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교회> (2)
이 시점에서 스탠리 그렌츠(Stanley Grenz)가 현대신학에 대하여 내린 평가를 참고하면 쉐퍼의 비평의 적실성이 더 강화될 것이다. 그렌츠는 칼빈주의 전통에 대하여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칼빈주의 전통의 신학을 외면하는 편견을 가진 신학자이지만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시작된 구자유주의, 신정통주의 급진신학, 희망의 신학, 해방신학, 로마가톨릭 신학, 설화 신학, 그리고 일부 복음주의 신학이 모두 성경관에 있어서 전통적인 성경관으로부터 이탈해 있다고 바르게 지적했다.
현대문화는 현대문화 자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발언할 때는 별다른 방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심판을 설교하면 이스라엘이 예레미야를 핍박하듯이 핍박을 가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이들이 현대문화가 설교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초래된 참된 희생을 겪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우리 시대의 문화를 향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실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현대교회는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관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도덕적 결단을 통하여 현세와 내세, 자기 자신과 타인들을 위하여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임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 동시에 현대교회는 영성(spirituality)이 지성(intellectual)과 통일을 이룬다는 사실, 인간의 구원은 칭의, 성화, 영화의 전 과정을 포괄하며 또한 개인과 문화의 차원을 모두 포괄한다는 사실, 기독교의 복음은 바르트적인 보편구원론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보편적인 소식이라는 사실, 믿음에 의하여 사는 삶은 칭의의 순간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삶의 모든 순간순간도 포괄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못했다.
복음주의 교회들도 신앙으로 칭의 받았고 신앙이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자연주의적으로 생각하면서 불신자들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더럽고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기도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가 교리에 대하여 아무리 바른말을 하고 무신론자들을 아무리 예리하게 비난하더라도 실상은 유물론자의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1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