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9. 23.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때 논란을 인정하면서도 조 장관 자신은 죄가 없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공정한 적용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이는 합리적이고, 환영할 만한 발언이다. 의혹 제기는 싫다는 증거일 뿐, 범죄의 증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발언의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미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그는 현직 대통령조차 의혹만으로도 탄핵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자들은 이젠 잊었을지 모르지만, 지난 2016년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군중 앞에 나서 그들의 시위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못마땅함의 증거일 뿐이지 범법행위의 증거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정의가 구현되는 신성한 혁명인 것처럼 규정했다.
우린 바보가 아니다. 이 둘의 차이점을 안다. 조 장관은 동지이고, 박 전 대통령은 정적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좌우 대결에서 폭넓은 중간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민주적 좌파와 민주적 우파 양쪽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중 잣대를 거부한다.
우리는 지도자가 얼마나 윤리적이기를 원하는가. 이는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끊임없이 당혹감을 느끼는 필자 같은 아웃사이더에게 한국 사회는 아직 이 문제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범죄자가 나라를 운영하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초인적 수준의 도덕적 지도자를 원하지도 않는다. 성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추석 연휴 때 사흘 동안 금식하라고 명령할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 선거 땐 사랑스러운 불량배에게 투표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 한국의 정치 문화는 대부분의 나라보다 유난히 성마르고 사람들은 계층구조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훨씬 집착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로 상충하는 의견을 한데 수용하려다 완전한 교착에 빠지기 일쑤다. 이 때문에 외교적 기술과 고집, 대중을 기쁘게 할 줄 아는 매너를 고루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타입에 잘 맞는다. 그는 항상 웃는다. 최소한 주변에 카메라가 있을 때 그렇다. 하지만 속으로는 대단히 고집스럽다. 그는 파라오만큼이나 고집불통이다. 신이 '이집트 10대 재앙'에 맞먹는 현대적 재앙, 즉 경제 정책의 실패, 무역 전쟁, 북한 미사일, (비판적인) 신문 사설 등을 경고로 보냈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을 고집했던 식으로 자신의 경제·외교 정책을 고수한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첫째가 능력이고 둘째는 도덕적 선함이다. 문제는 윤리적 기준이 옮겨가고, 사회적 가치관도 바뀐다는 점이다. 정당들이 윤리를 자기 사람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무기로 냉소적으로 사용할 때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 이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후보자를 윤리적으로 공격해왔다. 몇몇 범죄라 불리는 것들, 즉 다주택 보유, 자녀를 위한 위장전입, 자녀의 외국 시민권 취득 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 정치에 이런 윤리적 뒤죽박죽이 가득한 것은 사법 체계 그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정서주의(emotionalism)에 종속돼 있다. 가령 조 장관의 아내가 황교안 판사가 주재하는 재판정에서 나경원 검사와 맞닥뜨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 그녀는 필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씨와 감방을 함께 써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녀와 그녀의 동료 수감자를 사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자신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혀 중요치 않은 이유 때문인 것이다.
조국 장관 임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사법 체계의 개혁이다. 한국인들은 좀 더 공정하고 품위 있으며 관대하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바람에 좌우되지 않는 시스템을 원한다. 진정한 시험대는 친구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적을 얼마나 공정하게 다루느냐이다. 하지만 눈부신 이중 잣대를 갖고 있는 정권에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마이클 브린 /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