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편지!
전창수 지음
서두
나는 내일 또다시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려 했다.
아니,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러나, 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여!
나는 많은 세월을
방황과 고통으로
보냈네.
그리고,
나는 결심했네.
철저하게 고독해지기로.
그리고,
나의 사상을 여기에 요약하네.
오직
나의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그것을 꿈꾸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불행한 친구에게
친구여!
자네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행복한 삶을 져버린 자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해 주려 하네.
세상은 흔히 재산으로 그리고 명예로 계층을 구분하지.
하지만 자네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 가지 예를 들어보지.
자네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겠지? 어릴 때를
기억해 보게. 그때의 그 소박한 선물들, 정성을 들인
생일축하엽서, 진심어린 축하의 말, 그러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가?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었나?
그러나, 지금은?
선물엔 어떠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생도 마찬가지네.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무의미하겠지.
웃지는 말아 주게.
내가 찾는 인생의 의미는
계층을 구분하는 것이지.
인생에는 세 가지 계층이 있네.
뭔지 알겠나?
그것은 재산을 구분하는 것과 같네.
이제 내 말에 감이 잡히나.
내가 생각하는 상류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있네.
만약, 돈 버는 일이 인생의 의미를 그에게
준다면 그는 돈 버는 것만으로 행복하네
그것의 성취여부는 중요하지 않네.
친구여!
자네는 행복한가?
그것 보게.
자네는 결국 하류층에 속하는 것이네.
나를 비난하진 말게.
단지, 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뿐이니까.
마지막으로,
행복하길 바라네.
-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에게
친구여,
오늘은 너무 우울하네.
나는 생맥주 한잔을 마시고 성당으로 향했네.
성당을 다닐 생각은 없네. 단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네.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마루바닥에서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네.
그들은 순수한 아이들이었네.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
순수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네.
미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들의 놀이와 나의 순수가
교차되었네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여기에 앉아 있는가.
눈물이 글썽였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순수를 잃어가고, 어린이의 순수를
잃게 하는 거네.
그러나 친구여!
자네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아나?
나의 상념은 이렇네.
고독은 오직 혼자가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주위에 있을 때
그때만 느낄 수 있네.
외로움은 어떤가? 언제 어느 때든 느끼는 것 아닌가?
자네에게 묻는 것이 아니네. 어떤 뜻인지 아나?
나는 지금 고독을 느끼네.
하지만 그 순간은 격렬한 외로움을
느꼈네.
믿은 사람들은 미사가 끝나고 돌아가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오지 않고
나를 욕하는 여인들만이 나를 외면한 채
지나가고 있었네.
자네는 그러한 느낌을 믿는가.
그렇다네. 나의 영혼 속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네.
그날밤 나는 고통으로 거리를 방황했네.
친구여!
나의 시련이 나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대답해 줄 수 있는가?
아마, 내가 고민하는 것은
인간의 정에 관한 것일지 모르네.
이제, 고독으로 침잠하려 하네.
그럼, 부디 오래 살게.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나를 강요하는 친구에게
친구여,
더 이상 나에게 종교를 강요하진 말게!
나도 한 때는 종교를 가졌었네.
그리고, 그들의 위선에 나는 종교를 바꾸었지만,
나는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버렸네.
친구여,
나는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종교를 갖지
않는 거네.
나는 신을 믿네. 그러나, 종교는 믿지 않는다네.
종교 단체는 나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자네는 아나?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rPT나?
그리고, 한 가지 물어보겠네.
자네는 종교를 가진 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 나는 오랜 방황 끝에 종교를
가지게 된 그러한 사람들을 존경하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흘러가는
사람들, 나에겐 그런 사람들이 모두 위선자로
보이네
선량한 마음 겉으로 포장된 종교라는 위선…
자네는 나라는 인간을 얼마나 아는가?
세월이 흐르는 대로 사는 인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게나.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게 있어선 큰 의미를 주는 거라네.
친구여!
종교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네.
특히, 그러한 교리는 더욱 더 나를 위선자로 몰아넣는다네.
자네가 어렸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선생님께
사과한 적이 있을 거네. 그러한 억울함과도 마찬가지로
나의 죄가 뭔지도 모르면서 죄를 사해야 한다는 건
그러한, 비현실적이고 보수적인 틀에 박혀 있는 것과 같네.
관용은 종교 단체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관용이 없는 종교인들은 과연
진실한 종교인이라 할 수 있겠나?
친구여, 관용을 베풀게
어떠한 관용인지는 자네도 잘 알 것이라고 믿네
그럼, 마지막으로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나에게로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친구,
자네는 이럴 때의 심정을 아는가?
모든 걸 잊고 저 푸른 하늘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싶은 이 마음을.
‘철조망’이라 부르는 방충망의 틈새로 나의
머리카락을 날려 보냈네. 그것은 어디로든 떠도는
내 영혼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무엇인가 고통에 처할 땐 사람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행동하곤 하네. 나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네.
친구,
자네는 수탉이 새벽에 울고, 암탉이 일을 낳는 의미를
아는가? 잘 생각해보게.
자네에게 좀 선물을 정성스럽게 포장했네.
정성스럽게 뜯어주길 바라네.
그리고, 선물의 내용은 이런 것이네.
병아리 두 마리가 알에서 나온다. 한 마리는 절름발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지냈다. 나머지 한 마리마저 절름발이가 되었다.
어미닭은 슬펐다. 닭주인은 병아리 한 마리는 팔아야 한다고
한 마리를 내놓으란다. 어미닭은 난처했다. 차라리 둘 다 데려가라…
그러나, 소용 없었다. 결국, 어미닭은 몇 날 몇 일을 고민했다
드디어, 어미닭은 결정했다. 선천적인 절름발이를 데려가시오.
그리고, 나를 죽여주오…….
친구,
어쩌면 아무런 뜻도 없을 만한
이러한 비유에 어떠한 느낌을 가지는가?
많은 것을 느껴보게. 대답은 필요 없네.
친구,
닭이 알을 깨뜨리듯이 그렇게 살아가게나.
자네에게 항상 따스한 온정과
마음의 여유를(가) 가지기(있기)를 바라네
오늘도 우리 생의 일부는
지나가고, 조그마한 상처는 항상
존재하는 거라네.
그럼, 부디, 몸조심하게나.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친구여,
자네는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나?
솔직히 얘기하지만, 나는 어디서부터 서두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네
사람들이 나한테 그러더군. 꽤나 신경질적으로 생겼다구.
그러나 친구여,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네.
나는 비관론자,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면 염세주의자라네.
찡그린 얼굴에 교활한 웃음을 띠고, 그렇지 않으면
평온한 숨소리에 억지 웃음을 띠는 그러한 얼굴들을
경멸한다네.
그리고, 나의 행복조차 비웃는다네.
그러나 말일세, 나는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아버렸다네.
자네는 죠스란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어떤 영화인진 모르지만, 분명히 거대한 상어였네.
상어잡이 선장과, 시장과, 상어학술탐험가 그들은 그러한
상어를 잡으러 다녔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내용보다는
그 선장의 최후가 얼마나 허탈한가 하는 거였네.
침몰되는 배에 미끄러져 상어의 입 속에 빨려 들어가는
선장의 몸짓 –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경멸스러웠는가?
인간은 죽음 앞에서 결코 행복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네.
친구여,
나는 나의 성공을 위하여 버렸던 기쁨을
포기해버렸다네. 이제 나는 유동적으로
살아가기로 했다네.
내 삶의 어떠한 실패도 남을
원망하지는 않겠네. 단지, 내 운명을
비관할 뿐…
또, 친구여, 자네는 아는가?
나는 또 한 여자를 알아버렸다네.
그녀의 얼굴은 특별히 예쁘거나, 특별히 귀엽다거나
하는 매력은 없지만,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미소를 띠우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네.
그녀로 하여금 나의 하루는 평안하였다네.
또, 결혼까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네.
친구여, 자네는 나를 비난하진 않겠지?
나는 지금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네.
첫눈에 반했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도 깨달아
버렸다네. 같은 어구를 되풀이해서 지루한가?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친근감이 느껴진다는
건 결코 부인할 수 없네.
미안하네.
이렇게 어수선한 이야기로 자네의 마음을 흐린 것 같네만.
그럼, 잘 있게.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나를 사랑하는 친구에게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써 보네.
요즈음, 나의 상태는 더 이상 형언할 수 없다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 주게. 단지, 짜증 나는 더위가
나를 정신없게 하더군
자네는
좋은 옷과 나쁜 옷을 구별할 줄 아는가?
어떤 책을 보니
좋은 것과 친한 것을 다르다고 철저하게 구별하더군.
그러나 말이네, 그 근본은 모두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차별 속의 평등
그러한 어떤 논설에 공감을 느끼며
오늘을 살아간다네
미안하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
그럼, 이런 짜증 나는 더위를 잘 뎐디고
질병 조심 하게.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더위를 먹은 친구에게
아직도 더위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친구여, 사랑은 어떤 것인가?
주고서 받지 않아도 행복함은 나의 진실이네.
자네의 가슴은 지금 얼마나 타오르고
있는가?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네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자네는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더위를 삼키지는 말게나. 단지, 꼭꼭, 씹어서
철저하게 소화를 시키게나.
내 말이 너무 어색한 지 모르게지만,
사랑을 너무 가볍게 생각지는 말게나.
이렇게 더운데 선풍기가 삐걱거리면, 나의 가스엔 화로가
타오른다네. 뜨거운 불길!
이럴 때, 얼음물 한잔이 안타까운 마음을 자네는
이해하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군. 친구여,
사랑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게나.
어쩌면, 아이러니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말을
되도록 신중하게 받아주길 바라네.
나는 오늘도 최소한의 위선자가 되지 않기를 노력한다네.
더워진 날씨를 무사히 견뎌내길 바라며…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방황을 괄시하는 친구에게
친구여,
나는 더 큰 방황을 위해 오늘을 고통스럽게
방황한다네
자네는 인격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그것은 위선이라네. 나는 인격 그 자체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네.
고요히 잠드는 밤을 나의 고독과 진실로
가득채운다네.
전에 며칠간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네.
‘막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어머니의 향수와 함께
잊을 수가 없다네.
키울 사람이 없어서 다시 갖다 팔았지만
어느 새 나는 그에게 정들어 버렸다네.
그리고, 이제는 금붕어를 기르고 있지.
처음엔 별 흥미가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구미가 당기는 건 미묘한 생물의
세계라네.
그들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네.
그러면서도, 먹을 걱정은 하지 않지.
오, 친구여!
나는 다시끔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네.
졸음이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군
내일 다시 얘기해야겠네
8월 18일
친구여.
자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네.
그것은 흔한 말이지만, 항상 새로운 의미로 너에게
다가올 걸세
경험하지 않고서는 솔직한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는
거라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네. 외적인 고통보다는
내적인 고통이 훨씬 더 아픈 거라고.
그러나, 지금 나의 외적인 고통은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를 느끼게 하지.
외적 고통이라는 건 나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네. 단지, 내 주위의 친숙한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라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그렇다네. 나의 외적 고통은 그러한 교차로에서
시작됐다네.
내 말이 너무 어려운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믿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나는 독신이기로
결심했다네. 나의 끝없는 정력을 오직 희생과 봉사로
一進(일진)하겠네 (할 거라네)
친구여, 내 문장력의 비약을 비웃지는 말아주게나.
그럼, 살아 있는 생활이 뜻있기를 바라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8월 19일
최초의 친구에게
자네는 최초란 말에 어떠한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최초란 흔한 것이네.
흔히들, 최초의 과학자. 최초의 수상자, 최초의 갱신자,
최초의 제작비 등등
그러한 말을 함부로 붙인다네.
그렇듯이 나 또한 나라네.
그러므로, 최초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네.
중요한 건 처음이지.
제일 처음에 누가 무엇을 하느냐 하는 문제네.
그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자네에게 해줄 말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높임으로써 스스로를
격하(格下) 시키고 있다는 걸세.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오를 일으킨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는 없는 거라네. 이러한 말이 어쩌면
나의 위선과 하세를 뒷받침해줄는지 모르겠네만,
여하간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나의 주장을
굽힐 수는 없을 걸세
그리고, 제 2의 에디슨이라든가 제2의 영화배우
등 이러한 말은 얼마나 우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그 주체자의 주체성을
망각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최초의 그 무엇이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
제2의 누군가가 된다는 것도 바라지 않네.
나는 오직 나만의 나라네. 자네는 어떤가?
인간은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있지만,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네.
한 마리의 물고기가 민물을 흐리듯이, 한 마디의
말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버리는 거라네.
흐려진 인물이 다시 맑아지듯이, 사람은 언제나
맑아질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충분하다네.
자네는 어떠한 생각으로 살아가는가?
부탁이네만,
제 2의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주체성 있는 자네만의 자네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하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8월 20일
나를 구하려는 친구에게
편지를 노리는 첩자들이 많아서 이렇게 편지를 직접
전달하게 됐네. 그들에겐 별 것 아닌 거승로 보이고
찢어버리겠지만, 나에겐 너무 소중한 편지란 걸
자네는 알겠지?
오늘은 어젯밤 꿈 얘기를 하려 하네.
사방은 산으로 둘러ᄊᆞ이고, 잔디밭에는 야외용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있네. 거기에 나의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네.
아주 어렸을 때 얘기지. 중학교 땐가?
그 때 내가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었다네. 그대도
거기 있었지.
식사 시간이었다네. 평소와는 달리 내가 밥을 제일
먼저 먹었더군. 그리곤, 어떤 친구가 더 먹으라며 떠 주는 밥을
거절하며 말해찌. “에잇, 더럽게…”
그러나, 곧 그 짝사랑이 나에게 말했을 때, 반응은 달랐다네.
“더, 먹을래?”
“응, 그, 그래…”
부끄러워하면서 나는 그녀의 그릇을 받아들고 있었어.
그러나 어느 새, 나의 이야기는 역설이 되고 말았다네.
“아, 아니야…”
그녀는 다시 자기 그릇을 받아들고 조용히 식사를 OTeksp.
거기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는가?
동정이었네. 결국, 내가 좋아할 만한 어떠한 요소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네.
만야게, 그러한 꿈에서 사랑을 느꼈다면
나는 아마도 사랑에 눈 먼 사나이가 되었을 것이네.
연민의 정 – 나는 아직도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네.
친구여,
사랑에 눈이 먼 사랑이 되지 말고, 사랑에
눈뜬 진실함을 간지학게.
그럼, 영원한 행복을 비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너무나 순진한 친구에게
내가 이렇게 문장을 띄우게 된 것은 자네의 심리에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네.
지난 번 등산 때,
자네 때문에 내가 다친 거라고 자책하지는 말아주기 바라네.
흔히 사람은 자기가 도움을 받고, 그로 인하여 도움을 준 사람이
다치게 되면 비로소 자기의 이기적인 마음을 탓하려는
본성이 있다네. 자네같이 양심적인 사람에게선,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듯 하네.
그러나 더 이상, 나를 찾아오거나 하지는 말게.
자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나로서는
자네가 안전하게 사는 것이 가장 나에게 보답하는
큰 길이라네
요즈음, 첩자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지금,
나의 안전이나 자네의 안전을 위해서나 연락을 끊는 것이
좋을 듯 하네
자네의 투명한 마음이 영원히 간직되기를
바라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8월 24일
친구에게
친구여! 놀라지 말게
지금부터 그 경위를 이야기할 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많은 여인들이 무수히 내 몸을 스쳐 지나갔네만,
그 사랑엔 진실이 없었다네. 그녀들의 사랑은 육체적 고통을
위한 쾌락의 시간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을 뿐, 대부분
하룻밤으로 나엑서 떠나갔다네. 나 또한, 그러한 몸짓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였다네.
그러나, 나에게 사랑을 정신적으로 일깨워준 건 그녀였다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란 시집을
자네는 알 것이네. 그녀의 선물은 제목만으로 내 가슴에
와 닿았다네. 어젯 밤이 새도록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다네.
“저, 성함은 언제 가르쳐 주실 거죠?”
“성함은 없어. 나는 단지 ‘잃어버린 파라다이스’일 뿐이야”
“왜, 하필 그런 이름을 쓰시죠?”
“이름? 나는 단지 그런 장신으로 살아갈 뿐이야.”
“그렇다면, 당신은 사랑의 천국도 잘 모르시곘군요?”
“사랑의 파라다이스?”
“아니요, 사랑의 천국. 그 천국에는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성숙된 사람만이 살아가죠. 그들은 쾌락에 유혹되지
않고, 오직 정신과 정신으로 사랑을 해요. 그들의
육체적 결합은 다만, 또 하나 사랑의 천국의 인원을
늘리려는 이유 뿐이죠. 당신은 그러한 정신적
사랑을 해 보셨어요?“
“아니, 나는 단지 육체적인 사랑을 해 보았을 뿐이야.”
“저를 모욕하시는군요. 그러한 것에다 사랑이란 단어를
붙인다면, 그건 반드시 사랑을 경멸하는 거예요.”
“잘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세요. 더 이상 저를 모욕호라ㅕ 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겠어요.”
“뭐지? 궁금한 게?”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나요?”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네. 그녀의 얼굴에서 어느새 진실한 눈빛이 나의 어리숙한 눈에 다가왔다네.
뭐라고 대답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어떤 면이죠?”
“정신!”
“그걸 어떻게 증명하죠?”
친구여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네. 저 여자를 행복하게 살게 해 줘야 한다고.
“그러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
그녀의 눈빛이 흐려지고, 옅은 붉은 홍조가 볼에 퍼졌네
“예, 언제까지나……”
목소리엔 거의 죽어가는 느낌이 들게 하여, 나는 섬찟했지.
그녀는 이미 나의 입장을 이해한 듯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설득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렸네.
자네에게 부탁하네만, 자네와 나의 우정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주게. 그녀는 현대의 이기적 문명사회에서
희생된 하나의 장미꽃이라네. 정말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하네.
나의 사랑이 자네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았으면
하네. 최소한의 친절로 그녀를 마주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네. 그럼, 행복하게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너무나 훌륭한 친구에게
자네가 그녀를 받아준 데 대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네.
결혼식에 대해선 마음 푹 놓고 있게. 곧, 날짜를 잡겠네.
기분이 어떤가?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서로가
주의할게 있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참고해 주기 바라며, 결코 자네와 그녀를 얘기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명심해 주게.
어떤 음식점에 마음씨가 좋으나, 생활이 궁핍해 취직한
한 여인이 있다.
어느 날, 주인의 부주의로 꽤 큰 돈이 처녀(여인)의 눈에
띄게 되었다. 처녀는 많은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저 돈만 있으면, 우리 집을 살릴 수 있을 텐데. 이럴 땐
어떡해야 하는지…’
성선설과 성악설의 결합.
여인은 그 돈을 훔치려다, 주인에 들켰다.
이때에 주인의 태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 망할 년이! 당장 경찰서로 가자”- 전자
“한 번은 용서하지. 내가 사정을 이해하니….” 후자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에 근거를 두지만, 사람의 본심은 성선설에
근거를 둔다네. 전자의 경우는 성악설이 승리한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는 성선설을 주장하는 경우라네.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네만, 그 이상은 자네 스스로
해결해 주기를 바라네.
그녀를 걱정시키지 말게. 건강하길 바라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나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혼자라는 것, 마음의 행복을 졸이지 않아도 좋다.
고독을 위한 고독, 외로움을 위한 외로움을 즐길 수 있어
더더욱 행복한 마음이 그득하다.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는다. 어수선한 거리에. 시선을 피하고
목적 없이 떠나는 영혼에 어두움을 늘인다.
수선대는 어두움에 문득 고개를 드니, 어느 사이,
많은 사람들 틈에 내가 끼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고독과 외로움의 공존을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을 때, 눈물은 이미 잠재운
나의 의식을 깨뜨렸다.
더 이상 존재하지는 말자…
그들 – 누군지 알 것 같은 한 쌍 – 의 모습이 보인다. 아, 어디갔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 저기 다시 보인다.
그들을 쫓지만 앞질러서는 안 된다. 그들이 헤어지는
그 순간끼지…….
친구여!
나는 이제 비로소 깨달았다네.
나의 방황은 결코 방황이 아닌 방랑이라는 것을.
방랑!
아무런 목적 없이 방황하면서, 기껏해야 술과 어울리며
삶의 의미를 차츰차츰 잃어가는, 갈수록 타락해져가는 영혼.
모든 소유의 욕심을 잃어버리고, 오직 방탕만을 소유하려 하는
이 역논리적인 위선과 모순에 나를 비난한다네
그러나 친구여!
자네만은 나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믿네.
열려 있는 창가로 싸늘한 바람이 나의 전신에 퍼지는 순간,
문득 죽음이 가까운 걸 느끼네.
그럼 부디, 몸조심하게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짧은 생에게
폭풍우는 끝났다.
이젠, 가뭄 뿐이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 그 어떤 날 -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
그 어느 먼 타향에서
나 자신의 생존이 그리워
뒷걸음질치며,
무늑 죽음을 깨닫고
걸음을 멈출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나 자신을
바바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진정,
나를 찾는 여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내 안에,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움직임”
그것이 꿈틀거릴 때
나는 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친구여, 자네는 기억하는가?
단지
그 분위기만으로 나에게 커다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던 여인
오늘
또 그녀를 보았네 그러나 오히려,
후회할 걸 안 보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네.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등에는 그녀를 꼭 닮은 아기가
입혀 있었고, 옆에는 약간 날카롭고 비굴함마저
느끼게 하는 인상을 가진
어떤 중년의 남자가 아기를 부축하고 있었다네.
집에 돌아와
담배연기 속에 나의 생애를 정리해 보았네.
청년 시절의 어느 여름, 나는 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강렬한 사랑을 느꼈고 그것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원하던 情(정)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네.
그 후 나의 이상은,
오직 성공에만 매달려 갔고
철저하게
고독해지기로 마음먹었다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시기 독신주의자가 되어 버린 거라네.
그러나
이제야 조금 깨달은 것 같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란 이런 것인지를.
삶의 패배에서의 방황, 이젠 끝내려 하네.
친구여!
이제 나의 남은 생애를 충실히 살아가겠네.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네.
내 평생 처음으로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되어짐을 느끼네.
내 문장력의 비약도
이것으로 끝이라네
이젠 나를 비웃을, 어떤 이도 없다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부디 오래 살게나.
9월 25일 수요일
다시 찾은
파라다이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에 대하여
정신병에 대한 자료수집 중 어느 정신병원에서 나는
자칭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의 편지를 소개받았다.
원장은 그를, ‘가장 정상적인 위험 인물’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호감이 갔고,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후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여기 있는 많은 익명의 친구가 나 한 사람이었고,
모든 인물 역시 실존 인물이 아닌, 그의 공상 속의
배우였을 뿐이다.
그는 분명 나를 여러 사람으로 느끼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러기를 바랐다. 그는 어쩌다, 나를
겨울에 비친 그의 모습으로 느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그는 그의 행복을
나에게로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한 꿈 얘기나,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그가 얼마나
찐실한 사람이었나만을 확신할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 편지를 받은 후 며칠 뒤
그는 또 다른 편지를 남긴 뒤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자살일 것이고
그는 분명
그를 찾기 위한 먼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가,
다시 찾은 파라다이스를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하기 위해……
친구에게 보내는 유언장
나는 이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
진정
정을 느껴야 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서
정을 느끼지 못하고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에게 정을 느껴야 한다는
이 엄청난 역설이 나를 짓밟는다.
나는 오직 하루의 의미만을 추구한 채
내일을 잃어버린
초라한 하루살이가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쌓아 온 고독이, 이젠
죽어야 할 때라는 걸 알려왔고
더 이상 살아봐야 다 타버린 촛불이라는 걸
느꼈다.
양초는 다 녹아버렸고, 성냥도 다 써버렸다.
이제 나에게 내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야 파라다이스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모든 걸 결국
죽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 어느 날 -
죽음의
파라다이스
- 지금 죽어가는 모든 이에게, 지금 죽고자 하는 모든 이가,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 [전창수의 어린 소설 – 2022년의 전창수 글쟁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