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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1년 #셀주크튀르크 군 5만명과 #비잔티움제국 의 20만 대군이 오늘날 터키 동부 지역에서 벌어진 #만지케르트전투 (1071년)에서 대대적으로 맞붙은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테오도시우스 1세가 두 아들에게 #로마제국 을 절반씩 나누어주면서 로마는 395년 동서로 분열됐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제국 은 476년 #게르만족 에 의해 일찌감치 멸망했어요.
하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 를 중심으로 한 '비잔티움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재위 527~565년) 때 옛 로마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되찾으며 전성기를 누렸어요. 오늘날 터키는 물론 그리스, 이탈리아, 예루살렘, 시리아, 북아프리카까지 최대 영토를 확보했지요.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와 거대한 돔으로 '비잔티움 문화의 정수'로 찬사받는 성 소피아 성당도 이때 건립됐어요.
◇비잔티움이 패배한 만지케르트 전투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은 7세기부터 #사산왕조 #페르시아 (오늘날 이란), 이슬람 세력 등과의 대립으로 점점 세력이 축소됐습니다. 그러던 중 11세기 이슬람교로 개종한 #유목민족 셀주크튀르크가 비잔티움 제국이 지배하던 #소아시아 일대를 공격했어요. 셀주크튀르크군 5만명과 비잔티움 제국의 20만 대군이 오늘날 터키 동부 말라즈기르트에서 벌어진 만지케르트 전투(1071년)에서 대대적으로 맞붙었지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서 셀주크튀르크는 큰 승리를 거뒀고,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로마누스4세 는 포로로 잡혀가는 굴욕까지 겪었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셀주크튀르크는 서아시아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됐죠. 그래서 이 전쟁을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를 가져온 결정적인 전투로 꼽아요.
1077년 셀주크튀르크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예루살렘 을 점령하면서 양 세력 간 갈등이 폭발합니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더 이상 마음대로 예루살렘에 갈 수 없게 됐죠.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 제국 #황제 가 #로마교황 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 길고 긴 ' #십자군전쟁 ' (1096~1272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유럽 연합군인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데 실패했답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비잔티움 멸망
하지만 셀주크튀르크의 전성기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13세기 #몽골 에 의해 멸망한 거죠. 이후 소아시아 일대에는 #튀르크족 중심의 ' #오스만제국 ' 이 수립됐어요.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2세 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기독교를 믿던 비잔티움 제국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성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되었죠.
이후 오스만 제국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대륙을 호령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어요. 오스만 제국은 세금만 잘 내면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했고, 이 지역에는 비잔티움·페르시아·이슬람·튀르크 문화 등이 융합된 국제적인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19세기 이후 이 지역은 ' #유럽의화약고 ' 라 불리는 분쟁 지역이 됐습니다.
#성소피아성당 역시 #박물관 으로 이용되었다가 지난 7월부터 다시 #모스크 가 되는 등 부침을 겪고 있어요.
출처: 프리미엄조선|[윤서원]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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