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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자본주의 극복의 길 찾는 마음공부 –『개벽 사상과 종교 공부』(백낙청 외)
김용휘 : 동학의 개벽을 오늘날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주의 극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1920년대에 이미 천도교 『개벽』의 편집인들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마는 이런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결국은 개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그래서 새로운 사회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공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오늘날의 대안으로 삼을 수는 없으므로 자본주의도 넘어서고 사회주의도 넘어설 수 있는 역사적으로는 제3 지대에 있었던 사유들에 대해서도 저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보고요. 예를 들면 헨리 조지(Henry George) 같은 사람들이라든지 실비오 게젤 또는 칼 폴라니의 사유들 말이죠.
제가 좀 더 주목하는 것은 지역 자립의 경제학이에요. 일본의 나까무라 히사시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로, 한 면 단위 정도에서 생산과 소비와 유통, 폐기에 이르기까지 선순환하도록 하는 경제학의 모델, 어떤 면에서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과도 상당히 상통할 수 있는 모델을 말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공부도 좀 만나야 된다고 봅니다. 최근의 이론으로는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도 좀 참고할 만하다고 보고요. 찰스 에이젠스타인이라는 젊은 학자는 「신성한 경제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 언급된 헨리 조지라든지 실비오 게젤 같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고, 기본소득까지 포함해 환경비용의 내부화 이야기를 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는 우리가 또 따져봐야 할 일이겠습니다마는 그런 논의들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영성적 측면에서는 역시 개벽 사유를 공유하고 있는 인도의 스리 오로빈도라든지 또 가까이로는 원불교에 대해서 깊은 연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맹수 교수에 따르면, 최근 원광대학의 원불교학과에서 오오니시 히데나오라는 일본 유학 생이 「다나카 쇼조와 최제우의 비교 연구 : 공공철학 관점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중학교 역사교사로 정년퇴임하고 뒤늦게 유학을 와서 16년 만에 논문을 썼는데. 저는 아직 이 논문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타나까 쇼조를 수운과 비교, 연구한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타나까 쇼조는 1841년에서 1913년까지 산 분입니다. 최제우보다는 한 세대 뒤고 전봉준보다는 한 세대 앞의 인물이지요. 이분이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지 2년 후인 1896년 「조선잡기(朝鮮雜記)」라는 글에서 동학농민군이 내건 12 개조 조항을 거론하며 굉장히 문명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상당히 수준 높은 개혁적 세력이었다면서, 이들을 일본군이 잔혹하게 진압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널리 알려져 있듯이 타나까 쇼조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시대에 일본의 서구식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구리 광산의 공해 문제와 이에 대처하는 관료주의의 페해를 고발하고 주민들의 편에 서서 죽을 때까지 헌신적으로 투쟁했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으며, 마을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서구식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 이러한 참된 문명을 제시한 것은 수운이 말하는 다시 개벽의 꿈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오니시 히데나오 씨가 수운 최제우와 타나까 쇼조의 공통점을 공공성으로 본 것에 주목하고 싶어요. 공공성이란 결국 서구식 근대화. 즉 이윤만을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백낙청 : 정선생님께서 지금 지적하셨듯이 누가 개벽 사상과 좀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개벽사상가라고 보면 우리의 개벽 사상을 약화시키는 면도 있을 거 같아요. 기분은 좋죠, 뭐, 이 사람도 개벽하고 저 사람도 개벽한다니까. 그래서 제가 아까 해월 선생 얘기를 할 때도 그 말을 했습니다마는, 해월이 깨달은 그 자리에서 봐야 된다 했듯이 수운 선생, 해월 선생, 또 소태산 선생 이런 분들이 깨달아서 개벽을 말씀하신 그 경지를 열심히 공부해 도달하거나 근접한 다음, 그 시점에서 누가 과연 제일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인가를 판단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봐요. 인생은 유한하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다 개벽사상가라고 할 순 없잖아요.
백낙청 : 그리고 저는 개벽사상가라고 할 만한 이들 중의 상당수는 그냥 좀 통하는 바가 있지만 기본적인 전제에서 우리의 후천개벽운동과는 또 다른 면을 많이 가진 분들일 것 같아요. 그걸 우리가 판별해야 합니다. 그것도 우리 개벽 운동의 일환이죠. 개벽적인 면모를 면밀히 살펴서 가려내는 것은 참 중요하긴 한데, 아무 분에게나 개벽사상가였다고 해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증산 선생은 아주 특이한 선각자고 도인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신이 상제임을 깨달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상제라고 하는 데까지는 못 나가셨다고 그러셨는데, 그분은 동학혁명의 실패로 인한 세상의 아주 참담한 현실을 우리 민중들의 현재의 불행이나 비극으로만 보지 않고 우주의 큰 기운이 지금 돌아갈 때라 보시고, 당신의 미션, 당신이 할 일은 우주의 큰 기운을 바꿔놓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
정지창 :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시겠다고 했지요.
백낙청 : 네. 천지공사를 하셨는데, 천지의 기운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제가 측정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우리 민중의 기운을 확신히 바꿔놓으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동학에서 그렇게 참담한 실패를 하고 30만 명씩이나 희생되었는데, 그런 민족이 얼마 안 가 3·1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원불교의 경우는요, 제가 알기로는 소태산 선생 자신은 수운 증산 당신 이렇게 이어지는 걸 확실히 의식하고 있었고 그 제자들도 상당수 그랬고요. 구전에 의하면 당신이 수운 선생의 환생이라고까지 생각하셨던 거예요. 문헌적인 경전에는 없지만. 이분이 용담에 다녀오셨거든요.
김용휘 : 네, 용담의 수운 선생 묘소에 가셨죠.
백낙청 : 묘소에 갔을 때 수운의 종손자죠, 조카 손자를 만난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적에 비해서 원불교 교단이 동학에 무관심한 거지요.
정지창 : 글쎄 말이에요.
백낙청 : 소태산 선생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었고요. 제가 도올하고 좌담할 때 그 얘기를 했어요. 「원불교전서」에 보면 「불조요경」이라고 해서 불교의 문헌 중에서 원불교도들이 특히 알아야 할 것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날 좌담에서 한 얘기는 「동경대전」도 「원불교전서」에 들어가야 된다는 거였어요. 「불조요경」 플러스 「동경대전」.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별로 실현될 가망은 없지만. (웃음) 그러나 원불교 쪽에서는 우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가 불교에 없는 말이에요. 이것은 동학 이래의 우리 후천개벽운동에서 나온 말이니까요. 그런 것부터 좀 새로이 해서 서로 정말 공부를 하고, 특히 그중에서 원불교와 천도교는 서로 더 알고 힘을 합칠 필요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전술·전략적인 제휴가 아니고 사상적으로 얼마나 상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원불교가 훌륭하지만 아직 동학의 수준에 못 미친다고 보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원불교 쪽에서는 아니다. 수운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원불교가 더 원만한 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여기서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판정을 할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좀 더 생각하고 판단하시도록 그래도 좀 토론을 하고 마치는 게 어떨까 싶어요.
김용휘 : 「원불교전서」를 읽어보니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을 하신 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학 경전에 비해서는 참 자세하고 친절하며 체계가 잘 잡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발전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원불교는 불교를 주체로 삼고 있는데, 사실 불교는 너무나 방대하잖아요? 그런데 그 불교의 요체를 간명하게 밝히면서 인과보응의 이치 그리고 그에 더하여 마음 씀의 용심법을 또 굉장히 자세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근기에 맞게끔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에 있어서도 지금 위파사나니 참선이니 또 염불이니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원불교에서는 좌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화두도 잡고 강론도 하는 등 수행법을 두루 원만하게 갖추고 있어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한테도 정말 좋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삼학에서 강조하는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研究), 작업취사(作業取捨) 수행이 일상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사회적인 공도(公道), 공행(公行)으로 연결되어 안팎을 두루 갖추고 있죠. 기존의 불교는 표방은 하지만 수행 중심으로 가면서 사회적 실천이라는 부분이 약했잖아요. 어쨌든 원불교는 안팎을 두루 갖추면서 정말 원만구족합니다. 게다가 유불선을 아우름으로써 유학의 인륜도 강조하고 도가의 도와 덕, 무 위자연(無爲自然)의 이치도 언급하며 동학의 개벽사상까지도 수용하고 있죠. 결국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새로운 도덕 문명을 표방하고 있다는 데서 저는 원불교가 근본불교와의 차별성이 있다. 굉장히 간단해지고 두루 원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근본불교를 뛰어넘은 점이 있다. 그래서 개벽종교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아가 동학과 비교해보자면 일상의 수도를 강조한 점이 공통점이에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있으며, 남녀평등을 역설하고 수행과 실천, 도학과 정치의 병진을 중시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벽의 종교라는 데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동학은 유불선 삼교를 통합했다지만 유학이 좀 더 중심을 이루고 원불교는 불교를 주체로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동학이 인격적인 실체로 생각은 안 합니다만, 하늘님을 향한 신앙과 체험을 중시하는 영성적 종교의 측면이 있다면, 원불교는 불교를 주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각적이고 자립적이며 지성적인 경향의 종교지요. 그리고 동학은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해서 고난과 탄압을 많이 겪은 종교지요. 그래서 동학에는 고난의 서사가 있다면 원불교는 역사적 풍파는 비교적 적게 겪으면서 굉장히 내실을 갖췄고 또 공동체를 통해서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있겠습니다. 끝으로 동학은 새로운 개념과 용어를 다루었고, 그 이름도 기존의 종교와는 다른, 전례 없던 이름을 내세웠는데, 원불교는 불교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좀 더 보편적인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도 차이겠습니다. 저는 원불교의 이런 점에 장점도 있고 한계도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동학이 좋은 원천수라면 원불교는 그 체계를 잘 갖춰서 상품화하는 데까지 성공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천도교는 역사적으로 정말 많은 자취를 남겼는데 그러다 보니까 오늘날 힘이 빠져서 그런지 너무 노쇠해져서 굉장히 안타깝고요. 천도교는 이대로라면 역할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동학이 천도교로 개편되는 정도의, 한 번 더 새로운 전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한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지창 : 저는 원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백선생님이 쓰신 책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박윤철 엮음, 모시는 사람들 2016)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원불교 공부를 한 셈인데요. 경전도 그냥 겉핥기로 한번 읽어봤습니다. 그중에서 「대종경」을 보면서 사상적 내용도 훌륭하지만, 문학작품으로서도 탁월하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고요. 소태산 대종사가 자기 생각을 이렇게 알기 쉽고 유려한 우리말로 표현한 것 자체가 참 대단한 성과이고 정말 소중한 민족문화의 자산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청년들로 하여금 어떻게 원불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 나는 우리나라의 원불교와 천도교만큼 개방적인 종교가 없다고 봐요. 그러지 않아도 두 교단이 다 세가 미약하니 연대해보면 좋겠지만, 이게 전술적인 제휴이면 큰 의미가 없고요. 원불교는 수운 선생의 개벽사상을 더 깊이 공부하고, 천도교 쪽에서는 우리 김선생님 말씀하신 식으로 원불교가 개벽사상을 충실히 이어가면서 변모시키기도 할 때의 장점은 뭔지 헤아려보는 공부를 하면서 서로가 같이 협조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소태산 사상 자체가 개벽사상을 일종의 동력으로 삼아서 불법을, 불교를 쇄신했는데, 그 자체가 무슨 한계라고 보진 않아요. 그런데 불법을 주체로 삼아놓으니까 교단 사람들, 특히 교단의 학자나 지식인들이 그냥 불교만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그게 편하니까요. 교단의 학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불교 위주로 공부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나 한계가 있지 않나 싶고요. 또 하나는 동학·천도교와 원불교를 비교할 때 그 조직 원리가 다르잖아요. 수운 선생은 처음에 일종의 사회운동 조직으로서 접(接)을 만드셨다가 그것마저 파접(罷接)을 하셨는데, 나중에 접이 다시 생기죠. 그러나 천도교에는 전문교역자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건 이분의 평등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녀의 차별, 적서의 차별을 다 없애면서 성속의 차별도 없애신 거죠. 그것도 굉장히 획기적인 변화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전문교역자가 없어서 생기는 어려움을 천도교가 겪고 있지 않습니까?
김용휘 : 네, 어려움이 많습니다.
백낙청 : 반면에 소태산은 전무출신 제도를 만들었거든요. 전문교역자들을 뒀어요. 그런데 전문교역자를 두면 거기서 반드시 생기는 문제가 그들이 하나의 계급이 되고 새로운 성속의 차별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수운뿐 아니라 소태산의 뜻에도 어긋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분은 전무출신 제도를 만들면서도 출가 재가의 차별은 없게 해놓으셨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원불교 내의 많은 문제가 그 출가들이 너무 똘똘 뭉쳐 가지고, 이들이 일은 열심히 하지만 일종의 특권의식 같은 게 생긴 게 아닌가 싶고, 오히려 그런 점에서 한계인데요. 그렇다고 전무출신 제도를 원불교에서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없애는 게 반드시 답일까요. 불교도, 말씀하셨듯이 석가모니는 그런 뜻이 아니셨을 것이고, 오히려 힌두교의 엄격한 카스트 제도에서 모두를 평등한 세계로 탈출시켜서 진리 수행을 하게 하는 방편으로 승가 조직을 만드셨지만, 또 그게 나중에는 굳어져서, 머리 깎고 정말 그 공부 만 하지 않으면 깨달음에 못 도달하는 것이 수행의 본뜻이 아닐 텐데요. 그런 딜레마를 원불교 교단이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종교 조직만이 아니고 모든 조직에 다 해당되는 해법일 수 있어요. 어느 조직이나 기간요원이라는 건 필요한데. 기간요원을 두면 꼭 저희들이 똘똘 뭉쳐서 자기들 기득권을 챙기게 된단 말이죠. 그런 여러가지 과제에 대해 천도교와 원불교가 더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대비해보며, 수운 선생의 해법이 원만한 답이 아니라고 하면 서로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게 정산 종사가 말씀하신 삼동윤리(三同倫理) 정신에 딱 맞고요. 다른 여러 세력도 함께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특히 천도교와 원불교는 한 일터 한 일꾼으로 동척사업(同拓事業)을 하기에 아주 좋은 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끝으로 촛불혁명이 지금 중대한 난관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촛불혁명은 일단 끝났다고 보기도 하고, 애초부터 촛불혁명은 혁명도 아니었고 박근혜 퇴진시키고 정권교체를 한 걸로 수명이 다했는데 그게 언젯적 일이라고 아직까지 들먹이느냐는 사람도 있죠.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촛불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지금은 이상한 사고를 만난 거죠. 제가 이걸 변칙적 사건이라고 표현도 했는데 오래가면 변칙적 사건이 아니죠. 변칙적 사건은 일시적인 해프닝이라는 말인데, 이게 오래가면 해프닝이 아니고 그 나름의 하나의 단계가 되는 거죠. 역사의 한 단계가. 그럴지는 우리가 지켜볼 일이고요. 그럴 때 아까 여러 사상가의 얘기도 나왔습니다마는 역시 우리가 수운 선생이나 소태산 선생이 깨달은 그 자리에서 이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 공부가 절실한 듯하고요.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결 처음부터 강조해주셨는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는 게 지금 좀 낡은, 약간 상투화된 개념이 된 것 같아요. 1920 년대도 그렇고 해방 직후에도 미국이 대표하는 자본주의 세계화와 소련 쪽이 대표하는, 소위 현실사회주의라고 토를 달아서 쓰는 사회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중에 어느 쪽도 따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청우당이 말한 조선식 신민주주의론 같은 게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맞는 얘기인지 나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지금은 그런 식의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주의가 없잖아요. 자본주의는 지금 맹위를 떨치고 있긴 하지만 마치 말기 환자처럼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대안을 얘기하면서 처음부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고 하면 그건 자본주의에 대한 연마나 사회주의의 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연마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본주의 극복이 최대 과제인 건 사실인데, 그냥 극복만 부르짖는다고 자본주의가 극복되는 건 아니며 거기에 적응할 만큼은 적응하면서 극복해야 된다고 제가 주장했습니다. 극복의 길을 얘기할 때 쉽게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폐쇄적인 생각을 유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중략)
김용휘 : 촛불의 완성이 단지 정권교체로 그쳐서는 안 되겠죠. 물론 정권교체도 해야되겠습니다마는, 19세기에 수운 선생님이 다시 개벽을 말씀하실 때와 지금은 조금 다른 상황인 것 같아요. 물론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개벽의 이행기라고 볼 수 있지만요. 수운 선생님은 서구 문명, 서학, 기독교로 대표되는 부분과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제국주의, 이렇게 크게 두 측면에 굉장히 깊은 문제의식과 우려를 가지고 맞서려고 했던 게 분명합니다. 유교 문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도 상당했는데, 도올 선생님도 이 부분에 대해선 벌로 강조를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개벽이 문명적 대전환이라고 보면, 결국 서구 문명도 넘어서고 유교 문명도 넘어서야겠다는 것이 수운의 문제의식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당시에 신분 차별 또는 여성 억압 등을 뛰어넘어 기존에는 피지배자로서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민중이 정말로 주체가 되어 역사와 변혁, 개벽에 등장하게끔 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문제가 조금 다른데, 이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 문명의 비인간화라고 할까요. 그 폐해가 너무나 심해졌습니다. 그에 따라서 생태계 위기라든지 인간 소외 같은 정신적 위기가 그때에 비해서 훨씬 더 심화된 측면이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이 자본주의 근대 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다시 개벽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새로운 시스템의 설계가 중요하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의 모색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지역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봐요.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순환하고 자립할 수 있는 경제, 국가와 시장과 민(民), 이 세 주체가 균형을 맞추는 경제를 고민해야겠죠. 이를 위해서는 읍·면·동 단위에서 '주민자치·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하는데요. 읍·면·동 단위에서 주민자치와 지역에 바탕한 자립경제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 남북 연합으로 한반도 전역에 새로운 정치 경제적 질서를 구축할 수 있고, 그것이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근본적인 생활양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적인 삶, 자본주의적 소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죠. 이를 위해선 역시 공동체성의 회복이랄까. 더불어 사는 삶의 회복, 마을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아니 이 점이 가장 중요할 수 있는데요. 원불교와 동학이 모두 강조하는 정신수양, 마음공부입니다. 새로운 주체. 신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발하고, 인과의 법칙에 두루 통달하고 공도 공행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행한 것은 지금 시대는 각 문화권으로 분화되었던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이 지구촌 시대를 맞아 통합되는 시대이기도 하며, 예전처럼 몇몇 뛰어난 종교적 천재를 낳은 것과는 달리 대중의 ‘집단영성’, 집단적인 영적 도약을 예고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동학과 원불교의 일차적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도와 덕을 밝히고 이 땅에 도덕 문명의 기초를 닦는 일이. 개벽의 종교로서 동학과 원불교가 함께 힘써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벽 세상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가슴속에 도래해 있다고 봅니다. 가슴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것이 개벽이죠.
최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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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선이, 이 사람아
자신을 한순간 그토록 돌려놓은 것이 무언가
실패만큼 그 뉘우침도 깊었으리라만
그 극적인 전환은 어떻게 맞이한 것이냐
뉘우침이나 맹세는 대다수 지극히 개인적인 거라
자신을 뒤틀리게 하기 십상인데
돌아서서 무엇을 향해
자기 정화의 극치를 통과한 것이냐
이름마저 제우로 바꾸었다지
제선아 이 사람아, 난 아직 그걸 모르네
난 아직 그 지점을 모르네
나는 그대의 뜻이 이렇다고 믿을 뿐이네
조선이 곧 좌절된 내 인생이요
조선이 곧 실패한 내 인생이 아닌가
외세의 무력이 조선을 겨냥하고
짓밟힌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나라의 기강은 말세겁운의 때를 맞으니
그것이 곧 내 좌절된 인생이라
나의 일어남이 곧 조선의 일어남이요
내가 뜻을 세움이 곧 백성이 뜻을 세움이 아닌가
광제창생,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를 구하라
그리 일어나 스스로 구하는 자 모두 한울이라
제선이, 그대가 온갖 무리들 속에 떠도는 동안
짓밟힌 백성과 탐악한 지배자들
그리고 창궐하는 역병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절망과 고동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대는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뜻을 세웠다 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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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무언가 도통이 무언가
자기를 타파함인가 자기가 무언가
허공인가 허공은 어찌하여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가
허공은 존재를 넘어선단 말인가
존재를 넘어섰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였던가
자신의 전 생애를 녹이고 세상의 선이며 악이며
인간 세계의 숭고함과 추악함과 사랑과 분노와
이 모든 것을 용광로에 녹여 빛나는 칼 한 자루
허공을 가르는 칼 한 자루 만들었던가
그것이 한울이라면 한울은 또 허공이 아닌가
그 한 번의 맹세
전 생애를 돌려세워 통과해버린
단 한 번의 맹세
자신의 모가지를 허공에 베어버린
선생이여
수운 선생이여
어찌 허공으로 세상을 내리쳤더란 말입니까
-백무산 「최제선」 일부, 「인간의 시간」, 창비 1996
정지창 : 아까 손병희 선생의 입도 동기 얘기도 했습니다마는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현실의 제약이랄까.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여서 기를 못 펴지 않습니까? 상상력도 고갈되고 개혁의 꿈을 꾸기도 쉽지 않지요. 그런 체제 속에서 그 체제 자체가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나 틀 자체를 깨뜨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수운 선생만 하더라도 얼마나 험난하게 좌절과 실의의 세월을 보냈습니까. 아무 전망도 안 보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하는 일마다 계속 실패해서 요즘 말로 하면 나중엔 신용불량자 같은 참담한 지경을 헤맸잖아요. 그런데 백무산 시인은 장시 「최제선」에서 수운 선생이 그런 고난과 좌절을 딛고서 동학이라는 새로운 칼을 버려내어 세상을 내려쳤다고 표현합니다. 자기 목숨 내놓고 동학을 창시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포덕했다는 거죠. 지금은 그런 결기라고 할까요, 기세나 호연지기가 정말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한테 그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들도 개벽의 꿈을 한번 꾸어가면서 기존의 억압적인 틀을 깨부수는 데 뭔가 뜻을 모아야 되지 않겠는가 싶고, 또 그래주기를 바랍니다. 방법은 아까 김선생님이 많이 말씀하셨으니까 더 보탤 말이 없고, 뜻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문제가 자본주의 극복이라고 지적해주시는 게 저는 참 중요하다고 봐요. 자본주의 문제를 우회하면서 개벽 세상을 만들 길은 없다고 봅니다. 수운 선생의 경우는 당시의 형세가. 학자들이 점잖게 서세동점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렇게 일컬을 만큼 점잖은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의 침탈 상황이라는 것을 간파하신 분이에요. 그러나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분이 소태산인 것 같아요. 제국주의의 본질은 자본주의다. 그래서 물질개벽의 시대라는 건 자본주의 시대라는 진단까지 나아가셨지요.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정신개벽으로 가야 한다면, 정신수양도 해야 하고 사리연구도 하고 또 작업취사로 정의로운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마음공부, 다시 말해 삼학공부가 필요하다고 하신 거고요.
그래서 우리는 개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지 항상 주시할 필요가 있어요.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죠. 아까 정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중간에 자꾸 이상해져요. 우리가 그 지속성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중요한 것 같고요. 자본주의 나쁘다는 얘기만으로는 안 되고, 자본주의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된다고 제가 말한 적이 있는데, 무서운지를 알면서도 기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길을 지혜롭게 찾아가며 그에 필요한 실천을 하는 게 중요하므로 우리가 개벽 세상을 꿈꿀 때도 그런 공부를 동시에 수행해야 된다는 점이 동학과 원불교 모두 오늘날 우리 시대에 아주 굉장히 중요한, 그리고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