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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본 환상(1-3b)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할 이유는 주거 환경의 악화, 안전 문제, 혹은 정서적 상처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떠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속적인 우상숭배와 불순종 때문입니다. 솔로몬 이후,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며 성소의 거룩함을 훼손했습니다. 이러한 배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진정한 경배와 순종을 요구하셨고, 이를 이루지 못한 백성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1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2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1-3b)
에스겔은 첫 환상을 본 지 14개월 만에 두 번째 환상을 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소에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1) 시간, 장소, 청자(1a)
에스겔이 환상을 본 시기를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592년 9월 17일), 곧 그발 강가에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 대략 1년이 지나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으로 옮겨가 예루살렘의 영적 타락과 여호와의 심판을 경험합니다. 장소는 집을 방문한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임했습니다.
(2) 여호와의 손(1b)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손(1, 3a)과 영(3b)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 아마도 예루살렘 성의 북문 입구에 놓인다. 예루살렘 성의 북문은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성문입니다.
(3) 불.사람 같은 형상(2-3b)
1:26-27의 요약에 가까운 2절은 에스겔의 집에서 경험하는 환상을 그발 강가에서 경험한 첫 번째 환상에 연결시켜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찬가지로 그발 강가의 영광에 연결시키는) 10장을 예비해줍니다. ‘불 같은 형상’은 ‘사람 같은 형상’으로 읽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영을 보내셔서 사회와 교회의 어둠을 보게 하실 때, 예언자적 근심과 탄식, 긍휼과 비통의 감수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우상의 허위를 폭로하고, 우상이 주는 혜택을 거부하며, 우상을 파괴하는 사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전 안에 우상숭배(3c-16)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곳에 주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가장 경건하고 종교적인 곳도 세속적이고 탐욕스러운 곳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건하거나 거룩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며, 말씀의 중요성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필수적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켜주는 힘이 됩니다.
3…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5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6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11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12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3c-16)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우상숭배를 네 장면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성전 파괴의 필연성을 드러내며,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에스겔은 성전 안으로 이동하며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목도합니다. 네 번의 장면은 예루살렘이 다양한 우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냅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1) 북향한 문의 우상(3c-6)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에스겔이 제일 먼저 본 것은 북쪽으로 향한 문 입구의 제단과 우상이었습니다. 제의적 형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한 두 번째 계명(출 20:4)이 예루살렘에서 공공연히 무시됩니다. 예루살렘은 대놓고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 앞에 제단을 놓습니다(참조 렘 11:13). 여호와의 거룩함이 그분 백성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 우상의 자리가 있었음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우상숭배가 노골적이고도 전반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북문 입구에서 에스겔이 본 역겨운 짓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 칠십인 장로의 우상숭배(7-13)
첫 번째 장면이 일반 백성에 의한 공개적 장소에서의 우상숭배를 고발한다면, 두 번째 장면은 정치·사회 지도자들에 의한 은밀한 우상숭배를 폭로합니다. 왕궁(?) 뜰로 들어가는 입구로 옮겨진 에스겔은 담에 구멍이 있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의 명에 따라 담을 헐자 그 안에 문이 있어 그리로 들어간 에스겔은 ‘가증하고 악한 일’을 봅니다. 담의 구멍과 젊은 각각 은밀함/부정함과 폭로/고발을 상징합니다. 사면 벽에 ‘각양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10)이 그려진 방에서 이스라엘의 칠십인 장로들이 손에 향로를 들고 우상들에게 분향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12)라고 탄식합니다. 지배 계층에 속한 자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은밀하게 애굽의 신들에게 향을 사르고 이들을 숭배합니다. 애굽에서는 신들이 곤충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표현됐습니다. 이들은 모든 핑계를 여호와께로 돌리며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정당화합니다. 이들의 항변과 불만은 아마도 주전 597년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첫 번째 유배를 여호와의 무관심 또는 무능력으로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통속적 신학에 따르면 한 민족의 패배는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패배를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막강한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할 수 없었던 여호와를 포기하고 더 강력한 애굽의 신들에게서 보호와 안녕을 찾습니다.
(3) 여자들의 담무스 숭배(14-15)
세 번째로 에스겔이 본 것은 성전 북문 입구에서 행해지는 여자들에 의한 담무스 제의였습니다. 담무스 제의가 성전과 연결된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해지고 있음은 여자들에 의한 담무스 제의가 제도권의 종교와 정치로부터 묵인 받았거나 또는 허용됐음을 시사해줍니다(참조, 렘 44:15-19). 원래 목자의 신이었던 담무스(Tammus)는 주전 8-7세기에는 식물의 신으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방에 널리 퍼졌습니다. 농경 사회의 풍요 제의에 속하게 된 담무스 제의는 자연의 순환주기에 일치하여 식물의 성장과 죽음을 신화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담무스는 하지(夏至) 때에 죽어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소생했습니다. 숭배자들은 담무스가 죽어 지하세계에 내려가 있는 동안(식물이 죽은 기간) 그의 소생을 기원하며 애도했습니다.
(4) 제사장들의 태양 숭배(16)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예루살렘 성전 안뜰로 데리고 가십니다. 대략 스물다섯 명의 사람이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태양을 향해 절을 하며 경배합니다. 여호와의 성소를 등 뒤로 하고 동쪽을 바라보며 태양을 경배하는 제사장들의 모습은 물론 성전의 물리적 위치에 일치하는 여호와에 대한 이들의 배교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참조. 렘 32:33-34).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 제사장들이 그분의 성전 안에서 노골적으로 우상을 숭배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적 타락은 여호와께서 인내하실 수 있는 한계를 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여호와는 이제 당신 성전에서 우상들과 함께 지내거나 더럽혀진 당신 처소를 심판/멸망에 넘겨야 하는 양자택일에 놓이십니다. 태양은 고대 근동에서 법과 생명을 지배하는 신으로 간주됐습니다. 아마도 앗수르에 종속됐던 므낫세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참조. 왕하 21:5). 열왕기하 23:11에 의하면 유다 왕 요시야는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거해버립니다.
여호와의 심판 선포(17-18)
사람의 심령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 역겨워하시는 우상들이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우상이 나란히 세워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섬기길 원하십니다.
17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17-18)
네 번에 걸쳐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보여주신 후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심판 의지를 에스겔에게 밝히십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온갖 역겨운 짓들에 비추어 볼 때 심판의 정당성은 달리 변명이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할 뿐만 아니라 이 땅을 폭력으로 가득 채웁니다. 종교적 타락과 윤리적 타락은 서로 나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그분의 윤리적 계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당연합니다. 이들에게 이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땅을 폭력으로 가득 채우는 자들에게 분노로 응답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들에게 더는 동정심이나 연민을 갖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들이 살려달라고 곤경 중에 부르짖어도 이들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사함의 간구’나 ‘여호와께로 돌아감’은 아무 때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이 종말에 도달하면 구원 가능성은 완전히 상실됩니다. 때를 놓친 회개는 심판의 필연성을 무효로 돌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서의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드러내십니다. 에스겔은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부패한 행위를 목격하며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결국 성전 파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우상숭배를 경계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경배와 순종을 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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