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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말하라!
인디애나 주 제퍼슨빌
1963년 7월 14일 오전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주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잠시 서서기도 드리겠습니다. 특별기도 요청이 있습니까?
그러시다면, 하나님께 손을 들고, “주님, 제게 필요한 것을 아시죠.”하고 말하시면서, 알리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모일 수 있는 건 정말 특권이며, 오늘 아침 하나님의 집에
나오기를 원하는데 병원과 아픈 병상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아침
우리가 이곳에 올수 있는 이 특권을 주셨습니다. 주님, 우리는 절대로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고,
물론 우리는 서로 교제 나누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도 교제 시간은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들과 형제들로 한데 모아주신 그분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과 정확하게 교제 나누는 방법을 아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 우리는 우리가 지닌 십자가들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위대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모두를 강건케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여서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주님께 손을 든 주의 백성의 요청을 들어주시옵소서.
각각의 기도 요청들을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간밤에 저 위 도로에서 있었던 교통사고에서, 우리 엉렌 자매님의 생명을 보호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순례 여행을 할 때에, 우리 각자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띠로 단단히 동여매는 힘을 주시고
--주님의 늘 함께 계시는 임재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을 아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 주위를 진치고
있고, 그들이 우리 발이 돌 하나에도 부딪히지 않도록 들어 올릴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께서 말씀을
축복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말씀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는 바깥의 햇빛을 감사합니다,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오늘 아침에는 날이 아주 흐렸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특별히, 너무나 찌뿌듯하고, 흐린 날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햇빛을 보니, 해가 나오니까?
아주 좋습니다. 오늘은 우리 가족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저는 제 남동생들을 만나고, 그들은 저기 위에 있는 제
여동생 집에서 모였습니다, 이 도시와 이 도시 주변에서 사는 우리 친척들 몇 분도 오셨습니다.
브래넘 가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켄터키 주에서 와서 여기서 다 모인다면, 우리는 이 도시를 빌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수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몇몇만 모인 모임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엄마 집에서 모이곤
했었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다 한데 모으는 이음기둥이랄까 그런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머니를
천국으로 데려가셨고, 저는 우리가 언젠가는 다 거기서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있습니다.
요전 날인가 저는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일요일 설교들을 한 이십 분 정도로 줄이고, 아니면 삼십 분 정도로,
다음에는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 그 말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젯밤에 저는, 다우닝 자매님이 전화를 해서 말하기를, 빌리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와 엉렌 자매님께서 도로에서
미끄러져서 충돌사고가 났다고 말했을 때 생각했습니다. 빌리가 계속 그 창가에 있었을 때, 저는 그때 시간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아침이나, 언젠지는. 저는 조금밖에 눈을 붙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우드 형제님 댁을 내려다보았는데,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뭔가가 제게, “그 일은 다 괜찮을 거다.”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빌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모든 일이 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괜찮아질 거다’고 말해라.” 저는 오늘 아침 그들을 다시 보게 되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사고를 겪고 다시 주님의 집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까요.
여러분을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 복음을 듣기 위해서 수백 마일을 마다않고 온 사람들에게,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십 분 설교로, 나처럼 느리게 하는 사람이, 그 설교는 도리가 아니지.”
그래서 저는 그렇게...(그들을 위해서)길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부른 엉렌 형제님, 자매님의 아들이죠.
그는...오늘 아침 그에게는 하나님이 어제 오후보다 더 깊게 느껴질 겁니다, 그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귀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자매의 목숨을 보호해 주셨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주 안에서 아주 좋은 시간을 가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보고 있던 두세 개 다른
주제들이 있었는데, 저는 오늘 아침 어느 것에 대해서 말해야할 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께서 너를 돌보시니, 너의 염려들을 주께 맡겨라. 주께서 돌보신다면, 너는 왜 맡기지 않느냐?”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것은, 제 다른 아들인 조셉이 오래 전에 제게 이 주제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조셉이 방안에
앉아 있다가, 저 사진 쪽을 올려다보다가, 빌리가...아니, 조셉은 어린 소년들처럼, 배를 무척 좋아합니다;
배와 말들, 아시죠. 그래서 그 애는 제게, “아빠, 예수님도 배를 가지고 있었나요?” 물었습니다.
저는, “모르겠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조셉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 후, 저는, “예수께서 배를 가지고 있었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서 본문을 택했고, 그것을 제 책에다 표시해 두었습니다. “예수께서 배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예수께서는 태어날 자궁을 빌려야 했었고,
장사될 무덤을, 설교할 배를 빌리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옛 시온의 배의 조타수이십니다.
그럼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 주제들은, 어쩌면 우리가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기 전에
그것들을 나중에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 성막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말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곳 목사님이 여러분에게 환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신다고 해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교회에 있고, 그들의 생각들과 교리를 존중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뭐랄까? 약간은 구속받는 듯한 기분을 가지게 됩니다.
이번 주에는 버챔 형제님네 공장에서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들이 치즈를 생산하는 공장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와 그의 부인과 아들과 식구들이 오늘 아침 이곳에 와 계시는군요. 저는 항상 치즈 공장은 제가
가본 다른 곳들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좀, 질척하고 지저분한 곳이라고요. 세상에,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요, 저는 그곳이 지저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곳은 최고로 청결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공장 치고는요. 그래서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 아마 수백 파운드의 치즈를 매일 생산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일 공장 셋을 가동하여
육 톤이나 생산한답니다. 저는, “오, 이런, 그 치즈를 누가 다 먹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남자분을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그의 집에도 가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아주 훌륭한 가정이고, 훌륭하고 성별된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는
이유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 처럼요. 그의 아들들도 만나봤는데, 다들 아주 훌륭한 자녀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있는 우리 형제 자매와 나누는 이 교제를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이전 담임목사는 제가 알던 분인, 걸리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합 오순절 믿음을 가진 아주 훌륭한 분이었고, 아컨소주 존스보로에서 몇 해 전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그 분이 그들의 담임목사였었다는 것을 몰랐었습니다.
자 오늘 저녁 예배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주 일요일에도 우리는 설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일요일에도 설교하고 그리고 나서는 시카고로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잠시 떠나 있다가,
저는 가족들을 다시 애리조나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그러면 저는 담임 목사님의 예배를 빼앗아 괴롭히는 일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네빌 형제님께 그의 환대를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아시죠, 저를 초대해 주셔서.
그런데 형제님은 너무나, 아니...저는 형제님을, 그와 같이 아무런 간사함이 없는, 이기심이 없는 분을 좋아합니다,
그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상입니다. 저는 그게 좋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몇 구절 읽고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긴 메시지를 전하다가,
몇 시에 끝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며칠 전에 너무 오래 설교하는 데 대해서 제가 말을 했었죠?
누군가, “당신이 이삼 분 정도 얘기한다면, 당신은 신비스럽게 얘기를 합니다,”하고 말했고, “우리는 절대로 그걸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냥 계속 하십시오, 한참을 듣게 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주님은 우리가 그런 식으로 하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고개를 숙입시다.
주님, 주의 말씀이 이 설교단 위에 펼쳐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닫히게 될 날이 올 것을 압니다,
그때는 그 말씀은 육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 이때를 감사히 여깁니다. 주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우리가 읽을 이 말씀의 내용들을 열어 주시옵소서.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야할 것들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모든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을 깊게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고 테이프를 통해 듣고 있는 사람들도, 주의 깊게 듣게 하소서.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시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다면, 그 기름부음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으로,
주께, 선한 방향으로 역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과 지각을 열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말하고, 듣고, 믿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셔서, 우리가 들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올 때,
믿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장차 올 그 위대한 날에, 영원한 생명에로 귀결될 수 있도록.
오늘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가 잘못할 때는 우리를 책망하여 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잘못들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올바른 길에 있을 때는 축복하시고,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이 현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장차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성경에서 두 군데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그곳은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기13장21~22절입니다. 다음 구절은 14장10~12절입니다. 이제 출애굽기13장21절에서 읽겠습니다.
21.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시어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22.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이제 출애굽기14장에서, 10절을 읽겠습니다.
10.파라오가 가까이 왔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보니, 보라,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들의 뒤를 따라
행진하더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라.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이집트에 무덤이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데리고 나와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이같이 우리를 대하느냐?
12.우리가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더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리라.’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았으리라.”
하더라. 몇 구절 더 읽겠습니다.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여기서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실 그분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조용히 있을지니라. 하니라.
15.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너는 네 막대기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나누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 가운데를 지나
마른 땅 위로 가리라. 17.보라, 나 곧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할 터인즉 그들이 백성을
따라가리라. 내가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들과 기병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라.
18.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들과 기병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주인 줄을 알리라.”
하시니라. 19.이스라엘의 진영 앞에 가던 하나님의 천사가 움직여 그들 뒤로 오니 구름기둥이 그들의 얼굴
앞에서 떠나가고 그들의 뒤에 서서
20.이집트 사람들의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당도하니라. 그것이 저들에게는 구름과 흑암이 되었고,
이쪽에는 밤에도 빛을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더라.
21.모세가 바다 위로 그의 손을 내밀매 주께서 강한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다를 뒤로 물러가게 하시고 바다를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물들을 나누시니 22.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 마른 땅 위로 갔고 물들은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그들을 위해 벽이 되었더라.
23.이집트 사람들과, 파라오의 말들과 그의 병거들과 기병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오매
24.새벽 경점에 주께서 불과 구름기둥을 통해 이집트인들의 군대를 보시고 이집트의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또 그들의 병거 바퀴를 빼내어 그들이 그것들을 몰기에 힘겹게 하시니 이에 이집트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도주하자.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집트인을 대적하여 싸우시는 도다.” 하더라.
주의 말씀은 얼마나 위대하고, 좋은지, 읽기를 멈출 길이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읽어나가면 생명이 됩니다.
오늘 아침 이 본문으로, 저는 처음에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말씀은, 저는 제 자신을 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제, 말씀을 보다가, 이 주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해야겠다, 그 말씀이 내게 강하게 다가오니까?”
그래서 저는 이 메시지가 우리들 모두에게 강하게 와 닿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위를 쳐다볼 수
있게 하고, 조금 더 공부하며, 그 일이 있던 때와 오늘날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목으로 세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요, 그것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말하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출애굽기14장15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그래서: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말하라!” 입니다.
자, 우리는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저는 최대한 빨리 서둘러보겠습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모세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가 있는 그 때에
모세를 책망하시는 걸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부르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그런) 모세를 책망하시다니 얼마나 모순된 일로 보입니까?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일처럼 여겨지죠?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 자주 그러는데, 우리 식으로 보게 되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게 보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조금 더 연구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일에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는 일을 잘 알고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하며 사람을 어떻게
다루셔야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 속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잘 아십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지적으로만 알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속에 정말로 뭐가 있는지 잘 아십니다.
모세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선지자로, 구원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런 소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소양을 가지고 태어나듯이, 저는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예정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 받기를 원하시지는 않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셔야했고, 미리 아셨고, “처음부터 끝을 아십니다.” 아시겠죠?
모르신다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 아니신 것이고; 무한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어느 누구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누가 멸망하겠고, 멸망하지 않을지는
알고 계십니다. 그게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미리아심으로 보셨던,
구원받길 원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시겠죠? (왜냐하면) 온 세상은 정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말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것을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분명히,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아신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을 말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여러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건 모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금세 여러분은 들통이 나고 맙니다. 여러분의 죄들은 여러분을 찾아낼 겁니다. 여러분은 그걸 감출수가 없습니다.
죄를 덮는 것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여러분을
부르시지(예정하지) 않았다면 그 보혈은 발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걸 위해서 보혈이 흘려졌던 것입니다;
짓밟히기 위해서가 아니고, 조롱받기 위해서, 찔러지기 위해서가 아니고, 비난을 듣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장난(웃음)거리가 아니고, 모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죄들이 덮여지지 않았는데도 덮였다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어느 누구도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의 죄는 덮여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도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과거 시제죠? “자들은 다 내게 오리라.” 맞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들이 거짓말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들은 진리로 그리고 교정하기 위해 거기에 있습니다.
모세는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그 믿음이
모세에게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훌륭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가 어떠했는지 알죠?
레위 집안사람이었습니다. 여기 그 이야기는, 이 이전에, 출애굽기에서, 이 위대한 인물의 삶을 너무나 훌륭하게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성경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엄밀히 주 예수의 예표였으니까요. 모세는 주 예수님처럼 상당히 이상한 상황에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주 예수님처럼 박해의 때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구원자로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주 예수님처럼 대적으로부터 숨기기 위해 숨겨졌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섬김의 때에 왔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주 예수님처럼 율법(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세가 그 반석 위에서 죽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팔백 년 후에 모세는 변화산 위에서서 주 예수님과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천사들이 모세를 메고 갔습니다. 아무도 모세가 어디에 장사되었는지 모릅니다. 마귀도 몰랐습니다.
솔직히, 저는 모세가 장사도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셨고,
그는 평생을 따라가던 그 반석 위에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예표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왕이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주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공급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표로 따지자면,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자, 모세는 이 위대한 은사들과 자질을 가지고 이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아나게 하려면, 그것에 빛을 비춰줄 뭔가만 있으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의 씨는 이미 창세전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먼저 그 씨에 비추면,
그 씨는 살아나게 됩니다, 하지만 먼저는 그 빛이 그 씨에 비춰야만 합니다.
제가 우물가에 있던 그 여인에 대해서, 그런 상태에 있던 그 여인에 대해서 여러 번 가르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평판이 나쁜 여자였지만, 인생은 비록 밑바닥 인생이었지만, 그녀는 전통들이 결코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상태였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빛이 먼저 그녀에게 비췄을 때, 재빨리 그 빛을 인식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그 빛에 대해 반응하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를 때에.” 어딘가에 그 부름에 응답하는 깊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이 선지자로 태어났고, 하지만 지식적인 학교와 파라오의 왕궁에서 성장했습니다.
파라오 세티는, 모세는 그의 밑에서 성장했는데, 여전히 요셉이 주의 선지자임을 존중하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티 이후에 람셋이 뒤를 이었고, 람셋은 요셉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가 일어났을 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자질들은, 주제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그 자질들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저는 본문을 설정하고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 독특합니다, 오늘 아침 제가 설명해 나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 큰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내기 위하여,
그 타는 가시덤불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자,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위대한 자질들을 봅니다!
모세는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시는 것에 대해서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 자리까지 이를 수만 있다면, 하나님과 여러분에게도 얼마나 많은 문제를 덜 수 있을까요.
모세는 태어나, 그 다음에, 나중에, 모세는 기름부음을 받는 자리까지 인도받습니다. 그 씨는 거기에 지식적인
개념을 가지고 놓여 있었습니다. 그가 이 백성을 구원하려고 태어났다는 온갖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걸 보세요,
하지만 타는 가시덤불로부터 나온 그 빛이 그 씨에 비취기 전까지는 절대로 생명으로 터지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지식적인 것들을 읽었던 어떤 것으로가 아니라, 모세가 자기 눈으로 어떤 것을 보았을 때까지는;
그에게 뭔가가 말하고, 그가 그것에 응답을 했을 때까지는. 오, 그것이 얼마나 생명을 가져오는지. 저는 누구나...
여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저는, 그들이 생각하는 말씀에 대한 지식적인 개념으로는, 기타 여러 가지로는, 결코
충만한 기반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실체가 되게 하는 그 빛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저는 아무리 지적이고 정통인 교회라고 해도, 그 초자연적인 것이 그 사람들 가운데서 알려지고,
그들이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번성할(태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있고,
그들에게 응답해 주는 뭔가가, 이 기록된 말씀을 입증하는 그 뭔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자 기억하십시오, 모세가 타고 있었던 그 가시덤불을 만났을 때, 그 말씀은 정확하게 입증되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음성은 대체 뭐지? 여기 있는 이 존재는 대체 뭐지?”
하면서. 왜냐면, 하나님은 이미 성경에, 창세기서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백성이 이 타국 땅에서 유리하리라,
하지만 사백 년 후에는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
자, 수백 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타국 땅에서 유리하며 학대받으리라,
사백 년을 거기서 살게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하신 손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리라.”
모세는 지식적으로는 이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 안에 태어난 그 씨는, 모세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말씀의 체험을 통해서, 그들을 인도해 내려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 목적을 위하여 태어났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그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구절들이 모두 다 그들이 이미 그곳에서 사백 년을 있었음을 말해주었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이, 어떤 남자분이 저에게 재림과 휴거에 관해서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다 살았고, 휴거의 때가 가까이 왔으며...우리는 교회를 한데 모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주는 휴거의 믿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바닥에 아니면 마당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거나, 그를 다시 살아나게 하여 우리 앞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암이 퍼져 앙상했던
사람을 일으키시어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휴거의 믿음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 그 빛이 하늘에서 비추고, 나팔 소리가 울리면, 그리스도의 몸은 재빨리 한데 모이고 순식간에
변화되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우리 신학교들은 그런 것을 절대로 산출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식적으로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모세가 만났던 것과 같은) 그 빛을 만나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그 뭔가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자신의 위대한 부름을 말씀에 기초로 하고 있었고, 그것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이 빛을
만나고, 그 말씀 자체가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실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때 모세는 거기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건 모세의 안에 내면에 가지고 있던 것을 기름부었습니다, 그것을 믿은 지적인 것,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
기반을 두었던 그 믿음, 그것이 모세를 그의 어머니와 분리시켰습니다.
이제 그는 이 빛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 빛은 그가 믿었던 것을 기름 부었습니다. 아시겠죠?
엄청난 기름부음 아닙니까! 그래서 모세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자, 지적으로 모세는 그의 어머니의 말을 들었었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그가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자기는 실패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그의 믿음은 약간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시덤불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내가 그들의 조상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한 내 약속을 기억하고, 내가 내려왔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인칭 대명사죠? “내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려왔노라.”
이제, 이 말을 덧붙이자면...제가 하는 말이 신성모독하는 말이라면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땅에서 일하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서만 일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들이라. 그래서 나는 내가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내 자신을 선포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택했노라, 내가 너를 그들을 인도해
내라고 보내노라.” 아시겠죠? 자 보세요, “내가 너의 입과 함께 할 것이고, 내가... 너는 이 막대기를 가져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주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증거, 주께서 저를 기름 부으셨다는 증거,
그리고 주께서 이런 일들을 행하시리라는 증거를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습니다. “막대기니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뱀으로 변했습니다. 모세는 그 뱀을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집어 올려라.”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네 손을 품에 넣어라.” 하셨습니다. 손을 빼자, 손에는 문둥병이 걸려있었습니다. 다시 넣으니, 손은 나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이제 의문거리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다시는 광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모세는 자기가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자기 마음속에 있던 이런 모든 것들, 이런 위대하고 훌륭한 자질들이, 그는...그 자질들은 이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는 그것만 알면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있던 이 위대한 부르심은.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주장들을 입증도 해주셨습니다. 모세의 주장은, “내가 주를 만났도다. 주께서 너희에게
‘I AM’(아이 앰) 이 나를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여기 또 한 사람이 왔군, 또 다른 유대인, 어쩌면 내내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줄 온갖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이 광신자들 중 한 사람일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노예로 있을 때, 아니면 어떤 것에
속박 당해 있을 때, 늘 그런 일을 하려고, 온갖 계책들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네 안에 있으리라.
내 말들이 너의 말들이 될 것이다. 네가 내 말들을 말하고 내가 말한 것만 그대로 말하라.”
이제 모세가 내려가서 이 부르심을 그들에게 전했을 때, 파라오 앞에 바로 서서 그에게 말하기를,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인도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장로들과 파라오 앞에서 한 표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표적들을. 모세는, “내일
이맘 때 쯤에, 해가 내려가리라. 이집트 전역에 흑암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 일은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전국에 파리가 나올 것입니다,”고 말했고, 그는 막대기를 뻗어서 파리를 나오게 했고,
파리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예언했고, 모세가 예언한 일은 모두 다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모세를 출생 때부터 부르셨고, 모세 안에 자질들을 넣어두셨습니다, 큰 믿음의 자질, 그리고 자신의
임재로 내려오셔서 모세 안에 있던 그 위대한 뭔가에 기름 부어서, 모세를 그의 말씀을 가지고 내려 보내셨고,
모세는 적절하게 자신의 주장들을 입증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돌팔이들이 일어나든, 얼마나 많은 다른 일들이
일어나든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마다 모세는 증명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말한 것을 하나님은 존중하셨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그 말씀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말한 것을,
하나님은 존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입과 함께 할 것이고;
그 입은 바른 말들을 하리라.” 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주장들을 확증하고 입증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신비스러운 출생에 관하여,
구원이 있어야하는 때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도 들었습니다. 레위 가문의 아들 딸인 암람과 요케벳은 하나님께
구원자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약속의 때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기도하고 갈급해 합니다. 요케벳은 여러 번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모세의 가정교사이기도 했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다 잘 압니다. 모세에게 자기가 기도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모세야,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출중한 아이였단다. 너는 달랐어. 너의 출생 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단다.”
저는 얼마 전 어린이들에게 그것을 연극으로 엮어 말해 주었습니다, “암람이 방안에서 기도하는데, 암람은 천사가
칼을 빼들고 북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리고 ‘네가 아이를 가지리니,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
된 땅으로 북쪽으로 데리고 가리라.’고 말했단다.”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극으로 꾸몄습니다,
그 아이들이 여러분들 어른들처럼 이해하지 못하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주시듯이 그 일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하려고요. 그런데, 어머니가 이런 것들을 모세에게 말해주었고, 모세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도, 모세는
여전히 다른 만짐이 필요했습니다. 그 가르침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모세는 개인적인 접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도 그걸 필요로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걸 필요로 합니다. 그게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개인적인 접촉이, 아시겠죠? 뭔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말씀이 사실이고,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과 (함께) 접촉될 때, 그러면 여러분은
그 일이 행해지는 것을 보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이 바른 길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죠?
자 보세요, 그것은 항상 성서적일 겁니다. 그건 성경과 딱 들어맞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맞았었기 때문입니다.
암람의 기도는 성경과 딱 맞았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약속된 말씀과 일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 일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위해서 기도했고, 여기에 출중한 한 아이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오, 저는 이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아시겠죠? 파라오가 모든 아이들을 죽이고, 칼로 해치고 있었을
때, 감시자의 칼; 그들은, 그들은 이 어린 아이들을, 그 어린 몸들을 칼로 찔러서, 그 악어들이 아마도 히브리
어린아이들의 몸을 먹고 통통해질 때까지 악어들에게 던져주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부모들이 아이들을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겁내지 않았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이 아이에게서 뭔가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아이가 기도 응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세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모세는 자기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배경은 다 축적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가지고, 성경을 가지고 와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다,”라고 말하고,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이런 일이 그 때에 일어날 것이다,”하고
말하고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이런 일이 어떤 시각에 일어날 것이다,”고 말하고, 그대로 일어나고;
그러면 그런 모든 것이 다 축적되어서 우리를 위해 하나의 그림을 그려주게 됩니다.
오, 오늘 아침 이 성막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네빌 형제님, 우리가 흰 머리카락이 나는 것과, 어깨가 굽는
것을 볼 때, 세상이 지금처럼 얽히고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될 때, 주위를 둘러보고 그 약속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그건...많은 경우에, 어느 누군가가 즉시 그것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말씀을
이해한다면, 즉시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건 여러분을 거의 영원 속으로 보낼 것입니다.
휴거하는 일처럼 말이죠! 그것을 전혀 몰랐는데, 그냥, 오,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알고 이해했던 것들을 통과하고,
한 번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 남자 혹은 그 여자 소년, 소녀는 아마도 두 손을 들고는 “주 예수님, 갑시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오, 그 시간이 너무나도 가깝습니다!
자기가 그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음을 안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그 히브리인들을
지켜봤고, 성경을 찾아보았고, 그 말씀에, “그들이 사백년 동안 유리할 것이나, 내가 강한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리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가 사명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고 돌아왔을 때, 자기가 태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쳐다보며, 믿음으로 그는 그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말씀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나머지 백성들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높은 영화(榮華)로 보기에는 괴짜요 광신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파라오의 아들이 될 위치였습니다, 다음 왕국을 물려받을 후계자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마음 깊은 곳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그가 상속하게 될 그런 영화를 쳐다보지
않는 진짜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봤고, 그는 그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생각했을 것들! 저는 언젠가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게 되면, 그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형제님,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하고 말할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요. 저는 언젠가 모세에게 얘기할 것입니다, 직접 모세와. 저는 모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가 준비된 것을 알았을 때 어땠었는지!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마귀는, “아,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말을
믿지 않을 거요. 그럼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씨가 거기에서 생명으로 나왔을 때, 뭔가가 모세를 쳤고, 그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알았습니다. 모세는 그의 시계를 보고 그 시각을 보았을 겁니다, 그는 지켜보면서 생각했을 겁니다.
이제 그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보았습니다, 그가 봤었던 이런 모든 위대한 일들을; 그 성경의 시간,
그의 부모의 기도, 그가 특별하게 태어난 것, 출중한 아이였던 것. 그리고 자라면서도, 자기 안에 깊은 곳에
뭔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이제 모세는 그것을 위해 살짝 빠져나가 그가 학교에서 군사훈련 받았던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려고 했었지만, 그 방법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는 광야로 나가서 아름다운 이디오피아 여자와 결혼했고,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양떼를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쪽 산 정상에서 가시덤불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로 올라갔습니다. 어떤 지성이 아니고, 상상이 아니고, 속아 넘어간 게 아니고, 착시 현상이
아니라, 모세 안에 있던...거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빛 가운데, 덤불 속에서 불기둥 가운데서, 그 불 가운데서
계셨습니다, 불길로 일렁거리는데, 덤불은 타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그곳으로부터 말씀하셨고,
“내가 너를 택하였도다. 네가 그 일을 할 사람이다. 내가 이 목적을 위하여 너를 세웠도다. 여기서 표적들로
너에게 증명해 보이마, 내 말이 성취되어야 하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러 내려갈 것이다.”
오,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도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말씀은 성취되어야 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그분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 모세가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고, 모든 방향에서 봤을 때, 그것은 그의 믿음에 기름 부었습니다. 아멘!
오, 이런! 엄청난 사실이죠! 이것 존재, 그 일로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성경구절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거기에 있는 그 성경구절의 증명, 모세 안에 있던 믿음을 기름 부었습니다, 가서 일하라고.(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게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역사해야 할까요? “우리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말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저는 흔들림이 필요합니다. 저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아침 저에게, 저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저-저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 위대한 증거를 생각해 볼 때,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 자리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세의 믿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런, 모세는 어떤 것도...(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 나와 있었고, 실제로, 그는 반란이나 그런 것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이집트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고, 군대를 장악하고 싸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죠? 수만 명이 모세 편으로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모세는 겁이 나서 자기편에 군대를 모으는 일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사십 년 뒤에, 여든 살에 손에 막대기만 하나 달랑 들고 돌아왔습니다. 왜죠?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던 것이 실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어떤 것도 모세를 막지 못합니다.
그는 이제는 군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니까요. 모세는 그것만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만 필요했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
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라고 여러분을 보내신 것을 알 때, 여러분이 그 일이 그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많은 경우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나서 시간이
지난 후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얼마나...오, 정말 놀라운 느낌이 듭니다! 그 상황은 이미 하나님의
통제(영향) 하에 있는 겁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도, 핀란드에서 다시 살아난 그 어린 소년에 관해서 기억합니다. 차에 치여서 죽었었던 소년.
저는 거기 도로 곁에 서 있었고, 그 아이 옆에서 걸어 지나가다가, 몸을 돌려 뒤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뭔가가 제 어깨에 손을 얹었고, 모어 형제님이겠지 생각했는데, 아무도 옆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뒤를 돌아보고 제가 봤던 산을 올려다봤습니다. 저는, “아니, 어딘가에서 저 산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는 이 쪽 길에서 오지 않았어. 우리는 다른 쪽 길로 왔는데. 저 산이 어디에 있는 거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쳐다보았고 아래쪽에 형체가 일그러진 그 자동차를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위 바가지 머리라고 부르는
머리를 한 어린 소년이 누워 있는 것을 봤습니다. 며칠 전 웨이 형제님이 쓰러졌을 때처럼, 그 두 눈은 흰자위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발가락은 양말 밖으로 삐져나와 있고, 그의 사지는 부러져 있었습니다.
피가 눈 코 귀에서 흘러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반바지를 보았고, 허리 옆으로 단추를 채워 여민
모습이었고; 타이즈, 여러 해 전에 우리도 신었던 그 긴 타이즈를 입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확하게,
정확하게 이년 전에 성령께서 제게 말씀해 주신 그대로였습니다, 전국에 계신 여러분 모두 여러분의 성경 안에다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적으셨었죠? 오, 거기에, 그때, 그 상황은 손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아무리 죽은
상태이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그 일은 다 끝난 일입니다. 그는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저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못 대표하고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제 고국에서, 이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 제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이 목사님들, 그리고 모든 분들이, 우리 성경의 면지에다 그 일을 적어두었는데, 여기서 그 일이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읽어보십시오, ‘그 일이 바위들이 겹쳐있는 고장에서 있을 거고, 죽임당한 아이가,
도로 우편에 있다.’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일이 일어난 거예요. 어떤 것도 그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은 이미 통제 하에 있는 일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 안에 있었던 믿음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오, 제가 그것을 설명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믿음은 제가 하나님에 대해 가졌던 믿음은, 제게 말씀하셨던, 그런데 그것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말하길, “이제 이 상황은 통제 하에 있다. 여기에 내가 이년 전 네게 보여주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나 있다,
모든 상황이 그대로이다. 네가 할 일이란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년은 살아났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생각에 잠겨 있었고, 뒤를 보니 프레드 싸쓰만 형제님, 뱅스 우드와 그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알래스카 고속도로에서, 어떻게 제가 여기 교회에 서서 여러분 모두에게 사십 이 인치(105 센티미터)나
되는 사슴뿔을 가진 한 동물과 털끝이 은빛인 회색 곰 한 마리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지. 저는 한 번도 그곳에
가보지 않았었고, 어떻게 제가 이것을 잡을 것이지,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날지, 몇 명이나 저랑 같이 있게 될지,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여러분은 모두 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몇 달 전에 그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로 들어갔을 때, 그 사실을 모르고, 거기 그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서, 그런데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수렵인 이라면 알 텐데, 아니면 이 테이프를 듣고 있다면, 여러분 어떻게 동물이 보는
앞에서 걸어서 다가갈 수 있습니까? 그 녀석은 펄쩍 놀라 달아날 겁니다. 하지만 그 놈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동물은 제 서재 방에 매달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털끝이 은빛 나는 곰도 똑같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도, 줄자도 정확한 길이를 보이기 위해 붙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뿔에 붙어 있다가 마르면,
한 쪽 뿔은 적어도 오 센티미터 이상이 줄어야 하는데, 이것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건 아직도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사십 이 인치입니다. 아시겠죠? 그 털끝이 은빛 나는 곰은 거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2.1 미터나 되는 길이에, 정말입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지금 거기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분이 제게 말하길, “보세요,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당신이 얘기하던 이 동물을 잡았는데,
제게 초록색 셔츠를 입은 청년과, 나머지 청년들이 있는 데로, 산자락에 이르기 전에 털끝이 은빛 나는
회색 곰을 잡으리라고 제게 말씀하잖아요. ”
저는, “그건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여기서 수 마일 정도 내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놈이 어디서 나올까요?”
저는, “그건 제가 물어볼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분은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곰도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다 곰을 두실 수도 있을 겁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곰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통제(영향) 하에 있는 상황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이 목적을 위해서 세워졌음을 알았을 때, 자기가 그 부르심을 주신 이 위대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음을 알았을 때, 그에게 기름 부으시고 그를 증명하시며, “이것이 너의 소명이다, 모세. 내가 너를 보내노라,
내가 너에게 내 영광을 보여주리라. 나는 타는 가시덤불 안에 있다. 거기로 내려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모세는 막대기가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입증된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로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모세 안에 있던 믿음을 기름 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를 기름붓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 보면, 마지막 때에 일어나리라고, 성경에서 얘기되어 온 일들이죠? 하늘에서부터 정치적인 세력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본성과, 세상의 도덕적 타락과 여자들 사이에서, 그들이 마지막 날들에는 어떨 것이고,
남자들은 어떨 것이며, 교회들은 어떨 것이고, 나라들은 어떨 것이며, 하나님은 어떨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있음을 봅니다.
오, 그것은 우리 믿음에 기름 붓습니다. 그건 우리를 크나큰 순환들 속에서 빼내줍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우리를 세상의 다른 것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줍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아무리 적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리 소수의 무리라고 해도, 우리가 아무리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걸 봅니다. 우리 안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를 볼 수 있도록 예정되었고,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멘!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건-그건 이미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 우리가 이런 일들이 여기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나오게 합니다.
자, 여기서 다시 읽겠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자, 모세는 그리스도의 능욕을 크게 여겼습니다. (히브리서11장26절)
자, 명심하세요, “그리스도의 능욕(치욕).” 보세요,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는 능욕(치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아주인기가 있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고, 섬기고 있지 않은 겁니다. 네.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죠? 그것에는 능욕이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항상 비난합니다.
오래 전에, 수천 년 전에, 그것에는 능욕이 따랐습니다. 파라오가 될 모세는, 그는 파라오의 아들로, 파라오의
후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기 파라오가 되어,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며 지낼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여겼다.” 여겼다는 것은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가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보다도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집트가 그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모세는 그리스도의
길을 택하는 것이 능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안에 뭔가가 있어서, 그에게 이 그리스도의 능욕을
그가 상속받을 모든 영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도록 만드는 그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에 너무나도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바깥에서 받을 수 있는 유업보다 훨씬 큰 내면에서 받을 수 있는 유업이 있었습니다.
오, 우리가 오늘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성령께서 우리가 우리 안에 가진 것을,
그 믿음을, 기름 부어서 그리스도께 헌신된 경건한 삶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능욕을 영예로 여겼습니다.
오늘, 누군가, “이봐, 당신도 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인가?”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응, 응, 어, 응.” 여러분은 그 사실에 대해 좀 부끄러워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모든 세상보다 그것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자기 안에 뭔가가 있어서 그는 큰 소리로
“그래요, 나는 이것을 더 크게 여깁니다. 이것은 굉장히 존중받는 겁니다.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하고 말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나는 이집트인이 아닌 히브리인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말해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세상 것들과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여길 수 있음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그냥 교인으로가 아니고, 성경에 따라 살고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요. 제가, 교회의 교인들에게조차 ‘광신자’라고 불릴지라도, 그래도 나는 이 도시나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보다는 그것을 더 큰-큰 재물로 여깁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이나 이 땅에서
왕이 되는 것보다 그것을 더 원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것을 너무나도 높이 사고 있어서,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저를 보시고, 거기에 조그마한 씨를 하나 심어 놓으셔서, 제 믿음이 세상의 이런 것들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르셨고, 저-저는 제 자리를 크게 여깁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바울은 그의 직분을 크게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오, 하나님은 바울이 가말리엘처럼
위대한 스승이 되는 것에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시겠죠? 똑같은 겁니다. 보세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모세는 자기 시각을, 자기가 보는 것을 절대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 밖에서 모세에게 보이는 사람들은 다 진흙을 다루는 사람들, 노예들, 감옥에 있고, 매일 처형을
당하고, 채찍에 맞는, 조롱을 받는 사람들뿐이었고, 그들의 종교적인 신앙은 “광신주의”였습니다.
그런데 보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는, 그들의 종교에 대해 알지도 크게 여기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종교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는 이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의 장면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이죠. 어떻게 모세는 대통령과 함께, 아니면 그 위대한 사람 파라오 옆에 앉아 있으면서,
파라오가 죽으면 그 자리를 차지할 사람인데, 그는 늙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생각하기를 그 부르심이...그는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 파라오가 내다보던 그 동일한 창으로,
왜냐하면 그는 파라오의 집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밖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봤는데, 그들이 채찍을 들고 기도하고 있었다면서
그 백성들을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언제든지 실패하거나 불순종한다면서 그들을
칼로 찌르기도 했고, 그들의 늙은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을 시키고, 먹을 것은 반 정도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어, 그들은 광신자들일 뿐이야,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어.” 그는 “그래 저들은 하찮게 대우받는 것이 마땅해”
하지만 모세는, 모세 안에 있던 믿음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복 받은 백성이다.” 아멘.
저는 그게 좋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모세의 눈은 이집트의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봤습니다. 그의 믿음의 독수리 눈은 이집트의 영화 너머를 보았습니다.
그는, 명심하세요, 모세는 지금 독수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독수리 눈은 그런 것들을 초월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오, 저는 그게 너무나 좋습니다! 허! 세상에!
오늘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감각들에만 의존하고 있습니까?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의존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그 세상 영화에만 의존합니다.
여자분들도, 저는 항상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머리카락을 길러야 하고,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하고,
숙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해야 한다고요. 여러분 길거리를 내다보면 오늘날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네, 여러분은 속으로, “저 여자는 교회에 다니는 여잔데, 나는 왜 그렇게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죠? “저 여자는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저 여자는 똑똑하기도 하고 상냥하며,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 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지? 나도 그렇게 해야만 해.”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게 되는 겁니다.
제가 늘 말했듯이, 그것부터 시작하십시오. (ABC)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브래넘 형제님, 전국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어요.
당신은 이런 일들로, 그렇게 여성들에게, 그리고 남성들에게 책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예언하고 은사들을 받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에이비이씨이(ABC)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수학을 가르칠 수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거리에서 걸어갈 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보이고, 그리고나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을 깨끗케 하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은 스스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가 거기에 놓여 있다면, 그리고 그 빛이
그 씨에 내려쪼인다면, 그 씨는 종류대로 생명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게 생명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생명으로 나올 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확실하게 다른 씨들에게 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 씨는 빛이 비추자마자 즉시 생명으로 나올 것입니다.
저는 그게 지금 이 테이프를 듣고 있거나 앞으로 들을 여성들에게 책망이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에게는 그것이 책망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것은 보이기 때문에, 그래야만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한 일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신앙생활을 해왔을 지도 모릅니다.
늘 교회에서 살았을지도 모르고, 여러분의 아버지가 목사이든지, 남편이 목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거기에 생명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이 드러난 것을 보게 되면, 성령의 생명이, 그 것이 다른 씨들을 비출 때 그것을 지켜보십시오.
그 씨들이 하는 일을 보십시오, 만일 그 빛이 그 씨들에게 비췬다면. 당연한 일...
예수를 “비엘세붑”이라고 불렀던 그 바리새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책망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예수께서 그들을 “비엘세붑.”이라고 부르셨을 때.
그런데 우물가의 창녀는, “네, 이 사람은 메시아예요. 성경은 그분이 이 일을 하리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시겠죠.
그 예정된 씨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빛이 그 씨를 비추자, 그 씨는 생명으로 나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콘크리트를 잔디밭 위에 쏟아 붓고, 겨울에 그것을 죽입니다. 그 이듬해 봄에, 잔디 대부분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콘크리트 사방 주위에서입니다. 그 돌 아래에 있던 그 싹이 난 씨가, 해가 비추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것은 꿈틀거리면서 그 콘크리트 주위 쪽으로 옮겨가서 그 가장자리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개를 삐죽이 들어올릴 겁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생명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해가 식물을 비추면, 그 식물은 살아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사람 안에 있는 성경적인 생명을 비추면,
그 생명은 곧바로 열매를 맺습니다. [브래넘 형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얼마나 진실하고 정직해도, 얼마나 여러분이...아니라고 말하고, 그들이...이 옷차림을 잘못하는 여자분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쯤) 옷 벗는 여자들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은 아니라고 해도, 여러분은 자신이
그렇다고 믿을 수가 없다고 해도. 여러분은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책에서는, 여러분은 간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그의 마음에 그녀와 더불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여러분을
내보였던 겁니다. 아시겠죠? 그 생명이 거기에 놓여져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여러분은 그걸 보고서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어, 나는 존스 자매를 알아요. 존스 형제님은... 목사예요. 그의 아내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요.”
저는 그런 건 개의치 않습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라 하고, 내 말은 참되다 하라.” 하셨습니다. 그건 성경입니다.
그 빛이 정말로 그 씨에 비추면, 그 씨는 생명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 모세의 위대한 눈, 그의 독수리 눈은 이집트의 영화 너머를 바라봤습니다.
오늘날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자는, 교회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빛이 비추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입증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 매달려 있는 그 불기둥을, 그리고 약속된
표적들과 기사들, 성경이 놓여 있고, 그것이 생명으로 나옵니다; 그게 아무리 작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소수의 무리 안에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무리는 언제나 소수의 무리입니다. 아시겠죠?
“적은-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선한 뜻이니라.”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파로부터,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들여보내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생명을 받도록 정해진 이들이라면 말이죠.
시므온을 보세요, 생명을 받도록 정해졌습니다.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한 아기의 형태로 메시아가 성전에
오셨을 때; 시므온은 뒤에 있는 방에서 글을 읽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를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시므온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은 시므온 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 주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계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가 일하고 있는 데서 이끌어내었고, 그는 걸어 내려와 그 아기를 안아 올렸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으니, 주의 종이 평안히 가게 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구석에는 밤낮으로 주를 섬기던 안나라는 나이 많은 앞 못 보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도 예고하면서,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다. 나는 그가 오시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에, 그가 거기에 있을 때...그녀 안에 있던 그 작은 생명은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다!”
그때, 어린 아이의 형태로, “사생자”로, 포대기에 싸여서, 그 동일한 생명, 그 빛이 그 건물 안으로 들어옵니다,
건물 안으로 올라옵니다. 성령께서 그 늙은 소경 여인에게 임하셨고, 그녀는 성령에 이끌려, 그 사람들을 헤치고
이끌려 와서, 이 아기 앞에서 서서; 어머니를 축복하고 그 아기를 축복합니다.
그 아기에 대한 미래가 어떨지도 말했습니다. 아시죠? 생명을 받도록 정해졌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을 보세요, 열 두 명도 안 되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구원받았던 사람은 여덟 명의 혼뿐이었습니다,
그다지 많지 않았죠? 하지만 생명을 받기로 정해진 자들은 다 그 때에 들어옵니다.
성령께서 매 시대마다, 그 사람들을 이끄시면서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모세의 믿음이 그를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것을 보도록 인도했음을 압니다. 내일을 보십시오.
영화로움 대신에 약속을 보십시오. 조직 대신에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소돔에 있었던. 롯은 많은 돈이 주는 가능성들을 봤습니다. 롯은 건너편 소돔에서 본 가능성들을 보고...
히브리인이고, 거기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왜냐하면 그는 굉장히 영리한 인물이었고,
아브라함의 조카였으니까요, 그래서 소돔 쪽으로 가겠노라고 선택했습니다. 롯의 지성은 번영의 영화를 보도록
했습니다. 롯의 지성은 영화의 축복을 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그것으로 인해 너무도 마비되어,
그런 삶을 파괴하려고 다가오는 (심판의) 불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큰 조직에 소속되는 것의 가능성을 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교하는
데서 오는 가능성들을 봅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그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마비되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말하자면, 영화배우들처럼 행동하고
탈렌트들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의 남성들은 텔레비전 코미디언들(개그맨)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은 교회들을 마치 어떤 현대적인 집회장소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만 채우려고.
그들은 아마도 그 교회와 잘 지내게 된다면 감독이나 총 감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그들 앞에 똑바로 제시될 때, 말씀은 버리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사람들 안에서
살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입증 받는 말씀을.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원하지 않습니다.
말하길, “우리는 그런 것과는 연류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교제 카드를 날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교파의 서열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롯처럼 정직한 여러분들, 소돔에 앉아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시죠? 그렇죠? 그렇죠? 그들이 앉아서 뭘 하고 있었죠?
그들은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그 조그마한 믿음을 마비시켰습니다. 그 믿음은 역사할 수 없습니다.
자, 모세는 다 내주었고, 그는 앉아서...그의 믿음은 세상을 마비시켰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영화를 마비시키던가, 그 영화가 여러분의 믿음을 마비시키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자, 여러분은 둘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바뀌지 않음을 아시겠죠?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은 큰 것들을, 큰 조직을 추구하는 것을 봅니다. “나는 어디어디 소속입니다.”
그렇죠? 그들은 거기로 내려가서, 보세요, 그들은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약간 지적인 뭔가를 가지고 그대로 지냅니다.
신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불기둥, 하나님의 빛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건 정신감응이야.”하고 말합니다.
며칠 전, 어떤 남자분은 주의 천사의 사진을 보더니, 침례교 목사인데, 그 사진을 비웃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건-그건 신성모독입니다. 아시겠죠? 그건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그건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네.
그건 신성모독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볼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분은 희생제물 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비엘세붑, 마귀”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할 때...예수께서는, “나는 너희가
그 말을 하는 것을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동일한 일을 할 때, 너희가 성령을 거슬려 말한다면
(훼방하면) 그 말은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절대로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말 한 마디만이라도 여러분이 성령을 거슬러 말하면 그걸로 끝장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나서...
왜냐하면, 그 생명이 만일, 만일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그것을 보게 될 때
그 생명은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물가에 있던 그 조그만 여인처럼, 그 밖에 여러 사람들처럼
그것을 알아볼 겁니다. 하지만 그게 거기에 (씨) 없다면, 그것은 생명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생명으로 나올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늘, “순무에서는 피가 나올 수 없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순무에는 피가 없으니까요. 자, 그것도 똑같은 겁니다.
그건 여러분이 가진 작은 믿음을 마비시킵니다. 롯은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영화를 파멸시킬 불을 볼만큼 충분한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인기를 원하는 여성들, 교회에서 다른 여자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고 싶어 하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그들은 화장을 함으로써 더
예뻐질 가능성들을 봅니다. 그들은 더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짐으로써 더 예뻐진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른 누군가처럼, 영화배우처럼 행동함으로 써요. 저는 그것이 그들의 믿음을 마비시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여자는 영예롭지 못한 여자”라고 말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여자는 하나님 앞에 가증함이 된다,” 그들이 입는 바지나, 짧은 바지,
그런 것들. 그들의 믿음은 그저 무감각해져서 일상생활이 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여러분이 가졌던 그 작은 믿음을 마비시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회에 가는 일조차도, 아시겠죠?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겁니다. 롯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건 롯을 마비시켰고, 그곳에 있던 그의 사람들을 마비시켰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입증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롯의 삼촌이었죠, 그는 그 영화를 바라보지 않았고, 그런 일과
전혀 무관하기를 바랬습니다. 어렵게 살고 혼자 떨어져서 살아야 했지만. 그리고 사라도 어려운 환경에서,
척박한 땅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나 인기를 얻을 가능성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라는 아름다웠습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자기 남편 편에 서서 심지어 ‘주’라고 부를 정도까지 남편에게 순종했습니다.
저 아래 신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믿음에 순종하는 한은, 너희는 사라의 딸들이라.”
아시겠죠? 남편을 자기의 ‘주’라고 불렀었습니다. (베드로전서3장6절)
주의 천사는 그들의 조그마한 장막을 방문하시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들어가 살 집도 없었습니다;
그저 황량한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 날이 다시 재현되는 것을 아시겠죠? 그때와 똑같이?
다시, 큰 믿음을 가진 모세는, 현 세상의 보이는 것들에게 “무시”할 수 있었고,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올 영광의 고난의 길 쪽을 택했습니다.
왜죠?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약속을 봤습니다. 그는 그 마지막 때를 봤습니다.
그는 미래를 보았고, 믿음을 작동시켰습니다. 그는 눈으로 보이는 이곳에서의 모든 가능성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장차 파라오가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모세는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오,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현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현 세상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세상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것에 눈길을 주지 마시고, 저 먼 미래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선택하고, 파라오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집트가 온 세상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곧 온 세상의 왕이 될 사람입니다.
사십 세쯤 되는 젊은이였고, 곧 왕위에 오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절대 자기의 지성을 보지 않고...
날마다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할렘. 그 영화로움을 보십시오; 앉아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앞에서는 스트립쇼 여자들이 춤을 추는 것을 쳐다보면서, 옆에는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 예쁜 여자들이 있고...
보석들이며 보물들, 군대는 밖에서 지켜주고. 그가 할 일이라곤 앉아서 산해진미를 먹으면서...“어느 어느 땅에
어느 어느 군대를 보내서 그 나라를 정복해라. 그 나라를 갖고 싶구나.”하고 말하면 다 됐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됐습니다. 거기 앉아 있으면, 그 여자들이 부채질을 해 주고, 입을 열고 있으면, 그 당시의 예쁘고
아름다운 스트립쇼 여자들이 그의 입에다 포도주를 부어주고, 그를 안고는 음식을 먹여 줄 수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든 여자들이. 거기 그런 모든 영화는 모세가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어떻게 했죠? 그는 그것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것은 불에 탈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죠?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대받고
거부당한 백성 무리를 바라보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능욕을 견딜 것을 선택하고,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나는 이 파라오의 아들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주교로, 아니면 집사로, 아니면 추기경, 아니면 교황으로 삼는다고
해도, 나는 이런 것의 아들이 아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세상 것들로부터 내 자신을 멀리한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믿음으로, 그렇게 행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가 줄 수 있는 그 모든 영화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는 차기 대주교가 되는 가능성, 차기 선거에
차기 총 감독이나 뭐 그런 것들이 되는 가능성들을 다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주교가 된다면, 나는 걸어 들어갈 것이고 사람들은, ‘신부님’하고 부르겠지, 아니면 ‘아무개 박사님,’ 아니면
‘아무개 장로님.’하고. 그들이 모여 있는 모든 목사들은, 내 등을 토닥거리면서, ‘이봐, 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야.
정말이야. 오, 쉬, 쉬, 쉬, 조용, 여기에 그 주교님이 오시네, 그렇지. 그가 하는 말은, 그건 법이네. 아시죠?
여기에 아무개가 오네.’하고 말할 거야.” 사람들은 교황을 만나 그의 발과 반지들에다 입 맞추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갈 겁니다. 카톨릭교인에게, 개신교인에게, 조직 내에서 주교나 총감독이나 뭐 그런 대단한 것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아시죠, 믿음의 눈은 그런 것을 모두 다 초월해버립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그것이 어떤 종말을 맞이할지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그 독수리 눈은, 여러분을 그것 위로
들어 올립니다, 여러분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보고,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믿음이 전혀 없던 파라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광신자들”로 봤습니다.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신들이, 자기가 주교요, 총 감독이고, 그의 신들이
그 일을 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이것은 별거 아냐,” 그래서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똑같이 그랬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들이 그 약속된 땅에 가 있는 것을 봤습니다, 복 받은 백성들로. 그들을 그 약속에 이르게 하는
것은 힘겨운 싸움일지도 모르지만, 모세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 계속 말씀드릴 수 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보세요, 그 사람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가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너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들은 이미 네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적인 사람들이다. 아시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일어날 것이다. 그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일이 보여지 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조직들은 너를 배척할 것이고,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네가 하게 될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네. 그의 믿음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불꽃이 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것을 봤습니다. 그들을 그 약속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그들과 함께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무슨 일을 하든,
그를 배척하든 상관없이, 그래도 모세는 갔습니다. 모세는 그들과 함께 나갈 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이 속뜻을 간파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 갑니다.
그들 가운데서 지내십시오, 맞습니다, 그게 여러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려운 싸움일 겁니다,
온갖 일을 다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십시오. 모세의 믿음은 말씀을 선택하게 인도했지, 세상 영화를
선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잡았습니다. 그게 모세의 믿음이 선택한 겁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최악의
것을 보고는...명심하세요, 여기에 그 영화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가장 높은, 세상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된 자(말씀은)는 어디에 있었죠? 진흙 구덩이 속에, 진흙 바르는 자들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믿음이 하나님의 최악의 것을 보게 되면, 믿음은 그것을 세상이 보여주는 최선의 것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값지게 여깁니다. 네, 그렇습니다. 믿음이 그것을 보게 되면, 믿음이 그것을 볼 수 있으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말씀이 표명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그것은 모든 영화와 주교제도나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믿음이 그렇게 여깁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가장 최악의 것, 멸시받는
것, 거절당한 것, 그런 모든 것들을 봅니다; 그게 가장 최악의 상태가 되어 있다고 해도, 믿음은 그것을 세상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것보다 수천 배나 더 높게 여길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이런 가사가 있는 찬송을
부르죠, “나는 주의 멸시받는 소수의 무리와 같이 가겠네.” 아시겠죠? 오, 세상에!
왜냐하면, 아시죠,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해지길 원하시는 것을 봅니다. 오, 저는 이 말이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현재를 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여기 이것을 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보고,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게 믿음이 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길 원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것을 통하여 작동합니다. 믿음은 장거리 비전입니다.
그것은 가늠쇠를 낮추지 않습니다. 믿음은 과녁을 향해 겨눕니다. 아멘!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그것을 아십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믿음은 장거리입니다. 믿음은 망원경입니다. 믿음은 쌍안 망원경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이 주변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쌍안 망원경을 지금 몇 시인지를 알기 위해서 보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멀리 보기 위해서 쌍안 망원경을 사용합니다.
믿음이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쌍안 망원경을 들어서, 두 개다, 양쪽을, 신구약을 다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봅니다. 믿음은 멀리 내다보고, 믿음은 현재 시제가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선택합니다. 그는 끝을 바라봅니다. 이 아래쪽을 보려고 망원경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저 멀리 내다봅니다.
그는 망원경 안에 있는 십자선을 말씀 정중앙에 맞춥니다. 믿음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 일들은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이 하는 것입니다.
자 잘 보세요. 파라오가 “위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증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파라오는, “이봐, 모세야, 여기, 너는 장차 파라오가 될 사람이다. 내가 죽으면 너에게 이 홀을 건넬 것이다.
내가 이 홀을 건네줄 거다. 네 것이야. 알겠니? 자, 이것이 위대한 것이다. 너는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
모세. 너는 주교가 될 거다. 너는 이거, 이거, 이것이 될 거다. 우리를 떠나지 말아라. 여기서 함께 살자.”
하지만, 아시다시피, 파라오는 그것을 위대한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증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여자분들 잠시만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이 위대하다. 하는 것을,
하나님은 “오물처럼 더럽다.” 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똑똑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렇죠? (신명기22장5절)
여러분은 마귀를 위해서 여성의 살을 내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세상 것들을 따라 살고, 붙들고 사는 남자분들! 남자분들 용기가 없어서 여러분의 아내가 그런 일을 그만하도록
만들지 못하시죠?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러면서도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소돔사람 같아 보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잘못을 바로잡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바로잡고,
매질하지 않고, 아이가 정신 차리게 하지 않는 어머니가 있다면 진정한 어머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자,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십시오. 모세는 그가 가진 환상으로, 이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이것이 위대하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가증한 일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 보세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기 원하시는 것을 보도록 합니다. 아시겠죠?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봅니다.
추론과 감각들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기 원하는 것을 보게 합니다. 보세요. 추론은, “어, 그것은 인간적인
감각일 뿐이라구요. 그것은 오직 이성적으로...음, 이것도 괜찮지 않아요?” 아시겠죠? 그건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반대하는 그런 감각들을 사용하게 되면, 그게 바로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봅니다. 아시겠죠?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추론을 던져버립니다. 이성, 추론하는 감각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기 원하는 것을 보게 합니다,
큰 교파. 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오, 저-저는 장로교인입니다, 감리교인입니다, 루터교인입니다, 오순절
교인입니다, 기타등등. 저는 이거, 저거, 저거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감각들입니다. “저는 제일 교회에 다녀요,
아시겠죠. 오, 저는 카톨릭교인입니다. 나는-나는 이거, 저거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건, 그건 감각들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교파이고, 뭔가 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길 좋아합니다.
“음, 우리는 세상 어느 교회보다도 교인이 많은 교회예요. 우리는...”
하지만 진짜 교회는 단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교회에 등록도 하지 않습니다.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그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 교회 안에서 태어나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자신을 알리십니다. 아시겠죠? 그곳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분의 교회 안에.
하나님은 매일 교회에 가시고, 교회 안에서 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사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성막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말입니다. 만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살아계시는 존재 안에서 사신다면, 여러분의 행동은 하나님
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거기 안에 계시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 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말씀 안에서, 그분의 청사진이죠?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하셨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서하지 말라. 한 일을 행합니다. 아시겠죠? 그건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믿음은 모세를 순종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보세요, 모세는 선택...젊은 파라오가 있고, 젊은 모세가 있습니다,
둘 다 기회를 가지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의 능욕을 보았고, 그것을 이집트 전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에 이끌려, 그는 자기의 믿음이 말씀 안에서 말한 것을 따라갔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를 순종의 길로 이끌었고, 마침내는 영광으로, 불멸로, 결코 죽지 않는 데로, 하나님의 존전
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시각과 감각들은, 영화는 파라오를 죽음으로, 그의 나라인 이집트를 멸망으로 이끌었고,
그 이후로는 절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죽습니다.
저것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삽니다. 이제 선택을 하십시오. 그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 앞에
놓아두신 선택이었습니다. 아시겠죠? 믿음으로, 여러분들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자 보세요, 시각은 파라오를 죽음으로 이끌었고, 그의 도성을 파멸시켰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결코 파라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파라오가 하는 말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파라오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들의 위협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세는 자기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낼 바로 그 사람이라는 확증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절대로 파라오가 하는 말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파라오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여러분 제 말 알아들으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
믿음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걸 압니다. 믿음은, 제가 늘 말하듯이, 믿음은 커다란 불룩불룩한
근육들이 있고, 가슴에 털이 나 있습니다. 믿음이, “입 닥쳐!”하고 말하면, 모두 다 입을 다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 그는 알지도 몰라.”하고 말할 겁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여러분은 일어서서 여러분의 근육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합니다.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심을 입증해주신 후에 파라오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믿게 되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위에서
“그것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내려가서 파라오와 신하들 앞에서,
그가 그 일을 하도록 파송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때, 모세는 절대로 파라오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보세요, 그러나 파라오는 모세에게 자기의 지혜를 사용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하자, 내가 너와
합의하리라.” 그 재앙들이 파라오를 완전히 덮친 후에, 그는, “너와 합의하리라. 너는 짧게 경배 드리러 가라,
삼일 간. 그 정도의 길만 가고, 더 멀리는 가지 말아라.” 하지만, 아시죠?
그것은 파라오의 감각들이 파라오에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거기까지 가라, 그런데 더 멀리는 가지 말아라.”
오늘날 그런 말을 듣지 않습니까? “교회만 등록하시면, 그 정도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거기까지만 가라” 종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다 갈 겁니다. 우리는 끝까지 다 갈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약속된 땅으로 갈 겁니다.
우리는 여기로 나가서 교파를 만들고 정착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갈 겁니다.” 아멘.
“나는 그 약속된 땅으로 계속 갈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파라오들이 설교단에 서 있지 않습니까, 조직의 우두머리들이죠!
“자, 우리는 이 일 저 일은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음, 아시겠죠? 거기까지 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 아니에요!” 했습니다. 아시겠죠?
파라오는, “어, 왜 안 된다는 거지? 네가 그런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하지, 그러나 너와 장로들만 가서
경배해라, 아시겠죠? 너와 장로들만 가서 경배해라. 이유는, 너희 모두는 그런 종교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백성들 가운데 퍼뜨리지는 말아라.” 여러분 모세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시죠?
“가축을 한 마리도 남겨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끝까지 갈 겁니다. 우리는 모두 다 갑니다! 그들이 가지 않으면
저도 가지 않을 겁니다. 제가 여기 있는 한은, 저는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아멘. “그들도 함께 갈 수 없다면
저도 가지 않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오, 얼마나 용감한 종입니까! 아멘. “그들을 데리고 가길 원합니다.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앉아서, ‘그럼, 이것으로도 괜찮아요.’하고 말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백성들도 함께 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함께 갈 겁니다.” 아멘. 그는, “우리는 양도, 어떤 것도
남겨 두고 가지 않을 겁니다. 한 마리도 남겨 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다 그 약속된 땅으로 갈 겁니다.” 아멘!
“우리 모두다요! 당신이 주부이든, 어린 소녀이든, 나이든 부인이든, 청년이든, 늙은 남자이든, 여러분이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다 갈 겁니다. 우리 중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겁니다.” 아멘. “우리 모두 갈 겁니다,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런! 그런 종교는 거기서 논쟁거리였을 겁니다, 안 그래요? 오, 이런!
네, 모세는 여기 이것을 “거기까지만 가라”는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네, 그는 그런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안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이런! 우리는 그것을 하루 종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저는 제 설교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걸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오, 저는 이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아시죠? 마침내, 파라오는
“떠나라!”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모세의 음성으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내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실 일들은 다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낮인데도 해가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밖에 모든 일도 행하셨습니다. 날이 흑암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개구리, 파리, 이, 기타 여러 가지, 불, 연기,
그의 장자에게 죽음을, 기타 여러 일들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파라오가 마침내 “떠나라! 너희
소유를 다 가지고 떠나라.”고 말해야 할 때까지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오, 이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완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귀도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도 철저하게 순종하면 마귀도, “오, 이런, 도망가야지!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하고 말할 정도가 됩니다. 맞습니다. 여러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보세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후원해 주지 않았다면, 모세는 조롱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확증하시면서 바로 곁에 계셨습니다. 모세가 말한 모든 말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파라오는 그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주교였으니까요? 아시죠, 그래서 그는 거기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안 된다.”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파라오는, “오, 다 떠나라! 더 이상 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여기서 나가라! 네 소유는 다
가지고 가거라!” 오, 이런! 이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일을 행하시고,
모세에게 그렇게 많은 표적들과 기사들을 보여주신 후에, 모세를 보면. 자, 앞으로 십오 분 동안, 여기서 이것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그런데도 모세는...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죠?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네가 하는 말은 내 말이다. 모세야, 나는 그것을 네게 증명했었다.
너는, 그 땅에 파리가 전혀 없었을 때, 파리 철이 아니었는데도, 그런데 네가, ‘파리가 나올지어다.’라고 말하자,
파리가 나왔다.” 그건 창조입니다. 하나님 말고, 누가 땅에 흑암을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흑암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했고, 흑암이 있었다. 네가, ‘개구리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하자, 개구리가 파라오의 집에, 침상에까지 들어갔고, 무더기로 쌓아올렸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 모세를 통하여 말했었고, 내 말은 너의 입술을 통해서 창조했다. 나는 사실 파라오 앞에서 너를 신으로
만들었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행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의 상황은, 한 가지 작은 시험이 생겼고, 모세는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에 큰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아시겠죠?
모세는, 우리가 여기서 읽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그들은 파라오가 추격해 오는 것을
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겁을 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행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여정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한데 모으셨습니다. 그들은 부름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들은 각 교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다함께 모였습니다. 모세는 거기로 가서, “주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서 이 일을 행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모세야, 너는 내가 너에게 이 일을 하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지.” “네, 주님.”
“좋다, 너는 가서 이렇게 말해라, 그러면 그대로 되리라,” 여기 파리가 나옵니다. “이렇게 말해라,”
그러면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행해라,” 여기에 그것이 나옵니다. 모든 일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절체절명의 문제에 봉착했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내가 그들이 여정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들은 다 부름을 받아 나왔다.
교회는 한데 모여 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여정을 시작하게 했다. 이제, 모세야, 그들을 데리고 가거라.
내가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도다. 나는 앉아서 잠시 쉬어야겠다.”
모세는, “오, 주님, 오는 걸 보세요, 파라오가 추격해 오고 있어요! 백성들은 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하고 말했습니다. 그걸 보세요, 그런 모습은 인간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완전히 인간적인 본성을 표출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항상 하나님이 여러분 등 뒤에 서서
떠밀어 줘야 무슨 일을 하는 본성 말입니다. 자, 그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보아왔는데, 아직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등을 떠밀어 줘야 일을 합니다. 아시겠죠?
모세는 약간 느슨해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가서 주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보겠습니다. 네, 네, 주님께서 말씀하십시오. 어, 좋습니다, 그걸 말하겠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 일을 위해서 임명하셨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여기 모세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모세는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자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모세는 이미 여기에서 예언했었습니다, 모세는,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인들을
앞으로는 보지 못하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곧바로 이렇게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죠?” 아시겠죠? 모세는 거기서 예언을 꽤 잘했었는데. 아시죠?
모세는 그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들에게 말해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 안에 있었다면,
그것은 모세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말을 하면,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한 말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는데, 지금 여기서 모세는 부르짖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오, 그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제 모습이 아닙니까! 제 모습이 아닙니까!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네가 말하는 것은 일어날 것이다. 나는 너와 함께 있노라.”고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순간 어떤 상황 하나가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주님, 어떻게 하죠?
어, 주님, 어디 계시는 겁니까? 제 말 듣고 나 계신가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임명하셨고, 그를 입증해 주셨고, 증명하시고 그를 통해서 모든 일을
역사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하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 세상에! 충분히 표현하죠?
인간은 쉬고 싶어 하고 하나님이 밀어주시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여실히 표현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하여 자기를 기름 부으셨음을 알고 있었고,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모세의 말들을 입증하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백성들이 구원함을 받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적들과 기사들을 통하여, 그들을 한 무리로 다 끌어 모으셨습니다. 여러분 제 말을 듣고 계십니까? 아멘.
그들을 한 무리로 함께 모으시고, 모세의 주장들을 입증하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그 표징이
있었고, 여기에 그 증거가 있었고, 모세가 말한 모든 것이. 그때 모세는 그들 가운데 선지자로 왔었습니다.
모세가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존중해 주셨고, 심지어 파리들을 창조하여 나오게도 하고,
여러 가지가 창조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모든 것을, 여기서 하나님은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기다리고 싶어 했습니다. 아시겠죠?
모세는 자신의 소명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였음을 알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행하도록 임명된 그의 일은 “주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니라.” 였습니다.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아멘.”]
흠! 왜 모세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기다렸을까요?
모세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여기에 이 백성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파라오가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죽을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하죠?” 흠! 흠!
모세는 그들이 할 일을 이미 예고했었습니다. 모세는 이미 말을 했습니다, 그 일을 하리라고.
모세는 그가 성장했던 바로 그 나라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시겠죠? 모세는 이미, “너희는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너희를 조롱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일어날 일을 벌써 예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하고 묻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지 보셨죠? 아시겠죠?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보고, 그러고나서 그 일을 행하겠습니다.” 허!
명심하십시오, 아시죠? 그 때는 바로, 그 당시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모세는 용감하게 일어서서 그 나라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세는 그 일이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시점에 도달해 있었는데, 그 다음에 모세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인간 아닙니까? 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 할까요?” 허!
모세는 이미, 예언을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말한 것은 다 존중하셨고, 모세는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하고 말했어야 했을까요?
거기에는 한 가지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필요를 위해서 말하는 일은 모세에게 달린 일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거죠, 사용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입증하셨었습니다. 그것은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심을 보게 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뒤에서, 모세는 기다렸습니다, “자, 주님, 저는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하면서.
“네, 저는 가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형제님, 그게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입니까?”
“네, 네,” 하고 모세 형제님이 말합니다, “그건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입니다. 그래요.”
“좋아요, 우리는 이제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은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자 하나님께서 그를 여정을 떠나게 했습니다.
교회는 이미 부름을 받아 나왔고, 그들을 여정 가운데 있게 했었고, 그들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주님, 그것이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입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믿음을 가지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믿음,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입증해 주신
그 은사 안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모세와 백성들에게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증명해 주셨었습니다,
말씀에 의해서와 말해진 것들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그것은 분명하게 동일시되었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모세는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은 이미 분명히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미 이런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미 파리들과 이들로, 그가 그런 것을 말을 함으로 창조되게 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들이 바로 앞에 놓여 있었을 때,
여기서 모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오, 이런!
저는 이것이 우리 마음 깊이 새겨지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그 사실은 여러분이 이 정도로 위축되게 하지 않습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
모세가 자기의 잘못들을 얘기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우리의 잘못들을 바라보면 말입니다. 아시겠죠?
여기 모세가 있습니다, 거기에 서서, 성경말씀에는 그 일이 일어날 때가 바로 그때라고 말해주고 있고,
하나님께서 불기둥 안에서 모세를 만났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기둥은 백성들 앞에 가시면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모세가 말한 것은 다 이루어지고, 심지어 여러 가지가 창조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던 일들을 행했고, 그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보여주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약속된 땅으로 데리고 가려고 일으켜 세운 그 백성들에게 그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때 모세는 서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그게 인간입니다, 원하는...
로이 슬로터 형제님이, 저기 문 바깥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은 저에게 어떤 일을 행하는 누군가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길, “어, 저는 이런 일을 행했고, 지금은 그렇게 되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오늘 그렇게 사람들을 어깨에 기대도록 받아주시면, 내일은 그들을 업고가야 할겁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오늘 어깨에 기대도록 받아주면, 내일은 업고가야 할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게 모세가 행하고 있던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세를 임명하시고 그 일을 하도록
그 일을 증명해 주시고 난 후에 모세를 업고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모세, 말을 하세요. 저는 당신이 거기서 그렇게 하는 걸 봤어요.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당신을 존중하셨어요,
오늘도 당신은 옛날의 모세와 똑같은 분입니다.” 아멘. 아시겠죠? “해 보세요!” 아멘.
모세는 그것을 알고 있었어야 했지만, 몰랐습니다. 좋습니다. 그때 그랬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모-...”
하나님께서는 진력이 났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 일에 싫증이 났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어째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이미 나의 확인을 증명해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로 그 일을 하라고 보냈다고 말해주지 않았느냐? 가서 이 일을 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느냐?
내가 이 일을 하겠고; 내가 네 입에 있겠고, 너를 통하여 말하겠고,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너는 표적들과
기사를 보일 것이라고 약속해 주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대로 행하고,
네 주위에 있는 모든 원수들을 멸하지 않았느냐? 이제 너는 여기 홍해에, 임무 수행 중에, 내가 너더러 하라고
한 일을 하면서 서 있는데, 여전히 소리를 지르면서 내게 부르짖고 있구나. 너는 나를 믿지 않느냐?
너는 내가 이 일을 행하라고 너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오, 그게 바로 인간이 아닙니까! 세상에!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로 너무나도 그 일에 싫증이 났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너는 네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안다. 너는 네가 이 백성들을 그
약속된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는 걸 안다. 그렇다. 너는 지금 진퇴양난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거기에 한 가지 필요함이 있다. 너는 뭐 때문에 내게 부르짖느냐? 너는 왜 나를 바라보고 있느냐? 너는 어째서
나를 부르느냐? 내가 그것을 백성들에게 증명하지 않았느냐? 내가 네게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것을
부르지 않았느냐?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느냐? 이 백성을 그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내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불러서 네게 내가 그 일을 하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일은 네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라고,
내가 불러서 내가 너를 그 일을 하라고 보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내려가서 네 입술과 함께 하겠고,
네가 하는 말은 뭐든지 다 그것을 입증하고 증명하리라. 내가 그 일을 행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사소한 일이 생기면, 어째서 너는 어린 아기처럼 행동하는 거냐? 너는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백성들에게 말해라,” 아멘, “그리고 전진하라!” -아멘.- 그렇습니다. “부르짖지 말아라. 말하라!” -아멘.-
오, 저는 그게 맘에 듭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그냥 백성들에게 말하고 너의 목적을 향해 전진해라.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게 질병이든,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죽은 자들을 일으키든지,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해라! 내가 그것을 증명하였도다. 백성들에게 말하라.”
엄청난 교훈 아닙니까! 엄청난 교훈 아닙니까? 오, 이런, 우리가 서 있는 이 여정의 단계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 시점을 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세 번째 당김에 있습니다. 보세요,
우리는 바로 문 앞에 있습니다, 주의 강림의 문 앞에. 더욱 가까이 왔습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저는 잠시 강영우 박사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1944년에 태어나 13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때인 14살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실명하자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졸지에 2남 2녀의 가장이 된 그의 누나도 너무 많은 일과 생활고로 인해 과로사로 돌아가시고,
그는 장애인 재활원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년간에 걸쳐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합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갖고 있는 열 가지를 감사하자.”는 설교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그는 맹인학교에 입학하였고,...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이력을 쌓게 됩니다.
그는 “진짜 장애는 육신적 장애가 아니라 믿음의 장애”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영적 장애”를 지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의 저서로는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가 있습니다.
그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나는 낭떠러지를 만나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외치며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지만 그분은 나를 낭떠러지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어떻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며 매달렸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러고도 내가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날개가 달린 새였다는 사실을....(아멘.)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깊은 낭떠러지를(온갖 슬픔들, 육제적인 병마, 우울증,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만나다고해도 또한 아무리 높은 산을(재정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남편과의 문제, 아내와의 문제, 부모와의 문제)
온갖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만나다고해도 믿음의 두 날개를 펼치면 못 오를 산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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