 사이사이에 설치된 '보'를 통해 건너도 될 것을 굳이 코스를 돌려놨을까? 생각도 들었으나 하천에 물이 불어났을 때를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면이 없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신기교'를 3백여 미터 남겨 두고 되돌아와 '새터농장' 앞에 설치된 보를 건너 앞서 간 일행과 합류하여 '새터마을'로 들어선다
새터마을
춘양면 도심 1리 새터마을은 조선말기에 김녕 김 씨(金寧 金氏)가 들어와 새로 개척한 터라 하여 '새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외씨버선길은 '새터농장' 건물 우측 옆길로 들어가다 바로 좌측 숲길로 올라선다
새터농장 마당 앞 장미
새터농장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산길로 올라선다
숲길로 조금 올라 서면 양심장독대가 있다. 이 날은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길지는 않지만 오늘 탐방길에서 처음 경험하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건너편에 조선시대 5대 사고지 중의 하나인 '태백산사고지(太白山史庫址)'이 있는 각화산(1,202m)이 보인다
춘양면 '도심리'와 '서동리'를 나누는 '거포재'는 제법 긴 고갯길이다
거포재를 넘어서면 '거포사과마을'이 있다
춘양면 도심리 새터마을에서 춘양면 서동리로 넘어가는 고개(거포재)에 정자와 함께 송이버섯 모형이 새워져 있다
오늘의 두 번째 외씨버선길 완주인증 촬영장소이다
과거에 세워진 외씨버선길 9코스 이정표. 시점과 종점이 현재와는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두내약수터 ⇒ 외씨버선길장승)
거포재를 오르다 탁 트인 개활지에서 시야를 좌측으로 돌리면 각화산(1,202m)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각화산 능선 너머로는 태백산이 있을 것이다
눈개승마
이른 봄 눈 속에서 돋아나는 인삼과 같다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눈개승마는 씹는 맛이 고기와 같은 질감이 나기도 하고 인삼과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하는 흔하지 않은 고급 산나물이란다
지난 구간 탐방 후 춘양시장 식당에서 먹었던 눈개승마 장아찌 맛에 반했었다
만첩빈도리?
만첩(灣疊)의 의미는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또는 '만첩으로 피다'라는 뜻이며, 빈도리는 '속이 비어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줄기 속이 비어 있는 만첩꽃을 '만첩빈도리'라고 부른단다
말발도리와 만첩빈도리는 꽃의 모양은 비슷하나 줄기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말발도리는 줄기 속이 차 있고, 빈도리는 줄기 속이 비어 있다고...
꽃이름을 알자고 남의 집 울타리 안에 있는 나무를 꺾을 수도 없고... 그냥 '그런 꽃이 있다'는 정도로 알고 지나가자.^^
포장도로를 뒤덮고 있는 돌나물
장미
거포재를 넘어서니 (남쪽의 일월산과 청량산 방향으로?) 탁 트인 조망과 함께 '거포사과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춘양면 서동리 '거포사과마을' 전경
봉화는 여기도 저기도 보이는 곳은 온통 사과밭. 지금까지 걸어왔던 청송군과 영양군에 비해 사과밭의 밀집도는 봉화군이 더 높은 것 같다
사과마을로 들어서는 길
이제 종점인 춘양면사무소까지 5.8km 남았다
이 시기의 사과는 처음 본 듯
마을을 빠져나오며 뒤돌아 본 거포사과마을 풍경
반대 방향에서 혼자 걸어오는 외씨버선길 탐방객과 인사 나누고...
거포재에서 사과마을을 거치지 않고 직진하여 바로 내려오는 지름길과 합류하는 마을 앞 삼거리에 멋진 노송과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서 있다
정자가 있는 마을 앞 삼거리에서 4백여 미터를 내려와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이어간다
오랜만에 사과밭이 아닌 고추밭을 본다. 봉화의 특산물로는 송이, 사과와 더불어 고추도 있다
금계국이 만발한 마을길
자두
직진...
서동리 염장 경로당
염장마을은 옛날 소금장수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금장수들이 어떻게 바다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까지 와서 살았을까? 소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며 파는 부상(負商)들이?^^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온 마을 이름들이 꼭 근거가 있어 지어진 이름들은 아니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상상해 보며 걷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탐방로는 염장 경로당에서 150미터쯤 지나 전봇대가 서 있는 지점에서 좌측길로 이어간다
마을을 지나 낮으막한 언덕길을 올라서니 '양반걸음 걷기' 구간이 나온다
양반걸음 걷기 구간
사람들아 왜 그리 바쁘냐?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
여유롭게 살자
'맞아~, 삶은 양반걸음걸이처럼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야 돼!' 하고 공감하면서도 느긋하지 않게 사진 한 장 달랑 남기고 그냥 지나친다.ㅠ
'양반걸음 걷기'는 외씨버선 길 자체를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보라는 소리로 들린다
'양반걸음 걷기' 구간이 있는 언덕을 넘어서면 서동리 거곡마을이다.
탐방로는 여기서부터 그늘 없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계속 이어진다
길가에 서 있는 뽕나무에는 오디가 주렁주렁...
농가에서 재배한 오디처럼 굵진 않지만 몇 개 따서 입에 넣어보니 작아도 달콤한 맛이 제법 진하다
길 옆 숲에는 쭉쭉 뻗은 춘양목이 울창하다. 왜 봉화지역이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인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아직 송이가 날 때는 아니지만 숲에만 들어서면 송이가 발길에 채일 듯(난 아직 자연에서 자라고 있는 송이를 본 적이 없다).ㅎㅎ
거곡마을에 들어서 7~8백 쯤 걸으니 길옆에 뜻은커녕 읽기도 난해한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바위가 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글자는 '봉강동천(鳳岡洞天)'이란다
봉강동천(鳳岡洞天)
동천(洞天)은 하늘과 통하는 신선이 사는 세계, 즉 '산과 내(川)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란다
그럼 봉강(鳳岡)은??? 아마도 마을 이름과 같은 이 지역 명칭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천'이란 단어가 생소하면서도 낯익은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과거 마니산 종주를 알 때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있는 함허동천(涵虛洞天)을 보았었다
인동초
겨울에도 추위를 잘 이겨내어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인동초(忍冬草)라 불린단다
서원마을 경로당
서원마을 경로당을 지나 5~6십 미터를 걸으면 넝쿨장미로 뒤덮인 춘양중학교 담장이 나오고, 담장을 돌아서면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춘양중학교 정문이 나온다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춘양중학교 정문
보물 제52호로 지정된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석탑은 정문을 통과하여 우측에 있다
봉화 서동리 동(右)·서(左) 삼층석탑(보물 제52호)
석탑은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형식을 띠고 있다
이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서(南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675)에 원효대사가 여기서 서북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발견 당시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복원하였는데,
이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어 현재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서탑(西塔)
동탑(東塔)
만산고택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뒤돌아 보는 춘양중학교 방향 서동리 서원촌 마을 풍경
성암 고택(省菴 古宅,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1호)
이 집은 성암 권철연(省菴 權喆演, 1874~1951) 선생이 살던 집으로 1880년경 건너마을인 운곡(雲谷)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대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니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서실(書室)이 있고, 대문채와 마주하여 'ㅁ'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 풀이 나 있는 것을 보면 현재는 거주하는 사람이 없는 듯
밖에서 보는 성암고택
권진사댁(성암고택)에서 2백여 미터의 거리에 두 개의 정자가 보인다
안동 김 씨의 정자인 낙천당과 진주 강 씨의 정자인 태고정이다
낙천당(樂天堂)
낙천당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정자로 수북(水北) 김람(金灠, 1601~1677)이 지은 정자이다
태고정(太古亭)
'태고정'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정자로 만산(晩山) 강용(姜鎔, 1846~1934)이 지은 정자이다
그는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며 후배들을 길러내는데 힘썼다고 한다
만산고택으로 가는 길 안쪽에 춘양성당이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은 2014년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만산고택 대문 앞 산딸나무
만산 고택(晩山 古宅)
만산 고택은 조선 후기 때의 문신인 만산 강용(姜鎔, 1846~1934) 선생이 고종 15년(1878)에 건립한 집이다
선생은 중추원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으며,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의소(乙巳擬疏)을 올려 늑약에 동조한 오적대신을 참형으로 다스리고
위협으로 체결한 늑약은 성립될 수 없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집 근처에 태고정(太古亭)을 지어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며 남은 여생을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다
행랑채(안쪽)
이 고택은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대문 양쪽에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가 있다
본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정면에 'ㅁ'자형 본채가 있다.
본채의 전면에는 5칸 규모의 사랑(舍廊)이 자리하고, 그 뒤에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본채의 좌우 익랑(翼廊)은 고방(庫房)과 부엌. 그리고 하인들이 기거할 수 있는 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입은 양쪽 측면에 있는 문으로 한다
안채는 사랑채의 측면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안채
본채와 서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 본채가 자리하고, 사랑마당 왼쪽으로 서실(書室)이 있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강용의 아호인 '만산(晩山)'을 판각한 편액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써서 하사한 글씨라고 한다
서실(書室) 좌측에는 푸른 글씨로 한묵청연(翰墨淸緣)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라고 한다
'한묵청연(翰墨淸緣)' 은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는 뜻으로 고아한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라 한다
'만산(晩山)', ' 한묵청연(翰墨淸緣)' 두 편액으로 미루어 보아 선생이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사랑채에는 만산(晩山) 외에도 칸칸이 다른 편액들이 걸려 있다
정와(靖窩) : 고요하고 편안한 집
존양제(存養齊) : 본심을 잘 보존해 이치를 양성하는 집
차군헌(此君軒) : 대나무가 있는 집
(이 집 주인장은 찾아온 손님들과 밤 늦게까지 술잔을 나누다 술자리를 파할 시간이 되면
'이제 밤이 늦었으니 술은 그만 하시고, 마침 집에 비어있는 방도 있으니 오늘은 정와(존양제, 차군헌)에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하면서 손님을 재워 보냈을까?^^
손님 한명 찾아오는 것도 버거워하는 요즘 세태와 비교해보면 생각만 해도 멋지고 여유있는 삶이었겠다)
별당으로 들어가는 문
별당(別堂) 칠류헌(七柳軒)
별당은 사랑채의 오른편에 토석담장을 사이에 두고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넓고 독립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칠류헌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 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유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처마 밑에 걸려 있는 칠류헌(七柳軒)이라 적힌 편액은 구한말 위창 오세창(韋滄 吳世昌, 1864~1953)이 쓴 글씨라고 한다
별당인 칠류헌에도 여러 가지 편액들이 걸려 있다
어약해중천(漁躍海中天) : 바다에서 물고기가 뛰어올라 하늘로 오르다
칠류헌(七柳軒) : 일곱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는 집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이 중국 송대의 시인 도연명을 흠모해 쓴 글씨라고 한다
사물제(四勿齊) : 논어에서 금하는 네 가지로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 말 것'이라는 뜻이다
망국의 변란기에 처한 만산고택 주인이 생활 지침으로 삼은 좌우명으로, 자정 하면서 도리를 다하기를 다짐하는 정신이 담겨 있는 편액이다
백석산방(白石山防) : 선비가 여유롭게 거처하는 곳
별당 후원에 있는 화장실
본채에서 담장 너머로 본 별당(칠류헌)
안채의 양쪽 측면으로 이어진 익랑
여기는 이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기거했을 것이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다녀간 흔적 남기고....
억지춘양시장의 벽화
춘양시장 옆으로 '중조천'이 흐르고 있다
오후 3시 45분 춘양파출소 옆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첫댓글 기다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으로 올려주신 사진 잘 봤습니다
지나쳐버린 삼층석탑도 만산고택의 각채마다 현판도 상세하게..
포스팅이 많이 늦었지요?
여행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포스팅을 빨리 해야 하는데 제가 게을러 매번 늦어지네요.^^
짧지 않은 거리였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걸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담 구간에서 뵈요~^^
작가님의 탐방 후기를 기다렸습니다... 생생한 사진과 해박한 설명으로 지나온 춘양목솔향기길이 다시한번 멋짐을 느끼게 하는군요. 제사진도 많이 찍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포스팅에 관심 가져주시고 매번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답니다
담 구간에서 뵈요~^^
그 열정에 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