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
오페라 보러 한달간 관광객 20만명, 주민 수 2만명보다 10배 넘게 몰려
시각·음향 효과 뛰어난 수상 무대… '토스카'는 007 영화의 배경되기도
"오페라가 돈이 안 된다고?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정부·지자체 지원금 570만유로(약 79억원)를 받아 1억6000만유로(약 22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낸다. 30배 가까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인데, 무슨 말인가."
데이비드 파운트니(Pountney·67) 브레겐츠 페스티벌 예술감독 얘기처럼 오스트리아 호반도시 브레겐츠에서 오페라는 돈 되는 사업이다. 인구 2만의 이 휴양도시엔 여름 한 달 2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콘스탄스 호수 위 수상무대에서 펼쳐지는 오페라를 구경하러 온다. 이들이 호텔과 식당, 쇼핑가에서 쓰는 돈은 오페라 티켓 수입의 10배를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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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겐츠 페스티벌 ‘마술피리’. 좌석이 7000석 가깝지만 폐막 공연(8월 25일)을 20일 앞두고 매진됐다. 내년엔 푸치니 ‘투란도트’를 올린다. /ⓒBregenzer Festspiele/Anja Kohler
지난달 24일 개막,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꽃은 알프스 자락 콘스탄스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밤 9시가 넘어 호수 너머로 태양이 가라앉자 초록, 빨강, 보라 등 원색 조명이 들어왔다. 6980석 야외 객석에서 호수를 향해 앉은 관객들은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듯 잔뜩 들떴다. 파미나 공주가 푸른빛 배를 타고 무대 앞쪽으로 나오면서 오페라는 막이 올랐다.
브레겐츠 수상 오페라의 강점은 강렬하면서도 예술적인 시각효과. 높이 10m가 넘는 용 3마리가 원색 조명을 받으며 서있고, 잔디처럼 깔렸던 수상 무대 바닥에서 어른 키 두 배가 넘는 풀잎이 올라와 숲을 이뤘다. '밤의 여왕' 아리아 대목에선 3m 넘게 '밤의 여왕'이 솟아올라 화려한 드레스를 펼치면서 절정의 고음을 뽐냈다. 한낮의 무더위는 벌써 물러갔고,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브레겐츠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대놓고 쓴다. 성악가들은 핀 마이크를 뺨에 붙였고, 객석은 800개가 넘는 스피커로 감쌌다. 영화관이나 고급 오디오를 갖춘 방 안에서 영상을 보는 것처럼 무대 위 움직임과 노래가 생생하게 들렸다. 단, 스피커 소리를 싫어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빈 심포니의 수준 높은 연주도 '마술피리'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호숫가 야외무대가 아니라 페스티벌 실내 극장에서 연주하고, 객석을 둘러싼 스피커와 대형 화면으로 야외에 생중계된다.
브레겐츠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가 맞대고 있는 콘스탄스 호숫가에서 야외 오페라를 시작한 것은 68년 전인 1946년. 세계 대전의 참화를 딛고 호수 위에 배를 띄워 야외 오페라를 올린 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눈 덮인 알프스 자락 푸른 호수는 그 자체가 환상적인 무대가 됐다. 1985년부터 오페라 1편씩, 2년간 여름 시즌에 올리는 것을 정례화하면서 '나부코'(93~94년)가 30만명, '피델리오'(95~96년)가 31만8000명을 불러모았고, '일 트로바토레'(2005~2006년)가 30만 명을 넘겼다.
푸치니 '토스카'(2007~2008년)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세계 곳곳에 알린 계기가 됐다.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악당을 만나 대결을 펼친 곳이 '토스카' 무대였기 때문이다. '아이다' '안드레아 셰니에'에 이어 '마술피리'까지 브레겐츠의 성공 신화는 이어지고 있다. 오페라 초심자들까지 쉽게 볼 수 있으면서도 예술적 수준을 유지한 게 성공 비결이다. '마술피리'를 비롯,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는 DVD와 블루레이로도 나왔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순수예술인 오페라도 현대 과학기술과 예술성을 잘 버무리면,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호수 위 생생한 사운드… 그 독특함이 성공 비결"
10년간 연출 맡은 파운트니 감독
브레겐츠 페스티벌 예술감독 데이비드 파운트니(Pountney·67·사진)는 영국 유수의 오페라단인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glish National Opera)에서 오페라를 20여편 만든 저명 연출가다. 취리히, 빈, 뮌헨 국립오페라극장 등에서도 그의 작품이 올라갔다. 2004년부터 브레겐츠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마술피리'를 연출했다.
"성악가들이 마이크와 스피커를 쓰는 게 오페라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것 아니냐"고 묻자 파운트니 감독은 "브레겐츠는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이기 때문에 이곳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고 했다. "야외 오페라 중에선 가장 음향이 뛰어난 곳임을 자부합니다. 빈의 한 대학 음향 연구소와 공동 작업으로 개발한 음향 시스템으로 서라운드 스피커로 둘러싸인 오디오룸처럼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내 오페라하우스와 비교하긴 어렵지요."
파운트니 감독은 브레겐츠 감독 생활 10년간, 페스티벌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는 데 힘썼다고 했다. "창작 오페라나 잘 공연되지 않는 작품을 실내 페스티벌 극장(1656석)에서 꾸준히 올렸습니다.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정기 편성한 것도 오페라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국내에도 군(郡) 단위까지 수백개가 넘는 문화축제가 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성공 비결을 물었다. 그는 "처음부터 성과를 낼 순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파운트니 감독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브레겐츠를 떠나 2011년부터 CEO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영국의 웰시 오페라에 전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