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인생살이는 불우한 삶이었다.
18세 이전에는 외할머니와 남동생, 3식구가 살기가 어려워서 정착도 못 하고 떠돌아다니시다가 할아버지의 소개로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와서 외할머니와 같이 집안 살림을 맡았다.
어머니의 남동생(외삼촌)은 같이 살기가 힘들 것 같아서 대전 친척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대(大)식구 부엌살림을 맡았다.
이듬해에 누님이 태어나고, 8식구가 문경시 산양면 신전리 2구(장잠)로 이주를 해서 새살 터울로 연달아 아들을 낳았다.
내가 막내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고,
사랑채는 사랑방과 뒤마루 옆엔 마구간이 있고, 옆에 창고 그 위에는 곡식 보관하는 다락방 있고 또 그 옆엔 디딜방앗간이 있는 4칸 집이었다.
안체는 부엌과 부엌 뒷방, 안방과 안방 뒷방, 겹 마루, 상방과 상방 뒷방 옆에 툇마루로 된 4칸 겹집이었다.
사랑방은 아버지가, 안방은 큰어머니가, 어머니는 상방에, 외할머니는 상방 뒷방을 썼다.
내 나이 6살 때 외할머니와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노환으로, 큰어머니는 않고 게시던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같은 해 누님(큰어머니의 막내)이 시집을 가셨다.
이제 어머니의 다섯 식구가 되었다. 어머니는 비로소 안방으로 몸을 옮기셨다.
식사 때는 사랑방엔 머슴 밥상을 한 상 차렸고, 안방에는 아버지 한상 우리 세 남매 한 상을 차리셨다.
자신은 남은 밥이나 반찬들로 상 밑에서 드셨습니다.
논농사는 머슴이 지었고, 밭갈이 빼고는 어머니가 파종, 김매기, 수확 다 하셨다.
나중에 땅이 줄어들고, 일부 밭이 논으로 바뀌고 해서 두 마지기 정도를 말년까지 지으셨다.
아버지가 1984년에 돌아가시고 46년을 혼자 사셨다.
고향에서 40년, 병석에서 6년을 사셨다. 아버지와는 30년을 사셨다.
2019년 겨울에 운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