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재교
5월 22일은 9년 전에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에 완주군월남참전기념비를 세운 뜻 깊은 날이다. 수많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앞장 선 전우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참전한 전우들이 모여 기념하고 서로 안부도 확인하며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토론도 한다. 참석 못한 전우도 있지만 사망한 전우는 미망인이나 후손들이 참석한다. 이곳에는 6.25 참전용사 독립유공자기념탑도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 참전 전우들은 대리석에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다. 한옥으로 된 회랑과 회의실도 있고, 주변도 잘 단장되었다. 전우들은 이날만은 전투복을 입고 행사를 하자고 상의해서 형편대로 하자고 합의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개구리전투복을 입고 참석한다.
이날은 마음이 새롭다. 과거 이 전투복은 월남에서 처음 입고, M16소총과 실탄 360발 탄창 2개 수류탄4개 탄띠와 수통 2개를 지급받고 개인 지하호도 분배되어 현지적응훈련이 시작되었다.
매복 작전 중 호를 팠고, 크레모어지뢰의 설치와 철수, 모기퇴치, 전우와의 손짓대화, 전투 중 부상자 처리, 등은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었다. 2주 적응훈련이 끝나고 M16소총은 0점 수정 후 완전무결하게 기름칠을 해서 BOX에 넣어 우리나라 전방으로 보내는 시기였다. 이 M16은 실탄을 넣고 정조준하면 무엇이든지 백발백중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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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현대화는 월남참전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쳐 이룩한 것이며, 대한민국 발전도 월남파병의 달러수입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포항제철소를 세웠다. 그것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과거를 모르고 살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서 대한민국 참전용사에 지급한 수당도 국가가 사용한 뒤 참전용사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전투복을 입고 밤샘 포성 속에 총을 겨누던 순간과, 억수 같은 장댓비 속에서 앞과 옆만 보는 전우의 눈빛이 기억난다. 살아서 돌아가야 된다는 절박한 다짐을 하곤 했었다. 수십 수백 번 조상님들께 살아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던 순간들을 회상한다.
낮에는 포성과 전투비행기, 헬기 소리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전쟁터에서 수많은 난관을 이겨낸 힘이 제대 후 사회생활의 기둥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무서운 것이 없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그 신념을 갖고 있다. 작전이 시작되면 하루 전부터 포사격이 시작된다. 저녁에 쏜 포탄 피가 이층 집 높이처럼 쌓였다. 막사 철조망 뒤에는 비행장이 있다. 전투병을 실은 헬기 여러 대가 작전지로 뜬다. 헬기는 까마귀떼처럼 하늘을 요동친다. 작전이 끝나면 갈색복장의 전우들이 힘없이 내린다. '살아들 왔구나 장하다!' 혼자 뇌까린다. 떠날 때의 병력보다 적게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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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부대 안은 저녁만 되면 전시로 변한다. 눈을 감고 자지만 귀는 열어놓는다. '비상!'이란 소리만 나면 야전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세워 놓은 소총과 탄띠, 철모를 움켜쥐고 뛴다. 밖은 조명탄이 터져 땅은 개미새끼도 다 보인다. 20초 안에 120M를 갈짓자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개인호로 들어가야 산다. 호 속에는 캐리바 5.0 기관포가 설치되어 있다. 방아쇠만 당기면 수 십 발이 나간다. 이 기관포 두 발만 맞으면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부대 안은 누구의 지시도 없다. 분대별로 자기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밤에는 매복호 속에서 거의 잠을 이룬다. 밖은 포성으로 잠을 잘 수가 없다. 지금 그때 삶과 죽음의 선을 넘어 살았던 개구리전투복을 내 방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포탄에 맞아 풀 한 포기 없는 거대한 산, 분홍빛 가슴을 내놓고 있던 그곳을 떠올린다.
새벽 바나나 숲 야자나무 아래는 평화롭다. 그러나 아침 9시면 우리 부대 앞을 대형 추레라가 군수물자를 세 뭉치씩 실고 12시까지 올라가고, 12시부터 3시까지 내려오던 그곳. 송유관에서 월남인이 기름을 빼다 불이나는 바람에 불기둥이 하늘을 덮고, 주변 마을들이 잿더미가 되며, 부대도 초비상이 되었던 그곳이 생각난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가를 모른다. 옆에서 나를 지키던 전우가 죽는는데 앞에 보이는 적을 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논두렁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여자가 총을 들면 나는 죽는다. 지난날 모 일간지에 양민학살이네 민간인살해네 하는 보도가ㅡ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나라 없는 서러움을 당해봐야 안다. 나라가 없으면 부모와 처자식도 없다. 우리 국민은 남북이 전쟁 중이다. 특히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더 참혹하다. 총구는 겨눈 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창밖은 동굴 속 같이 캄캄하다. 창문을 열고 보니 별이 보인다. 내일은 맑고 화창하겠구나 하며, 개구리전투복을 다시 한 번 쳐다 본다. 나는 아직 살아서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면서. 오늘도 문인들의 주옥같은 수필을 읽고 또 읽으며 새벽을 맞는다. 앞으로 오래 오래 좋은 수필을 읽을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