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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나눗셈이다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환원된다. 미적분은 어렵지만 사칙연산은 쉽다. 사실은 사칙연산도 쉽지 않다. 부족민은 셈을 못한다. 하나 둘 다음은 많다로 퉁친다. 백인 모피상인이 부족민에게 모피가 몇 장이냐고 물으면 많다고 한다. 백인은 지불한 달러가 많다고 한다. 부족민은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
nice의 어원은 세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는 것은 일단 좋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다. 인간은 원래 나눗셈을 못한다. 셈은 먹고 살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며 결코 좋아서 한게 아니다. 재상의 재宰는 제사를 지낸 후에 고기를 나눠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고기만 잘 나눠줘도 일국의 재상이 될수 있었다.
구조론은 쉽다. 세상이 대칭과 비대칭이라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뭐든 연결하면 대칭된다. 사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이 수평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 대칭이다. 왼손과 오른손은 대칭인데 머리와 발은 비대칭이다. 수평으로 연결할 일은 많고 수직으로 연결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주역의 역은 변화를 의미한다. 양음론이 아니고 음양론인게 주역은 변화중심의 사고다. 역易은 해와 달을 합친 글자인데 태양의 불변과 달의 변화를 나타낸다. 공간은 대칭되고 시간은 비대칭이라는 것은 감각적으로 알게 된다. 인간은 공간에 강하고 시간에 약하다. 공간은 손으로 가리키면 되는데 시간은 가리킬 수 없다.
어제를 가리키려면 달력이 필요하다. 구조론이 달력이다. 인간은 시간을 공간화시켜 사유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양은 공간이고 음은 시간인데 음의 공간이 있다는 식이다. 달은 음기의 집합체라고 믿는다. 음력을 쓰지말고 양력을 쓰면 되잖아. 주어는 공간이고 동사는 시간인데 인간들이 주어와 동사를 헷갈리는 것이다.
음과 양, 대칭과 비대칭, 공간과 시간, 결맞음과 결어긋남, 변화와 안정, 수렴과 확산이 있다. 감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칭쌍을 개별적으로 들이댈 뿐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게 열역학 1법칙, 2법칙이라는 것을 모른다. 안정은 1법칙, 변화는 2법칙이다. 공간은 1법칙, 시간은 2법칙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도 모르는게 일단 의사결정이라는 말이 없다. 국어사전에는 있는데 이 분야에 쓰이지 않는다. 사건이라는 개념도 없어서 영어로 번역이 안 된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알면서 육체와 정신의 차이, 외부의 관측과 객체 자체에 내재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차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공간은 방향이고 시간은 순서인데 여기까지 온 철학자 한 명을 내가 본 적이 없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게 시간의 비가역성이다. 공간은 좌우가 있는데 시간은 좌우가 없다. 시간은 과거가 없으므로 미래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므로 현재도 없다.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 있다.
시간은 변화를 나타내는 약속이며 변화는 인간이 지시하여 가리킬 수 없다.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나란히 가는 것이다. 변화는 오직 나란한가, 어긋난가로만 판단할 수 있다. 공간의 좌우는 동시에 공존하지만 시간은 공존하지 않는다. 나란한 것만 남고 어긋난 것은 탈락하여 사라진다. 시간은 화살표로만 나타낼 수 있다.
수학은 어렵고 구조론은 쉬운데 수학은 먹고 살자고 연구한 것이고 구조는 밥먹는 데는 지장이 없으므로 일단 제껴놓은 것이다. 점쟁이들은 구조를 써야 한다. 음양론은 점쟁이가 만든 사상이다. 미래를 예측하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로또가 당첨될지는 모르지만 사지 않은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알고보면 많은 인간들이 사지 않은 로또의 당첨을 기다린다. 구조론은 사건의 범위를 알려준다. 범위 바깥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해답은 이 안에 있어. 범인은 이 사람들 중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인간들의 걱정은 99 퍼센트가 자기와 상관없는 남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만 정확히 알면 인생은 순조롭다.
이 세상은 공유와 공유해제, 밸런스와 언밸런스, 공간의 대칭과 시간의 비대칭, 작용과 반작용, 수렴과 확산, 인력과 척력의 대칭과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 이걸 따로따로 이해하면 피곤하고 전부 연결시켜 한큐에 해결하는게 구조론이다. 머리 속에 좌표를 그려야 한다.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동과 정
음과 양
대칭과 비대칭
밸런스와 언밸런스
수렴과 확산
결맞음과 결어긋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정신과 육체
유와 강
공간과 시간
주어와 동사
안정과 변화
포석과 전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붉은여왕과 내시균형
작용과 반작용
인력과 척력
공유와 공유해제
일법칙과 이법칙
내부질서와 외부관측
연역과 귀납
여기에 수순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게 구조론이다. 언어는 맥락이 있으므로 위 21가지 예시는 쓰임새에 따라 수순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대칭되지만 동시에 비대칭이다. 방향은 대칭인데 순서가 비대칭이다. 선수비 후공격이지 선공격 후수비는 불가능하다. 공격 중에 수비수가 하프라인을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열거된 대칭 쌍은 전부 같은 이야기다. 바둑은 선공간 후시간, 선포석 후싸움이다. 일단 공간을 선점하고 시간은 타이밍 싸움이다. 공유 사회주의가 먼저고 사유 자본주의가 나중이다. 붉은 여왕은 공유로 흥하고 내시균형은 사유해서 망한다. 경찰이 죄수의 딜레마로 갈라치기를 구사해서 공유의 효율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개별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하나의 통짜 덩어리로 연결시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수학은 사칙연산이지만 사실은 나눗셈 하나가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보조한다. 곱셈은 나눗셈을 뒤집어놓은 거다. 뺄셈은 덧셈을 뒤집은 것이고 덧셈은 나눗셈을 도마에 올리는 절차다. 분자냐 분모냐? 여기서 헷갈린다.
덧셈은 1+2나 2+1이나 같은 건데 나눗셈은 1/2와 2/1가 다르다. 이게 구조론이다. 나눗셈을 이해한 사람은 구조론을 이해한 것이다. 우주 안에 셈은 나눗셈 하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구조는 밸런스의 복원력 하나 밖에 없다. 간단히 척력이 어떠한 상황에서 인력이 되는가다. 남녀가 투닥거리면 알잖아. 쟤들 곧 사귀겠네.
대칭은 전달이며 우주는 전달, 전달, 전달되어 작동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다들 알고 있다. 전달에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어서 순방향으로는 잘 가고 역방향으로는 잘 못간다는 사실도 다들 알고 있다. 곱셈은 순방향이라서 쉽고 나눗셈은 역방향이라서 어렵다. 강물을 거슬러 노를 저으면 졸라리 빡세다. 경험으로 안다.
머리속에 지도가 들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부로 가다가 신갈에서 영동으로 빠지면 덕평휴게소가 나온다고 말하면 몇이나 알아듣겠나? 구조론은 머리 속에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그냥 분자가 어떠고 분모가 어쩌고 하기보다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칼질한다는 그림을 그리면 나눗셈이 참 쉽다.
구조론은 간단히 3/2를 3*1/2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나눗셈이 곱셈이 되면 쉬워진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환원되지만 요소요소에 환원되지 않는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환원된다는 것은 나누면 0으로 떨어진다는 건데 그럼 소수는 뭐냐고? 귀납은 원래 환원되지 않는다. 귀납을 연역으로 바꾸면 쉽게 환원된다.
가역성 = 공간은 환원되고 공유된다.(화장실을 공유한다.)
비가역성 = 시간은 환원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변기 하나를 동시에 두명이 사용할 수 없다.)
세상은 공유되는데 공유되지 않는다. 환원되지만 환원되지 않는다. 대칭되지만 대칭되지 않는다. 1+2나 2+1이나 같은데 1/2과 2/1은 다르다. 나눗셈은 피곤하니까 나눗셈은 하지말자고 구조론을 회피한게 이 문명의 함정이다. 구조론이 전부 1/2과 2/1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는 문제다. 순서만 헷갈리지 않으면 참 쉽다.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로 날아갈지는 안다. 그 화살은 내가 쏘는대로 날아간다. 귀납은 연역으로 바꾸면 쉬워진다. 그게 구조론이다. 땅에 떨어진 지갑을 누가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챙길지는 안다. 그 지갑은 내가 챙긴다. 중요한 것은 인류 중에 이 문제를 들여다 본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세상은 에너지의 연결 회로다. 내부 에너지 질서는 일원론 비대칭이고 외부 인간 관측은 이원론 대칭이다. 귀납하여 부분에서 전체를 바라보면 대칭이고 연역하여 전체에서 부분을 보면 비대칭이다. 엔진을 보면 비대칭이고 바퀴를 보면 대칭이다. 인간시점 귀납의 대칭성을 버리고 자체질서 연역의 비대칭으로 올라서야 한다.
구조와 원자
세상이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한 것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감을 가진다. 겉보기로는 복잡하지만 근원은 단순하니까. 잘게 쪼개보면 답이 찾아진다. 고장난 자동차는 분해해보면 된다. 아픈 환자는 수술하면 된다. 전체는 감당이 안되지만 부분은 감당이 된다. 문제는 부분으로 나눈 다음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적군이 1만명이라도 좁은 길목을 차지하고 한명씩 1만번 찌르면 된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수학이다. 누구도 수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수학은 단순한 1로 출발한다. 수학이 어렵다지만 1은 쉽다. 상대를 해체해서 1로 만든 다음 제압하면 된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 트릭이 있다. 함정이 있다. 단순한 것은 1인데 집합은 뭐지? 단순한 것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다. 맞는 말이지만 틀렸다. 원자론은 부분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1은 맞는데 집합이 틀렸다. 집합은 모으는 것인데 어떻게 모았지? 누가 모았지? 모여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나무가 모여 있고, 들판에는 양떼가 모여 있고, 해안에는 모래가 모여 있다. 산의 나무는 태양이 탄소를 모았고, 들판의 양떼는 목동이 모은 것이고, 해변의 모래는 파도가 모은 것이다. 다 임자가 있다. 피곤해진다. 모으는 주체가 있는게 모순이다.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환원되는 것은 작아지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작은 것이다. 모으는 것은 큰 것이다. 태양은 나무보다 세고, 목동은 양보다 세고, 바다는 모래보다 세다. 강자가 약자를 모은다. 그렇다면? 환원주의는 자체 모순이다. 원자개념과 집합개념은 배치된다. 원자의 크기를 줄일수록 집합의 크기가 커져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생명은 단순한 세포지만 DNA는 복잡하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환원주의는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전제로 출발하는데 전체와 같지 않으므로 환원되지 않는다. 바둑은 단순한 바둑알로 되어 있지만 기보가 있고 수순이 있다. 바둑을 바둑알로 해체할 수는 있는데 기보를 잊어버렸다. 수순을 잊어버렸다. 관계를 잃어버렸다. 그냥 남녀와 부부는 다르다. 남녀는 서로 관계가 없고 부부는 서로 관계가 있다. 여기서 실패한다.
환원주의는 옳지만 옳지 않다. 구조론의 정답은 완전성의 복제다. 세상의 근원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최소한의 복잡성은 갖추고 있다. 그것이 완전성이다. 모으지 않는다. 대신 복제한다. 자갈이 깨져서 모래가 된 것은 모은게 아니다. 복제한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한의 복잡성을 가지며 그것이 구조다. 원자는 작은 1에 도달하지만 구조는 구조자가 다섯이나 있다.
가장 작은 것은 량이다. 량은 독립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빌붙어 존재하므로 최소단위가 아니다. 실질적인 최소단위는 질이다. 질은 내부에 구조가 있으므로 가장 작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변화다. 불변의 원자는 없으며 변화의 시스템이 있다. 가장 작은 것은 변화의 일 단위다. 사건의 일 단위다. 가장 작은 것은 바둑알 하나가 아니라 두 눈을 얻어 살아있는 바둑판 위의 집이다.
우주의 근원은 단단한 원자 알갱이가 아니라 무른 변화의 단위다. 원자론과 다른 것은 방향이다. 원자는 집합되어 커진다. 방향이 플러스다. 변화는 깨진다. 작아진다. 열역학 1법칙을 지키면서 변화를 달성하는 방법은 작아지는 것 뿐이다. 2가 1+1로 나눠지는 변화만 가능하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깨지고 작아진다. 우리 눈에는 크게 보인다. 2층에서 깨진 것이 1층에 쌓였기 때문이다.
양양해변의 커다란 모래더미는 설악산 바위가 깨진 결과다. 설악산이 작아졌다. 용문사의 큰 은행나무는 태양에서 날아온 광자가 지구에 쌓인 결과다. 태양이 작아졌다. 열역학 2법칙에 따라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작아진다. 작은 것이 집합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1법칙과 어긋난다. 우리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구조의 구조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구조는 다섯이지만 인간들이 원인과 결과밖에 모르므로 일단 둘로 나누자. 상부구조는 질-입자-힘, 하부구조는 힘-운동-량이다. 상부구조는 에너지의 입력부, 하부구조는 출력부다. 상부구조가 엔진이라면 하부구조는 바퀴다. 상부구조가 활이면 하부구조는 화살이다.
실제로는 궁수도 있고, 활시위도 있고, 과녁도 있다. 엔진과 바퀴만 있는게 아니라 핸들도 있고, 클러치도 있고, 변속기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를 추가하려다가 실제로는 다섯 개를 추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각도를 잘 조절해서 둘을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한 것이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엔진에 바퀴를 연결해 보면 변속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변속기를 장착하려면 또 클러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원래는 그냥 엔진 하나만 붙이려고 했는데 점차 일이 커진 것이다. 바퀴를 연결하는 종감속장치도 있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연결이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원인과 결과는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뿐이고 그사이의 방향전환 개념이 없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결정이 있으므로 셋이다. 안의 안이 있다. 중심이 있다. 밖의 밖이 있다. 경계선이 되는 담장도 있다.
외부>내부(담장 안)
내부>중심(코어)
중심>주변(코어의 이동)
주변>경계(코어에서 담장까지)
경계>외부(담장 밖)
사건 안에서 에너지의 방향은 다섯 번 바뀐다. 인간은 밖에서 관찰하므로 입과 항문 곧 원인과 결과 둘만 보지만, 구조의 내부사정은 복잡하다. 왜 5인가 하면 방향이 다섯 번 바뀌기 때문이다. 일단 밖>안>밖으로 두 번 바뀐다. 실제로는 안의 어디에 저장되었다가 밖의 어디로 나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이 소화되어 오줌으로 나갈지 똥으로 나갈지 칼로리로 나갈지다. 실제로는 체온으로, 땀으로, 호흡으로, 오줌으로, 똥으로 다양하게 나간다. 이걸 누군가가 어디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입으로 들어와서 장에 머무르다가 소장에서 소화되고 대장에서 대기하다가 항문으로 나간다.
입(담장 안)> 위장(코어)> 소장(코어의 이동)> 대장(조절)> 항문(담장 밖)
따지자면 몸 안에서 에너지는 다섯 번 방향이 꺾인다. 외부에서 들어온 에너지는 내부에서 센터를 통과한다. 그래야 동력이 실린다. 그냥 내부가 아니라 반드시 내부의 중심을 거쳐서 나간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는 내부의 서버를 거쳐서 나간다. 중심까지 못 가면 힘이 실리지 않아 나가지 못한다.
대문>앞마당>안방>뒷마당>뒷문
이런 문제를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어떤 하나를 추가하다 보면 자연히 그것을 보조하는 여러 가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로봇이 걷는 문제라 치자. 제대로 걷는지 평가하는 평가자가 필요하다. 평가자를 투입하면 평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었나?
평가를 제대로 했나? 평가를 평가해야 한다. 점점 다섯 개로 변한다. 아기를 돌보려면 보모가 필요하다. 보모는 아기를 감시한다. 보모는 누가 감시하지?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보모의 감시인은 누가 감시하지? 누군가는 카메라를 확인해야 한다. 하나를 추가하다 보면 자연히 다섯 개로 가게 된다.
다섯이 되기 전에는 감시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칼을 두 개 붙이면 가위다. 두 배로 복잡한게 아니고 다섯 배로 복잡하다. 칼은 힘이 한 방향이고 가위는 손잡이 둘을 가운데로 모으니 힘이 두 방향이다. 칼은 그냥 자르면 되지만 가위는 단단한 것은 안쪽으로 자르고 무른 것은 바깥쪽으로 자른다.
컵에 컵을 붙이면 주전자다. 주전자는 컵보다 다섯 배 복잡하다. 그 중간 형태는 없다. 단순한 컵이나 복잡한 주전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단순한 주전자가 좋잖아. 그런 것은 우주 안에 없다. 원리적으로 없다. 우리가 이 문제를 간과하는 이유는 일상의 도구들은 다양성을 죽여놓았기 때문이다.
펜치 플라이어나 바이스 플라이어는 축을 움직여서 강한 힘을 낸다. 가위의 축을 이동시키면 쪽가위다. 컵의 손잡이도 어른용 손잡이와 어린이용 손잡이를 조절하면 된다. 그보다는 그냥 어린이용 컵을 하나 사는게 비용이 싸다. 숟가락도 길이를 조절하게 해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사용하면 좋잖아?
그냥 어린이용 숟가락을 하나 더 구입하는게 낫다. 조절을 세밀하게 하면 한도 끝도 없다. 1백 년 전 미국에 발명특허 전성시대가 있었다. 신사라면 특허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못의 디자인 하나만으로 발명특허가 3천 개 나왔다고.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못 특허남발.
억지로 발명하자면 옥동자와 최홍만이 같이 쓸 수 있는 컵의 손잡이 디자인 특허. 손이 큰 사람도 손이 작은 사람도 문제가 없어. 이런 다양성을 죽여놓은 것이다. 그 이유는 대개 용도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안 맞기 때문에. 역으로 이런 부분을 잘 살피면 많은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다.
뒤로 가는 시계처럼 쓸모없는 것만 잔뜩 발명해서 TV에 나온 사람 있잖아. 어쨌든 방송출연 성공. 결론.. 어떤 둘의 연결은 조절되어야 하므로 둘을 연결하다보면 실제로는 다섯이 되어 있다. 만약 다섯이 아니면 연결이 잘못 설계된 것이다. 에너지를 다루는 문제는 반드시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구조론이 5인 이유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 때문이다. 상부구조의 작용과 하부구조의 반작용에 각각 원인, 결정, 결과가 있다. 상부구조의 결과가 하부구조의 원인이 되어 포지션이 겹치므로 6이 아니고 5다. 쏘는 활이 작용이라면 날아가는 화살은 반작용이다. 활의 원인, 결정, 결과에 화살의 원인, 결정, 결과를 더하면 5다.
작용과 반작용은 에너지 방향이 다르다. 작용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고 반작용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간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안에서 밖으로 방향이 꺾이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은 원래 있는게 아니고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순간에 도출된다. 공중에 던져진 물체는 낙하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변화를 논하고 있다. 그냥 변화가 아니고 밸런스의 변화다. 밸런스를 만드는 과정이 있고 밸런스가 바뀌는 과정이 있다. 던져진 공이 공중에서 정점을 찍었을 때 순간적으로 멈추며 중력과 양력이 밸런스를 이룬다. 필자의 구조론은 의심해도 된다. 문제는 왜 이런 의사결정의 내막을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다.
왜 이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지? 의사결정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작용에는 어떻게 반작용을 하지?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원리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작용 반작용은 그냥 외우라고 윽박지른다. 법칙이니까 닥치고 암기해. 왜 이 부분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느냐다. 개인적으로 이것을 알아내느라 고생했다.
화약의 폭속은 초속 4킬로다. 무한대가 아니다. 한꺼번에 꽝 터지는게 아니고 1초에 4킬로 속도로 충격파가 전달된다. 이 속도가 중요하다. 성형작약을 쓰는 대전차고폭탄이 금속을 최대 1미터까지 뚫고 들어가는 이유는 폭속이 메탈제트에 전달되어 에너지 보존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냥 먼로-노이만 효과니까 외워라.
이러면 곤란하다. 정답 : 메탈제트에 전달된 초속 4킬로 rpm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하는 것은 고유한 속도가 있다. 왜? 의사결정 지점에 잠시 멈추기 때문이다. 광속은 왜 일정한가? 필자는 광속의 불변에 대해 원래부터 알았다. 고딩 시절에 제논의 궤변은 연구한 결과다. 며칠동안 생각하고 혼자 유레카를 불렀다.
우주 안에 진짜 변화는 없고 자리바꿈이 있을 뿐이다. 자리를 바꾸려면 먼저 자리를 정해야 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밸런스 균형점에서 잠시 멈춘다. 자리를 바꾸려면 하나가 간만큼 다른 것이 와야하므로 멈춘다. 그냥 변화가 일어나는게 아니라 축과 대칭의 밸런스를 만들고 대칭의 승부가 가려져서 축을 움직여서 변한다.
뉴턴 3법칙은 뜬금없이 등장한다. 뉴턴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법칙이니까 외워. 물리학 전공자는 배웠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뉴턴은 갈릴레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알아냈다고 말했지만 겸양의 표현이지 진짜 그랬겠는가? 진짜 그랬다. 이건 나의 추측이다.
관성의 법칙은 갈릴레이가 얼떨결에 뱉은 말이다. 지구가 초속 400미터로 달려가면 동쪽에서 초속 400미터의 자전풍이 불지 않겠는가? 그럼 인간들이 모두 지구 밖으로 날려가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갈릴레이의 반박이 관성이다. 관성은 어린왕자의 상자다. 양은 상자 안에 있어. 그 문제의 답은 이 상자 안에 들어있다네.
나는 답을 알지만 괘씸한 너희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겠어. 궁금하면 직접 상자를 열어봐. 상자의 이름은 관성이다. 뉴턴이 상자를 열었더니 상자 안에서 작용 반작용이 튀어나왔다. 관성이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나의 해답은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무에서 생겨나지 않으며 원래 움직이고 있는 것이 드러난 결과라는 말이다.
지구에서 100킬로인 물체도 우주공간에서는 0킬로다. 질량이 사라졌을까? 아니다. 질량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뭐가 있지? 관성이 들어있다. 관성이 뭐지? 메탈제트의 폭속 4킬로다. 내부에서는 빠르게 돌고 있다. 관성은 물질 속의 소립자들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상태를 변화시키려 하면 반발한다.
파워볼을 돌려보면 알 수 있다. RPM을 걸어주면 팽이처럼 회전한다. 자이로팽이를 가만 내버려두면 얌전한데 누가 건드리면 갑자기 반발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뉴턴 3법칙은 관성의 해설이다. 작용 반작용은 내부에서 회전하고 있는 자이로팽이를 외부에서 건드리면 반발하는 것이다. 즉 내부에 자체 질서가 있는 것이다.
구조론이 왜 5냐고? 그럼 자이로팽이가 반발하는데 절차가 없겠는가? 파워볼을 돌려보면 안다. 기술적으로 돌리면 잘 돌아가는데 잘못 돌리면 죽는다. 내부에 결이 있으며 결따라 가야 하는 것이며 결이 어긋나면 반발한다. 결어긋남과 결맞음을 판정하는 절차가 5다. 외부작용이 내부질서와 어긋나는지 판정하는 것이다.
결맞음의 판정은 질-입자-힘이고 결이 어긋나면 반발하는게 힘-운동-량이다. 우리 목격하는 변화는 내부에 자체질서를 가진 객체에 외부에서 작용할 때 결어긋남에 의해 반발하는 것이다. 결이 맞으면? 돌고 있는 팽이를 치면 계속 돌아간다. 외부에서는 작용에 대해 반작용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초딩은 놀라게 된다.
팽이를 쳤는데 변화가 없다. 작용에 반작용하지 않네? 열역학 1법칙이 틀렸네. 에너지가 보존된다며? 내가 팽이에 가한 에너지가 사라졌어. 이렇게 된다. 에너지는 결맞음에 의해 객체에 수용되었다. RPM 속에 들어 있다. 밸런스의 축과 대칭 형태로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판정되어 작용에 반작용하는 절차가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변화가 5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납득할 것이다. 뉴턴이 갈릴레이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왜 교과서에 안 나오느냐다. 거울 뒷면에 칠해진 금속이 가진 자유전자가 광자를 흡수했다가 다시 뱉어내는 것이 빛의 반사다. 빛의 반사는 이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옛날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서 일제강점기에 유리거울 뒷면을 긁어먹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었다. 요즘은 알루미늄을 쓰는 모양이다. 여기서 거울 뒤에 칠해진 금속의 자유전자가 광자를 흡수했다가 다시 뱉어내는 원리가 밸런스가 축을 이동시키는 원리가 같다는 사실에 감탄해줘야 한다. 흡수했다가 뱉어낸다.
밸런스가 외력을 흡수했다가 뱉어내므로 흡수과정 질-입자-힘에 뱉는 과정 힘-운동-량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바보도 찰떡같이 알아먹어야 한다. 문제는 왜 교과서의 내용 빈곤에 책임을 묻지 않느냐다. 복제본과 원본이 있다. 구조론의 의사결정원리가 원본이라면 거울의 반사원리는 복제본이 된다.
원본은 전혀 설명해주지 않고 복제본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런게 어딨어? 하긴 족보도 조상은 대충 알에서 나왔다고 불친절하게 써놓고 자손은 친절하게 대감 벼슬 했다고 자세하게 써놓더라고. 갈릴레이의 관성이 뜬금없이 뉴턴 3법칙이 되는 과정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이걸 알아내려고 존나게 생각했다.
초딩 3년 때 국어사전 찾기에서 체계의 존재를 알아냈고, 4학년때 자석실험에서 메커니즘의 존재를 알아냈고, 개구리알 실험에서 복제원리를 알아냈고, 제논의 궤변에서 변화가 곧 자리바꿈인 사실을 알아냈다. 자리의 존재, 곧 밸런스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24살 때다. 빌드업을 해온 결과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학이 한쪽 다리로 서는 데서 모두 한 줄에 꿰어져야 한다는 일의성을 알아냈고, 의하여의 법칙으로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의사결정원리를 알아낸 것이다. 그냥 질량보존이라고 우기면 곤란하고 정확하게 자리바꿈, 밸런스의 성립과 붕괴라고 정확히 말해줘야 한다. 자리를 바꾼다는 말은 자리가 있다는 말이다.
자리가 대칭과 축의 밸런스다. 닫힌계 내부에 축이 만들어지면 축이 이동하면서 에너지의 진행 방향이 변하게 된다. 자유전자가 광자를 삼켰다가 뱉어내듯이 자연의 모든 의사결정은 밸런스의 코어를 거쳐간다. 즉 잠시 멈추었다가 방향을 바꿔 변화를 진행시킨다. 잠시 멈추기 때문에 우주에는 절대속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시간의 탄생이다. 그게 없다면 시간이 왜 존재하지? 시간이 왜 흐르는지도 모르면서 밤에 잠이 온다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를 수가 없다. 어떻게 잠이 오냐고? 눈이 말똥말똥 해져서 잠을 설치는게 정상이 아니냐고. 우주가 공간과 시간인데 공간은 눈으로 보면 되지만 시간은 어떻게 감지하느냐고? 밸런스 복원이다.
우리는 공을 던지면 그냥 날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실제로는 스프링처럼 나선으로 돌면서 날아간다. 부메랑을 던져보면 알 수 있다. 빛도 공간을 헤엄쳐서 철푸덕거리며 겨우 기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광속이 있다. 광속은 자리바꿈의 속도다. 아주 짧은 동안 멈춘다. 그 멈춤과 멈춤 사이는 무한대다. 시간마디가 있다.
비행기는 추력을 양력으로 바꿔서 뜬다. 하긴 인간들이 비행의 원리조차 모르니. 추력의 작용이 양력의 반작용으로 변하는 것이다. 베르누이의 힘만으로는 점보기를 띄우는 400톤의 양력이 안 된다. 추력이 받음각에 의해 작용반작용에 따라 양력으로 바뀌면서 뜨는 것이며 추력이 양력으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하면 5다.
물리학자들은 양력만 가지고 설명하려니 망신을 피할 수 없다. 양력이 작용한다. 뜬다. 설명 끝. 이러기냐? 초딩이냐? 범선이 옆바람으로 가는 것과 비행기가 추력으로 뜨는 것은 정확히 같다. 바람이 옆에서 부는데 왜 배가 앞으로 가냐? 추력은 뒤에서 미는데 왜 비행기는 하늘로 올라가냐? 방향전환 과정을 말해야 한다.
자전거는 페달을 아래로 밟는데 왜 앞으로 가냐? 자동차 바퀴 앞부분 아래는 뒤로 가는데 차는 앞으로 간다. 바퀴로 땅을 뒤로 미는데 차는 앞으로 간다. 사람도 걷는 자세를 관찰해보면 발로 땅을 밀어서 반작용으로 가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걷는 원리도 모른다. 그러니 로봇이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이 안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머리에 쥐가 나게 생각해서 알아낸 것을 궁금해하는 과학자가 없다. 그게 문제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줄다리기를 보라. 발로 땅을 밀고 있다. 사실은 땅밀기 시합이다. 실제 힘의 진행은 인간의 겉보기와 반대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작용과 반작용에 의하여 방향전환을 거쳐서 일어나므로 5다.
왜 5냐고 묻는 사람은 작용 반작용을 이해 못했다. 뉴턴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설명해주지 않은듯 하다. 1은 변화가 아니고 2는 변화지만 결정과정이 없다. 산수를 해도 1+1=2가 되려면 1, +, 1, =, 2로 다섯 자리가 들어간다. 여기서 단 하나의 칸도 줄일 수 없다. 왜? 셈은 어떤 크기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변하기 전에 1, 변한 후 2, 변화 과정에 +, 1, =가 차례로 들어간다. 1은 원래 상태, +는 작용, 1은 작용의 크기, =는 반작용, 2는 결과다. 변화는 무조건 5다. 작용 반작용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변화는 없다. 내가 사과를 줬더니 철수가 좋아했다. 이렇게 문장을 써도 다섯이다. 내가, 사과, 주다, 철수, 좋았다가 연결된 것이다.
사건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연결하므로 무조건 5다. 이게 작용과 반작용의 현재 진행과정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주는 작용에 받는 반작용이 있다. 나는 사과를 줬다로 말을 끝내면 말을 하다가 만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사과를 줬더니 철수가 고마워했다까지 가줘야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 되는 거다.
구조론은 감각이다
구조론은 감각적으로 아는건데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니 황당하다. 그냥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는게 빠르지. 지구에 80억이 있는데 우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 되냐고. 그냥 심심해서라도 이런 생각 해볼만 하잖아.
내가 궁금한 것은 로봇이 어떻게 걷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사람은 어떻게 걷는지 궁금하지도 않는가다. 왜 아무도 이걸 말을 안하지? 영천할매돌 소동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거기서 감탄하는 사람은 노가다 십분도 안해본 사람이다. 그냥 알잖아.
합기도 기술이 다 영천할매돌 기술이다. '합기올리기'라고 하는데 미국의 덩치 큰 군인이 체중 50킬로 일본 할배 손가락 하나에 자빠진다. 어떤 기술을 쓰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내가 봤을 때 인류중에 합기올리기 원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손바닥 위에 참새를 올린다. 새가 날아오르려고 할 때 손의 힘을 살짝 뺀다. 새는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거 졸라 잼있잖아. 새 한마리로 온갖 쇼를 다 할 수 있다. 이게 합기도다. 왜 이런 잼있는 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느냐고. 구조론은 답을 안다.
1. 닫아놓고 분할하며 정의하는 방법
입력과 출력이 있어야 한다 > 납득
입력과 출력 사이에 결정(과정)이 있어야 한다 > 납득
입력과 결정 사이에 뭐1가 있어야 한다 > 왜? (입자가 왜 필요하지?)
결정과 출력 사이에 뭐2가 있어야 한다 > 왜? (운동이 왜 필요하지?)
입력과 뭐1 사이, 뭐1과 결정 사이, 결정과 뭐2 사이, 뭐2와 결정 사이에 뭐3이 또 없으란 법이 있냐?
여기서 에너지 방향에 주목하지 않는게 이상하다. 1과 2 사이에 또 3이 있으면 그게 플러스지. 구조론은 마이너스라고. 공유해제라고. 공유가 해제되면 에너지 연결이 끊어졌는데 왜 3이 등장해? 전선이 끊어졌는데 전기가 들어온다고? 링크가 끊어졌는데 클릭하면 사이트에 들어가진다고?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끊어지면 끝이다. 5는 끊는 절차를 말한다. 연결되어야 끊어진다. 연결과 단절을 모두 다루므로 5가 된다. 결정은 두 번 일어난다. 상부구조는 연결하고 하부구조는 단절한다. 플러스는 에너지의 추가 연결이 필요한데 1회의 사건은 1회의 입력으로 제한하므로 마이너스다.
2. 하나씩 쌓아가며 정의하는 방법
구조론이 55 (=3,125)인데, 이게 그럴듯 하지만 문제는 이걸 뭐라고 표현할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5단계가 있고, 각 단계의 사이에 또 5단계가 있다는 건데,
전 이게 자기지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만.
왜 55로만 끝나는 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5를 미리 정하고 하나씩 끼워맞추는 방식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유클리드 방식인데, 전 유클리드를 별로 안 좋아해서 구조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거든요.
이것은 인간이 만든 기계장치에 복잡성이 왜 없느냐 하는 문제다. 내 눈에는 세상의 모든 장치가 너무 간단하다. 자동차는 보디와 섀시가 있다. 섀시는 차가 가려는 사건이고 보디는 사람을 태우는 사건이므로 보디는 뺀다. 구조는 사건 1에 해당된다.
엔진, 클러치, 변속기, 차동기어, 구동바퀴 밖에 없다. 엥? 왜 이것 밖에 없어? 사건은 변화를 반영한다. 변화가 하나 뿐이면 그 변화에 간여하는 변수가 무한대가 될 수 없다. 증가하려면 사건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에너지는 1회 입력으로 제한한다.
자동차에 사람을 태우고 날개를 달아 비행자동차라고 우기면 복잡해진다. 이건 인간이 개입한 오염이고 순수한 1회 사건 자체의 의사결정 숫자는?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고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절대 숫자는? 에너지의 방향을 1회 꺾으면 5다.
왜? 먼저 방향을 정해야 하니까. 없는 방향을 어떻게 꺾어? 화살과 과녁 사이의 거리가 0이면 방향전환은 불가능하다. 선은 앞뒤 두 방향이다. 옆은 없다. 근데 옆을 추가하면? 면이다. 위아래를 추가하면? 입체다. 압력을 추가하면? 4차원으로 된다.
중요한건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차원은 증가하는게 아니고 감소한다. 즉 출발점이 4차원이다. 변화는 3, 2, 1, 0차원으로 내려간다. 변화는 모순의 해소이고 모순은 압력의 차이고 압력차는 서로 다른 이물질의 공존상태다. 공존이 해소되는 것이다.
공존할 수 없는게 공존할 때 공존 해소에 일어나는 변화 가능성 숫자는 3125가 되는 이유는 4차원 계를 전제했기 때문이다. 내부에 압력이 걸려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압력이 걸리려면 풍선이 있고 공기도 있어야 한다. 즉 안과 밖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럼 3125개가 아니라고 치자. 몇 개지? 선의 앞뒤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 선에 개미가 타고 있다면? 개미는 선의 앞으로 갔다가 방향전환 뒤로 간다.
25로 늘어나는 것이다. 3125를 의심해도 된다. 그럼 몇 개인데? 4차원 공간에서 4차원 운동을 하는 물체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이 문제에 답을 내보라고. 왜 아무도 이 쉬운 수학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지? 나야 수학을 못해서 포기하지만.
이거 하면 새로운 수학을 발견했다고 필즈메달을 준다. 왜 역사의 그 많은 천재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내지 않지? 심심해서 풀어볼 수 있잖아. 1차원에서 존재하는 무언가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예컨대 당구공 둘이 닿은 접점은 1차원이다.
이때 당구공은 붙을 수 있고 떨어질 수 있고 표면을 따라 미끄러질 수도 있고 제자리를 맴돌 수 있다. 와 이거 졸라 잼있잖아. 왜 새로운 수학을 만들어 인류에 기여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결론.. 인간들이 다 멍청해서 잼있는건 다 안하려고 하더라고.
좋은건 다 피해버려. 노벨상이 길바닥에 굴러다녀도 절대 주워가지 않아. 결사적으로 피해다녀. 위축된 거지. 자신감을 잃으면 이렇게 된다고. 남이 하는 것을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게 인간이라고.
인간이 만든 장치는 모두 어떤 둘이 만난 상태다. 점 둘이 만나면 그 자체로 이미 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선 두개가 만나면 이미 면이 만들어져 있다. 5가 5를 만나면 25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단 이게 에너지를 다룬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당구공 둘이 만나는 접점은 이미 선을 이루고 있으며 시작점, 끝점, 중간점이 만들어져 있고 연장과 멈춤이 가능하다. 동력이 주어졌을 때 점과 점의 관계가 5이므로 선과 선의 관계는 25가 된다.
3. "왜 father가 아빠에요?"
14살(중1)에 영어를 배우는데, 선생님에게 "왜 father가 아빠에요?"라고 물었다가
선생님이 매우 당황해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근데, 구조론에서는 이런 질문을 하면 애들이 까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제가 오해한 것일 수도)
근데 말입니다. 전 진지했거든요.
father = 아빠라는 건데, 뭔가 허전하잖아요? 그럼 당연히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것을 궁극적인 단계까지 밀어붙이는 인간 하나를 나는 보지 못했다. 다들 똥멍청이라고 보는 이유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개구리알 관찰실험으로 알아냈다. 그때의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주는 복제원리에 지배된다. 열역학 1법칙. 생겨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 열역학 2법칙.. 개구리알 세포 숫자는 증가한다. 와 이걸로 열역학을 원큐에 떼버려.
파더가 아빠인 이유는 뇌 속에 이미 있는 것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즉 연역이다. 파더는 마더를 반대로 발음한 것이다. 즉 어떤 발음을 반대로 혀를 놀려서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호모 에렉투스 시절부터 있었다. 그럼 마더는 왜 마더냐? 입술로 엄마 젖을 물면 M이 발음된다. 즉 동작을 복제한 것이다. 마더는 엄마 젖을 먹는 동작이다. 동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도 할줄 안다. 개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 견주를 바라본다. 빤히 쳐다보는게 의사표시다.
어떤 것이 어떤 것인 이유는 상부구조를 복제했기 때문이다. 즉 우주가 복제의 원본과 복제본의 연결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뭐다? 공유다. 우주는 일단 공산주의다. 뇌는 뉴런 하나가 1천개 이상의 시냅스를 공유한다. 언어학습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의 정보를 1천배로 복제해서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감자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감자맛, 감자냄새, 감자형태 등으로 복제되는 것이다. 그게 이해가 안 되면 자신이 꾼 꿈을 해몽해 보라. 반드시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연결된다. 그런데 살짝 틀어져 있다. 현실에서는 A인데 꿈에서는 B다. 엉뚱한데 가 있다. 왜 거기에 붙었지? 아! 복제구나. 시냅스가 그리로 붙었어.
4. 메타언어메타언어메타언어
의 메타언어메타언어메타언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의 뇌는 일단 정보가 들어오면 1천배로 복제한다. 다음 아닌 것을 추린다. 감자를 먹었다면 감자탱크, 감자비행기, 감자소녀 이런 것은 시냅스가 죽는다. 계속 소거되고 기억되는 것은 살아남는 일부다. 일부가 살아남는 이유는 뇌세포가 타버려서다. 그 경우는 비가역적 뇌세포 손상이다. 영구기억은 대부분 뇌세포가 타버려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다. 이게 남으면 트라우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므로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는 날려버린다. 메타언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보를 복제해서 그룹을 만들기 때문인데 조금 지나면 죄다 삭제되고 없다.
결론.. 위 네가지 오류는 모두 발산 방향이다. 방향이 틀리면 틀릴 수 밖에 없다. 엔트로피가 적용되어 있지 않다. 에너지는 끊는 결정만 가능하다. 이미 전기가 들어온 상태에서 끊는 것은 가능하지만 새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터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라고 제한하면 명백해진다.
구조론의 입자 개념
입력과 출력 사이에 결정이 있다. 이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원인과 결과는 대개 밖에서 관측하는 것이므로 내부에서도 뭔가 결정이 일어날게 아니냐 말이다. 총을 쐈다.(원인) 죽었다(결과)는 외부에서 아는 것이고 내부에서는? 총을 그냥 쏜게 아니고 표적을 겨냥해서 쏜 것이다. 겨냥이 빗나가면 총을 쏴도 죽지 않는다. 내부사정도 봐야 한다.
내부에는 결정이 있다. 원인(외부), 결정(내부), 결과(외부) 셋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구조론은 다섯이다. 왜? 원인과 결과가 객체 내부에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셋을 납득했다면 밖의 원인과 결과에 내부 원인과 결과를 더하여 합이 다섯이다. 구조론은 에너지를 다루므로 이렇게 된다. 우리가 이런 것을 대충 넘어가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보자.
점주 ‘고객에게 거스름돈을 줘라.
알바 ‘줬습니다.’
점주 ‘근데 왜 잔돈을 못받았다고 항의전화가 오냐?’
알바 ‘난 분명히 줬는데 심부름하러 온 꼬맹이가 안 받아갔걸랑요.’
점주 ‘그럼 준게 아니잖아.’
알바 ‘그래도 나는 줬걸랑요. 분명히 고객이 안받아간거에요.’
이러면 피곤해진다. 손님이 받기 전에는 준게 아니다. 알바는 준게 아니고 줄 의사를 보였을 뿐이다. 밖만 보면 준게 맞다. 안을 보면 준게 아니다. 이런 함정을 이용한 속임수가 먹뱉이다. 쯔양이 먹었는지 먹는척 했는지 알 수 없다. 음식이 위장에서 소화되어야 먹은 것이다. 입으로만 들어가면 먹은 거다? 구조론을 모르면 속은 것을 알아도 따지지 못한다.
왜 다섯인가? 첫째 구조론은 에너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방향이 다섯 번 바뀌기 때문이다. 왜? 밖과 안에서 두 번 바뀌어 입력된 다음 결정하고 다시 두 번 바뀌어 출력된다. 외부의 원인과 결과와 내부의 원인과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 입력, 원인, 결정, 결과, 출력 다섯으로 나누어 기술해야 한다. 간단히 에너지는 줘도 받기 전에는 준게 아니다.
주면 당연히 받았겠지 하고 대충 넘어가므로 먹방에 속는다. 마술사의 트릭도 대개 원리가 같다.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에 무엇이 있나? 공유가 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잠시 물건을 공유한다. 내가 사과를 준다면 사과는 주는 사람 손에 있으면서 동시에 받는 사람 손에도 있다. 공중에 던져진 물체가 낙하하기 전에 정점에서 잠시 멈추어져 있다.
이때 던져진 물체는 상승하면서 동시에 하강한다. 작용 반작용의 공유다. 쇠사슬처럼 에너지는 연결되며 링크는 둘의 공유다. 사슬은 반드시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인체의 관절도 같다. 반드시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도자기를 줬는데 상대방이 받는 척 하고 놔버리면 어떻게 될까? 깨진 도자기 값은 누가 물어주지? 받는 사람은 안받았다고 우기면 된다.
손을 내밀다 말았을 뿐 받은게 아닌데? 구조론을 배우지 않으면 무수히 실패가 일어난다. 이게 대충 넘어갈 일인가? 질은 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유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혹은 집합이라고 생각하거나. 우리는 단단한 고체 위주로 사고하지만 세상이 고체로 되어 있다는 선입견은 위험하다. 양자역학이 왜 나왔겠냐? 소립자 단위로 가면 세상은 유체다.
에너지의 입력과 결정(방향전환) 사이에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기준을 정하고 4열 종대 집합을 선언하잖아. 여기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게 입자다. 선생님이 야! 거기 키 큰 놈. 네가 기준이다. 이러면 기준이 된 아이가 오른손을 든다. 여기서 기준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면 피곤하다. 기준이 없는데 어떻게 줄을 서느냐고?
에너지는 돌멩이가 아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시작점을 특정해야 한다. 납득? 그 전에 닫힌계를 정해야 하는데 그건 입력이니까 패스. 그럼 변화의 시작점은 어떻게 특정하는가? 보통은 계 내부에 걸린 압력의 평형에 의해 정해진다. 파동을 관찰해보면 알 수 있지만 파도가 오르내리는데 사실은 둥글게 원을 그린다. 우리가 아는 파동은 깨진 파동이다.
파동의 중심점이 있다. 혜성은 태양을 도는게 아니고 파동의 중심점을 돈다. 위성은 행성 주변을 도는게 아니고 위성과 행성의 질량의 중심점을 돈다. 그 중심점이 어딨냐고 물으면 때려죽여야 한다. 그건 있다고. 있는 거야. 보이지는 않아. 지구는 태양을 도는게 아니고 지구와 태양을 합친 중심을 도는데 그 중심은 태양 내부에 딱 숨어 있어서 안보인다고.
중심점이 없으면? 깨진다. 진흙을 대충 뭉쳐서 던져보라. 흩어진다. 눈싸움을 하더라도 손으로 눈을 뭉쳐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눈을 손의 체온으로 살짝 녹여서 심을 만드는데 손이 존나 시리다. 안에 돌을 넣어도 된다. 눈싸움 하다가 패싸움 되는 이유는 돌을 넣는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입자가 없으면 작용에 반작용을 하기 전에 형태가 무너진다.
형태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은? 코어가 주변을 장악했다는 의미다. 그게 입자다. 여기서 에너지 방향이 반대인데 처음 질 단계는 밖에서 안의 방향이지만 입자가 형성되면 안에서 밖으로 방향이 바뀐다. 다시 초등학교로 돌아가서 키 큰 녀석이 오른팔을 들고 기준을 외치면 학생들이 그 학생 쪽으로 일단 모인다. 가까이 오면 움직이는 방향이 바뀐다.
처음에는 기준 쪽으로 다가오지만 방향을 틀어 기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자기 위치를 찾아간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 결정이 있다는 사실은 납득했다고 치고 뭔가 결정했다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변화의 시발점이 어디냐고? 지렛대라면 받침점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받침점이 어딘데? 받침점은 그냥 있다고 선언하면 피곤한 삽질이다.
받침점은 작용과 반작용의 밸런스가 정한다. 무한동력 아저씨 착각도 전부 이 문제다. 무한동력 아저씨는 얄궂은 편심 바퀴를 만들어놨는데 축이 틀어져 있다. 그게 뭐냐면 거기가 축이라고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건데 그렇다면 거기가 과연 바퀴축일까? 바퀴축의 위치는 아저씨가 정하는게 아니라 지구 중력의 밸런스가 정한다. 아저씨 지가 뭔데?
밸런스는 바퀴가 움직여야 정해진다. 여기에 트릭이 있다. 아저씨가 바퀴를 돌리기 전에는 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볼 베어링만 박아놓으면 그게 축이냐? 입력과 출력 사이 결정의 존재는 납득했다고 치고 결정은 축의 이동인데 어디서부터 이동이 시작되나? 이걸 이해 못한다면 슬픈 거다. 무한동력 아저씨는 멋대로 축으로 선언하지만 누구 맘대로?
무한동력 아저씨가 바퀴를 돌리면 축의 한쪽이 마모된다. 마찰열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게 결정이다. 그런데 한쪽만 닳아버려. 그 한쪽을 누가 정했냐? 결정이 결정한 것이다. 우리가 손으로 물체를 들어도 그냥 드는게 아니고 먼저 무게중심을 장악해야 한다. 입력(물체에 힘을 가한다) 결정(물체를 바닥에서 뗀다) 출력(물체를 공중에 높이 들어올렸다)
여기서 왜 영천할매돌은 딱 붙어서 안떨어질까? 일단 떼야 드는데 안떨어지면 어쩔거냐고? 예컨대 종이나 천이 안 찢어질 때는 작은 흠집을 내주면 된다. 출발점을 정해줘야 한다. 영천할매돌을 드는 쉬운 방법은 옆으로 살짝 기울여서 한쪽을 허공에 살짝 뛰우는 것이다. 노가다 판에서 시멘트 포대를 들 때 이 기술을 사용하면 허리가 나가는 일이 없다.
참새그물도 많이 이야기했는데 새가 그냥 나는게 아니고 먼저 점프하여 허공에 뜬 다음에 날개짓을 한다. 할매돌 한쪽을 손으로 받치고 누르면 공중에 뜬다. 엥? 자 여기서 드는 동작은 아래에서 위로 가는 것인데 돌을 누르라고? 이걸 알아야 노가다판에서 살아남는다. 우리는 그냥 든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살짝 기울여서 허공에 띄운 다음에 드는 것이다.
이걸 필자는 '무게중심을 빼앗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들어야 하는데 누른다는 점이다. 유도선수의 업어치기와 같다. 업는 동작은 공중으로 높이는 것이고 팔로 당기는 것은 지면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 동작에 지렛대의 힘점과 받침점과 작용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챘을 것이다. 결정은 무엇이다? 패대기치는 거다.
패대기 치기 전에 업는다. 한쪽은 밀고 한쪽은 당긴다. 서로 모순되는 두 방향의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 이게 '코어'다. 이게 없으면 모든 동작에 실패한다. 할매돌을 살짝 기울여 들면 쉽게 들리는데 그건 불손한 동작이므로 기도를 하고 예의바르게 들려고 하므로 들리지 않는다. 객체의 무게중심을 흔들어놓고 들어올리는 행동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할매돌 일부는 지구와 접촉해서 방향이 지구중심이고 다른 일부는 하늘방향이다. 하나의 돌에 에너지 방향이 둘이 되었다. 둘의 교차점이 축이다. 축이 발생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차력사가 500 페이지짜리 두꺼운 전화번호부(옛날사람은 알거임)을 쉽게 찢어버린다. 사실은 한 페이지씩 찢는다. 첫 장이 찢어지지 않으면 전체가 실패한다.
그 첫 장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데? 입력과 출력 사이 결정은 납득했다고 하니까 변화가 결정되기 전에 시작점을 도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시작점과 결정은 에너지 방향이 다르다는거. 바퀴축과 바퀴살은 에너지 방향이 다르다. 지렛대의 힘점(입력) 받침점(입자) 작용점(결정)은 에너지 방향이 다르다. 입자의 발생 필요성은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많이 이야기한게 별사탕의 좁쌀, 인공강우의 요드화은. 과냉각된 물이 어는 시작점(입자가 없어서 영하 40도에 물이 어는데 실패, 불순물 투입하면 바로 얼어버려.) 등이다. 내부가 균일하면 시작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다 평등하면 반장은 누가 하느냐고. 질은 균일해야 하는데 입자는 오히려 불균일해야 한다. 그래서 특이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입자와 결정(힘)은 다른데 결정은 사실상 승부가 난 상태다. 아직 관객들은 모르지만 씨름선수 사이에는 이미 승부가 났다. 결정된게 실행(운동)되면 관객이 눈치를 채는(판정) 것이다. 어떻게 결정되는가? 강호동과 이만기가 서로 샅바를 잡고 대결하는 과정에 두 사람의 힘이 팽팽해지는 순간 입자가 만들어지고 그 입자를 가져간 쪽이 힘을 쓰게 된다.
입자를 뺏긴 쪽은 지렛대 받침점을 뺏겨서 힘을 못 쓴다. 입자의 위치가 낮아야 상대를 들어올리므로(결정) 씨름선수들이 자세를 낮게 유지한다. 서로 상대방 신체 밑으로 지렛대를 박으려고 하는 것이다. 들기 전에 지렛대 받침점을 만들어야 들 수 있다. 요것만 알아도 노가다판의 왕이 된다. 200킬로짜리 피아노 들고 건물 5층까지 올라가야 곤방이다.
우리가 그냥 물체를 들어도 사실 척추를 타고 에너지가 발까지 전달되는게 느껴진다. 안 느껴지면 빙판 위를 빠르게 걸어보라. 허리에 젖나게 힘이 들어간다. 의사결정은 밸런스의 중심점 이동이며 이동하기 전에 중심점 위치를 정하는게 입자. 이동방향을 결정하는게 힘.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시간적인 진행이 운동이다. 운동이 끝나면 량이다.
천칭저울을 봐도 한쪽에 계량할 물체를 올리고 다른 쪽에 추를 올린다. 그런데 천칭저울 접시는 왜 끈으로 매달았지? 끈이 아니면 접시에 계량할 때 접시 가장자리에 살짝 걸쳐서 저울 눈금을 속인다. 노량진 수산시장 아저씨가 어떻게 눈금을 속이는지 알잖아. 끈을 쓰는 이유는 누르기 속임수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천칭접시 가장자리에 걸쳐놓기 없기.
자 여기서 우리는 저울 눈금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속임수의 대한 파훼법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칭저울은 축이 있다. 축을 살짝 틀어놓으면? 축을 고정시켜 놓은 이유는 속임수를 차단하려는 것인데 축을 이동시킬 수 있다면? 결정은 이해가 쉬운데 저울에 계량할 생선과 추가 대결하여 승부가 이미 가려진 것이다.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축을 옮겨 속임수를 썼다면? 계량하기 전에 축을 검사해야 한다. 미리 손을 써서 축을 옮겨놓은 속임수 저울이 아닐까? 결정한다는게 뭔가? 추의 무게와 생선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이다. 왜 비교가 되나? 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정은 작용과 반작용이 무언가 공유해야 성립된다. 무엇을 공유하는가? 입자를 공유한다. 공유가 없으면 의사결정 못한다.
공유성립 - 입자
판정결정 – 힘
공유해제 - 운동
작용과 반작용이 입자를 공유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결정이 실행되려면 공유해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냥 바퀴축이 있구나 하지만 바퀴살이 에너지적으로 축을 공유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대통령은 여야가 공유하는 것이다. 아기는 부부가 공유하는 것이다. 우주가 공유에 의해 작동하므로 우주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다.
물론 자본주의 우주도 있으니 걱정마시라. 모든 의사결정은 공유와 공유해제를 거친다. 선공유 후공유해제다. 선공산주의 후 자본주의다. 바둑에 포석이 필요한 이유는 전투 때 공유되기 때문이다. 미리 예비병력 받쳐놓고 실전 들어가면 지원사격 받는다. 요소요소에 배치해둔 돌 때문에 전투에 쉽게 이긴다. 이걸 비겁하다고 생각하면 순장바둑이다.
로봇이 영 힘을 쓰지 못한다는데 이러한 작용 반작용의 공유 개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로봇이 한쪽 발로 뛰어야 하고 손바닥 위에 막대기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공유지점 도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유지점은 도마와 같다. 생선과 칼이 잠시 멈춘다. 작용과 반작용이 균형을 성립시키고 균형점을 이동시키는 형태로 변화를 한다.
로봇에 균형점 성립과 이동의 개념이 있을까? 균형점을 옮기려면 이동방향은? 이동시간은? 멈추는 방식은? 결국 다섯 개가 된다. 그 전에 균형을 끌어내는 압박이 있다. 로봇은 그냥 걷는게 아니고 압력(작용), 균형(반작용과), 균형점 이동 공간의 방향 지정, 균형점의 이동 시간의 속도 지정, 균형점 이동의 정지로 다섯 개의 디폴드 값 지정이 필요하다.
중국 로봇이 소림 무술을 배워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미 해냈을 수도 있다. 눈속임일 수도 있다. 혼다 로봇 아시모군이 걸어다닌지 26년 째다. 26년 동안 뭐한 거야? 나는 40년 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알려주지 않겠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연히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딥러닝이 균형점 도출과 이동이라는걸 알 수 있다.
로봇이 1톤을 못 드는 것은 쇠가 약해서라고 둘러대면 되고 왜 100킬로를 못 들까? 로봇과 물체를 합친 전체 무게중심을 이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상의 지렛대 받침점 위치를 옮기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 초딩도 하겠구만. 너무 쉬운 것을 너무 못하니 할 말이 없다. 내가 봤을 때 기술자들은 노가다판에서 30분도 일해본 적이 없다. 현장으로 집합!
환원주의와 자유의지
자유의지 논쟁만큼 병맛인 논쟁이 없다. 철학자들이 죄다 빡대가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아무말 대잔치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집단이 합의해야 한다. 정의는 수학문제 풀이법 찾는게 아니다. 정의는 공간의 사물이 아니고 시간의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째 단추는 첫 단추에 연동된다.
같은 범죄에 같은 형을 선고하는게 정의다. 누구는 귀족이라고 봐주고 그러기 없다. 첫 단추는 합의된다.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면 범죄가 되고 범죄가 아니라고 규정하면 범죄가 아니게 된다. 당신이 죄수 호송버스를 운전하고 있는데 죄수 세명을 죽이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행인 한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정답을 정하면 그게 정답이다. 그래서 헌법이 있는 거다.
윤석열은 혀 한번 잘못 놀렸을 뿐이다. 진짜로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도 있다고 의회에 경고하여 알려줄 의도였다고 해도 사형이 아니면 무기라고 형법에 박아놓은 것이다. 약속이 곧 정의다. 의도는 중요한게 아니고 액션이 중요하다. 내가 마음 속으로 트럼프를 백번 죽였지만 죄가 안 된다. 자유의지 논쟁도 답답한게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진지하지 않다. 말장난 하려고 한다.
대중은 정답이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게 자기소개다. 누가 당신 취향에 관심있냐고? 마이클 샌델의 약장수 기술이 먹히는 것도 정답이 없다고 솔깃한 말을 해서 바보들의 돈을 빼먹자는 수작이다. 정답이 없다면? 컨닝의 자유, 새치기의 자유, 얌체짓의 자유가 주어진다. 얼렁뚱땅 물타기 하면 된다.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를 숨긴 자가 정답이 없다는 개똥철학 좋아한다.
정의가 집단의 합의라는 진실을 말하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 배웠다는 자들이 이런 치졸한 짓을 벌인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 정의를 알 수 없다는 말은 도전과 응전의 회피다. 당면한 게임을 회피하고 마음 편하게 가자는 회피기동이다. 정답이 있으면 피곤해. 주택시장의 정답은 아파트 - 죄다 아파트를 지어서 보기가 안좋잖아. 중국은 더해버려. 단독주택은 건축을 금지.
왜 한강 주변에 고층아파트 때려지어서 한강뷰 막느냐고. 가성비라고 조건을 걸면 정답이 딱 나와버려. 아파트 하고도, 강남 하고도, 한강뷰가 부동산 투자에는 최고여. 내 자식은 비싼 학원에 보내고 외국 유학을 보내는게 최고여. 서울대만 붙으면 다되는거여. 검사 사위가 제일 좋은 사윗감이여. 이런 식으로 정답이 딱 나와버리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피곤해진다는 말이다.
왜? 경쟁률이 올라가거든. 내 자식만 서울대 보내려고 했는데 다들 몰려와서 난장을 쳐버려. 정답이 없다는 말은 건물에 뼈대가 없다는 말과 같다. 모래성은 뼈대가 없어서 허물어진다. 건물은 뼈대가 있고 인생은 정답이 있다. 정답은 수학이다. 결국 뭐든 수학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낸다는게 환원주의다. 인간들의 무의미한 자유의지 논쟁은 진지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어서다.
자유의지는 권력의지로 바꿔야 한다. 자유와 권력은 동의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게임이 주어지기 때문이고 게임에 이기려는 권력의지가 있는 것이며 권력행동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어떤 결정을 하든 청구서가 따른다. 자유의지 부정은 권력부정이다. 이게 정치권력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인은 다 알지만 외국인은 모를 수 있다.
니체의 권력의지가 꼭 정치권력은 아닌데 히틀러가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먼저 인생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의지라는 것은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상대방이 거기에 맞대응을 한다는 말이다. 잼있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거다. 가스라이팅이 가능하다. 사랑도 가스라이팅이다. 만화 타짜에서 고니가 말했다. 따지고보면 사랑도 구라야.
게임의 규칙을 내가 정할 수 있다. 견주는 개를 사랑해서 좋은 개로 만들 수 있고 개를 유기해서 나쁜 개로 만들 수도 있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환원주의가 오히려 자유의지와 통한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 곧 선행단계가 있다는 말이고 자유의지는 개인에게 권력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관점의 문제가 제기된다. 능동적 태도냐 수동적 태도냐다. 갑이냐 을이냐.
을의 수동적 포지션 - 환원주의는 단계가 있다. 이전 단계가 영향을 미친다. 이전 단계에 모두 정해져 있으므로 자유의지는 없다.
갑의 능동적 포지션 - 환원주의는 단계가 있다. 이전 단계가 대부분을 결정한다. 이전 단계를 통제하여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다.
수동적 태도로 보면 환원주의는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하고 남탓하게 된다. 능동적 태도로 보면 환원주의는 이게 다 나의 영향력이다 하고 자랑하게 된다. 같은 것을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핵심을 장악해야 한다. 그것을 장악한 사람은 환원주의가 좋고 장악못한 사람은 환원주의가 싫다. 결국 그것은 바보의 자기소개다.
바보들 생각 -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핵심을 장악해야 하는데 핵심을 몰라서 손해봤다. 열심히 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했으니 헛살았다.
영리한 사람 -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핵심을 장악해서 다른 사람을 종속심킬 수 있다. 수순을 잘 지켜 지도자나 예술가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다.
상부구조가 있으니까 권력이 있다. 이게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문제는 세상의 널린 바보들이다. 개인의 자유는 좋지만 상부구조는 싫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한다. 월급은 받고 싶지만 취직은 하기 싫다는 말과 같다. 어쩌라고? 환원주의가 무서운게 무슨 일이든 사전 포석단계가 있으며 미리 상황을 맞춰놓지 않으면 수렁에서 갇힌다는 게임의 규칙 때문이다.
환원주의가 있다면? 내 자식은 학교 보내기 전에 선행학습을 다 시켜놨지. 이런 식으로 사전행동을 한다. 중국 축구는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게 아니고 뇌물순으로 대표팀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하긴 히딩크도 이 때문에 많은 압박을 받았다. 축협에서 참견하여 박지성 같이 축구 못하는 선수는 쓰지 말고 특정 선수를 쓰라고 압박한다. 뒷돈을 받지 않았다면 왜 그랬겠나?
우리가 환원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런 부분에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를 아는 애들이 미리 반착과 꼼수와 협잡으로 회의를 하기도 전에 다 내정해놨다면? 공산당 회의가 그렇다. 주민들은 박수로 통과시키고 결론은 사전에 정해져 있다. 필자가 김민석이나 송영길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런 운동권 짜고치기 버릇이 남아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똥파리 동원했지.
유시민이 그걸 모르겠냐? 척 하면 삼천리지. 뒷구멍으로 무슨 수작 하는지 우리 세대는 다 안다. 요즘 2030이 모르고 낚이는 거다. 자기들이 조종되고 있다는걸 모른다. 운동권은 원래 겉으로 드러난 조직과 배후의 조직으로 이원화 되어 있다. 회의는 쇼일 뿐 윗선에서 사전에 다 정해준다. 환원주의라는게 악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원주의를 부정한다고?
nice라는 말의 어원은 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셈하지 않아도 된다? 좋다. 나이스! 왜 셈하지 않는게 좋지? 그야 백인들은 셈을 잘 못하니까 그렇지. 백인들의 자기소개다. 셈을 잘해야 한닥? 그럼 인도 형님들이 다 먹잖아. 걔네들은 구구단도 20단까지 외운다며? 환원주의 혐오는 수학혐오와 정확히 같다. 그러나 어쩌리. 세상은 결국 수학 잘하는 넘이 먹게 되어 있다.
환원주의가 알려준 정답대로 인간들이 죄다 아파트를 때려지어서 꼴보기가 싫은 것은 인간들 잘못이지 이론 잘못이 아니다. 수학을 아는 백인들이 모피거래를 하며 셈을 모르는 이누이트를 속이는 것은 백인 모피상들의 잘못이지 수학의 잘못이 아니다. 수학은 싫어. 환원주의는 나빠. 이런 투정은 어린이의 투정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알잖아. 억울하면 싫어도 수학 배우라고.
인간들의 욕망은 다섯가지다. 욕망을 귀납적으로 분류하면 300가지가 되지만 연역적으로 분류하면 초월욕, 권력욕, 관계욕, 정신욕, 신체욕 다섯 뿐이다. 모든 욕망은 이겨먹는 것 하나로 환원된다. 문제는 게임에 져도 승복하지 않겠다는 얌체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다. 상부구조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전투가 벌어져 있다는 거다. 엥? 이게 바로 오청원의 신포석이다.
초반 몇 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늘 놓는 자리에 놓는게 바둑판의 예의인데 그게 아니고 첫 수부터 계산하고 들어간다고? 이런 비열한. 이런 악귀 같은. 오청원 싫어. 이런다. 당시는 첫 한 수는 소목에 놓는게 규칙이었다. 화점이나 삼삼에 놓으면 무례하다. 처음 시작부터 상대의 의도를 헤아리고 머리를 써야한다는게 피곤한 거다. 그게 피곤하면 바둑을 두지 않으면 된다.
조선인들은 한술 더 떴다. 순장바둑은 아예 포석이 없다. 잔대가리 굴리기 없기. 그게 옳은 태도일까? 인간의 욕망은 이겨먹으려는 것이다. 쉽게 이기려고 한다. 그런데 진다. 포석을 생략하면? 머리 좋은 사람보다 바둑을 많이 두어본 사람이 유리하다. 노력파가 유리하다. 모든 사람이 노력을 쏟아부으면 낭비가 아닐까? 전 국민이 자녀를 서울대 보내려 하는게 과연 좋냐?
초월욕 - 천하를 이긴다.
권력욕 - 집단을 이긴다.
관계욕 - 주변을 이긴다.
정신욕 - 마음을 이긴다.
신체욕 - 신체를 이긴다.
게임의 종목이 다섯인데 공통적인 규칙은 이겨야 핸들 잡는 것이다. 지면 나가리다. 자신한테 지면 알콜중독, 담배중독, 도박중독, 섹스중독에 걸린다. 극기복례의 의미다. 몸을 이기는데 그치지 말고, 마음을 이기고, 주변을 이기고, 집단을 이기고, 신을 이겨야 한다. 이기면 룰을 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 인생의 승부는 피해갈 수 없다. 하지 않으면 당한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중국은 사천개의 나라가 먹힌 결과다. 먹었다고 자랑할게 아니라 먹혔다고 슬퍼해야 한다. 멸망한 4천개 나라 중에 백개 나라가 중국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중국이 먼저 유럽을 정복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타령은 게임을 회피하려는 기동이다. 게임은 곧 의사결정이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으면 먹힌다. 셈을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
안하려고 하는게 비겁하다. 조선이 뭘 잘못한게 아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게 잘못이다. 국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인 전한길이 당을 접수해도 언더찐윤 40명은 눈만 멀뚱히 뜨고 수수방관이다. 국힘이 망할수록 경상도 금뺏지는 더 견고해지니까. 자기 집에 불이 나서 활활 타버리니까 오히려 좋아한다. 이제 남들이 집적댈 일은 없지. 불난 집에 누가 찾아오냐.
어차피 중국과 싸워서 못이긴다. 그래도 우리는 5천년간 살아남았다. 환원주의가 없다면 누가 패배한 게임에 승복하겠는가? 아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승리도 없다. 나의 자유는 남의 자유와 충돌한다. 이 게임은 미리 손을 쓴 사람이 먹는다. 뒷구멍으로 미리 손 대는 자가 있다고? 회의를 하기 전에 미리 결론이 정해져 있다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이 이유있다.
과학혐오와 같다. 원시인 시절이 좋았지. 학교 안다녀도 되고 빵점 맞아도 종아리 맞을 일 없고. 문명은 진보하는데 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받아들여야 한다. 환원주의 반대는 자유의지 반대다. 환원주의가 있으므로 게임이 있고, 게임이 있으므로 승패가 있고, 승패가 있으므로 승리자는 자유의지를 노래하고 패배자는 청구서를 받는다. 게임은 이기고 청구서는 안받겠다?
자유의지로 신호위반은 하겠지만 환원주의라는 이름의 범칙금은 물지 않겠다면 도둑놈 심보다. 환원주의는 권한 만큼 의무가 따른다. 영끌은 자유이나 고금리는 어쩌겠는가? 정답 - 집을 팔면 된다. 문제에 정답이 있는게 싫어. 집을 팔고 싶지 않아. 응애 응애. 이러면 쳐맞아야 한다. 언제나 이전단계가 있다. 미리 손을 써두어야 한다. 사실이지 환원주의는 두려운 세계다.
적응하게 된다. 조선시대 초가집 좋잖아. 낭만이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진지하지 않을 뿐.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뺏지 않으면 뺏긴다. 이기지 않으면 진다. 하지 않으면 당한다. 세상은 게임이고 당신은 게임을 피할 수 없다. 이기려면 미리 조치해야 하는데 그게 심적인 부담이 된다. 그러나 결국 적응하게 된다. 세상은 머리 좋고 선제대응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환원주의는 결정론적이지만 결정론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부분을 미리 결정하여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동작 빠른 사람에게 유리하다. 영국인들이 동작이 빨라서 한때 세계를 호령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도 동작이 굼뜨지 않다. 물론 백년전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제일 게으른 민족이니 식민지 되는게 맞다고 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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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따질수록 세상은 머리 좋고 친구 많은 놈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다. 머리 나쁜 노력파에게 유리해야 한다.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는 사람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 남이 컴퓨터 배울 때 주산학원 다닌 사람이 대접받고 남이 영어 배울 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한다.
문제는 실제로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인 1980년대가 우리나라 주산학원의 전성기였다는 거.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뒤늦게 서당이 대박을 쳤다는 거. 인간들은 뒷북을 치는데 재주가 있다. 조갑제가 뒤늦게 한문타령 하는게 그때 그시절 서당이나 다닌게 아까워서인듯. 생명의 진화든 문명의 진보든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법칙이 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