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설(講說)
이상은 중생(衆生)과 그 업연(業緣)을 관찰(觀察)한 대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을 기초로 해서 세워진 교리(敎理)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어떠한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제가 지은 업만큼의 것을 제가 받는 것이라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응보(應報) 사상이 철저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중생관(衆生觀)은 법신불(法身佛)의 생명을 받아서 태어난 존재, 즉 아기 부처(불자 = 佛子)라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부처님의 그것과 다름없는 완전한 불성(佛性)을 본질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주체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여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피조물(被造物 : 만들어진 물건, 즉 만든 자의 조종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사에 자주적이고, 자주적인 주체성에 의하여 움직인 것은 전적으로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제가 한 짓 (업 = 業)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지 않을 수 없다는 인과(因果)의 법칙에서 오는 자업자득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 이 관중생업연품(觀衆生業緣品)은 중생의 그 능동적인 주체성을 먼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 움직인 것이 옳지 않은 것일 때,
예를 들면 부모에 불효하고 많은 무고한 생명을 살해하거나 부처님 몸에 피를 내거나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훼방하거나 대중이 함께 쓰는 공유물(公有物)을 침손하거나 청정(淸淨)한 도(道)를 닦는 승니(僧尼)를 오염시키거나 하는 등등
수도(修道)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윤리마저 배역하는 큰 죄를 지으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에는 죄에 대한 악보(惡報)를 예시(例示)함으로써 죄악(罪惡)을 방지하는 반면, 바른 일, 착한 일을 하면 그만큼 항상하고 발전하는 좋은 결과가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는 밝은 희망을 주는 고무적인 뜻이 은연중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무간지옥이라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지옥으로 등장하였는데, 시간적으로 끊임이 없고 공간적으로 피할 틈이 없는 고통을 연속적으로 받는 지옥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도 그 죄보를 받을 만큼 받아서 그 죄업을 다 갚고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옳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니,
결국 모든 중생은 고통을 통하여 잘못을 깨닫고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서 보살(菩薩)의 길을 걷고 마침내 성불(成佛)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제하는 목련존자, 뒤에 서계신 분은 지장보살님]
[출처] 묘허스님의 지장보살본원경 강설-42|작성자 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