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as a wild turkey라는 제목으로 한 자연주의자가 16개의 야생 칠면조의 알을 부화시키고 키우면서 겪는 생활을 재현한 다큐 프로그램이다.
처음에 나오는 장면이 알이 깨기 전부터 주인공이 칠면조 소리를 낼 때마다 돌아오는 알 속으로 부터의 반응이다. 그리고 알이 깨었을 때 새끼가 온 몸이 젖은 채로 뒤뚱거리며 오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주 깊은 교감을 경험했다고 그는 증언한다. 그순간을 imprinting 이라고 하는데 번역을 하면 각인 정도가 되는듯 하다. 즉 병아리들이 작자를 엄마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러가지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지만 여기에 일일히 옮길 여력이 없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은 다음일, 내일일을 걱정하지만 그들은 현재에만 충실한다는 것이다. 30분 후를 미리 생각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자신과 그 주변에 집중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의존하던 칠면조들이 일년 반이 지나자 하나씩 떠나더니 결국에는 한마리 스위피를 남겨 놓고 다 떠난다. 스위피는 어릴적부터 유난히 그의 손에서만 자는 등 가장 다정하게 가까이 지냈던 놈이다. 그런데 결국은 스위피도 떠나고 몇일 후에 주인공은 스위피가 잡아 먹히고 스위피가 낳은 알들도 다 깨어지고 먹힌 것을 발견하고 슬픔에 빠진다.
한 녀석이 기적같이 돌아와서 한동안을 함께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이 주인공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머리가 터지고 귀에서 피가 흐르는 등 공격이 점차 심각해지자 주인공은 옆에 있던 몽둥이를 사정 없이 휘둘러서 녀석을 가격한다. 녀석은 비틀거리더니 곧 도망을 갔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못 보았단다. 아무리 imprinting이 이루어져도 다 성장이 되면 어미의 품을 떠나서 독립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아무리 길을 들여도 그 야성은 언제나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칠면조와 함께 있을 때는 모든 사슴들, 뱀들, 다림쥐들이 자신을 한 부류로 생각하고 그에게서 도망가지 않고 어울렸단다. 그 아무 생각 없을 것 같던 칠면조들도 죽은 짐승의 뼈나 잘린 나무 둥지을 만나면 아주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죽음을 이해하려는 듯한 행동을 아주 일관되게 보였단다. 또한 약 이삼십가지의 다른 울음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배웠단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생명에 대한 관찰이 이렇게 까지 깊고 그 애정이 크다보면 자연은 그의 내밀한 속살을 보이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 아니면 현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느끼며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낫 야생 칠면조만도 못한듯안 의구심 때문인가?
P.S. 보시고 싶은 분은 구글에서 위의 제목을 검색하시면 Nature라는 프로그램으로 뜹니다.
0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