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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동부 랴오닝(요녕)성 지역이 세계적인 공룡 화석의 발견지로 떠오르고 있다. 몇 년 새 이곳에서 ‘깃털’ 달린 공룡 화석들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새의 기원, 비행의 기원 가설들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또 최근 들어선 공룡 화석을 정밀 분석해 깃털과 몸의 색깔을 추정하는 연구결과도 발표되면서, 척추고생물학자들과 아마추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랴오닝성 지역은 매우 고운 흙 입자들이 층층이 쌓인 안정된 퇴적암 지대를 이뤄, 작고 섬세한 깃털들이 화석으로 잘 보존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깃털 달린 공룡 화석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특히 2000년대 들어 발굴돼왔던 터라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깃털 달린 공룡 화석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그 증거가 되는 화석들의 발견 빈도가 부쩍 잦아진 데다, 첨단 분석 장비가 동원돼 화석 깃털의 미세 구조와 세포 안 색소 따위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에는 중국 고생물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 뉴스에 등장했던 몇 가지 중요한 발견들만 먼저 살펴보자. 지난해 9월 중국 연구팀은 1억5천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깃털 달린 수각류 공룡 ‘안키오르니스 훅슬레이아이’(Anchiornis huxleyi, 새의 공룡기원설을 처음 제기한 영국 생물학자 헉슬리를 기념해 이런 학명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를 랴오닝 서부 지역에서 발굴해내어 학계에 처음 보고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미국 연구팀과 함께 그 화석 깃털을 분석해 이 공룡의 몸 색깔을 추정하는 연구논문을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냈다. 연구팀은 “몸통은 짙은 회색이며 얼굴에는 적갈색 반점과 볏이 있고 긴 날개는 흰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29개 화석 깃털을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정밀 검사해 멜라닌 색소를 함유한 세포 소기관인 멜라노솜(melanosome) 구조를 분석했으며, 이런 분석결과를 현존하는 새들의 깃털 색소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이런 형상을 추정하게 됐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림2]. 복원된 깃털 공룡의 3차원 영상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제작해 온라인에 공개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충류 모양의 공룡이 아니라 새를 더 닮은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난달 말에는 <네이처>에 또 다른 랴오닝성 화석 공룡의 색깔을 추정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중국과 영국 연구팀은 1억2천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의 털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해 ‘머리에서 등까지 한 줄로 길게 이어진 오렌지 색깔의 털에다 빨강-하양 줄무늬의 긴 꼬리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복원된 상상도는 새보다는 파충류에 가까운 형상을 띠지만 몸이 털로 덥힌 공룡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3].
또 하나 주목받은 화석은 지난해 3월에 나왔다. 중국 산둥-톈위 자연박물관의 연구팀이 랴오닝성 화석 지대에서 발굴된 전기 백악기의 조각류 원시 공룡(Tianyulong Confuciusi, ‘톈위룽 콘푸시우스아이. 공자의 이름을 딴 학명)의 화석에서 목, 등, 꼬리에 달린 억센털(filament)의 흔적을 찾아내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동안 주로 육식인 수각류 공룡들에서 깃털이 발견됐는데, 이번엔 초식 조각류 공룡에서도 처음으로 털의 화석 증거가 나와 주목받았다. 이 공룡은 70㎝ 크기의 작은 몸집에 길이 5㎝ 이하의 털을 지녔으며 1억4천만 년 전~1억년 전에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림4].
깃털 공룡 화석들이 잇따라 발견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룡들이 깃털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의 깃털 화석은 주로 몸집이 작은 육식 수각류 공룡들한테서 나왔다. 척추고생물학자인 임종덕 박사(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연구관)는 “그동안 보고된 깃털 공룡들을 볼 때 대체로 몸집이 작은 육식 공룡들에서 깃털의 흔적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조각류 초식 공룡에서 처음으로 털 화석이 발견됐지만 수각류 공룡들의 원시깃털(proto-feather)과는 다른 종류의 털(filament, 억센털)이며 이것이 털인지 피부조직의 변형인지를 두고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몸집 큰 육식 공룡의 상징인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에서는 깃털이 발견된 적은 없다. 반면에 몸집이 작은 벨로키랍토르(Velocirator)나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 같은 공룡에서는 깃털의 화석 증거들이 이미 발견된 바 있다.
고생물 화석들에서 출토된 공룡 깃털을 요즘 새들의 깃털처럼 여겨서도 곤란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임종덕 박사는 “혼동을 피하려면 엄밀히 말해 요즘 새들의 깃털과는 다른 ‘원시깃털’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룡 연구라는 것이 아주 오래된 화석을 분석해 가장 타당하게 추정되는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여러 논란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깃털이 요즘 우리가 이해하는 깃털인지 또는 세포조직의 독특한 변형체인지를 두고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27일치 <네이처> 인터넷판 뉴스는 최근 공룡 깃털과 색깔 복원 연구를 둘러싸고 이것이 실제의 깃털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를 두고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쥐라기 후기의 육식 수각류 공룡인 ‘안키오르니스 훅슬레이아이’는 지난해 9월 처음 발표될 때부터 고생물학계에선 크게 주목받았다. 최초의 새로 널리 알려진 시조새(Arcbaeopteryx 아르카에옵테릭스, 시조새는 공룡이 아니라 최초의 새다)보다 훨씬 앞서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공룡 화석의 발견은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시간의 패러독스(temporal paradox)”를 풀어줄만한 유력한 증거로 부각됐기 때문이었다.
고생물학계에서는 그동안 “새의 조상은 공룡”이라는 새의 공룡기원설이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이제껏 발견된 원시깃털 공룡들의 생존 연대는 대부분 시조새 화석의 생존 연대보다 훨씬 더 최근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뒤집힌 시간’의 역설이 제기돼왔다. 허민 전남대 교수(공룡연구센터장)는 “시조새 화석은 쥐라기 후기 연대에서 나오는데 수각류 깃털 공룡들은 쥐라기 다음 시대인 백악기 연대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며 “이 때문에 시조새의 조상이 시조새보다 나중 연대에서 발굴된다는 시간상의 역설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시조새에 앞선 연대 지층에서 발굴된 ‘안키오르니스’ 깃털 화석은 시간서열의 패러독스를 풀어주는 화석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림5]
그렇다고 해도 새의 공룡기원설은 여전히 도전을 받고 있는 가설이다. 허민 교수는 “고생물,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새의 공룡기원설이 정설로 널리 퍼져 있지만, 생물학자나 조류학자들은 새와 공룡의 직접적 진화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임종덕 박사는 “새가 수각류 공룡의 후손이라는 게 학계에서 대세이지만 나를 포함해 일부 학자들은 이런 학설이 입증되려면 더 구체적이고 더 결정적인 증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깃털 달린 수각류 공룡 ‘안키오르니스’ 화석은 ‘깃털과 비행의 진화’에 관한 논쟁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놓았다. 이 공룡 화석에서는 깃털이 날개 뿐만 아니라 발과 발목 손, 꼬리에도 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면서, 공룡에서 새로 나아가는 진화 과정에서 ‘날개가 넷 달린 공룡의 시대’가 있었을 것이라는 오래된 가설이 새삼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금은 두 날개를 쓰는 조류와 달리 그 조상 격인 수각류 공룡들이 네 개의 날개 구조를 갖췄던 시기가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네 날개 공룡’과 그 깃털이 현존하는 조류의 깃털과 비행의 진화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새로운 물음으로 제기된다. 왜 발에도 깃털이 있었으며, 새가 비행하는 날개를 갖추는 과정에서 발쪽에 있던 깃털만이 사라졌을까? 날 수 없던 당시의 날개는 어떻게 지금의 나는 날개가 되었을까?
지금까지 발견된 원시깃털 공룡들은 거의 모두 시조새의 조상으로 여겨지던 육식 수각류 공룡들이었다. ‘시간서열의 패러독스’ 문제는 계속 남아 있지만, 큰 그림에서 볼 때에 수각류 육식 공룡에서 깃털 화석이 자주 발견됨에 따라, 수각류 공룡이 공룡과 새를 잇는 진화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그림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랴오닝성 지역에서 발견된, 억센털 흔적을 지닌 조각류 초식 공룡의 화석은 이런 진화의 그림에 또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새의 조상으로 여겨지던 수각류와는 완전히 다른 조각류 초식 공룡에서도 털의 흔적이 나온 것은 왜일까?
우선 조각류 초식 공룡에서 나온 화석 털이 깃털과는 다른 것이며, 또한 흔히 우리가 아는 털이 아니라 피부 조직의 일종일 가능성이 제기돼, 털의 진위 여부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임종덕 박사는 “이 연구팀도 비록 수각류 공룡의 것과 같은 깃털은 아니지만 조각류 공룡에서 처음으로 털(filament)이 발견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원시깃털과 털의 연관성을 후속 연구에서 밝혀보겠다고 말하고 있다"면서도 "이 털이 몸 전반에 나 있는 원시깃털과 달리 꼬리 등 일부에만 나 있다는 점에서 깃털이 아니라 피부 조직일 수 있다는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은 표본이 하나뿐이어서 더 많은 화석 증거가 필요하다”면서도 “어찌보면 여러 종의 공룡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털들을 지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육식, 초식 구분 없이 여러 종의 공룡들이 여러 형태의 깃털 또는 털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원시깃털이 날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떤 쓰임새로 쓰였을까? 현재 여러 학자들의 추정을 보면, 이런 원시깃털들은 대체로 보온·단열용 또는 뽐내기용, 짝짓기 구애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공룡 깃털이 보온용이었다고 본다면 또다른 논란에 이어지게 된다. 공룡이 요즘의 파충류처럼 냉혈동물(변온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온혈동물(정온동물)이었는지는 공룡학계에서 오래된 쟁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임종덕 박사는 “지금까지 대체로 알려진 바를 정리하면, 작은 몸집의 수각류 육식 공룡들은 온혈동물이었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몸집이 커 몸무게가 30~40t이나 됐을 '목 긴 용각류' 같은 초식 공룡은 냉혈동물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며 “몸집 작은 수각류 공룡들에서 깃털 화석들이 여럿 발견되면서, 이들이 온혈동물이었고 깃털은 보온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져 ‘작은 수각류 공룡 = 온혈동물’ 가설을 강화하는 증거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지는 공룡 캐릭터, 공룡의 생활사
깃털 단 공룡들의 화석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공룡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3차원 영화 <공룡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2>를 제작 중인 한상호 감독(교육방송 피디)은 공룡 캐릭터의 모습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묻는 물음에 “영화 <쥐라기공원>에서 벨로시랩터(벨로키랍토르)는 털도 없고 반짝이는 파충류 피부를 지닌 것으로 그려졌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앞발에 깃털 흔적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라며 “마이크로랩터(미크로랍토르)라는 활강하는 공룡도 원시 새의 형상인 듯한 모습으로 묘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의 상상력을 살리되 공룡의 모습이나 습성, 생존연대 등은 과학 연구의 성과들을 될수록 충실히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방송과 올리브스튜디오가 제작하며 허민 교수가 학술자문역으로 참여하는 이 영화에는 총 7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며, 올해 12월 개봉 예정이다.
A.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연구관(척추고생물학):
“이렇게 풀이합니다. 선진국들의 기초과학 육성 분위기에 비해 중국에서는 오랜 동안 고생물학 분야가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초과학이 국위 선양에 큰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집중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당시에 외국 유수의 대학들에는 고생물학을 연구하는 중국인 유학생, 연구자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붐을 이뤘던 적이 있지요. 연구자도 늘고 정부 지원도 늘고. 마침 랴오닝성의 화석 산지가 이 무렵에 발견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기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요즘 들어 깃털 화석들이 중국 랴오닝성 지역에서 자주 발굴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도 현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무척 부럽더군요.세계 척추고생물학회에 참석해 새로운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는 중국 학자들의 숫자와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 숫자들이 급속도로 많아진 것도 최근에 깃털 화석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A. 허민 전남대 교수(공룡연구센터장):
“랴오닝성 지역에는 일종의 진흙이 쌓여 암석이 된 이암층이 엷게 그리고 층층이 쌓여 있는 지질 구조가 많습니다. 물론 그동안 공룡 화석은 660속 이상 발굴됐는데, 왜 깃털 화석은 그중에 없었는지, 또 최근의 깃털 화석들은 거의 모두 중국에서만 발굴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런 지질 구조를 보면 그토록 작은 몸집의 공룡과 깃털이 화석으로 잘 보존돼 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암은 마치 얇은 판이 층층이 쌓여 있는 듯한 구조를 이루고 있고, 화석은 그 얇은 판에 정확히 찍혀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층 한 층 떼어내다보면 공룡 뿐아니라 여러 고생물들도 풍부하게 발굴되고 있지요. 얼마전에는 부화하기 직전의 새끼가 든 익룡 알이 발굴되기도 했지요. 지난해 9월에는 랴오닝성 지역에서 화석 지대로 알려진 차오양시가 대대적인 ‘화석 도시’ 선포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쥐라기 후기부터 백악기 중기 정도까지의 화석들이 주로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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