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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
강 안기가 나고 자란 곳은 강원도 영월 하고도 북면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로 농사를 짓던 그의 부모는 안기가 여섯 살 때에 장티프스가 유행할 때에 그 병에 걸려 다 돌아가셨다
그때에 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삼촌인데 삼촌은 워낙 가난하여 장가도 들지 않은 터라 도저히 조카를 기를 수가 없어서 궁리 끝에 이웃에 살고 계시는 먼촌간 아주머니께 부탁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를 두었으나 이 아이가 여섯 살 때에 감기가 들어서 약방에 가서 약을 사다 먹였지만 약이 독했던지 사흘 낮밤을 앓다가 죽게 되니 엄마는 한동안 아이로 해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패혈증에 걸려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다음부터는 일할 의욕도 나지를 않아서 거의 굶어 지나다가 이웃들의 도움으로 기운을 차린 다음에는 품을 팔아 겨우 목숨은 부지할 수가 있었다.
이 아주머니는 몸이 쇠약한데다가 왼손을 잘 쓰지를 못하고 오른손만 쓰다 보니 산이나 들에서 땔감을 해온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반절밖에 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 가을에 땔감을 많이 해다가 초시마 밑에 쌓아놓아야 하지만 그렇지를 못하여 한겨울에도 나무를 아끼느라 거의 냉방에서 지날 정도로 그의 삶은 혹독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자기 혼자도 살아가기가 힘이 들지만, 아이의 사정을 듣고는 너무 블쌍한 생각이 들어서 아들 삼아 길러 보겠다고 하였다.
일이 이리 되자 이웃의 사람들조차 혼자 살기도 힘이 들어 하면서 아이를 데려왔다고 처음에는 언짢아하였지만 워낙 인정이 많은 아주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후부터는 도와드리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마을의 일을 언제나 앞장서서 하는 이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 이장은 마을의 청년들로 하여금 제각각 나무 한 짐씩을 해서 주기로 하였고 타작을 하게 되면 벼 한 말 씩을 걷어서 주기로 하니 아주머니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 아주머니 아무 걱정하시지 마셔요. 이제 안기를 아들삼아 잘 기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하여 아주머니는 그런대로 안심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안기는 새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잘 자라게 되고 마침내 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입학을 하고 나서 얼마 후 부터 아이들이 안기를 보고 아비 없는 후례자식이 무슨 학교를 다니느냐면서 놀리기 시작을 하였다.
안기는 그렇지만 여러 아이들이 놀리니 대항하지도 못한 채 학교를 가는데 날마다 앞뒤에서 발길로 차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강가로 데리고 가서 모래 한줌을 옷 속에 집어넣기도 하였으니 안기는 그때마다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토요일이라서 학교가 한나절에 끝이 나서 안기는 집에 어머니가 몸이 아프시다고 하여 일찍 집으로 가기 위해 교문을 나서서 뛰어가는데 어느 결에 논둑길에 먼저 와 있던 황근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이 안기를 가운데다 놓고는 발길질을 가하여 엎어진 안기는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때 장엘 갔다가 오시던 부자 댁 어르신이 이 광경을 보시고는 아이들을 혼내시고 안기를 일으켜 세우고는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시었다,
어르신은 안기가 과수댁이 어렵게 기르는 아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안기의 뒤를 봐 주시기로하였다.
사실 부자 댁은 그때까지 딸 하나만 두었을 뿐 아들을 낳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아들을 낳기만을 기다렸는데 안에서 몸이 쇠약하여 아들 낳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안기를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 이 아이를 아들 삼아 집에서 자라게 할 생각으로 과수댁을 불러서 집에 와서 함께 살면서 집안일을 도우라고 하였다
부자 댁 어르신은 앞으로 이 아이를 초등학교만 졸업시키고 나서는 따로 나가서 살게 할 참이었다.
그때 이 댁에는 머슴아저씨가 두 분이나 있었는데 안기가 이 댁으로 온 다음부터는 이따금 심부름도 시키고 어떤 때는 데리고 자기도 하였다.
안기가 부자 어르신으로 해서 학교를 다니게 되자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안기에게 가하던 못된 짓을 하지 않았으니 부자 댁 어르신이 마을 청년들에게 이러한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이르셨기 때문이다.
그 후 안기가 학교 졸업을 하게 되자 따로 나가 살게 할 셈이었으나 과수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 살게 해달라고 하였으니 자기의 몸이 성치 않아서 도저히 아이를 기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들으신 주인 어르신은 생각다 못해서 아이를 이 집의 머슴으로 일을 하도록 하시었으니 그가 일을 잘 배우게 되면 장차 이 집의 재산도 어느 정도 나누어 줄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부자 댁에는 안 치홍과 박 주영 아저씨가 함께 머슴 일을 하였다.
안기에게 맡겨진 일은 날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가마솥에 불을 때고 소를 내다 뜯기며 소에게 여물을 끓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안 치홍 아저씨가 몸에 병이 생겨 머슴노릇을 못하게 되어 경기도 가평으로 가버리자 주인어르신은 머슴을 더 두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안기는 차츰 커가면서 새경을 받고 싶었는데 안 치홍 아저씨가 가신 뒤에는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부모 없이 자라면서도 안기는 눈치가 빨라서 주인어르신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일을 찾아서 하니 그것이 대견하여 안기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실 정도였다.
그렁저렁 안기가 열 다섯 살이 되고 연말이 되었을 때 하루는 주인 어르신이 안기를 부르시더니 이제는 새경을 주기로 하였다면서 쌀 세가마니를 주시었다.
안기는 너무도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하자 어르신께서는 사람이 일을 하게 되면 그 값을 받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안기가 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10년만 일을 하게 되면 쌀 서른 가마니를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흡족하였다.
안기가 새경으로 쌀을 받던 날 박 윤주 아저씨는 쌀을 전부 어머니를 갖다 드리지 말고 한가마니를 자기에게 맡겨주면 장리쌀을 주어 재산을 늘겨 주겠다고 하였다.
아저씨가 그렇게 자기를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여 그렇게 해달라고 하였다..
새경을 받고 나서 안기는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는 장하다면서 좋아하시더니 쌀 한가마니는 삼촌에게 갖다가 드리라고 하여 삼촌을 찾아가니 삼촌도 그 동안 농사를 잘지어서 지금은 남에게 쌀을 꾸러가지도 않는다면서 어머니 봉양이나 잘 하라고 하였다.
안기는 삼촌의 말씀을 어머니에게 전하자 어머니는 매우 흡족해 하시었다.
그런데 안기가 머리가 커 가면서부터는 차츰 속에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니 아저씨는 자기가 할 일을 모두 안기에게 전가를 시키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가까워지자 겨우내 쌓아놓은 두엄을 파내야 하는데 아저씨는 그것을 파내라고 하면서 자기는 감자밭을 갈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아저씨는 감자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낮잠을 주무시는 것이니 안기는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무어라고 겉으로 말 할 수는 없었다.
주인 어르신은 원래 점잖으시고 동네의 일로 바쁘시기도 하지만 하루도 나들이를 나가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날마다 읍내를 가시거나 장날이면 빠지지 않고 장엘 나가시기 때문에 집안의 모든 일은 박 윤주 아저씨에게 전적으로 일임을 하였다.
그렇게 집안의 일을 다 맡게 되자 박씨 아저씨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라며 어린 안기로 하여금 집안의 모든 궂은일을 혼자에게 내맡기었다.
전부터 안기는 식전에 일어나면 쇠물 가마에 불을 때서 여물을 끓인 다음에는 여물을 퍼주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조반을 먹고 난 뒤에는 꼴을 두 짐 씩은 베어다가 쇠귕 앞에다가 놓아주는 것이 일이었다.
귕 앞에다가 소쿠리 채 베어온 꼴을 쏟아주면 두 마리의 소는 밤새도록 꼴을 다 먹고는 아침이 되면 배가 고픈지 머리를 휘휘 두르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 소를 끌고 강 언덕 밑에 있는 풀밭에다가 풀어 놓았다.
안기는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고단해서 바로 쓸어져 잤는데 밤중이 되면 거의 매일 같이 박 씨 아저씨가 안기를 깨운 다음에 술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안기는 하도 고단해서 일어나기가 싫었지만 아저씨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일어나서 술값을 달라고 하면 아저씨는 외상술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주막에 가서 아저씨가 술을 받아 오랜다고 하자 주막의 아주머니는 박 윤주 아저씨가 그러더냐면서 어서 갔다가 드리라면서 술값도 받지를 않았다. 그래서 안기는 술값은 어찌 하느냐고 묻자 아무 때고 그 아저씨가 갚을 것이니까 술값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여서 안기는 그런가보다 하였다.
그날은 하루 종일 감자를 심고 나서 저녁때 꼴 한 짐을 베어다가 귕 앞에 놓고 저녁을 먹는중에 하도 고단해서 그런지 잠이 막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도 아저씨는 술을 받아오라고 해서 졸려워서 못가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험한 얼굴을 하시더니 다짜고짜 안기의 어깻죽지를 그 큰 손으로 후리치는 바람에 안기는 깜짝 놀라서 얼른 달아나려 하였다,
“이놈의 새끼가 어디로 가려는 게야. 일꾼이면 똑같은 일꾼인줄 아냐. 나를 그렇게 무시해. 어디 한번 매 맞 좀 보아라 .”
아저씨는 그 말이 떨어지자 사정없이 밖에 놓여 있는 지게작대기로 때리는 바람에 안기는 그 자리에 고꾸라진 채로 맞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울기만 하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자신이 주전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는데 얼마 후에 술을 받아 오셨는지 안기더러 일어나라고 하더니 술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안기는 아직 술을 한잔도 먹어보지를 않아서 못 먹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그제서야 하시는 말씀이 아까는 금방 화가 나서 손찌검을 하여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매일같이 술을 먹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먹는다면서 안기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저씨의 슬픈 이야기였다.
그 아저씨의 집은 원래 강원도 산골에 살았는데 이웃사람들이 춘궁기가 되면 쌀을 꾸러올 정도로 아버지는 농사를 많이 지으시어서 부자소리를 들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에 밤중에 장마가 지기 시작을 하더니 며칠간이나 비가 계속 되었는데 집들이 강물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어느 집에서는 돼지가 떠내려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장마가 계속되더니 갑자기 밤중에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한꺼번에 사태에 묻히고 겨우 살아나온 것이 자기 혼자였다.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된 그는 아무 친척도 없어서 이리 저리 거지생활로 지나다가 이 댁에 와서 밥을 한 술 얻어먹다가 주인아저씨의 호의로 이 댁의 머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저씨는 자라면서 하루도 어머니아버지를 잊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속에는 효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불쌍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왔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이 날 때마다 술을 먹어야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었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는 커녕 지금까지도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 보니 생신이나 제삿날이 돌아와도 물 한 모금 떠놓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날마다 일을 하고 나면 술을 먹어야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어서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렇게 살다가 보니 새경으로 받은 쌀은 주막집의 외상술값으로 다 탕진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뿐이 아니고 안기가 받은 쌀을 장리쌀로 준다고 하더니 그 쌀도 다 외상술값으로 갚았다고 하였다.
안기는 아저씨의 그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아저씨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었으며 자기가 받은새경 쌀값도 아저씨를 위해서 받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일꾼 아저씨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안기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일 모래부터 이집의 일꾼을 고만두고 주막집에 가서 술장사를 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안기는 아저씨의 엉뚱한 말을 듣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를 않아서 가만히 앉아 있자 아저씨는 오래전부터 주막집아주머니를 좋아하여 살림을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제야 안기는 술을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팔아준 것이 커다란 다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막집 아주머니 역시 안기가 갈 때마다 아저씨에 대해서 안부를 물은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가 갑자기 가시게 되자 이 집안의 일은 다 안기가 책임을 지게 되었으니 아직 수무 살도 되지 않은 그는 앞으로의 할일이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데 주인어르신은 다음날 일꾼 아저씨 대신 사람을 두지 않을 것이니 집안의 일은 이제 네가 도맡으라고 하시었다.
주인 어르신은 안기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안기로 하여금 이 집의 아들처럼 일을 해달라고하시면서 안기가 수무 살이 되면 장가를 들여 준다고 까지 하였다.
안기는 주인어르신의 그런 말씀을 하셔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나이가 열일곱 살이 되면서부터 막연하게 잠을 잘 때면 자기도 모르게 손이 하반신으로 가기 시작하고 또 어떤 때 소를 끌고 가다가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처녀를 보게 되면 공연히 마음이 이상해지고 그런 날이면 밤중에 댕기를 길게 늘인 처녀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잠을 설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한동안 하던 중에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가깝게 지나던 아이들이 생각이 나고 특히 아랫마을에 사는 윤 순덕의 생각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학교 다닐 때에 순덕이는 학급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이날 밤 안기는 학교 다닐 때에 순덕이와 가깝게 지나던 날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안기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대단한 인기가 있었으니 어른들이 부르는 흥타령을 잘 부르기도 하지만 봄이면 강가에 나는 버드나무가지를 꺾어서 버들피리를 부는데 얼마나 잘 부는지 아이들이 피리 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아이들 중에는 특히 남자아이들보다는 여자아이들이 안기를 잘 따라다녔는데 그중에도 여자 아이 중에는 순덕이와 삼례가 줄곧 붙어 다녔다.
순덕이는 그대만 해도 안기를 만날 때마다 무엇이건 한 가지씩을 갔다가 주었는데 주로 떡이나 과질 같은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삼례는 순더이와는 달리 안기를 만날 때마다 노랫가락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만 하였다.
사실은 순덕이도 노랫가락을 배우고는 싶지만 원래 음악에는 소질이 없어서 그런 요구는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자 아이들은 모두가 중학교 진학을 하였으나 삼례는 입학하고 나서 한 달 만에 경기도 인천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안기는 자연히 순덕이와 자주 만나게 되었다.
목수를 하시던 순덕이 아버지는 집을 짓거나 집수리를 할 때마다 돈을 벌어서 사는 데는 궁색하지를 않았는데 어느 해 늦는 가을에 집을 짓던 아버지가 높은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신 다음부터 집안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벌이를 못하시게 되자 엄마가 밭일을 하면서 쌀을 몇 됫박씩 구해다가 겨우 식구들을 먹이긴 하였지만 몸이 약하여서 며칠간 일을 하게 되면 또 며칠간은 앓아눕게 되기 때문에 큰딸인 순덕이는 할 수없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엄마의 일을 돕게 되니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순덕이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고 선생님이 되면 미술선생님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만큼 그림에 대해서 소질이 많다고 담임선생님도 칭찬을 해 주셨는데 이제는 학교 중단을 하게 되었으니 마음은 몹시 괴로웠지만 엄마에게는 단 한마디의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그날도 안기는 밭일을 하고 나서 고단하여 잠시 언덕에서 눈을 붙이려다가 생각을 하니 그날이 바로 단오 날이라 꼴지게를 지고 강 언덕으로 갔으니 거기에는 그네를 타기 위해서 여자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거기에는 여자 아이들이 그네를 타느라 야단인데 빨강갑사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어서 누군가하고 자세히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순덕이로 그네를 치고 올라갈 때에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서 천사가 날아오는 양 아름다웠다.
안기는 사실 커가면서 이따금 순덕이를 생각하였지만 한 번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 그를 만난다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동안이나 안기는 숲속에 죽치고 앉아서 여자애들이 다 타고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난 안기는 그네에 오르자마자 힘껏 두발을 내밀자 그네는 금방 하늘꼭대기에 닿을 듯이 올라가더니 쏜살같이 아래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았는지 아이구아이구 하는 여자이이들의 신음소리가 들리었다.
안기는. 그네를 한참을 타다가 그네에서 내려오니 이마에 땀이 나고 힘이 드는 것 같아서 잠시 소나무 밑으로 가서 눈을 감고 누웠는데 누가 다가와서 일어나보라고 하여 눈을 뜨고 보니 아! 거기에는 뜻밖에도 순덕이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기는 하도 반가워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순덕이는 손에다가 무엇을 들고 있다가 주었다.
“ 너 참 오래간만이구나. 너 그네 타는 것을 보니까 나도 함께 타는 기분이었어. 이거 그네 잘 타서 주는거야.”
순덕이는 말과 동시에 콩고물이 묻은 찰떡을 주었다.
안기는 떡을 주는 순덕이를 보게 되자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고맙다. 그런데 오늘 네가 그네를 제일 잘 타더라. 나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줄 알았다니까.”
“ 거짓말. 너 언제부터 그렇게 거짓말을 했냐.”
“ 나 거짓말 안 했는데 진짜라구. 그러지 말고 언제 한번 만나줄 수 있겠냐.”
“ 날 만나자는 거니. 난 그럴 시간이 없는데.”
“시간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엄마가 아프신 관계로 집안 일하느라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어서 그래.”
“ 엄마가 그리 많이 아프시단 말이야.”
“ 음. ”
“ 너. 그럼 엄마 시중드느라 이다음에 시집도 가지 못 가겠구나.”
“ 누가 그래 시집을 가지 못 한다구.”
“누군 누구야. 너 좋아하는 내가 하는 소리지.”
“ 니가 날 좋아한다구.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이 바보야. 난 얼마 후에 시집을 갈지도 몰라.”
“ 뭐야 시집을 가게 되어 있다니. 아직 나이도 어린 것이 무슨 시집을 가냐.”
“ 내 나이가 어리다구. 난 시집을 가도 충분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 그런 사정이 있어.”
“ 그 사정이 무언데 그러냐.”
“ 아직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왜. 나 시집 못가면 데려가려고.”
“ 그야 물론이지. 나는 차츰 크면서 너 생각이 나서 밤마다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하고 있단 말이야.”
“ 너 약삭빠르지 못하면 난장판에 가서 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냐.”
“ 왜 그런 소리를 하냐.”
“ 말을 정확하게 하자면 지금 우리 어머니의 하시는 행동을 보면 나를 얼른 시집을 보내려는 거야.”
“ 정말.”
“그래. 사실은 나도 그전에는 너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하지를 못하였지만 너 언제 시간 있으면 우리 집 뒤에 있는 솔밭으로 오면 좋겠다.”
“ 네가 오라고 아무 때고 가고말고. 그리고 너 명심해. 나는 너 아니면 장가도 가지 않을 것이니까 엄마가 무어라고 하시면 최후의 수단으로 안기에게 시집을 가기로 하였다구 말씀을 드리란 말이야. 알았지.”
‘안기는 순덕이의 말을 듣고는 마음은 불안하였지만 결코 그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지 못하게 할 결심을 하였다.
한편 순덕이 엄마는 벌이도 시원치 않은 중에 식구들이 많아서 살아가기가 점점 힘이 들게 되자 식구를 하나 라도 덜게 되면 쌀이 덜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누워계시면서도 식구들 밥 굶길까 봐서 그것이 늘 걱정이 되어 순덕이부터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시집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었다.
사실 엄마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어느 날 느티나무 아래에 살고 있는 한 씨네 집의 밭일을 하러 다니다가 보니 그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병석에 눠워 있어 그 집의 안팎일은 모두 주인아저씨가 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단지 외아들을 두었는데 효심이 지극하고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하시는 일을 제가 다 해드렸다.
그런데 이 아이는 몸이 약한 편이어서 엄마는 늘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약을 지어다가 먹였지만. 좀처럼 낫지를 않았다.
그렇게 몸은 약하면서도 학교 공부는 잘 하는 편이고 친구들 간에도 우의가 깊다고 하였다.
그렇게 약하던 아이가 어느 해 돌아다니며 약을 처방하시는 아저씨에게 아이의 맥을 뵈키자 그분은 약 다섯 첩만 먹이면 나을 병이라고 하여 그렇게 약을 지어 먹였더니 거짓말처럼 아이가 기력을 회복하고 몸이 좋아지었다.
아이가 이렇게 건강이 회복이 되자 몸이 약한 엄마는 죽기 전에 아들을 장가를 들이고 싶은 생각이 부쩍 나기 시작을 하였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몸이 아픈 것이 나아야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도무지 기운이 없어서 한발자국도 떼어놓기가 싫을 정도로 몸은 점차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아들 장가도 들이지 못하고 죽는 게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하루는 남편에게 그 말을 하였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아이 나이가 어린데 어찌 장가를 들이느냐는 생각이 나서 그 말을 하려다가 생각을 하니 아내가 그 말을 한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생각을 하고 엄마의 생각대로 하라고 하면서 혹시 신부 깜이라도 알아본바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부인은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 저 안마을에 딸 삼형제와 아들 하나를 둔 집이 있는데 그 집이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맏딸을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시집을 보내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마음씨도 착하고 집안의 일도 잘 한다니 그 애를 며느리로 삼으면 어떨까요.”
“ 음 그 박춘호 딸 말이군 그래. 걔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하는 바람에 안 될텐데. 그러고 보니 당신은 몸이 아프면서도 며느리 얻을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한 것이 아니요.”
“ 호호. 당신이 오래간만에 사람을 다 웃기는군요. 난 그런 생각을 오래 한 것은 아니고 가만히 날마다 누워서 생각을 하니 이러다가 내가 갑자기 죽으면 나는 며느리도 보지 못하고 죽는 엄마가 되는 것이 서럽다는 생각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나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 당신 얘기를 듣고 보니 참으로 좋은 생각을 했어요. 내 이 말을 명심하고 당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애써 보리다.”
“ 고마워요. 그리되면 당신이 ,밥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덕에 내 병이 나을지도 몰라요.”
“ 하기야 당신의 병이 큰 병은 아니니 며느리를 얻는 소원을 풀게 되면 병이 나을 수도 있을 거에요.”
며칠 후에 한 씨 아들 순균의 이웃에 살다가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순균 엄마의 친구 묘자 엄마가 순덕이집을 찾아왔다.
묘자 엄마는 순덕이 엄마와도 잘 아는 사이인데다가 젊어서는 한때 춤도 배우러 같이 다닌 사이였다.
“ 순덕 엄마 집에 있어. 오래간만이네. 나야”
묘자 엄마가 느닷없이 인기척조차 하지 않은 채 방문을 열자 누워 있다가 눈을 뜬 순덕엄마가 보니 누군지 금방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누구에요.”
“눈 좀 확실하게 떠봐 나야 나.”
“ 음. 묘자엄마가 웬일로 우리 집엘 다 오냐.”
“ 왜. 난 이 집에 와선 안 되는 일도 다 있냐."
" 그런 게 아니고 하도 오래간만에 왔으니 하는 소리지.“
“ 실은 내가 오늘은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왔어. 어디가 많이 아프다면서.”
“ 나 사실 지금 말 못할 병이 들어서 얼마 살지를 못할 것 같아.”
“ 나중에는 별 소리를 다 듣겠네. 너 같이 튼튼하던 애가 무슨 병인데 죽겠다고 하는 거냐.”
“ 사람이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이 통 넘어가지를 않는 거야.”
“ 야. 그럴 때는 강제적으로라도 쑤셔 넣어 보라구. 거기에 대한 예는 들지 않겠다.”
“ 너 아직도 사람을 웃기려드는구나. 음식을 어떻게 강제적으로 먹어.”
“ 솔직히 말해서 요즘에 의학이 얼마나 발전을 했는데 죽는다는 소릴 하냐. 내가 잘 아는의사 소개를 해 줄 테니 그 병원엘 가 보라구 주사 한 대면 거뜬하게 나을거니까.”
“ 세상에 주산한대에 낫는 병원도 있냐.”
“그 병원이 얼마나 유명한 데 그래. 꼭 나을 거니까 그렇게 해봐. 나 사실 오늘 너를 만나려 한 것은 주인을 이르려고 왔어 듣자하니 딸을 시집보내려고 한다면서.”
"어서 그 소리를 들었냐.“
“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아.”
“ 그러게. 하긴 그런 생각이 있긴 해. 알다 싶이 우리, 식구가 많지 않여. 애들 아버지가 일을 통 하시지를 못하게 되자 내가 벌어야 하는데 도무지 돈이 모이지를 않는거여 그래서 식구를 하나라도 덜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딸을 시집보내게 되면 당장 집안의 일을 누가 하느냐구. 그래서 며칠 사이에 마음을 다 잡고 없던 일로 하기로 하였어.”
“ 너 그것이 진심이냐. 알았다. 너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추후에 얘기를 하도록 하자.”
이 날 묘자 엄마는 순덕이를 한 씨 네 댁으로 시집을 보내자는 말을 하러 왔다가 그의 마음이 변한 것을 직감하고는 바로 돌아가기로 하고 방문을 나섰다.
모처럼 주인을 일러 버선 한 짝이라도 얻어 신을까 하던 묘자 엄마의 발걸음이 매우 무거워 보였다,
金 斗 洙 21.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