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또 南原 廣寒樓에 왔다. 친구 둘(송원봉.진영선)과 광천 터미널에서 (73km 약1시간소요 5000원)출발 남원터미널에서 내려 약 15분정도 걸어서 도착했다. 광한루 뒤편 (北門쪽)에 비석이 30여개 있었다. 대부분 관찰사와 부사들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묘갈명 (碑文)이 없었다. 전면에 이름만 새겨있을뿐 후면의 비문이 하나도 없었다. 이 분이 어떤 선정이나 공적을 세웠다든가 그 내력이 전혀 없다함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내 수준으로 보면 이 비석들의 가치는 동내 아이들의 낙서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선정의 목민관이었는지 학정으로 다스렸는지 미미한공적으로 이름만 달고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일제 36년을 지나면서 친일했던 사람들이 행적을 숨기고 비를 세웠다가 최근에 철거된적도 있지 않았던가. 정옥추어탕식당에 와서 저녁식사무렵 이 내용을 공개했더니 남원의 유지급 어른(韓某) 한 분이 적극 동의 하시는 입장으로 아직 어느 누구도 거론한적이 없었는데 듣고보니 지당한 말씀이라고 칭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