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중보기도
성경 본문 : 디모데 전서 2장 1절-2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기도의 초기 형태는
개인기도 보다 중보기도가 많습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시려는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가 바로
중보기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고 성경 <창세기> 18장 23절-24절).
이처럼 중보기도는 개인기도보다 성경이 더 중시하는 기도요
영원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시해 주는 중요한
의미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섭리의 한 요소도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기회에 나만을 위한 개인기도에서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로 그 관심을
돌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중보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임
(참고 성경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1) 이웃 사랑의 표현임
성도의 행동 원리는 어떤 법이나 형식 안에
타율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강력하신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랑의 원리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에
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믿음도. 봉사도. 선교도
사랑이 그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 역시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해 하나님께 요구하는 기도보다 이웃을 위하여
행하는 중보기도가 더욱 귀한 가치를 띄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중보기도는 이웃을 용서하는 내용. 또 축복해 주는 내용.
잘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기도의 성숙도를 알고 싶다면
과연 자신이 개인 기도보다 중보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살펴보면 압니다.
2) 성숙한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란 결국 '베푸는 기도'입니다.
베푸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덕이 있는 사람. 자기를 초월한 사람. 성숙한 인품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
즉 영성이 깊은 성도만이 중보기도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중보기도를 생활화한 사람들은 남보다
성숙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아브라함>을 비롯해 <모세>.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바울> 같은 사도들이 중보기도를 생활화 했습니다.
특히 <바울>의 예를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는 내용을
성경에 단 한번 고백으로 등장합니다.
자기 몸을 찌르는 '사단의 가시'를 없이해
주시기를 간구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참고 성경 <고린도 후서> 12장 7절-8절)
그 기도 외에는 모든 기도가 개인적인 내용이 아닌
교회와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 중에는 자신이 영적으로 깊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깊은 기도는
다름 아닌 중보기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뜻에 부합되는 기도가
바로 영적으로 깊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2. 중보기도의 대상은 제한이 없음
(참고 성경 <마태복음> 5장 44절).
1) 나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함
구약성경의 기도를 뜻하는 <히브리>말은 '테필라'입니다.
이는 '중재. 조정. 청원.'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성경의 기도 개념 자체가 개인기도가 아닌
중보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나와 나의 문제가 아닌 모든 이웃을 위한
이타적인 기도가 곧 중보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은 제한이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위정자들을 비롯해
교우들. 목회자들 그리고 민족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나와 관계 되어진 모든 이웃이 중보기도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영혼과 신앙을 위해 그들이 빠진 곤경과 문제를
해결 받도록 그들을 축복하기를 원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보기도를 잘하는 성도들은 그 마음과 의식의 폭이
넓게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와 이익에 연연하는 사람과
이웃의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과 의식의 차이는 비교될 수 없을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그 기도를 하는
성도의 마음과 신앙을 성장시켜 줍니다.
2)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는 성도의 삶이 무기요
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친절한 이웃보다
나에게 걸림돌이 되고 나에게 해악을 끼치는
이웃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이웃을 만났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같이 악으로 싸우고 권모술수로 대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고. 의로 불의를.
사랑으로 미움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판결은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원수 같은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그 잘못되고 악하고 어리석은 점을 스스로 깨닫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할 수박에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이 곧 중보기도의 필연성입니다.
이 중보기도를 통해 성도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이웃과 화평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3. 중보기도의 효능은 매우 큽니다.
(참고 성경 <야고보서> 5장 14절-15절).
1) 응답에 신속함
주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중보기도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요.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드리는
겸손과 덕을 겸비한 기도이기에
그 응답도 틀림없고 신속합니다.
진정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기에
그 응답도 틀림없고 신속합니다.
진정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기에
그 외의 것들도 응답받는 예 가 많습니다.
<솔로몬>이 백성을 위해 기도했기에
지혜와 부도 선물로 받은 예 가 그것입니다.
2) 선교의 효능이 큽니다.
초대교회의 선교역사를 살펴보면 사도와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행한 기반 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원하는 목적 안에서 서로 기도한 결과
선교의 장애물이 사라지고 선교의 문이 열리고 선교의 열매가
맺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성장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관주>
1. 중보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임
1) 이웃 사랑의 표현임
① 용서 바라는 기도임(참고 성경 <민수기>14장 19절)
② 축복해 주는 기도임(참고 성경 <룻기>2장 12절)
③ 이웃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임(참고 성경 <요한일서1장 2절)
2) 성숙한 신앙인의 기도임
① <모세>의 기도였음 (참고 성경 <출애굽기>33장 13절)
② 그리스도의 기도였음 (참고 성경 <누가복음>22장 31절-33절)
③ 사도들의 기도였음 (참고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1장 2절)
2. 중보기도의 대상은 제한이 없음
1) 나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함
① 위정자를 위해 기도함 (참고 성경 <디모데 전서>2장 1절)
② 불신 민족을 위해 기도함 (참고 성경 <로마서> 10장 1절)
③ 교우를 위해 기도함 (참고 성경 <빌립보서> 1장 3절)
2) 원수를 위해서도 함
① 원수라도 기도해 줌 (참고 성경 <마태복음> 5장 44절)
② 십자가에 못 박는 자를 위한 기도 (참고 성경 <누가복음> 23장 34절)
③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한 기도 (참고 성경 <사도행전> 7장 60절)
3. 중보기도의 효능은 매우 큽니다.
1) 응답이 신속함
① 마음이 겸손한 자의 기도임 (참고 성경 <시편> 10편 17절)
②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임 (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 33절)
③ 그 역사하는 힘이 큼 (참고 성경 <야고보서> 5장 16절)
2) 선교의 효능이 큼
① 은사를 풍성케 함 (참고 성경 <고린도 후서> 1장 11절)
②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함 (참고 성경 <에베소서> 6장 19절)
③ 전도할 문을 열게 함 (참고 성경 <골로새서> 4장 3절)
결론
목회자만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목회자를 위해 또 이웃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생활화해야 사단의 세력을 잠식시키고
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교회 부흥을 원하시면
중보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는 우리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일보다 먼저
오직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기적인 생활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개인중심의 기도 생활로는 주님의 깊은 세계적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나누는 기도. 베푸는 기도.
생활을 다하여 다함께 축복을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