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역대하 29장 1-11절
제 목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1]
하나님께서 모든 자녀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장수하도록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효도하면 장수의 복과 물질의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모가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삶을 통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믿음을 통해 보여주는 사명을 받았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녀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비록 부모는 하나님 품에 안기겠지만 세상에 남겨둘 자녀들에게 세상을 뛰어넘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처럼 귀중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직접 이겨내는 것을 보여줄 때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늘 같은 자리에서 늘 동일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혹시 죄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2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히스기야왕의 어머니인 아비야는 영적으로 썩어가는 나라를 위해서, 또 타락한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키며, 히스기야를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서 늘 기도하며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아비야가 믿음을 삶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사용하실 수 있었고, 히스기야 역시 어머니의 믿음의 삶을 보면서 아버지의 악행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인이었는데, 바알의 주상을 주조하여 대량으로 백성들에게 공급했고, 나라 구석구석에 우상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하도록 했습니다.
아들을 불살라 우상에게 비치는 죄도 지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에 필요한 기구를 떼어버렸으며, 아람나라가 숭배하는 우상의 제단과 똑같이 만들어 그곳에 백성들이 제물을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왕이 이렇게 까지 악할 수 있을까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가 아하스왕과 똑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아는 성도가 세상과 동일한 삶을 살면서도 죄의식 조차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다 뜯어내고, 아람나라가 숭배하는 신을 위해 제단을 만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심령에 욕심과 정욕의 단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아하스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의 기물을 모두 내다 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을 버릴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악한 아하스의 아들이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나서 곧 바로 예루살렘성전을 차지하고 있던 우상을 버리고, 성전에서 속죄제를 지내도록 한 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보통 자녀들은 부모가 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선함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위대한 왕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 어머니 아비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는 하나님을 떠난 악한 사람들 속에서 아들인 히스기야를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늘 기도하며, 삶으로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남편 아하스의 횡포가 그녀를 많이 힘들게 했을 터이지만 히스기야를 위해서 아비야는 모든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악한 환경과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누군가 눈물로 기도했기 때문에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기구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이방신을 위해 단을 세웠을 때 아비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남편을 보면서 영으로 기도하는 여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비야는 그녀가 처한 환경이나 삶이 편안했기 때문에 신앙을 지켰던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세상의 핍박을 향해 죽은 자로 살았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히스기야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왕으로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1절 히스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년을 치리 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야라 스가랴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스가랴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스가랴가 여러 사람이 기록되어 있지만 히스기야의 외할아버지인 스가랴는 아하스 시대에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사야 8장 2절에 스가랴는 진실한 제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비야의 아버지 스가랴 제사장은 하나님께 정직하고 진실한 제사장으로 그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비야는 이렇게 아하스왕의 밑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아버지의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 여인의 믿음은 반석 위에 세워진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교육을 받은 아비야는 남편 아하스왕이 이스라엘 곳곳에 산당을 세워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께 더 매달려 기도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왕인 남편을 돌이킬 힘이 그녀에게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길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히스기야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우상에 빠져 있는 남편과 방백들에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귀를 닫고 있는 남편이 아무 힘이 없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히스기야를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것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는 아비야를 축복하시며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히스기야를 믿음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아비야의 믿음이 나라와 백성과 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도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36절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의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아하스처럼 악한 왕이 통치하고 있는데도 못과 같이 잘 박힌 믿음의 사람
아비야에게 큰 열매인 히스기야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서원하고, 기도한 것도 다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시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잊지 않고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비록 죽고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 안에서 동일하게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비야처럼 목숨을 다해 진실하게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은 절대로 변치 않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아하스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아비야처럼 살 것인지 지금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 선택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진노를 만나기 때문에 신중하기 바랍니다.
제사장의 딸로 자라온 아비야가 왕과 결혼했을 때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고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제사장인 아버지가 하나님을 잘 섬겨서 딸이 왕에게 시집가는 큰 축복을 받았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자녀들이 세상이 인정하는 자리에 오르면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부러워합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목회자는 교회에 충성하도록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라면 반대로 자녀들이 병들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부모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돌에 맞고, 바다에 던져지고, 매를 맞고, 칼에 맞은 선지자와 믿음의 형제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도, 병이 든 것도, 자녀들이 뛰어나지 못해도 하나님 안에 있다면 그 영혼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된다는 말씀처럼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는 것을 세상의 매듭이 풀리는 것으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고난의 굴을 통과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인내하며 잘 견딘 성도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편안함이 곧 믿음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것으로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비야는 믿음이 없는 아하스왕과 결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세상사람이 축복을 받았다고 부러워하는 그 자리를 영적으로 볼 때 십자가를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여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을 것입니다.
앞으로 자기가 핍박을 당할 것을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을 경배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 때문에 아비야는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사장이신 아버지 밑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신앙의 갈등이 없었지만 이제부터 성전을 파괴하고 우상의 단을 세우는 남편을 보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비야의 고통은 컸습니다.
아비야는 남편의 악행을 26년 동안 보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아비야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
남편 모르게 하나님의 나라와 아들을 위해서 기도한 26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를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왕이 될 히스기야가 아버지인 아하스의 악행을 그대로 이을까 봐 얼마나 두려워하며 기도했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아버지의 악한 신앙을 따르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한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야만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와 형제가 세상의 악을 따르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핍박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자녀가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보다 히스기야를 키운 아비야처럼 그의 영혼을 위해서 쉬지 않고 몇 년을 기도하셨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라와 백성과 자녀를 구원해 달라며 26년을 기도한 아비야처럼 하나님께 끈질기게 소원을 붙들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 기도는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며,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곳에서 환경과 상관없이 믿음과 신앙을 보여줄 때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귀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보는 것처럼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사람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고난과 연단을 만나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그 길이 힘든 줄 아시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시기에 사명을 감당하기 위
해 최선을 다하셨으며, 영혼구원을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성자하나님으로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만나는 사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것 아시기 때문에 편안한 자리에 앉아 계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비야 역시 왕후로써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굳이 히스기야를 믿음으로 키우지 않아도 그는 당연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이고, 왕의 어미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아비야는 세상의 편안한 삶보다 영원한 생명이
신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만약 히스기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한 아비야가 없었다면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전을 회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백성들
의 죄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대하 30장 4-5절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선히 여기고 드디어 명을 발
하여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반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
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
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히스기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백성을 향해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는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하는 것인데 히스기야는 왕이면서도 백성에게 하나님께 회개하고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허락하신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
께 목을 곧게 하는 교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여 백성
들이 하나님께 진정과 신령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정화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본향으로 돌아오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남아 있는 우리들이 먼저 회개하고 돌이키자고 설득했습니다.
성도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해서 교회가 먼저 바로서야 하는 이유이고, 가정의 구
원을 위해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먼저 바로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가 바로 설 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 30장 10절 보발군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히스기야가 보낸 보발군이 스불론까지 돌면서 하나님께 회개와 제사를 촉
구했지만 그들은 이미 타락 할대로 타락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초대를 조
롱하며 비웃고 거절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왕의 명령을 백성들이 이런 식으로 조롱 한다는 것은
그들 마음에 이미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어둡게 되면 그 누가 권면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면하는 믿음의 형제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그
성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권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간곡하게 전해줄 뿐 그 영혼에 대해서 책
임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듣지 않는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혈기를 내어 죄
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왕의 명령을 조롱하고 비웃는 중에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사람
중에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왕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겨두신 칠천인처럼 유다사람을 감동시키셔서 왕과
방백들이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해서 모두가 복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복음
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돌아오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보다는 조롱하고 핍박한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람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을 찾고 계시기 때문에 불신앙을 가진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낙심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돌아온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은 히스기야왕의 뜻에 따라 성전을 성결하게 하였고, 백성들도 모두 함께 성읍을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읍 구석구석에 아하스가 설치해 두었던 제단을 모두 제거하는 일을 한 마음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 그리고 백성들은 번제물을 가지고 속죄를 위한 번제를 드리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제사장들은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각종 악기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온 백성이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고 신앙을 회복하도록 큰 일을 해 내었습니다.
역대하 30장 27절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히스기야는 성전에 모인 회중에게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주었습니다.
방백들은 회중에게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주었고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으며 이스라엘과 유다에 거하는 나그네들까지 모두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렇게 큰 희락이 없을 정도로 온 백성이 기뻐하였습니다.
신앙이 회복되는 큰 기쁨을 맛본 백성들은 모두 찬양하며 제사 드릴 때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백성을 축복하는 제사장의 기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 상달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쁜 축복의 날은 아비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비야가 백성들이 돌이키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비야처럼 깊은 믿음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인 아비야가 없다면 세상에 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귀한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아하스와 같이 사단의 권세를 잡은 어둠의 세상에서 믿음의 등불을 아비야처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비야의 기도와 인내가 헛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히스기야라는 아들을 통해서 그 여인을 높이실 것이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승리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믿음을 강하게 하며, 믿음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곧 성도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교회와 가정과 세상에 영적인 가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아비야처럼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여러분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비야처럼 붙드시기 바랍니다.
환경 탓 하지 말고, 사람 탓 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승리하는 인생으로 붙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201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