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로드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도 다니는 길이 있다. 때가 되면 같은 길을 따라 장거리를 오고 간다. 용케도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생명을 이어간다.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몽골이 고향으로 멸종 위기 2급에 속한다. 몽골의 한 겨울은 무려 영하 40도의 기온이 장기간 계속되어 이 때 어린 독수리들은 몽골을 떠나 우리나라까지 왕복 3,000km의 먼 거리를 비행한다. 주로 5년 미만의 독수리가 주를 이루는데 그 이상의 성체들은 그 혹독한 겨울을 몽골에서 알을 낳고 부화하면서 보낸다.
몽골에서 태어난 새끼 독수리들은 10~11월 몽골을 떠나 월동을 위해 한국을 찾고, 이듬해 2~4월에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 몽골에는 약 2만 마리가 서식하는데 이 중 한국을 찾는 독수리는 1,500~2,000마리다. 이 몽골 독수리는 우리나라의 고성지역까지 날아와 월동을 한다. 물론 파주/문산 지역에도 찾아온다. 하지만 두 무리의 구성 성분은 전혀 다르다. 고성 지역에 오는 독수리들은 비교적 생후 5년 미만인데 파주/문산의 독수리들은 그보다는 더 성장한 무리이다.
이들 독수리는 지구상에 23종류가 있으며 영명도 이글(eagle)이 아닌 벌쳐(Vulture)로 불린다.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시네레오우스 벌쳐’(Cinereous Vulture)라고 불러야 다른 독수리와 다른 바른 이름이 된다.
이 독수리의 특성은 타 동물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 사냥으로 먹이를 마련하는 수리류는 이글(Eagle)라 부르고, 성질이 온순하고 죽은 고기만을 먹는 수리류는 벌쳐(Vulture)라고 부른다. 일 년에 한 개의 알을 낳는데 무려 54일간 부화 후 스스로 날 때까지 보살핀다. 높은 바위산이나 혹은 나무에 둥지를 만드는데 통상 여러 해를 보강하여 만들다보니 큰 집은 무려 둘레가 3m에 이른다. 높이도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약 8m이다. 독수리의 수명은 신비롭게도 분명히 밝혀진 자료가 없다.
엊그제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평소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노 영대」친구의 연락을 받고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러간 것이다. 그와는 지난 1980년대 후반에 문산에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문화일보의 기자로 일했는데 인상이 텁텁하고 매사에 시원스런 성격이라 처음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종종 만나다보니 사고의 폭과 깊이가 보통과는 달랐는데 나이도 같아 친구가 되었다.
지난 90년대 초에는 남극지역을 방문하여 그 지역의 희귀한 각 종 조류와 펭귄을 관찰한 사진을 액자에 담아 나에게 보냈다. 이 사진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아이의 방에 걸어 두었다. 후일담이지만 어린 딸이 지구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더니 결국 현재의 해양화학자로 성장한 것은 어쩌면 이 사진이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대를 졸업하고 경향신문과 문화일보를 거쳐 지금은 완전히 환경보호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 식물의 보존과 번식을 위한 각 종 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독수리 보호 외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강원도 화천의 「비수구미」 마을지역에 멸종위기의 식물종(植物種)들을 심어두고 그 번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년 전에는 제주도에서 멸종위기의 자생란(自生蘭)을 찾아내어 학계에 알리고 보호토록 하였다. 이미 30년 전에 『한택식물원』과 『한국식물원협회』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이 우리나라 최고의 난초 전문가인 「이 종석」 교수였다. 제주도 한란 자생지에서 살면서 2년 반을 조사, 연구했는데 당시 이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도 하였다. 당시 이 교수가 몇 권의 논문과 책을 주어 한란(寒蘭)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제주도 서귀포 해안가에서 자생란인 「소란」(학명은 하란)을 찾아 증식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소란」은 식물도감 가운데 사진이 없거나 흔적에만 남은 자생난초이다. 그는 2010년 전후에 제주도에서 자생난초를 조사, 기록을 하고 멸종 직전의 「소란」을 찾아냈는데 국립수목원은 증식에 실패했고, 다른 한 지역에서 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자생지에서 「소란」을 찾기도 했는데 나중에 증식한 「소란」이 개화하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임진강 하류에 있는 무인도인 『초평도』 섬의 보호활동과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반딧불이’ 보호에 관한 학술 및 홍보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문산 일대의 사적지를 발굴하거나 온 동식물의 보호와 홍보 활동에 열중하여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마디로 고향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실 몽골을 수차례 왕복하면서 독수리의 생태를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독수리는 사람이 근접하기 어려운 높은 바위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어 둥지가 있는 그 현장을 찾아 가는 길은 마치 가파른 벼랑길을 오르는 산악인을 방불케 한다. 위험의 정도가 마치 지옥의 낭떠러지를 걷는 듯하다.
다행히 한국말을 구사하며 현지 지형에 익숙한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그나마 다행이다. 마치 친 형제처럼 지내는데 모든 고난을 함께하며 독수리의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운전에 익숙하고 차량 정비를 포함한 식음료의 준비까지 담당하면서 함께 생태환경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일전에 우리나라에서 탈진한 독수리를 회복시켜 아름을 ‘고성’이라하고 윙태그(인식표)와 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이동경로를 추적하였다. 몇 해 동안의 노력 끝에 몽골 초원의 끝자락에 살아있는 ‘고성’이를 확인하는 장면은 인간과 자연의 위대한 승리 그 자체였다. 멀리서 카메라를 연신 찍어대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독수리는 기류를 타고 창공을 가른다. 따라서 독수리는 바다를 나르지 못한다. 바다에서는 지상에서처럼 하늘로 이어지는 기류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이러한 이유를 확인하고 수년간 쌓였던 비밀이 풀렸다. 페루에서 길조로 여기는 ‘콘도로’를 생포하여 축제가 끝나면 다시 자연으로 보낸다. 이 때 높은 산정까지 ‘콘도로’를 가져가 계곡에서 바람이 상승하면 방생을 한다. 바로 지상에서 올라오는 상승기류를 활용했던 것이다.
몽골의 독수리는 대초원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이는 아프리카 밀림에서 하이에나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워 밀림을 정화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몽골에는 인구의 약 20배가 되는 각 종의 동물이 살고 있다. 주의를 기울여 짐승을 키워도 병들거나 각양각색의 이유로 낙오 혹은 사고로 죽어가는 동물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초원에서 죽은 각종 동물의 흔적을 지우는 역할이 이들의 임무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민목 독수리’ 떼를 불러 모아 장례를 치른다. 이를 주관하는 ‘천장사’(天葬師)는 사체를 잘게 쪼개어 독수리가 잘 먹도록 해준다. 이를 먹은 독수리가 창공 멀리 날아가 하늘의 신에게 죽은 영혼을 연결해 준다고 믿는다. 한 때 부질없이 고뇌하며 살던 인간의 삶이 한 가닥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가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런데 어렵게 날아온 독수리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수가 희생되고 있다. 주로 인간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인간이 뿌린 농약에 중독되어 죽은 오리, 기러기 등의 사체를 먹고 2차로 중독되어 목숨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전신주나 송전탑 등 인공구조물에 의한 날개손상 이나 발톱부상으로 신체의 일부 기능을 상실하면 날거나 먹지를 못해 죽게 된다.
다행히 이를 구조하여 치료하는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운이 좋게 구조되는 경우는 극소수일 뿐이다. 공주에 있는 「자연 동물 치료학교」에는 날개 없는 독수리를 13년 째 돌보고 있다. 발톱이 부러진 경우에는 먹이를 찢어서 먹지 못하고 동료가 흘린 것을 겨우 먹다보니 언젠가는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선한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끝없는 욕망으로 타락한 세상을 한 줄기 빛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독수리가 찾아오는 시절이면 독지가들이 모여 독수리 먹이를 준비하고 뿌려준다. 이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수 백 마리의 식사준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 묵묵히 수행하는 봉사자들에게 일반 다수가 참여하고 기관에서도 예산을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왜 독수리보호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곧 우리 자신과 후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일개 종의 멸종은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려는 「자연의 벗 연구소」와 같은 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기우릴 때이다.
이번 ‘독수리로드’의 관람을 계기로 아파트 ‘캣맘’의 봉사정신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 것도 자그만 자연보호를 위한 첫 걸음이었다. 아울러 애완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멸종 위기종의 동, 식물로 점차 확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역시 다른 관점에서 이 세상을 관조하는 멋진 사람들이 있어 자연과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갈 가치와 의의가 있는가 보다. 수년간 고생한 보람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2024.8.30.작성/9.25.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