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뺑코구나 "
" 다음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한잔하자고 ? 응, 뺑코야 ! " 중고등 학교 동기생 길상철 이름이 벨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에 뜬다. 서양인처럼 코가 뾰족하고 눈이 커서 뺑코는 녀석의 별명이 되었다. " ‥‥‥ 저어 ~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린 아들 ‥‥‥" , " 어 ~ 어~ 이게 뭐야, 아냐 ~ 아니야 ! 그럴리가 없어 " 순간 머리속이 하얘지고 불길한 예감으로 복잡해진다. 북한산을 산행한 후에 뺑코네 사무실 근처에서 여섯 동기들이 한잔을 한다. 권주가와 학교 교가도 목청껏 부르면서 말이다. 바로 며칠전 시월 초순의 일이다. " 코야 !, 술은 삼사일 지나서 마셔야지 이 녀석아 , 명심해라, 매일 처드시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로 어느 날 졸지에 그냥 가는 수가 있어, 뺑아 " 가끔 만날 때마다 잔소리 같은 충고를 하곤한다. 언제부터인가 청계천에서 사업상으로 알게된 지인의 건물 관리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일년 열두달 365일 하루 24시간 관리실을 떠날 수가 없게된다.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는 역시 사무실로 직행해야 하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알량한 봉급에 직장의 노예화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직원이래야 달랑 칠십이 넘은 친구 혼자이다. 수년 전부터는 그만 두었으면 하는 눈총도 받는다. 세평 정도도 안 되는 관리실에서 먹고 자고 헤여나지를 못한다.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집에 가고픔은 그저 마음뿐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달픔은 삶의 버거움으로 온통 자신의 몫이다. 허구 헌 날 술에 의존하게 되고 하루도 거르면 안절부절이다.어쩌면 알콜이야말로 녀석의 친구이며 위안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칠팔십년대에는 청계천에서 공업용 Brush를 생산 판매하는 자그마한 업체 사장이었다. 성격도 무난하고 정이 많은 친구이다. 회식비는 언제나 앞장서서 지불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는 녀석이다. 삼십대 중반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아들만 둘을 얻는다. 그런대로 잘 나가던 사업이 대형화와 자동화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고 만다. 80년대 후반 어느날 강동구에 있는 나의 약국으로 불쑥 찾아든 친구이다. 청계천 약국에서 강동구 성내동으로 약국을 옮긴지 오랜만의 단 둘만의 만남이다. 팔당 근처의 매운탕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얼큰한 매운탕에 곁들이는 쐬주잔을 거듭 주거니 받기니 하지만 좀처럼 친구 뺑코의 근심어린 얼굴이 풀리지를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며 언제나 밝고 쾌활하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곤 하던 녀석이다. 무슨 일이 있느냐 물어도 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한다. 깊은 한숨으로 가득한 냉가슴에 짜릿한 알콜로 적시울 따름이다. 그 녀석답지 않게 눈은 충혈되고 눈가에는 촉촉히 눈물마저 어리고 있다. 사정을 이야기할 듯 말 듯하는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잘가라는 인사에 택시비 정도를 주머니에 찔러줄 뿐이다. 사업의 추락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의 터널 속에 갇혀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순간이다. 지난 토요일(10월 21일) 미아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걷다가 그대로 쓰러진다. 지나던 행인의 119 신고로 근처의 종합병원으로 후송된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언질도 의사로 부터 통보받는다. 다급한 마음에 27일(금)에야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큰 아들이 한 것이다. 29일(일) 오전에 불암산을 가볍게 다섯명의 동기들이 오른다. 저녁 일곱시에 쌍문역에서 도야조 패노우 대머배 등과 합류한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녀석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는 느낌이다. 눈은 감긴채로 코에는 호스를 팔에는 링거줄이 여기 저기에 꽂힌 상태이다. 서류바가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드린다. 나는 손목에 맥박을 감지하며 가슴에 손을 얹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 뺑코야 ! 어서 털고 일어나야지 ! 상철아 ! 응 ,"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순간 또렷하게 두눈을 번쩍 뜨며 두 다리를 뒤척이는 게 아닌가. 맥박은 정상인 것 같고 따스한 체온도 감지되고 있다. 아내의 전언으로는 당일에는 스스로 화장실도 다녀오고, 주사바늘까지 모두 뽑으면서 당장 퇴원하자고 신경질까지 냈다고 한다. 억지로 침대에 고정시키고 치료를 시작할 수 밖에 방법이 없다. 뇌경색과 뇌출혈이 보이고 심근경색증도 있으며 급성폐렴까지 왔다는 의사의 소견이다. 혈전용해제를 쓰려니 뇌출혈이 문제이고 안 쓰면 심장이 걱정이라고 한다. 우선 호흡을 회복시키려고 폐렴 치료가 우선이라고 한다. 의사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아내와 자식들은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든다. 며칠간은 대소변도 못 가리고 식물인간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으로 하나님을 원망도 해본다. " 오늘은 눈도 또렷하게 뜨고 발도 움직였어요 " 기쁨과 신기함으로 부르짖는 그 아내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건만 호전된다는 소식은 없다. 감감 무소식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상태이다.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찾을 수 없는 삭막한 외딴 섬이다. 캄캄한 밤 하늘에는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만이 깔리고 있다. 주위에는 시커먼 파도소리만이 정적을 무너뜨리고 있다. 가끔 까마귀와 검독수리의 끼득끼득 까아악 까아악 울부짖는 처절함만이 섬 주위를 흔들고 있다. " 여보 ! 빨리 거기서 뛰어 나오세요 ! " " 아버지 ! 아들이예요, 어서 이 쪽으로 건너 오세요 " 울부짖는 가족들의 비명 소리만이 바닷물에 비켜가고 있다. 친구녀석은 미동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안타까움을 더 해줄 뿐이다. 지난 밤 꿈 속을 헤매며 마주하게 된 녀석의 악몽을 꾼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차산을 오른다. 서울시내 모습은 어제와 오늘도 변함이 없으며, 남쪽으로는 롯데타워가 우뚝 솟아 있고 주위에는 회색빛 아파트 군락들이다. 건너편 용마산 뒤편으로는 북한산 인수봉의 희뿌연 모습이 다가온다. 한강 상류인 동쪽에는 예봉산과 검단산이 옅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해마다 사월이면 중고교 동기생 십여명이 시산제를 올리는 곳이다. 교가를 시작으로 축문에는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의 명복을 빈다. 일일이 호명을 하노라면 180명 동기 중에 30명 이상이다. 앞으로 우리 모두 30년은 함께 산행하자고 권주가를 외치기도 한다. 허리통증으로 무릅관절염으로 고혈압 당뇨병 파킨슨병증 등으로 성한 데가 없는 종합병원의 몸 상태들이다. 내년 시산제에는 더 이상 축문의 명단에 추가되는 동기생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이 놈아, 뺑코야 ! 포기하지마라, 포기하면 안돼, 네가 그토록 즐기던 쏘 ~ 오주 하안~ 자~안을 ~~~ " 울컥 목이 메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음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만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만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고, 세수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눈을 뜨고, 발을 움직이는 것, 산을 오르내리는 것들이 이렇게 대견스럽고 신기함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으리라. 우리 인간들은 당연하게 그저 그런 것이려니 무관심으로 스치고 흘려 보내곤 한다. " 눈을 뜨고 발도 움직였어요 ! " 흥분하고 감격해 하는 모습이 평소에도 인간의 참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권불십년세(權不十年勢),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인생여운무(人生如雲霧)" 70대 중반인 노객이 언제까지 독백을 할 수 있으려나.
2017년 11월 2일 무 무 최 정 남
♥♥♥ 아래 글은 길상철의 아내가 보내온 답글입니다.
안녕하세요..어제밤 남편에 대한 글 대단한 문장력에 깜짝 놀랐습니다...읽으면서 눈물이 쏱아졌어요...요셉씨는 2일날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어요...산소호흡기도 때고 사람도 알아보고 합니다 3일날 뇌사진 찍은결과 피는 말라는데 물이 차 있는 상태는 그대로여서 요셉씨의 현제 몸무게가 병원에 온후 더 빠져 47키로라서 지금의 상태는 수술도 안된다고 하고 일반병동으로 와도 손은 여전히 묶여있고 엉덩이는 완전히 욕창전단계입니다...일반병동에 온후 갑자기 설사를 11번을 ...고통스럽게 잘 버티고 있어요 어제 ( 토요일) 엔 설사도 멈추고 말도 잘합니다...한데 어떤 부분에선 상황판단이 전혀 안되고 있어요...지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서 ...살아난것에만 기뻐서.... 친구분들과 많은 분들의 간절한 기도에 의해 깨어났지만 변을 싸고도 싼지를 몰라서 차차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소설가보다 표현력이 좋은 글솜씨에 감동받았습니다....친구분들께 남편 깨어났다고...당분간은 기도만 부탁드린다고....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주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