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닻” 히 6:19-20
https://youtu.be/W1LnzNihWJc
1. 교회에 사람이 많아져 공기청정기 3대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목사님 공기가 좋아진 것 같아요.’ 한분의 말에 당황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어, 아직 필터 안 끼웠는데요.’ 모든 세팅을 마치고 나니 정말 말할 수 없이 쾌적해집니다. 예수님이 인도해 가고 계십니다. 구원의 창조자이신 주님이 인도하시니 효과가 바로 나타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그 소망을 히브리서는 영혼의 닻이라고 표현합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설레 이게 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 닿으면 살아납니다. 안색이 쉽게 변하는 감정적인 사람이라도 예수님께 닿으면 그 마음이 달라집니다. 살아납니다.
2. 당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아십니까?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임재와 하나님의 계획에 맞닿아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닻은 만분의 1 무게 만으로 배를 고정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닻과 체인이 해저에 닿으면 파주력이 생겨 어떤 풍랑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고 다시 항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혼의 닻은 곧 더 좋은 소망(히 7)이 됩니다. 더 좋은 소망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자리에 서게 합니다. 소원의 항구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이 삶에 이루어집니다. 나무가 푸르면 새들이 지저귀며 노래하러 모여듭니다.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품은 자들이 이 땅을 살만하게 만듭니다.
3. 1세기 로마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독교라는 신흥종교의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죽은 시신을 모신 관을 어깨에 메고, 아기들처럼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죽음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더 나은 본향이라는 소망을 선명하게 가졌기에 노래 하며 살았습니다. 20세기가 지난 21세기에 저는 살고있습니다. 목사로서 장례식에 염을 하는 자리에 참석하며 장례지도사가 ‘교인들이 더 시끄럽게 울어.’라는 말을 듣고는 민망했습니다. 슬픕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그 자리에서도 선명하면 좋겠습니다.
4. ‘앞서 가신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의 선두주자 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우린 지성소에도 들어갈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는 영혼의 닻이 있어 언제든지 살아납니다. 그 모습을 현실로 살기 위해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그는 사라의 죽음속에서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십시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가십시오. 내가 다 몰라도, 소망은 우릴 더 푸르른 자리로 반드시 인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