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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제10장 : 덕(德)의 딜레마 The Dilemma of Virtue
일본인의 인생관은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에 나타나 있다 기무(義務)도 주의 세계 고의 세계... 등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다 마치 지도에 여러 지역들이 있듯이
일본인은 사람을 판단할 때 하나의 전체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고를 모른다 기리를 모른다 .. 는 식으로 따로 따로 분리해서 평가한다
예를 들어 기무를 위하여 행동할 때와 기리를 위하여 행동할 때 또 다른 기리를 위하여 행동할 때 각각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서로 요구하는 규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군에 대한 기리를 극진히 발휘하다가 어느날 모욕 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즉시 다른 기리 즉 복수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라는 충성의 마음으로 그렇게 사납게 싸우던 병사들이 천왕의 방송 한마디에 어제와는 정반대로 갑자기 점령군에게 협력한다 서양인들은 이런 모습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인들은 기본적으로 어제 오늘의 행동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많이 베풀든 구두쇠이든 잘 믿든 의심이 많던 보수적이든 자유적이든 원래의 행동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전체주의를 옹호하던 유럽인이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정치신념으로 바꾸지 않는다 미국인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인들의 눈으로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하나의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일본인의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는 그냥 모순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에게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악(惡)의 세계가 없다 도덕적인 생활을 우선하는 중국인들을 보고 그들은 원래 열등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게 필요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런 윤리 규율이 필요없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소설이나 연극에는 선과 악의 대결 대신 주와 고 기리와 기무 등의 갈등만 있다 주인공이 실패하는 것은 인정 때문에 기리를 소홀히 해서 그렇고 기무와 기리를 같이 놓고 보기 때문에 그렇고 기리 때문에 가족을 희생하고 이런 내용들이다
일본인들은 양쪽 모두를 살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하나에 몰두하면서 다른 하나는 바로 버린다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자살도 하나의 해결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찬양하는 '47 로닌(浪人) 이야기'가 있다 문학적 가치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일본인들은 수백년동안 가슴에 새기고 자식들에게도 가르친다 이들의 묘소는 지금도 수천만명이 참배하는 성지와 같다
'47 로닌 이야기'는 기무와 기리 기리와 기리 기리와 정의의 갈등의 실화이다 그들은 하나의 기리를 지키기 위하여 아버지 아내 누이동생 정의 자기 이름 등 모든 것을 희생한다
간단한 줄거리는
'1703년 지방의 다이묘 아사노는 쇼군의 행사에 선발되어 높은 다이묘인 기라에게 미리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같이 교육받던 다른 다이묘는 기라에게 큰 뇌물을 바치는 반면 아사노는 미처 그러지 못했다 기라는 뇌물을 적게 한 아사노에게 일부러 틀리게 가르친다 결국 쇼군 행사에게 망신을 당한 아사노는 기라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그 자리에서 칼을 휘두른다(=자기 이름을 위한 기리) 쇼군은 자기 앞에서 칼을 꺼낸 죄(=쇼군을 위한 기무를 위반)를 물어 아사노에게 셋푸쿠(切腹)를 (=기리와 기무를 같이 해결하는 방법) 명령한다 목숨을 끊은 아사노를 따라 그의 사무라이들도 같이 목숨을 버려야 한다(=주군에 대한 기리) 주군을 잃어 낭인(浪人)이 된 사무라이들은 그냥 목숨을 끊는 것은 너무 작은 기리라고 생각하고 복수를 준비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언제 어떻게 복수할건지 큰 관심을 가진다 다이묘에게 복수하려면 쇼군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주인공 사무라이 오이시는 300여명의 동료들을 모이게 하여 그중 결심이 굳은 47인의 낭인들만 골라낸다 (=피치못한 기리와 진정한 마음의 기리) 이들은 복수에 방해되는 나머지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결의한다 (=기리와 인정의 충돌) 복수의 대상인 기라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복수를 포기한 시정잡배 행세를 하며 온갖 멸시를 받는다 일부러 아내를 쫓아내고 어떤 낭인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내를 사창가에 판다 이 여자의 친오빠인 또다른 낭인은 자기 누이동생이 복수 계획을 눈치챘다며 죽이려고 한다 어떤 낭인은 의부를 살해하고 또 다른 낭인은 기라가 머무는 성채의 정보를 얻기 위해 자기 누이동생을 기라의 첩으로 들여보낸다 이 누이동생은 나중 복수가 성공한 후 오빠의 기리와 영주의 기리 사이에서 자결한다 계획한 날 기라의 성채를 습격하여 기라의 목을 벤다 낭인들은 기라의 머리를 들고 아사노의 묘지로 행진한다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길에 나와 이들에게 열광한다 심지어 다른 다이묘들은 이들을 영접하며 환대한다 그동안 낭인들을 멸시하던 사람들이 찾아와 사죄한다 묘지에 도착한 낭인들은 머리를 바친다 쇼군은 복수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쇼군의 기무와 주군의 기리 갈등) 이들에게 셋푸쿠를 명령하고 낭인들은 모두 자결한다(=기무와 기리의 동시 해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각색되기는 하나 주된 내용은 그대로이다
또다른 실화가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은 어린 나이에 지명된다 다른 후보자를 지원하던 한 다이묘는 이 '모욕(=이름에 대한 기리)'을 가슴에 품는다 세월이 흘러 쇼군이 그의 영지를 방문한다 쇼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암살을 준비한다 다이묘는 칼춤을 추는 사무라이에게 쇼군을 찌르도록 미리 지시한다 그러나 이 사무라이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쇼군의 기무와 주군의 기리의 갈등) 눈치챈 쇼군이 피신하려 하자 다이묘는 미리 준비한 대로 자기 성채를 무너뜨린다 이때 칼춤 추던 사무라이가 쇼군을 안내하여 피신하도록 한다 무사히 빠져나온 쇼군이 그 사무라이에게 보상을 주려고 하나 그는 거절하고 무너지는 성채로 되돌아가 목숨을 버린다 (=기무와 기리의 해결)'
서양인과 또하나 가장 다른 점은 아내와의 관계다 47 로닌에게 아내의 존재는 기무의 세계에서 제외되는 주변인일 뿐이다 훌륭한 인간은 고를 따라야 하며 부모가 헤어지라 하면 그냥 헤어져야 한다 자식이 있어도 마찬가지이고 그럴수록 더 강한 남자가 된다고 한다 어느 유명한 일본인이 귀국하면서 자기 아내와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부모를 만나게 되어 후지산을 다시 볼 수 있어 국가의 사명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 고 말해야 했었다
근대에 들어 없어진 쇼군 대신 천왕을 향한 주(忠)의 기무를 최고의 영역에 둔다 다른 모든 기무와 기리를 천왕 숭배 아래에 둔다
천왕의 권위있는 표시 중 하나는 1882년에 발표한 군인칙유이다 일본에서는 종교도 가지지 못하는 유일한 성전이다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릴 때는 봉안소에서 꺼내어 봉독하고 행사가 끝나면 다시 보관하는 귀중한 보물이다 행사장에서 잘못 읽은 어떤 관리는 바로 자살했다 군인들은 매일 아침 외우고 묵상한다 학생들도 외우게 한다
일본인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성실이 있다 일본인에게 성실이란 개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싸울 의사가 없으면 모욕을 주지 않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오직 일본인들만의 기준일 뿐이다 일본인들이 성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를 유의해서 해석하여야 한다
가장 유사한 영어 단어 sincerity도 느낌이 다르다 서양인은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여 결국 행복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인은 개인 행복을 버리고 기무나 기리를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서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실제 감정을 알려고도 않는다 선교사가 성의가 없다고 화를 낸 그 일본 소년도 선교사의 실제 마음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미국에게 성의가 없다고 비난하는 일본도 미국의 실제 생각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존중한다 self-respect 자중한다'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거짓말을 않는다거나 비굴하지 않다는 것과 다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주의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자중하라'고 말하는 뜻은 곤란해질 말을 하지 말라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 신중하라 경박하지 말라... 그런 뜻이다
인류의 문화에는 죄를 기준하는 문화가 있고 수치를 기준하는 문화가 있다 '죄의 문화'는 도덕적 기준으로 죄나 실수가 성립되고 벌을 받거나 참회함으로써 짐을 내려놓는다 일본은 수치를 기준하는 '수치의 문화'이다 수치 즉 하지(恥はじ )를 중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수치심은 고백한다고 벌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자책하게 된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도리를 지키지 못했거나 여러 기리의 균형을 잃었거나 잘못됨을 예상하지 못했을 때 하지를 느낀다고 한다 일본에서 하지가 주는 영향력은 서양인이 가지는 종교나 양심과 거의 비슷하다 일본인에는 종교적인 내세관이 없다
일본이 중국이나 필리핀을 상대로 '대동아'라는 엄숙한 사명(=즉 전쟁)을 수행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심한 모욕감과 분노를 느낀다 개인 입장에서 예를 들어 일본 유학생이 다른 문화권인 미국에 가면 쉽게 어울리는 중국인이나 필리핀인 유학생과 달리 일본인 유학생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그동안 교육받아온 일본식 사고방식이 미국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으면서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반대로 짧게나마 미국 생활을 하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적응하느라 무척 힘들어 한다
의외로 많은 일본인들은 옛날 생활 방식을 '잃어버린 낙원' '감옥' '분재'라고 표현한다 작은 화분에서 다듬어진 분재는 전체 정원의 한 부분으로서 아름다운 역할을 하지만 한번 땅에 옮겨지면 다시는 분재 화분에 돌아가지 못한다
참고 : <국화와 칼> 요약 2020.04.03
다음은 제11장 : 자기수련 Self-Discipline 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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