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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9
‘이~승~엽, 홈런!’
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단 한 명의 선수로 인해 들썩거렸다.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이 KBO리그 사상 최초의 400홈런에 도전하는 동안, 온 야구계가 그의 배트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승엽이 가는 구장마다 수많은 팬들과 취재진이 몰렸고, 야구장 티켓은 내야가 아닌 외야석부터 매진됐다. 이승엽의 타석이 돌아올 때마다 구심에게는 모종의 표시가 된 새 공이 전달됐다. 이승엽의 홈런이 가장 많이 날아간 우측 담장 뒤에는 12년 만에 다시 400호 홈런볼을 잡기 위한 잠자리채가 등장했을 정도다. ‘홈런’이 다시 한 번 프로야구의 화두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 삼성의 이승엽이 지난 3일 포항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홈런은 야구에서 가장 간단하게 점수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홈런 없이 1점을 뽑아내려면 아주 많은 행위가 필요하다. 타자가 안타나 볼넷으로 1루에 나가고, 희생번트나 진루타가 나오고, 도루를 하고, 적시타가 터지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주자가 홈에 들어오지 못하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홈런은 다르다. 그냥 공을 받아 쳐서 담장을 넘기면 된다. 운 좋게 다른 주자가 루상에 나가 있으면, 함께 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게다가 궤적도 그 어느 타구보다 크고 아름답다. 그래서 더 극적이고, 더 강한 인상을 남기며, 그만큼 더 치기 어렵다. 홈런을 ‘야구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타격왕은 포드, 홈런왕은 캐딜락 몬다’
▲ 전설적인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
야구 종주국 미국에서 초창기 홈런은 지금과 달랐다. 원래는 펜스가 없는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담장을 넘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관중석이 생기면서 펜스가 설치되긴 했지만, 당시에 사용된 부드러운 야구공으로는 아무리 세게 쳐도 타구를 멀리 날려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타자들은 큰 아치를 그리는 것보다 라인드라이브 안타를 최고로 쳤다.
그러나 전설적인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의 등장으로 인해 홈런의 가치가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루스는 원래 왼손투수였지만, 타격에서도 재능이 뛰어났다. 1918년에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면서 11개의 홈런을 쳤고, 이듬해 외야수로 전향한 뒤 29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작성했다. 다른 팀 전체 홈런수보다 많은 숫자였다. 배트를 길게 잡고 크게 돌리는 전형적인 홈런 스윙을 드물게 시도한 타자이기도 했다.
1920년 54개, 1921년 59개로 루스의 홈런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다른 구단에서도 본격적으로 홈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각 팀의 홈런수가 루스의 개인 홈런수보다 많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홈런은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 들이는 대표적인 매개체가 됐다. 루스의 홈런쇼를 보기 위해 연일 야구장으로 관중이 몰려들었다. “타격왕은 포드를 타고, 홈런왕은 캐딜락을 몬다”는 유명한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 한국의 베이브 루스, 이승엽의 400홈런
이승엽은 말하자면 ‘한국의 베이브 루스’였다. 1997년 데뷔 이후 한국 프로야구 홈런의 역사를 다시 써왔다. 장종훈 같은 선배 홈런왕들이 닦아 놓은 길을 더 넓히면서 걸어 왔고,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400홈런’이라는 숫자를 현실로 만들었다. 심지어 일본에서의 8년(2004~2011년) 성적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이승엽이 현역 타자이면서도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이유다.
일단 통산 홈런수부터 그 적수가 없다. KBO리그에서 30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 가운데 양준혁(351개), 장종훈(340개), 심정수(328개), 박경완(314개), 송지만(311개), 박재홍(300개)은 모두 은퇴했다. 현역 타자들 중 200홈런을 넘긴 선수도 NC 이호준, 한화 김태균, KIA 이범호, kt 장성호, 두산 홍성흔 정도다. 그러나 현역 2위에 해당하는 이호준의 홈런수는 이승엽과 100개가량 차이가 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30대 후반의 베테랑 선수들이다. 앞으로 추가할 수 있는 홈런수가 그리 많지 않다. 30대 초중반인 김태균과 이범호도 매년 30홈런씩 5년 이상을 쳐야 이승엽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다. 20대 타자 가운데에는 200홈런을 넘긴 타자가 아직 없다. 200홈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SK 최정, 넥센 박병호 정도가 훗날 이승엽의 뒤를 이을 차세대 거포로 꼽힌다.
# 이승엽의 또 다른 도전
이승엽은 향후 한일 통산 600홈런 기록도 노리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500홈런을 명예의 전당 입성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500홈런을 넘어 600홈런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승엽이 이미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타자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15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600홈런에 도달한 타자는 불과 8명. 20세기에 베이브 루스(714개), 윌리 메이스(660개), 행크 애런(755개)이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2000년 이후 배리 본즈(762개), 켄 그리피 주니어(630개), 새미 소사(609개), 짐 토미(612개), 알렉스 로드리게스(664개)가 600홈런 고지를 밟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본즈, 소사, 로드리게스는 훗날 약물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록의 ‘순도’를 의심받았다. 약물이 섞인 기록을 배제하면 600홈런 타자는 단 5명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일본에서는 단 2명만 600홈런을 때려냈다. 오 사다하루가 1959~1980년 22시즌 동안 868개, 노무라 가쓰야가 1954~1980년 27시즌 동안 667개를 썼다. 당시 일본은 압축배트(원목을 깎은 뒤 다시 수지가공을 해 압축한 배트로 타구의 반발력이 강해 현재 프로야구에서는 부정배트로 간주된다) 사용이 가능했다. 압축배트가 퇴출된 이후에는 600홈런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승엽이 KBO리그에서 때려낸 홈런과 일본리그 8시즌 동안 기록한 159개의 홈런을 합하면 이제 600홈런까지 채 50개도 남지 않았다. 한일 통산 홈런은 공식 기록이 아니지만,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의 미일통산 4000안타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위대한 숫자다.
/ 박병호
# ‘50홈런 타자’ 명맥 이은 박병호
최근 이승엽과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됐던 타자는 단연 넥센의 박병호다. 박병호는 지난 2년간 홈런·타점왕에 올랐고, 무엇보다 지난해 2003년 이승엽 이후 끊어졌던 한 시즌 50홈런의 명맥을 이었다. 야구팬들은 모처럼 나타난 50홈런 타자에 열광하면서 2003년 이승엽과 2014년 박병호의 50홈런을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꼈다.
당시의 이승엽과 지난해의 박병호는 체격 조건이 거의 비슷했다. 키, 가슴둘레, 팔뚝둘레, 허벅지둘레, 발사이즈 모두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체중이 많이 다르다. 107㎏의 박병호는 당시 85㎏이었던 이승엽보다 22㎏이 더 나갔다. 홈런은 허리회전과 힙턴은 물론 배트 스피드와 무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타격의 예술이다.
홈런타자 치고 몸무게가 적은 편이었던 이승엽은 2003년 당시 1㎏에 육박하는 배트를 사용했다. 상대팀이나 타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적게는 930g에서 많게는 960g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트의 원심력을 이용해 타구를 부드럽게 담장 밖으로 넘기곤 했다. 여전히 힘보다는 손목 힘과 타격 기술로 홈런을 만들어내곤 한다.
박병호는 당시의 이승엽보다 50g 가벼운 배트를 썼지만, 타고난 힘과 체중에서 앞서는 유리함을 잘 살렸다. 기본적인 파워가 뒷받침돼 있으니, 890g짜리 배트도 벼락처럼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빠른 배트 스피드에 체중까지 실려 타구가 끝없이 날아간다. 이승엽의 홈런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면, 박병호의 홈런에서는 공을 반으로 쪼갤 듯한 파괴력이 느껴지는 이유다. 결국 이승엽과 박병호는 타고난 체격에 자신에게 필요한 노하우를 더해 50홈런 고지에 등정한 셈.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야구팬들에게 홈런만이 안길 수 있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04호]
◎ 이승엽의 역사적 홈런
일본만 만나면 ‘8회의 기적’
삼성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아주 특별한 타자다. 홈런 숫자를 하나씩 쌓아 올리면서 ‘기록’뿐만 아니라 ‘기억’도 여럿 남겼기 때문이다.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이승엽이 8회말 역전 투런 홈런을 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승엽은 한국 야구국가대표팀 역사에 ‘8회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선물한 타자다. KBO 기록에 집계된 홈런은 아니지만, 그가 처음으로 ‘국민타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국제대회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터트리는 해결사 능력 덕분이었다. 그의 홈런 가운데 가장 잊지 못할 한 방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나왔다. 당시 이승엽은 ‘일본야구의 심장’으로 통하는 도쿄돔에서 열린 1라운드 일본전에서 1-2로 뒤진 8회 2사 1루에서 역전 홈런을 터트려 승리를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4강전에서는 또 다시 일본과 맞서 ‘호시노 재팬’을 무너뜨리는 역전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예선전 6경기에서 극도로 부진했던 그는 2-2로 맞선 8회 1사 1루에서 극적인 역전 결승 2점 아치를 그리면서 왜 이승엽이 한국 국가대표팀의 4번타자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승엽은 이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내는 눈물을 보이며 더 큰 감동을 안겼고, 끝까지 이승엽을 믿고 기다린 김경문 감독의 신뢰도 주목을 받았다. 이승엽은 여세를 몰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1회 선제 홈런을 터트리면서 한국 야구에 전승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감격을 선사했다.
사실 이승엽의 홈런과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사는 그 궤를 같이 한다. 이승엽은 1997년, 1999년, 2001~2003년, 총 다섯 번이나 홈런왕에 올랐다. 1999년 54홈런, 2002년 47홈런에 이어 2003년에는 시즌 56호 홈런을 터트리면서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작성했다. 이승엽의 기록이 임박하면서 야구장 외야석이 먼저 매진되는 기현상이 빚어졌고, 홈런볼을 잡기 위한 잠자리채도 처음으로 야구장에 등장했다.
이승엽의 홈런은 가을에도 빛났다. 특히 2002년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에 쏘아 올린 홈런포는 스스로도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당시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던 삼성은 6-9로 뒤진 채 정규이닝 마지막 회를 맞이했다. 1사 1·2루에서 LG 이상훈과 맞선 이승엽은 전 타석까지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딱’ 소리가 들린 순간 이승엽은 양팔을 뻗은 채 1루로 향했다. LG 쪽으로 기울었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는 동점 3점포. 삼성은 후속타자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엽의 홈런이 주는 감동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이승엽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도 3-0으로 앞선 3회 2사 2루서 넥센 선발 헨리 소사를 상대로 우중간 2점포를 터트렸다. 늘 그랬듯이, 먼저 1패를 안은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시원한 한 방이었다. 1997년 LG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생애 포스트시즌 첫 홈런을 기록한지 17년 만에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갈아 치웠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 홈런들의 가치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승엽은 ‘이젠 안 되겠어’라고 말하는 순간에 꼭 뭔가를 보여 준다니까.” [은]
◎ 체격 크면 홈런 더 잘 칠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몰라?
‘홈런타자’ 하면 흔히 체격이 큰 선수가 연상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홈런타자로 꼽히는 베이브 루스는 물론 소프트뱅크 이대호, 삼성 최형우, 넥센 박병호 등 많은 홈런타자들은 체격이 큰 편이다. 실제로 홈런 10위 안에 드는 타자들은 리그 평균보다 키가 2㎝ 더 크고, 체중이 15㎏가량 더 나간다. 프로필상 몸무게보다 실제로는 더 나가는 선수들도 많다.
물론 체중이 홈런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많은 홈런타자들과 타격코치들이 “홈런의 전제는 타격기술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홈런타자인 이승엽과 텍사스 추신수는 체격이 그리 큰 편이 아니지만, 타고난 손목 힘을 최대로 이용해 홈런을 때려낸다. 은퇴한 심정수처럼 가벼운 배트로 스윙스피드를 극대화하는 스타일도 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대호는 한국에서 뛰던 시절 “나는 배트 헤드의 무게감을 최대로 활용한다. 그래서 900g이 넘는 배트를 쓴다. 이렇게 무거운 배트를 쓰려면 어느 정도 힘과 체중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관계자 역시 “비거리를 결정하는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에 비례한다. 질량 안에는 선수의 체중과 배트의 무게가 포함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역대 한 시즌 30홈런 타자 가운데 최소 체중(71㎏)을 기록한 이종범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나는 도루도 같이 하느라 체력소모가 심해서 여름에는 몸무게가 68㎏까지 떨어졌다. 체격이 작은 타자들은 모든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 나도 1997년에 하체의 순발력, 배트 스피드, 손목 힘의 활용 등이 모두 잘 됐던 것 같다”며 “반면 체격이 좋고 무거운 배트를 쓰는 타자들은 배트 끄트머리에 맞아도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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