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고난/대속의 은혜
Text Ish 53,3-6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얘기인즉슨 박근혜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암살되어 불쌍하고 결혼도 못 하고 혼자 살아서 불쌍하여서 자기라도 편들어주고 싶어서 태극기 집회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윤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사람의 생각은 무엇인지도 궁금했었는데,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대통령 노릇 적당히 하면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라를 위해서 고생을 자처하고 계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태극기 집회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니, 그들은 마치 계엄을 한 대통령이 십자가에서 거룩한 희생을 하신 예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받으심을 되새기면서 은혜를 받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듣는 사람이 실소하게 하지 않고 숙연해지게 합니다. 저는 4.13주일까지 이어지는 사순절 절기 동안 예수님의 고난이 만든 은혜를 집중적으로 설교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사순절 제1 주일은 성경 사53,3-6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고난/대속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은혜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2. 먼저, 3-4절입니다.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장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오실 때, 마치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사람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신다(2절)고 하였습니다. 그런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신 메시야는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아 버림받는다고 하였고, 간고를 많이 겪는다고 하였으며, 질병의 고통을 당하여 아는 분이라 하였습니다.
‘멸시’라는 단어는 메시아가 세상에서 겪으실 모욕과 경멸을 의미합니다. 죄인으로 취급받고 배척당하는 모습을 겪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버림을 받는다’는 말은 인간들에게 메시야가 거부당하고 배신당하는 뜻이며, ‘간고를 많이 겪는다’란 깊은 고통과 슬픔을 많이 겪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메시아가 ‘질고를 안다’는 것은 마치 병을 앓은 자 같아서 병든 육체가 당하는 아픔을 알고 육체가 병듦으로 겪는 여러 심리적, 사회적 고통도 몸소 겪으시면서 그 아름을 알고 그런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메시아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는 인간과 차원을 달리하는 신적 존재이어야 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구원받아야만 하는 존재인 사람의 속성도 온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메시아는 초능력자로서 마법을 부리듯 인간을 바꾸어놓는 분이 아니라 타락했던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이란 것도 알게 합니다. 이사야 이후 시대의 유대인들을 보면, 유대인들은 이 이사야의 예언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들려주는 메시야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기도 한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는 대속자여야 하고 대속자는 대속하는 행위를 하는 것 만큼이나 대속을 할 자격을 갖춘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빌2,6-8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의 말을 통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아기는 사람의 혈육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려고 오신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예수님 자신께서도 요17,5에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겪으신 질고와 슬픔은 고난은 첫 번째 대속 사역이라고 가르쳐주는 말씀이 바로 4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을 되새기는 사순절에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질고와 슬픔을 겪으신 것은 죄인인 인간,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속죄하기 위한 ‘대신 속죄 사역’의 일환이었다는 것입니다. 태생 죄인인 내가 죄로 말미암아 겪고 있는 질고와 슬픔을 아시고, 그래서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속죄하시는 진정한 대속자가 되시기 위해 친히 그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당신의 어떤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내놓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3. 다음, 5절을 봅니다.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대속은 '대신하여 갚다', '대신 치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이는 형벌과 죽음을 포함합니다. 구약에서 대속은 주로 제물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제사에서 속죄제물로 양이나 염소를 희생시켜, 그 피로 죄를 사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는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그 죄를 대신 지고 대속할 수 있는 희생 제물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단지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 우리 죄의 값을 치르는 영적인 대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시면서, 우리의 죄와 그에 따른 형벌을 대신 받아들이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대속자로 오신 예수님은 대속 사역의 완성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자로 오신 것이 고난 당하신 첫 번째라면 대속자로서 실제 희생 제물이 되신 고난이 대속 사역의 두 번째입니다. 메시아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셨고, 그 허물을 속죄하시고 우리가 용서를 받게 하기 위해 상하셨으며,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채찍에 맞으시는 대속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우리 죄는 그의 머리의 가시였고 그 손과 발의 못이었으며 그 옆구리의 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은 여인의 산고와 같은 고통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상하셨다는 것은 짓이겨지셨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이 고난 사역의 결과는 우리 인간의 평화와 나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간의 반목을 없애고 친목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고 그의 공의에 불쾌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해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어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와의 우정과 친교에 끌어들이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화평(즉, 모든 선)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십니다.(골1,20). 메시아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형을 언도받은 우리를 위해 용서함을 사셨고, 병든 영혼을 치료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도 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영혼의 병인 우리의 타락을 제어하셨고 우리의 영혼이 건강한 상태에 있도록 하시어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하고 그를 즐거워할 수 있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양육시키는 것에 대해 저항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속의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그 값을 치를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대신 모든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이루신 대속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죄악의 늪에 빠져 있다고 느끼십니까? 사랑을 아낌없이 주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 자신을 가져다 놓으십시오. 그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흘러내리는 십자가의 보혈에 맡기십시오. 그것이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인간에게 주님이 하라시는 명령입니다. 이 믿음이 충만하시기를 사순절 첫 주일에 축복합니다.
4. 마지막으로, 6절을 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메시아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신 분이라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는 죄인인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본성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메시아는 인간을 대신하여 찔리고 상하며,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시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신데, 하나님은 그의 사역에 죄인인 인간의 모든 죄악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셨다는 것이 6절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을 되새기는 데 있어 우리는 대속의 은혜를 믿고 우리의 죄악을 메시아 예수님께서 담당하시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내가 죄악의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대신 담당하시려는 메시아 예수님을 믿고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벧전3,18은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이는 메시아 예수님밖에 다른 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담당하시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현명한 처사입니다. 또한 그것은 대속자로 오신 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마18,12에서 주님은 확인하여 주십니다. 그 잃어버렸던 양을 찾으면 양 한 마리 값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여 잔치를 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라도 더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롬4,25도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가르쳐줍니다. 주님은 죄인된 우리 인간의 죄짐을 모두 넉넉히 담당하여 주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넘어, 우리가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 대속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모든 죄짐을 담당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을 애달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그 대속의 은총을 깨닫고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또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를 담당하시도록 주님께 자신을, 맡기기를 더 원하시고, 먼저 원하시며,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믿으십시오.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