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있다.
약 30 미터 정도인 백척(百尺) 높이 장대 꼭대기에 서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뜻인데, 이것은 무슨 말인가.
여러 뜻이 있지만 목표에 이르렀다고 안심하지 말고 더 정진하여 더 높이 나아가야 한다고 주로 설명한다.
백 척 장대머리(百尺竿頭)는 목표라고 여기는 정상이다. 하여 노력해 그 자리에 왔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라는 것은..
우리가 정한 목표보다 더 높은 목표가 있다는 건가.
왜 그리 어려운 길인가..
장대 끝 위는 허공이듯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중도를 설명할 때
수행으로 보면 고행이 아니요, 쾌락도 아니라고 하며,
이치적으로 설명하면 한 번뿐인 생[단멸론]이거나 윤회하는 생[상주론]이 아니라고 한다.
불자 수행은 쾌락일 수 없으니 방법이나 깊이는 다를지라도 고행으로 보이고,
중도는 단멸은 부정하지만 윤회는 부정하지 않으니 상주론처럼 보이는데..
고행이나 윤회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거두절미하고 차원이 다르다.
장대머리 위에서 한걸음 다 걸어 나아간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게 된다.
장대 위에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은 3차원 세계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듯 존재 세계에서 법 세계로 들어가는 게 된다.
존재 세계의 특징은 좌, 우하듯 이것 아니면 저것이 있다.
정치를 보면 우와 좌가 대립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트럼프를 극우라 하듯 극단적인 대립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여기서 이르면 제삼자적 입장이란 중도가 떠오른다.
중도하면 이것뿐 아니라 저것에서도 떠나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둘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을 연상한다.
그런데 제삼자적이라 불리는 중도의 핵심은 둘의 장점이나 약점을 보강하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에서 완전히 떠난 것이다.
그것은 장대 꼭대기에서 한걸음 걷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한걸음을 더 걸을 수 있는 에너지는 중도에 이르는 길은 무지와 탐욕을 없애는 것임을 강조한다.
지금 세계는..
불자이든 비불자이든..
세계를 존재로 보고 있는 자들 가운데 빌런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해 극우나 극좌로 이끌어
세계는 점점 더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세계는 존재가 아닌 법임을 이해하거나 그런 이를 가까이하여..
법안(法眼)으로 본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하지만 그들이 그럴 리 있을까.
전두환 씨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숭산큰스님은 전두환에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편지로 보냈다.
그 후 김포 공항으로 입국한 숭산큰스님을 그는 정중히 예를 다해 청와대로 모셔 자문을 받는 게 아닌 보안사로 끌고 갔다고 한다.
그게 전두환 정권의 한계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히어로를 바라지만 현실은 빌런이 대세처럼 보이니 지식인들의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자유와 정의는 선행을 먹고 자라는 꽃이요 열매며, 평화의 주인이다.
불교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는 한결같이 선행을 강조한다. 선행은 빌런에게 치명적인 독화살이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면서 입만 살아있는 자를 학자나 지식인이라 한다.
빌런은 무지한데 행이 없는 지식인은 허망하다.
이제 지식인들은 실천으로 자기 뜻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세상은 빌런이 판치는 아수라장이 곧 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치는 빌런이나 철인 iron man 정치가 아니요, 히어러 정치도 아닌 공자의 덕치(德治)로,
플라톤은 철인 정치 Philosopher Politics라 했다.
이제 지식인인 시민들은 자기의 바른 뜻이 사회에서 실천되도록 학교나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와
예수나 석가모니처럼 거리로 나서야 한다.
참말로 정의와 평화가 살아있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