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선출, 훈련, 그리고 안수
칼빈은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반드시 성도들의 투표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의 여러 성경 주석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따라서 직분자들을 재판관의 역할로 선출했다. 칼빈은 모세가 이 직분자들을 그의 뜻으로만 임명하지 않고 백성들의 투표를 통해서 뽑았다고 강조했다(Calvin, Commentary on the Four Last Books of Moses, Vol. 1, 309-10.). 칼빈은 또 초대교회에서 목사들은 모든 회중들의 자유 투표(omnium suffragiis)에 의해서 안수되었다고 말했다(Calvin,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Vol. 2, 28.). 그의 전도 여행 중에, 바울은 루스드 라교회, 이고니온 교회, 그리고 안디옥교회를 위해서 장로들을 임명(ceirotone,in)했다. 사도행전14:23에 근거해서 칼빈은 헬라어 단어 ceirotone,in을 손을 들어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Calvin,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vol. 2, 27.). 루스드라, 이고니온, 그리고 안디옥에 있는 교회들은 회중들의 총회에서 자신들의 손을 들어 자유선거를 행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회중들의 총회에서 의장 역할을 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안디옥교회(시리아)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택해 특별한 사역에 위임하기 위해서 그들 위에 손을 얹었다(Calvin,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Vol. 1, 503.).
칼빈은 임직자들 위에 손을 들어 얹는 행동을 선거를 통한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손을 얹는 행동 그 자체는 임직자의 안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특별한 의식이나 예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칼빈은 손을 얹는 것은 안수를 행하는 사도적인 전통이었다고 믿었다. 그의 디모데전서 주석(1548)에서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것은 손을 얹어 안수하는 것은 사도들의 관행이었고 일상적인 절차였다.”(Calvin,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imothy, 115-6.) 그러나 안수를 위해서 손을 얹는 예식은 행정관들의 반대로 칼빈의 생애 동안 제네바에서는 실행되지 않았다(Manetsch, Calvin’s Company of Pastors, 87.).
사도 바울은 마가 요한이 소명을 저버렸기 때문에 그를 가르치는 일반 직무에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했다. 칼빈은 마가 요한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서약을 저버리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가 자신이 했던 서약을 깨뜨린 것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보다, 또는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보다는 더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병약함이 불성실의 이유가 될 수 없고 어느 무엇도 소명의 거룩함을 더럽힐 수는 없다.”(Calvin,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Vol. 2, 88.)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선택하셨을 때 그는 배우지 않고 무지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이런 이유로 칼빈 시대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무지함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사도들 더 가깝다고 떠들었다(Calvin,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Vol. 1, 243.) 칼빈은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비웃었을 뿐 아니라 디모데전서 3:2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어떤 사람도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적합하지 않으면 목사의 직분에 부름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배우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을 택하셨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그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목사들을 안수할 때도 나중에 훈련시킬 사람을 택하는 그런 방법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의 입을 통해서 “가르치기를 잘하는”(딤전 3:2) 사람이 아니면 목사(감독)의 직분에 부르심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명하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Calvin,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Vol. 1, 243.). |
예수님께서는 서툰 사람들을 택하신 후 그들을 사도의 직분에 적합하도록 훈련시키셨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들 가운데 목사 직분을 위한 후보생들을 선출한다는 것은 결코 우리가 따라야할 좋은 예가 아니다. 칼빈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훈련이 반드시 먼저 와야 하고 그 후에 훈련된 사람들이 목사의 직분을 위해서 안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은 마5:19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자기 성도들에게 율법에 순종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잘못되고 거짓된 선생이고 또 율법의 권위를 약하게 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어떤 지위도 차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선언했다(Calvin,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Vol. 1, 279.). 칼빈은 오랫동안 잘못된 것들을 가르쳐 왔던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 계속 갈등을 했다. 그의 주석들에서 칼빈은 종종 로마 교회의 어리석은 가르침을 공격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다른 선지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듣는 것을 금한 것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로마 교회의 어리석은 가르침과 연관시켰다(Calvin,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Jeremiah, Vol. 2, 166.). 잘못된 가르침은 교회를 괴롭게 하고 교회의 분열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에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가르침에 만족해야 한다. 목사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신 것을 넘어 뭔가 새로운 것을 고안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고안해낸 것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다.
진지훈, “칼빈의 성경주석(1540-1564)을 중심으로 본 칼빈의 목사 직분 이해”, 『성경과 고고학: 신학 논단』, pp.123∼166.
첫댓글 엉터리 무자격 목사, 이단, 신비주의에 빠진 목사들이 있는 이 시대에 큰 교훈을 주는 좋은 포스팅입니다. 좋습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IVP 성경주석: 서신서』, 딤전3:1-13 교회 직분자의 자격
3:1-7 감독의 자격
비록 후대의 감독들(bishops)이 감독하는 직무를 행사하긴 했지만, 여기의 '감독'(overseer)과 오늘날의 감독(bishop)은 동일한 말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감독의 직무에 포함된 권위적인 직분 개념은 신약 성경의 사상이 아니다. 바울은, 감독하는 일을 수행했지만 독립적인 권위를 가지지는 않았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각 교회에 단 한 명의 감독이 있었다는 암시가 전혀 없고, 후기 감독들의 경우에서 나타난 것처럼 감독자가 여러 교회들을 감독하려 했다는 암시도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1절)란 말을 인용하고 있을까? 이 말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말인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자들에게 그 직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여기서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다. 바울은 그 일을 고귀한 직무로 생각한다.
그러한 직분은 적절한 적임자를 필요로 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출신 배경이 매우 다양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건들에 초보적으로 보이는 특성들이 요구되었을 것이며 특히 3절의 소극적인 특징들이 그러하다. 여기에는 후보자가 될 만한 사람의 개인 생활의 조건들이 있다. 그들은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해야한다(2절). 그들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면누구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영적 자질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기독교 사역자로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며, 만일 영향을 미친다면 그 영향은 파괴적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역자의 가정 생활도 똑같이 중요하다. 그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2절)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복종하게 하는 자여야 한다(4절). 앞에서 말한 자질은 중혼자를 제외시킬 것이지만, 사역자가 결혼 관계에서 최고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최선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일부다처인 사람들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책임 있는 지위는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어야 한다.
자기 집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두 번째 요구는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바울이, 가정이 어느 정도 교회의 전형이 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5절). 무질서한 가정은 교회를 다스리기에 필요한 바른 종류의 훈련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역자 후보를 선택할 때 종종 간과되었던 원칙이다.
6, 7절에서 자격에 관해 좀더 언급하고 있다. '새로 입교한 자'도 제외시켰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자격을 열거하고 있는 디도서에는 이 자격이 빠져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 교회가 새로 세워져서 그런 자격을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 든든히 설 때까지는 과도한 책임을 맡는 것이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다. 바울은 교만해질 위험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한다. 문자적으로 '마귀의 심판'을 의미하는 이 어구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로 보는 것이다. 이 말은 마귀에게 떨어진 정죄일 수 있다.
NIV 성경은 여기서 교만을 강조하는 쪽이다. 새로 입교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마귀가 그랬던 것과 똑같은 교만에 빠질 수 있다.
또 다른 자격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는 것'이다. 바울은 주변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는 직분자를 임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원칙한 생활로 인해불신 세계의 주목과 비난을 받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상당히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마귀의 올무'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마귀 자신이 빠진 올무 즉 교만이라기보다는, 마귀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을 다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설치한 올무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장코뱅 주석을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코뱅 성경을 에프엠대로 적용하면 목사에서 물러나야 할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아요.
목사 선출과 임명은 전체 회중의 결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회중들은 구경이나 하고 안수위원인 목사들 선에서 결정을 하는 시스템이 정착해버린 것 같네요.
목사는 성경교사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우선은 잘 가르쳐야 하고, 교회 안팎으로 선한 증거를 가진 자로 인정을 받고, 모범적인 가정의 수장일 것 등등의 기준에 합한 사람이 안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태평양 안수’, ‘에어플레인 목사’
https://cafe.daum.net/1107/Y657/389
다시 잘 읽어 보았습니다. 문제가 많네요ㅠㅠ
현대판 거짓 예언자를 배출하는 부실 신학교를 정리하면 좋겠어요
https://cafe.daum.net/1107/Y657/378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2
학력이나 경력을 부풀리거나 위조하는 목회자
https://cafe.daum.net/1107/Y657/368
네, 이것도 문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