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화면에 커서가 나타났다. 넓은 공간은 내 손가락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우주의 지배자인 내 생각처럼 단어 단어가 이어지지 않는다.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다 그만둔다. 치밀어 오르는 것들이 멈춘다. 원고지가 그립다. 북북 찢던 종이의 파쇄에 스트레스가 날아가던 체득된 추억들이 소우주 속에서 파득거린다.
은행원은 화폐 단위인 1원을 통해 세상을 보고 글쟁이는 원고지 한 칸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보는 세상도 그 사이즈로 작다. 대망을 꿈꾸는 우주론자에게 갈 길이 참 멀다. 24개의 한글 자모가 서점 가득 메워진 책들을 만드는 기초다. 세계의 역사가 적히고 수억 명이 익는 책들도 겨우 알파벳 26자가 이룩한 성벽들이다. 최소한의 단위가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 나도 그 조합으로 인생을 그리려 한다. 그런데 지금은 원고지 칸이 아닌 컴퓨터 활자로 우주를 만들려니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생명은 우주에서 왔다. 신은 우리에게 평등을 선물로 주었다. 영혼이 머무는 우주를 잊고 지구라는 공에서 아래 위를 보지 말고 둥글게, 각자의 위치에서 똑같이 누리도록 했다. 북극에서건 남극에서건 적도에서건 누구나 자신이 똑바로 서 있다고 느낀다. 세계가 둥글다고 알긴 전엔 모두 자신의 위치가 평지요 자기 아래 누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울려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최고가 되고 싶어한다.
경쟁을 피하려 호주로 왔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경쟁하려는 나를 보았다. 돌아가려니 비웠던 시간을 메꿀 자신이 없어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이민 1세로 점점 자신을 잃어가며 나를 학대하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의미하게 보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 아이들이 왜 내게 와서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지, 가끔씩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는 시기였다. 남편과 저녁을 마치고 나면 문득 그가, 내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앞에 앉은 그 상황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그날 아침, 눈을 뜨고 짐을 꾸렸다. 아무 말 없이 옷을 갈아입는 내게 언제 올거냐는 물음에 답도 없이 기차를 탔다. 역까지 배웅해 준 남편은 떠나는 아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드니를 벗어나자 긴 숨이 쉬어졌다. 센트럴 역에서 가장 멀리 있는 역 이름에 손가락을 댔고 기차표는 미끈하게 내려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가방을 어깨에 맨 채 기차표를 손에 쥐고 종종걸음으로 역사에 들어섰다. 객차에 오르니 서너 명이 있을 뿐 출근 시간이 지난 장거리 기차는 쓸쓸했다. 멀리서 보기만 하던 기차는 씩씩하게 달리던데, 가슴에 돌덩이를 담은 여자가 타서인지 기차는 하염없이 꾸물거린다. 울릉공을 지나면서 기차는 더욱 더 헉헉거리며 간이역들로 이어진 서던 하일랜드로 천천히 들어섰다. 험준한 산들을 벗어나며 바다와 만난 기차는 푸른 목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지금까지와 달리 막힘 없이 질주했다. 그때 문득, 그림 같은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산등성이 건너 온통 녹원으로 물든 언덕 위에 나무 한 그루가 마치 한국의 소나무처럼 휘어진 채 하늘을 떠 받고 있었다. 기차가 다시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자 방랑자는 마치 그곳이 목적지인 듯 컴퓨터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기차의 문이 열리고 두 개의 계단을 내려서자 작별을 고하듯 기차는 얕은 숨소리와 함께 떠나버렸다.
기차가 떠난 곳에서 시작된 긴 오솔길이 바다까지 구불구불 흘러가고 그 끝에 작은 모텔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있었다. 집을 떠날 때는 목까지 차오른 슬픔을 토할 곳을 찾았지만 기차에서 내려선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그곳으로 들어섰다. 바다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세상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듯 했다. 흰 시트가 깔려있는 침대 옆으로 군데군데 모서리가 긁힌 작은 책상이 놓여있었다. 빛 바랜 갈색임에도 우아함을 간직한 채 나를 환영했다. 살짝 지쳐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손을 펼쳐 책상 모서리 흠집을 만지자 눈물이 흐르고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책상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저녁을 먹었는지 기억도 없다. 가져온 흰 종이에 끊임없이 밀려나오는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보니 캄캄한 바다는 없어졌고 희뿌연 새벽이 비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잠을 놓친 여행자는 바다를 앞에 놓고 바다에 나서지 않았다. 그 자리를 일어서면 실타래가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컴퓨터조차 열지 않았다. 어느틈엔가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미 점심 시간이 지나 음식 주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생선튀김으로 한끼를 때웠다. 느끼한 기름은 식욕을 날려버렸다. 다시 캄캄한 바다를 보며 창가에 앉아 쓰기를 계속했다. 아니, 내가 쓰기 보다 내 안에 겹겹이 쌓인 페이지들이 생명을 받아 지면에 그려지는 중이었다. 마치 받아쓰기 하는 것 같았다. 가끔 눈을 들어 바다를 보면 이 바다 아래가 한국 일 텐데 왜 흘러내리지 않을까, 아니, 내가 거꾸로 서 있는 것이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곤 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또 휘둘렀다. 글은 거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머리가 맑아지며 서서히 내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는 어린 아이들은 내가 한국을 떠났기에 한국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결과다. 부모님도, 시어른도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주지 못하게 했다. 남편이나 나나, 자신이 배웠던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내가 만든 역사다. 여기, 바람 부는 바다에 와 있는 것도 결국 내가 만든 것인데. 현실에서 도망친 내 모습이 바다가 만들어준 유리창 화면에 보였다. 마무리하지 못한 글의 제목과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날아가려고만 하는 철새가 결국 날기를 포기고 텃새로 거듭 나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어지럽게 쓰여진 종이들 위로 마침표를 찍게 했다.
창 밖에는 새벽이 오고 있었다. 꺼 두었던 전화기를 켜자 충전이 거의 소모되었다고 깜빡거렸다. 전화기에는 어디에서도 발신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싶어했던 나를 이해해 준 그에게 미안했다. 전화를 했다. 새벽임에도 신호가 가기 무섭게 전화를 받아준다. 고마워. 한마디 하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패잔병이라 생각해서 돌아가 길 망설이는 바보 같은 여자에게 남편은 따스하게 물어본다. “이제 돌아 올 거야?” 말없이 기다려준 가족들을 생각하고 짐을 챙겼다.
한 순간이 모여 인생이란 긴 시간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가 센트럴 역에 도착하자 어깨에 맨 컴퓨터 가방이 무거웠다. 손으로 쓰고 지운 글들이 아직 컴퓨터 속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의 길보다 빨랐다. 점심시간의 센트럴 역은 아침의 분주함과 다른 수선스런 공기로 조금씩 들떠있다. 택시 승강장으로 발을 옮기는 내 뒤로 ‘엄마’ 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는 자동으로 뒤를 향했다. 뛰어오는 아이들 뒤로 남편은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차분히 앉아 컴퓨터에 한자 한자 정성스레 옮겨 적은 다음 D 신문사에 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분신이 작은 패로 남아있다. ‘둥지 튼 철새’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준 첫 글이다. 그날 이후 원고지의 눈금이 아닌 세상이 나를 키워가고 나는 새로운 우주 안에서 여전히 내 가족의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장미혜 (문학동인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