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수필나무
제6회 작품상
김상분
수필공부를 시작한 지도 어언 십년이 가까워온다. 강산이 변한다는 긴 시간의 흐름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만큼 손안에 쥐어진 것이 무엇인가 가끔은 부끄럽고 두려워진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 혹시라도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보는 어느 누구의 마음 한구석을 움직인다거나 작은 미소라도 줄 수 있을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과연 내가 쓰는 글, 나의 수필이란 어떠한 것일까. 삶의 뒤안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아 짜깁기한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스쳐가는 모든 평범한 소재에서 금싸라기 같은 그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은 언제면 떠질까? 다 늦게 들어선 수필의 길에서의 고뇌는 작지 않다. 이 길일까 저 길일까 때로는 헤매기도 하였다. 이 나무 그늘이 더 나을까 아니 저 나무아래가 더 시원할까 두리번 거리다보면 어느새 가을바람이 불고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가버린 세월을 이따금 돌아보는 것은 내일 그리고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첫 수필집을 출간하여 교보문고의 신간코너 한 구석에라도 진열된 것을 보았을 때의 작은 흥분이 떠오른다. 동시에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 나의 작고 모자라는 책자를 에워싸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텅 빈 충만”앞에서의 충격이 마음 깊은데서 되살아난다. 그 때 그 충격은 내가 글을 쓰는 한 영원히 마음의 빚으로, 또한 소중한 길잡이로 마음 한구석에 깊이 자리할 것이다. 바로 그즈음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께서는 당신이 그동안 써오신 모든 책에 대한 절판의 유언을 남기셨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작은 책자가 제 자리도 찾지 못하고 엉거주춤 한구석에 밀려있는 것이 마냥 부끄럽고 민망했다. 때를 맞추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은 바로 나를 향한 듯 했다.
그 분의 수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사롭게 매만지고 상처받은 중생을 치유하는 글이었던가. 더는 출판되지 않는, 가신 분의 책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발 빠른 출판사들은 그분의 유언에 어긋나지 않도록 짜깁기해서 편집하거나 그분과의 대담을 회고록형식으로 급하게 책을 찍어내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 고귀한 뜻은 지켜졌고 “무소유”의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영혼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가 담긴 수필세계는 얼마나 고되고 아픈 세련을 겪어야 건너갈 수 있는 강 건너 마을인지……. 바로 그 무렵
겁 없이 얄팍한 책을 하나 엮어 감히 법정스님의 책 옆에서 당하던 곤욕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그 때의 잊지 못할 마음속의 채찍은 나의 수필의 길에 더없이 소중한 길잡이로 자리하여 나를 일깨우고 보듬어주기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른다.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에서 소재를 택하여 쓰게 되는 나의 수필의 주제는 어쩐지 되돌아봄과 후회가 많고 어설픈 허무주의로 치우친 데가 많다. 때로는 오만과 편견으로 종잡을 수 없이 방황하기도하고, 운율이 맞지 않는 시어를 늘어놓는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 희망이나 열정보다는 늘 한발 물러서는 자세로 기쁨보다는 슬픔과 괴로움에서 어설픈 성찰을 끌어내려는 것도 나의 모자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달리 많은 체험과 힘든 세상살이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연륜만큼 마음수련도 되어서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주제로의 성장은 정녕 어려운 것일까? 문장의 비단옷 치장이 아닌 무명옷의 소박함으로도 하고 싶은 말과 생각들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선명한 주제는 언제쯤이나 찾게 될까?
큰 나무의 굵은 줄기 같은, 깊은 뿌리와도 같은 그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주제를 찾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살랑대는 나뭇잎들 같은 문장을 벗어나야한다. 성찰의 꽃과 깨달음의 열매가 달리는 한 그루의 푸르른 나무를 꿈꾸어 본다. 잠시 길을 벗어나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는 큰 나무가 그립다. 시원한 바람으로 들뜬 마음을 달래주며 넓은 그늘로 잘잘못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그 나무는 언덕위의 느티나무일까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일까…….
아직도 많이 보듬어야할 나의 작은 수필나무는 마치 이른 봄에 옮겨 심은 어린 묘목처럼 조심스럽다. 잎눈 꽃눈 달며 쑥쑥 커가는 곁의 나무들이 부럽기만 하다. 내게도 그들과 함께 어깨를 겨눌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날을 위해 부단히 가지치기를 하며 튼튼한 줄기를 세워야겠다. 흔들리지 않는 굵은 뿌리를 위해서는 좋은 거름도 때맞추어 주고 날마다 잡초를 뽑는 마음으로 글밭을 다듬어야하리라.
첫댓글 큰 나무의 굵은 줄기 같은, 깊은 뿌리와도 같은 그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주제를 찾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살랑대는 나뭇잎들 같은 문장을 벗어나야한다. 성찰의 꽃과 깨달음의 열매가 달리는 한 그루의 푸르른 나무를 꿈꾸어 본다...흔들리지 않는 굵은 뿌리를 위해서는 좋은 거름도 때맞추어 주고 날마다 잡초를 뽑는 마음으로 글밭을 다듬어야하리라... 본문 부분 발췌
수필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쓰려는 이는 많고 도처에 널린 것이 글감이지만... 체화된 경험, 해석, 의미화, 형상화가 없는 글은 자기 푸념이거나, 감동 수기이거나 억지 교훈을 주는 글이거나 신파가 되기 때문인듯 해요..
아름답고 푸른 저마다의 수필 나무 한 그루를 위해 오늘도 부단히 써야겠습니다 ^^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에 늘 감사드립니다 ! ^^ 덕분에 좋은 글을 읽는 호사를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